소설리스트

400화 (396/930)

다음 날 아침, 사메지마는 영주에게 알현을 청했다. 영주는 사메지마를 알현실이 아닌 내성에 위치한 정원으로 불러들였다. 정원의 중간에는 정원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수 있도록 작은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정자 위에 앉아 있던 후지와라 영주는 사메지마를 반갑게 맞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게나.”

“옛, 주군.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물론일세. 그건 그렇고 어젯밤 습격에 대한 전모는 밝혀졌나?”

밤새 정보를 취합하여 상황을 이리저리 분석한 터라 사메지마의 얼굴에는 약간의 피로감이 깔려 있었다.

“옛, 주군. 토시조의 보고에 따르면 어젯밤 습격에 가담한 닌자는 여덟 명이라고 합니다. 그중 셋이 야만인을 향해, 나머지 다섯이 주군을 향해 공격했습니다.”

“호오, 그런데 겨우 다섯밖에 잡지 못했다는 것인가? 아니지, 밑에 있던 야만인이 돕지 않았다면 겨우 셋이 되는군. 정말이지 쓸 만한 놈들이 없어. 그 법석을 떨고 겨우 셋이라니 말일세.”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주군.”

사메지마는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엿듣는 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경호병들은 요시나가의 지휘로 정자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네 명씩 조를 짜서 흩어져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그 어떤 대화도 결코 엿들을 수 없었다.

“닌자들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만약 토시조에게 방비하라고 지시했다면 모두 다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토시조의 지휘에 따라 닌자들은 그들을 멀리서 관찰하기만 했을 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당황해서 퇴각하는 닌자들의 뒤를 추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닌자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메지마와 영주뿐이었다. 그 외에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증가하기에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었다.

“그래? 아주 잘했군. 그래, 누가 범인이던가?”

“그건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도망친 닌자들은 겐페이 영지의 산간 지역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들어간 것으로 보아 미나모토 대영주가 배후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일단 마을 주변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흐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사메지마는 밤새 자신이 생각한 것을 후지와라 영주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일단 닌자들의 본거지는 대략적으로 밝혀낸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곳이 본거지가 아닐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멀리서 감시만 하라고 일러 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변동사항이 없는 것을 보면, 잘하면 더욱 큰 고기를 낚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도록 하게. 대신, 절대로 이쪽이 역추적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이르게.”

“옛, 주군.”

“그건 그렇고, 다쿠라는 소년이 대단히 뛰어난 검객이라면서?”

순간 사메지마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예, 주군. 그 잔인무도한 성격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실력 하나만큼은 진짜인 듯합니다. 사사키 선생은 그 소년이 야마토 전역을 뒤져도 적수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소년을 감시했던 마사코는 그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합니다.”

“오, 그래? 어떻다고 하던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20장(약 60미터) 정도를 순식간에 날아갔다고 합니다.”

“날아가?”

“옛, 닌자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소년이 달려가는 모습을 마사코가 뒤에서 봤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후에는 허공을 날아갔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조사를 해 보니 소년이 허공을 날아간 그 밑에는 닌자가 도망치면서 뿌려 놓은 수많은 마름쇠들이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후지와라 영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놀랍군.”

“예, 그 당시 소년은 발에 아무것도 신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잠자리에서 막 뛰쳐나왔을 테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마름쇠 위를 달려 갈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다만 있다면 마사코의 말대로 하늘을 날아가는 것뿐이겠지요.”

“글쎄……? 자네의 보고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아닐세. 하지만 난 토시조 같은 숙련된 닌자들의 경우나 그것이 가능하다고 들었네.”

“물론입니다, 주군.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가는 줄을 치고 그 위를 달려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년이 날아간 그곳에는 그 어디에도 줄을 쳤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영주는 놀라움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대단하군. 그 소년을 어떻게 하면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탐이 나는 인재로군.”

“천천히 정성을 다해 은혜를 베풀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주군.”

“아마도 그럴 테지.”

영주는 잠시 궁리를 하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사메지마에게 말했다.

“일단 그 소년이 닌자 둘을 죽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 않겠나? 이방인들을 오늘 저녁에 이리로 불러 주게. 도움을 줬으면 사례를 해야 하지 않겠나? 천천히 내 사람으로 만들어 보자구. 그리고 그것을 줘야겠어.”

사메지마는 영주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뭔가를 떠올리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주군. 서, 설마…….”

그날 저녁, 술에 절은 아르티어스와 얄미운 듯 그를 힐끔힐끔 노려보는 묵향이 도착했다. 말없이 사라진 것 때문에 혹시나 괴한들에게 납치된 것은 아닌가하여 걱정했는데, 술에 만취한 상태로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묵향은 사메지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억지로 아르티어스에게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

“어디 갔었는지는 나중에 따지겠어요.”

사메지마는 이방인들을 영주가 앉아 있는 정자 위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밀담을 나누는 데는 이 이상 좋은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주는 이방인들을 반갑게 맞이한 후 아르티어스에게 말했다.

“다쿠라는 소년에게 좀 전해 주겠소? 오늘 새벽에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이오.”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어리둥절한 어조로 물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오? 새벽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새벽에 닌자 패거리가 기습 공격을 가해 왔소. 닌자라는 것은 아주 고도의 훈련을 받은 자객들이라서 아주 상대하기가 까다롭지요. 그런 닌자가 다섯씩이나 쳐들어왔고, 그들을 없앤다고 1백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죽었소.”

아르티어스는 원통해서 땅을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좋은 구경거리를 술 마신다고 놓쳐 버린 것이다. 영주는 아르티어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향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 닌자들 중에서 둘을 해치운 것이 바로 당신의 아들이었소. 그 점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오.”

아르티어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뭐 별말씀을…….”

“원래는 내가 곧바로 치하해야 했지만, 통역을 해 *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늦어지게 된 거요. 그래서 당신을 술집에서 불러오라고 사메지마에게 지시하게 되었소. 술집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대를 방해하게 된 점 아주 미안하게 생각하오.”

후지와라 영주는 자신이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묵향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새벽녘에 있었던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것을 주겠소.”

갑자기 영주가 자기 옷을 벗어 건네자 묵향은 의아한 듯 아르티어스에게 물었다.

“이 새끼는 왜 지가 입던 냄새나는 옷을 벗어서 나한테 주는 겁니까?”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여기서는 영주의 옷을 받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지. 입지 않아도 상관없는 거니까 고마운 척하면서 받아 둬. 네게 결코 나쁜 거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죠 뭐.”

묵향이 옷을 받는 것을 보며 아르티어스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주절거렸다.

“아들이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무한한 영광이라고 하는군요. 아직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는 모양이라서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묵향이 퉁명스럽게 뭔가 말하는 것을 보며 표정이 굳어졌던 영주는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메지마에게 말했다.

“사메지마, 준비한 것을 다오.”

“옛.”

사메지마가 손짓을 하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녀가 길쭉한 상자를 들고 왔다. 상자는 아주 특별한 목재로 제작한 듯 검은 광택이 흐르고 있었다. 사메지마는 그것을 받아 들며 하녀에게 말했다.

“너는 그만 가 보거라.”

“옛.”

하녀가 물러가고 난 다음 사메지마는 상자를 후지와라 영주에게 건넸다. 영주는 상자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묵향에게 건네며 말했다.

“검객에게 검이 없을 수는 없는 법. 다쿠 상,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의 보답으로 이 검을 당신에게 주고 싶소.”

묵향은 영주와 길쭉한 나무상자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윽고 아르티어스에게 물었다.

“뭐라는 거예요?”

“오늘 새벽의 일로 너한테 검을 선물하고 싶다는 거다. 그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지.”

묵향 같은 무인이 검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묵향은 상자를 받아 든 후 곧장 열어 봤다. 상자 속에는 길고 짧은 검이 두 자루 들어 있었다. 묵향은 장검을 든 다음 반 정도 뽑아 봤다. 영주나 그 옆에 서 있는 사내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을 보면, 중원의 예법이 이곳에서도 통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예전에 쓰던 검들에 비하면 형편없지만, 뭐 아쉬운 대로 쓸 만은 한 것 같네요.”

아무리 야마토에서 알아주는 명검이라고 해도 아르티어스가 직접 만들어 줬던 그 황금빛 찬란했던 검과 어떻게 비교가 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묵향이 과거 중원에서 활동할 때 사용했던 묵혼검과도 비교될 수 없었다.

묵향의 표정은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는 듯했지만, 영주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묵향에게 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주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밤하늘을 바라다보며 영주는 회상하는 듯한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자네의 검을 이어받을 만한 무사를 찾아냈어. 이것으로 자네의 은혜에 조금쯤은 보답을 한 것 같군. 그 검들은 아주 오래전, 나에게 충성을 다했던 부하가 사용하던 것이었소. 그는 당신처럼 대단히 뛰어난 무사였지만, 수많은 적들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소. 그가 전사한 후 돌아온 것은 그의 검뿐이었소. 나는 여태까지 이 검에 어울릴 만한 뛰어난 검객을 찾고 있었소. 하지만 지금 내 부하들 중에는 그 검을 소유할 만한 자격을 지닌 우수한 검객은 단 한 명도 없었소. 그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백련정강(百鍊精鋼)으로 제법 그럴듯하게 만든 검이네요. 이런 검은 중원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데, 영주가 생색까지 내면서 주다니. 누구를 검 한 자루 볼 줄 모르는 바보로 아는 모양이죠?”

“여기서는 그것도 꽤 좋은 검에 들어가는 모양이야. 공짜로 주는 건데, 고맙게 받을 생각은 안 하고…….”

아르티어스는 영주에게 말했다.

“이런 소중한 검을 별로 해 준 일도 없이 받아서 약간 어리둥절한 모양입니다. 소중하게 쓰겠다는군요.”

영주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든다니 나도 기쁘군요. 오랜만에 함께 술이라도 들겠소?”

그 말에 아르티어스의 얼굴빛이 핼쑥하게 질렸다. 기생집에 쳐들어가서 영주의 이름을 팔아서 계집들과 어울려 줄창 마셔 댔었다. 뭐 영주가 술값을 계산해 주지 못하겠다면, 타르티 족장에게 헌납받은 돈으로 계산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또 여기서 술을 마시자고 하니, 아르티어스로서는 황당했던 것이다. 옆에서는 묵향이 계속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고 말이다.

“험, 험.”

『<묵향17 - 묵향의 귀환>에서 계속』

[작가 후기]

묵향 3부를 시작하며

묵향 3부를 어떤 식으로 시작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무림에서 곧장 시작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세외 무림 쪽에서 시작하는 방법도 있겠죠. 아무래도 무림에서 곧장 시작하는 것은 너무 밋밋한 구조가 될 것 같아서 변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물색한 곳이 여진과 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태껏 많은 무협에서 서장이 자주 등장했었기에, 여진을 선택했습니다. 동여진을 말입니다.

동여진은 이 글에 소개된 대로 고려 시대를 기준으로 해적질을 하며 특히 일본을 괴롭혔던 민족이었습니다. 고려의 수군이 우연히 본거지로 돌아가는 동여진 해적선단을 포착하고 추격, 나포하여 수백 명의 일본인들을 구출하여 일본으로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니 그들의 악행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나름대로 새로운 사실이었기에, 그것으로 3부 시작을 잡았습니다.

아르티어스와 묵향은 일본을 경유하여 중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마도 17권 마지막이나 18권 초반쯤에서 일본을 떠나 중원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에서 경험하는 풍물, 그리고 세력전 따위를 다룰까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두기는 하겠지만 여기 나오는 지명이나 인명에 너무 많이 신경은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설프게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사실과 많이 다른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도했던 분위기만 나타난다면 큰 상관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소설은 픽션, 허구니까요.

본격적인 무림 이야기는 18권부터 시작되겠군요. 아마도 송과 원의 교체기를 기준으로 사건이 전개될 것 같습니다. 잊혀졌던 그리운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겠죠.

나름대로 뛰어난 고수로 성장한 그들을 묵향이 지휘하여, 실종된 교주 덕분에 침체해 있던 마교는 급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과연 묵향의 영웅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많이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작가 전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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