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5화 (431/930)

다음 날 저녁, 장로들은 밤새 회의를 거듭한 끝에 다시 한 번 장문인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현천검제는 몇 가지 상의할 일이 있어서 그러니 와 달라는 말에 장로들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현천검제의 제자 일곱 명이 심한 고문을 당한 듯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고, 두 명의 장로가 검을 뽑아 든 채 언제라도 벨 기세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현천검제의 말에 백화 장로가 고개를 수그리며 용서를 빌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노부들을 용서하십시오, 장문인. 하지만 장문인께서는 본문이 지금 처해 있는 곤경을 잘 알지 못하십니다. 화산 전체를 무림맹의 무사들이 철통과 같이 포위하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무림맹이 화산파를 포위하고 있다는 말에 현천검제는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그 정도에 흔들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떳떳했기 때문이다.

“겨우 그 일 때문에 화산에 검을 겨눈단 말이오? 증거도 없이?”

“물론 저희들도 그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문인께서는 저희들이 납득할 만한 그 어떤 설명도 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저희들이 어찌 무림맹을 설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그쪽에서 의심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감히 대 화산파에 검을 들이대는 행위를 장로들께서는 납득하신다는 말이오! 마교 교주를 한 번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우리 화산파를 능멸하는 것이 아니고 뭣이겠소! 더군다나 노부가 아니라고 말했으면 그 누구보다도 믿고 따라와 주어야 할 장로 분들께서 이런 모습을 보이시다니요!”

노기에 찬 현천검제의 부르짖음에 모두들 움찔했다. 다른 장로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자 공천 장로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밤새 회의를 할 때, 제자들을 설득해 진실을 밝히자는 의견을 낸 자가 바로 공천이었던 것이다. 만약 현천검제가 마교에 포섭되었다면 그의 제자들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현천검제의 제자들을 잡아 고문까지 해 보았지만 신통한 대답을 얻지 못하자 다급한 나머지 제자들을 끔찍이 아끼는 현천검제를 위협해 보자는 방법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대사형, 저 말에 속아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저놈은 마교와 작당했을 게 뻔합니다! 지금 이렇게 넘어가게 되면 나중에 그 검은 흉심을 드러냈을 때 어찌 감당하려 하십니까?”

공천 장로는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현천검제가 설사 죄가 없다고 하더라도 만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장문인의 제자들을 적당히 구슬려 입을 열게 한다는 것이 손을 과하게 써 고문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지금 위협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일단 시작한 이상 끝을 보지 않으면 이쪽이 다치게 된다.

공천의 말에 백화 장로를 비롯한 나머지 장로들의 얼굴에도 난감한 기색이 짙게 떠올랐다. 그렇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공천 장로의 부추김에 넘어가 현천검제의 제자들을 고문하고 인질로 잡았기에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었다. 만약 이대로 물러선다면 후환이 두려웠다.

“장문인, 본문을 포위하고 있는 무림맹을 이해시키려면 장문인이 자리에서 물러나셔야 합니다.”

침중한 백화 장로의 말에 현천검제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금치 못했다.

“허헛, 노부가 물러나면 오히려 무림맹이 더욱 노부를 의심할 것이 분명한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하지만 장문인이 한 해명 정도로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증거는 없지만, 무림맹은 두고두고 본문을 의심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화산의 선조들께서 쌓아 놓으신 위명을 장문인 하나로 인해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현천검제는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이런 편협한 사람들과 수십 년 동안 동문이라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이 통한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얼마나 심한 고문을 당했는지 처참한 모습으로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제자들을 바라보는 현천검제의 가슴은 미어질 듯 아프기만 했다. 더군다나 제자들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위협을 하고 있는 저 모습들을 보라. 자신의 제자들은 저들의 사질이기도 하지 않은가.

현천검제는 자랑스럽게만 생각했던 화산파에 대한 자긍심이 일순 역겨움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통한에 젖어 두 눈이 붉게 물든 현천검제는 장로들을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크흐흐흣, 이런 썩어빠진 인간들을 노부는 그동안 동문이라 여기며 살아왔단 말인가! 지금까지의 생이 후회되는구나! 좋소, 노부가 어떻게 해 주면 되겠소?”

백화 장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장문인직에서 물러나셔야만 하겠소.”

현천검제는 쓰러져 있는 자신의 제자들을 바라봤다. 의식을 잃었는지 모두들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싸운다면? 아무리 그가 화경의 고수라 해도 모든 제자를 장로들에게서 안전하게 구해 낼 자신이 없었다. 싸운다면 결국은 그가 승리하겠지만, 그동안 그들이 제자들을 해코지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현천검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제자들을 구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무림맹까지 화산을 포위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좋소, 장문인직에서 물러나리다. 그러면 되겠소?”

이때, 공천 장로가 나서며 외쳤다.

“장문인직만 내놓는다고 뭐가 해결된단 말입니까? 파문을 시켜야지요, 파문을! 마교와 결탁한 자를 계속 본문에 놔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백화 장로는 사제들을 바라보았다. 둘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4대 3으로 파문시키자는 쪽이 우세였다. 사실 백화 장로는 이 정도까지 일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어찌 되었건 다수결에 따라 파문을 시켜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장문인, 장문인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장로들의 뜻이 그렇다 보니 노부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구려. 장문인을 화산파에서 파문하기로 결정했소이다.”

“허허헛, 이렇게 될 수도 있는가? 좋아, 노부도 내 결백을 믿어 주지도 않는 자들과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다.”

그러자 공천 장로가 또다시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본문의 문규는 잘 알고 있지 않소? 파문당한 이상, 본문에서 받은 것은 본문에 돌려줘야만 할 것이오.”

현천검제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 사문에서 받은 것은 나갈 때 사문에 돌려줘야 함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노부가 지닌 무공의 근본은 사문의 것이 아닐세”

그 말에 공천 장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꾸했다.

“물론 그렇겠지. 마공이 그 근본일 테니 말이야.”

현천검제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전대 장문인의 허락을 얻어 노부는 문 외의 인물에게 무공을 전수받았었네. 장로들은 그 사실을 잊었단 말인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장로들이 그것을 잊을 리는 없었다. 공천 장로가 재빨리 말했다.

“물론 그자에게서 약간의 검술을 배우는 것을 사부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알고 있소. 그리고 그자가 마교의 간세일 수도 있다는 것도 말이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소. 장문인이 지닌 내공의 근본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화산의 것이 분명하오. 내공의 근본이 화산의 것인 이상 내공을 폐해야만 하오. 안 그렇소?”

내공을 폐(廢)한다 함은 단전을 파괴하겠다는 말이다. 문제는 단전이 파괴되면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폐인이 되는 것이다.

현천검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금 이대로 도망친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자들의 안위도 걱정되었지만 무엇보다 화산파의 문도로서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이 그저 허망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좋소. 사문에서 받은 것, 나가는 마당에 사문에 돌려드리리다.”

그렇게 말하는 현천검제의 어조에는 짙은 허탈감마저 어려 있었다. 말을 끝맺은 현천검제의 손이 일순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현천검제는 마음을 굳혔는지 주저하지 않고 손을 기해혈(氣海穴)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일평생 쌓아온 내공을 자신의 손으로 없애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은 당연했다.

순간 하단전이 파괴되며 엄청난 충격이 그의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심한 내상까지 입었는지 그의 입가로는 가는 선혈마저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옷섶으로 입가를 쓱 닦은 후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장로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소.”

백화 장로가 안쓰럽다는 듯 그 말을 받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노부의 제자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으니 그냥 놔 주기를 바라오. 그리고 이번에 사로잡아 가둬 둔 자들을 조건 없이 풀어 주고, 그들이 장원을 건설하는 것을 그냥 놔두시오. 그들을 풀어 주지 않는다면 마교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얼굴을 붉히며 공천 장로가 끼어들었다.

“이자는 이제 본 파의 장문인이 아닙니다. 그런 만큼 저놈의 말에 귀 기울일 이유가 없습니다. 저자가 마교에 물들었다면, 그 제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결단코 이 녀석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쓰러져 있는 현천검제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공천 장로가 말했지만, 백화 장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장문인을 파문했다는 것이 외부에 밝혀질 수밖에 없네. 그런 만큼 자네의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어. 대신 이들의 주위에 감시를 붙여 조사를 하다가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면 그때 처치해도 늦지는 않다고 보네.”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자, 공천 장로는 다른 사안은 결코 양보 못하겠다는 듯 거품을 물고 떠들었다.

“저자의 제자들은 그렇다고 쳐도, 사파 놈들을 풀어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교와는 그 어떤 협상도, 타협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사형? 저는 이번 기회에 그놈들의 목을 베어 본문의 영역에 침입한 사파는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림맹이 본문의 저의를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상당수의 장로가 공천 장로의 뜻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것을 본 백화 장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장문인의 제자들은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청은 들어줄 수 없겠습니다. 그들은 본문의 세력권을 침입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쿨럭! 그게 장로들의 선택이라면 좋을 대로 하시오. 이제 노부는 가 봐도 되겠소?”

현천검제가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공천 장로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단전이 파괴된 이상 현천검제의 무공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사형, 이 녀석을 그냥 가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본문의 장문인이 폐인이 되어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누군가의 눈에라도 띄어 보십시오. 그러다가 만약 마교와 결탁한 것이 드러나 장문인직을 물러났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본문의 제자들은 얼굴을 들고 밖을 나다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이자의 내공을 폐했다고는 하지만, 이자는 본문이 자랑하는 모든 무공을 알고 있습니다. 이자가 만약 마교에다가 본문의 무공에 대해 떠벌리기라도 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습니까?”

“대사형, 셋째 사형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백화 장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의 어조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장문인, 노부로서는 어쩔 수가 없구료.”

그는 사제들을 향해 지시했다.

“장문인을 참회동(慙悔洞)으로 모셔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공천 장로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대사형, 저자를 참회동에 가두시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저놈이 탈출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방지하려면 누군가가 입구를 지켜야만 할 텐데, 누구에게 그 일을 시키실 겁니까? 만약 그러다가 입에서 입으로 비밀이 새 나가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냥 지금 죽여 버리는 것이 가장 뒤끝이 깨끗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야. 파문당했다고는 하나 어떻게 장문인으로 모셨던 분을 우리 손으로 죽일 수가 있다는 말이냐? 그건 절대로 노부가 허락할 수 없다.”

공천 장로는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손발의 힘줄이라도 절단하여 도망이라도 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편이 훨씬 일이 수월할 겁니다.”

그 말에 현천검제의 몸이 일순 움찔거렸지만 이미 생을 포기한 듯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백화 장로는 안쓰럽다는 듯 그를 잠시 바라봤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 이상 나은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백화 장로는 공천 장로를 향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이 보고 싶구나

개봉 주위에는 수많은 무림의 문파가 난립해 있었다. 1백여 명이 넘는 식객을 갖춘 제법 규모가 큰 문파들의 수만 해도 1백여 개에 이른다. 게다가 3류 떨거지들이 세운 작은 문파들까지 모두 합하여 그 수를 알려 달라고 묻는다면, 개봉을 본거지로 삼고 있는 개방도들마저도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하루아침에 망하는 문파도 많았고, 또 그만큼 새로 세워지는 문파도 많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알다시피 거대 문파 개방의 본거지는 개봉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개방이 지닌 특수성 때문이었다. 거지들의 문파인 개방은 다른 여타 문파와 달리 주변의 상권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재물이 많은 개방은 더 이상 거지들의 문파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설혹 어떤 일을 해 준 대가로 많은 재물을 획득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개방에서는 그것을 빈민구제 같은 좋은 일에 쾌척해 버렸다. 그렇기에 힘은 미약한 개방이 정파의 한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방 외의 다른 문파들은 모두들 하나라도 더 많은 이권을 획득하기 위해 오늘도 피 튀기는 세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은 사파 계열의 제법 큰 방파인 묵룡문(墨龍門)도 예외일 수 없었다.

쾅!

문을 부숴 버릴 듯 박차고 부문주가 뛰어 들어오자, 용이 그려진 검은 장포를 입고 있던 매섭게 생긴 사내는 깜짝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흑사파 놈들의 침입이냐?”

사내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싸움을 걸어온 것으로 짐작한 것이다. 하지만 부문주의 반응은 평상시와 매우 틀렸다. 부문주는 도대체 뭘 봤는지 겁에 질려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무, 문주님! 무, 무서운 고수가 침입했습니다.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빨리!”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무서운 고수라니? 본문의 고수들은 모두 뭐 하고 있다는 말이냐?”

“그, 그, 그게…….”

문주는 답답한지 커다란 손바닥을 들어 부문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봐, 정신 좀 차리고 제대로 보고를 해 봐!”

“문주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도망치십쇼, 사갈대(蛇蝎隊)조차 반각을 버티지 못하고…, 헉!”

부문주가 방금 자신이 들어왔던 문 쪽을 보고 경악성을 지르자, 문주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괴이한 몰골의 중년 사내가 흉악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이마는 두툼한 머리띠로 휘휘 휘감았고, 입 또한 목도리를 이용해서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로도 가려지지 않는 부분으로 어디서 쥐어 터졌는지 엉망진창인 몰골이 조금이지만 드러나 있었다.

중년 사내의 허리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값비싸 보이는 검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중년 사내는 구태여 이런 싸움에 자신의 애검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는 듯 묵직해 보이는 몽둥이를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시뻘건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중년 사내는 차가운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말씀이야.”

문주라 불린 사내는 얼른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묻고 있는 자가 자신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무공보다 상대의 실력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눈치가 필요한 법이다. 당연히 문주의 태도는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거짓말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슬그머니 들어 올린 피에 젖은 몽둥이가 그 뒤에 진행될 순서가 뭔지 그들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비록 묵향에게 손도 못 써 보고 무참하게 깨졌다고는 하지만, 냉파천의 무공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몽둥이 하나만으로 개봉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파 여덟 곳을 박살 내며 정보를 끌어 모아, 새로이 건설 중인 마교 하남분타의 위치를 파악해냈다. 마교에서 묵룡문의 세력을 이용해 하남분타를 건설 중이었기에 묵룡문 문주를 족치는 것만으로 그 귀중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곧장 하남분타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 황당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자신들이 올 줄 알기라도 한 듯 하남분타의 분타주가 친절하게 그 먹잇감의 위치를 술술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가.

“아, 안 그래도 오시면 얼른 말씀드리라고 하시더군요. 핫핫핫!”

냉파천으로서는 분타주의 말에 의심을 가질 것이 당연했다. 비록 하급 분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교의 분타가 아닌가. 당연히 먹잇감의 위치를 불지 않기 위해 반항을 할 테고, 자신은 마음껏 그동안 쌓인 울분을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미소 띤 얼굴로 사근사근하게 말해 주다니…….

이건 분명 뭔가 음모가 있다고 판단한 냉파천은 더욱 힘 있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제야 몇몇 마졸이 반항했지만, 냉파천이 휘두른 몽둥이의 얼룩 색깔을 좀 더 붉게 만드는 데 일조했을 뿐이다. 만약 처음부터 적이라 생각하고 힘을 모아 반항을 했다면 그래도 좀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아직 분타의 틀이 갖춰지지 않은 때였기에 임시 분타주도 무공보다는 건설과 토목 쪽으로 뛰어난 인물이 선정되어 반항을 한다 해도 무리는 있었지만 말이다.

지엄하신 교주의 명을 받들어 최소한의 방비도 하지 않고 손님을 맞아들이며 위치까지 말해 주었거늘 몽둥이찜질에 머리통이 터진 분타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로서는 묵향이 말한 자가 이자가 아닌 아르티어스였다는 걸 알 리가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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