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9화 (435/930)

그로부터 3일 후, 묵향은 비마대의 첩자들이 현천검제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묵향이 10여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달려가자, 동굴 앞에는 흑녹색의 우중충한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 셋이 서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묵향을 알아본 듯 황급히 오체투지하며 외쳤다.

“비마대 제14조장 왕석(汪奭), 교주님을 배알하옵니다!”

그러자 왕석과 함께 있던 인물들도 황급히 땅바닥에 엎드렸다. 묵향은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됐다, 일어서거라. 그는 어디에 있느냐?”

“바로 이곳이옵니다.”

왕석이 가리킨 곳은 동굴 안이었다. 묵향은 서둘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사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제의 모습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팔과 다리의 힘줄은 끊겼고, 제대로 치료도 안 된 상처는 곪아 터져 파리가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개새끼도 아니고 목에는 굵은 쇠사슬이 매여 동굴 벽에 묶여 있었다.

묵향은 황급히 다가가서 사제의 상태를 살펴봤다. 단전이 파괴되며 상당한 내상까지 입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아,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 상태로 며칠만 더 지났다면 묵향은 아마도 사제의 시체와 만났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사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 꼴을 만들었다는 말이냐! 진정한 무인은 죽일지언정 모욕은 주지 말라고 하였거늘…….”

묵향은 재빨리 손을 사제의 단전에 가져갔다. 그런 다음 주위에서 기를 빨아들여 사제의 단전에 쏟아 부었다. 엄청난 기의 회오리가 사제의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며 단전을 복구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괴된 단전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묵향과 현천검제의 몸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묵향이 가진 힘을 모두 끌어올리자 주위에 있던 대자연의 기에 의해 허공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두어 시진 정도가 흘렀을까, 묵향의 이마에 조금씩 땀방울이 맺힐 때쯤 파괴된 현천검제의 단전이 천천히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화경에 달하는 거대한 공력을 포용할 수 있는 그런 형상으로 말이다.

어느 정도 단전에 대한 치료가 끝나자 묵향은 기를 이끌어 사제의 몸속을 휘돌게 만들었다. 기는 일정한 법칙을 그리며 사제의 몸속을 꾸준히 맴돌며, 내상을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사제는 정신이 드는지 신음성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제, 정신이 드느냐?”

“이, 이 목소리는…, 사형이십니까?”

“그래, 내가 왔다네.”

“사형을 뵙기도 전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사형의 목소리와 모습을 보고 나니 죽어도 여한은 없을 듯하군요. 외람된 부탁이지만 제가 죽으면 사부님 곁에 묻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묵향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다 살려 놨는데 자신의 몸 상태도 모르고 유언을 하다니. 하지만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해 준 사제의 마음이 찡하게 와 닿았기에 묵향의 눈에는 어느덧 살짝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묵향은 슬쩍 눈물을 닦아 버리고는 품속에서 금창약을 꺼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나중에 죽으면 거기에 묻어 주기로 하지. 그 외에 딴 부탁은 없느냐?”

“사형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건 뭐 하려고 그러십니까?”

현천검제는 묵향이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는 것을 보고 물은 것이다. 묵향은 피식 웃으며 슬쩍 손을 써서 사제의 턱뼈를 탈골시키며 말했다.

“마취제도 없고, 입을 틀어막을 것도 없으니 이렇게 하는 것일세. 혹시나 잘못해서 혀를 깨물면 안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다고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네도 알지? 재주껏 참아 보게나.”

턱뼈를 탈골시켜 버리면 당연히 혀를 깨물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묵향이 뭔가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한 것은 현천검제만의 착각이었을까?

‘아니, 점혈만 하면 끝나는 일을 턱을 뽑다니…, 지금 정신이 있으신 겁니까? 없으신 겁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턱뼈가 뽑혀 버린 현천검제의 입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올 리 만무했다. 그의 입에서는 괴상한 소리만이 안타깝게 흘러나올 뿐이었다.

“으… 으… 으… 읍…….”

“크흐흐흣, 색깔이 시커먼 것을 보니 확실히 손을 써야겠군.”

희번뜩거리는 묵향의 눈을 바라보는 현천검제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설마? 맞아. 저 인간은 그런 놈이었지. 내가 한순간이라도 저 인간을 사형이라고 믿었다니…….’

묵향의 비수가 썩어 들어가는 사제의 살 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우으으으윽!”

턱이 빠진 탓인지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기나긴 비명 소리가 참회동 안을 가득 메웠다.

시커멓게 썩은 핏물이 한동안 쏟아져 나오더니 이윽고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묵향은 그 위에 금창약을 발라 준 후, 현천검제를 살펴봤다. 지독한 고통 때문인지 치료를 받던 현천검제의 몸은 이미 축 늘어져 있었다.

“이런, 벌써 기절해 버렸나? 조금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약골이었군.”

현천검제는 깨어나자마자 묵향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치료가 끝난 후 묵향이 그의 턱뼈를 바로 맞춰 줬기에 말을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무식한 치료법이 있다니……. 그리고 혈도만 짚으면 끝날 일을 가지고 다짜고짜 턱을 뽑다니, 정신이 있으신 겁니까?”

묵향은 순간 흠칫하더니 곧이어 전혀 몰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런 방법도 있었군. 그런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노부가 손을 쓰기 전에 빨리빨리 말해 줬으면 서로가 좋았지 않았겠나. 자네도 고통을 받지 않았을 테고, 내 귀도 고생을 좀 적게 했을 테고 말일세. 사서 고생을 하다니 자네도 참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군.”

턱뼈를 뽑은 후 그 의도를 말해 줬었기에, 현천검제로서는 그 말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현천검제는 더욱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저딴 소리를 변명이랍시고 늘어놓고 있다니…….’

한 번 상대를 오해하기 시작하니, 상대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었다. 그 오랜 세월 쌓아 놓은 도력(道力)조차 하나도 도움이 안 될 정도였으니, 그가 지금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이해할 만했다.

“오리발 내밀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할까 봐서 재빨리 턱을 뽑으신 거 아닙니까?”

그의 지적에 묵향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는가, 사제. 설마 노부가 사제를 괴롭히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지? 노부는 그렇게 심성이 악랄한 사람이 아니라네.”

묵향의 가증스러움에 현천검제는 치를 떨어야만 했다.

‘이런 젠장,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런 식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주제에. 그건 그렇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것 같았는데, 어찌 이렇게 힘이 넘치는 거지?’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한 현천검제는 기절할 뻔했다. 단전이 파괴되었었는데 어떻게 그것이 회복될 수 있단 말인가? 사형이 천고의 영약이라도 먹인 것인가? 정파라고 자부하던 사형들은 그토록 악랄하기 그지없었는데, 어떻게 마교에 있는 사형은 이토록 정도 많고 멋이 있는지…….

한 번 사람을 잘 보게 되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좋게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기에 현천검제는 방금 전에 당한 모든 일이 자신의 오해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사실은 오해가 아니었다. 묵향은 자신을 이토록 귀찮게 만든 사제를 혼내 주고 싶어 일부러 그랬던 것이다.

“일단 대충 응급조치는 취했으니 운기요상이라도 좀 하게. 내가 강제로 하기는 했지만 자잘한 곳까지 손을 쓰기는 귀찮은 일이거든.”

현천검제는 쇠사슬을 철그럭거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자 묵향이 뒤에서 말했다.

“내가 기를 인도할 테니 잘 기억하게. 기왕에 내공을 다시 쌓을 건데 가장 좋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묵향의 말뜻을 금세 이해한 현천검제가 물었다.

“사형께서 전수하실 심법의 이름은 뭡니까?”

“태허무령심법이라는 것일세. 잊혀진 현문의 심법이지. 뛰어난 효능이 있지만 이것을 대성하는 데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익히는 자가 없다 보니 어느 사이엔가 절전된 것이라네.”

현천검제는 망설일 것도 없이 대답했다. 기왕 사문을 버린 마당에 어떤 심법을 익히든지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또 사문의 심법을 이용하여 내공을 쌓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의 한 시진 동안 운기조식을 하던 현천검제가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의 몸을 구속하던 쇠사슬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끝났느냐?”

“예.”

“수하에게 말해 놨으니 객잔에 가서 푹 쉬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좀 섭취하도록 해라.”

“예, 감사합니다, 사형.”

현천검제는 잠시 묵향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사형, 제 목숨을 구해 주신 것은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복수를 원치 않습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흥!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네 녀석의 복수를 하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감히 본좌의 명을 거부하는 놈은 어떤 꼴을 당하게 되는지 보여 주려고 찾아왔을 뿐이지. 하지만 일단 와 보니 그렇게 간 큰 짓을 하는 놈이 네가 아님을 알고 너를 찾은 거다. 알겠냐?”

말이라도 좀 좋게 하면 어디가 탈이 나는가? 현천검제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거나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형. 그런데 화산파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본좌의 말을 거부하는 놈들은 당연히 멸문시켜 버려야지. 내가 그놈들을 그대로 놔둘 리가 없지 않느냐. 화산을 멸문시키는 것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니 절대로 착각하지 말도록 해라.”

이미 묵향 사형을 굳게 믿고 있는 현천검제는 상대의 퉁명스런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따뜻하기 그지없는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시려고, 내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로군. 나로 인해 화산파를 공격했다면 내가 너무나도 가슴 아파할 거라는 것을 잘 아실 테니 말이야. 사형의 그 따뜻한 마음,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속마음이 그렇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그도 한때 화산의 제자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화산파를 멸문시킨다면 지금 화산에 남아 있는 자신의 제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기에 현천검제는 자신의 사정을 말하기 위해 묵향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형, 화산의 전 문도를 쓸어버리는 것은 아무리 사형이시라도 좀 힘드실 텐데요. 웬만큼 하시고 그냥 용서해 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큭, 그럴 줄 알고 염왕대를 대기시켜 놨으니 걱정 말거라. 자, 그럼 오늘은 푹 쉬거라.”

그와 동시에 묵향은 방금 전 그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현천검제가 그렇게 원했던 행위, 즉 혈도를 제압하는 방법으로 현천검제를 잠들게 만들었다. 괜히 그가 사문에 대한 의리를 지킨답시고 이것저것 떠들면 일이 귀찮을 테니 말이다. 손 다리가 불구라고 해도 그는 현재 화경의 무위를 되찾은 상태였다. 그런 그를 수하 몇 명이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에 혈도를 제압한 것이다.

하지만 묵향의 이런 행동 때문에 현천검제는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못하고 말았다. 하다못해 자신의 제자들만이라도 살려 달라는…….

“객잔에 데려가거라.”

“옛!”

“본좌는 화산을 쓸어버린 후 그곳으로 갈 것이야.”

“알겠습니다, 교주님!”

“수하들의 배치는 끝났는가?”

묵향의 물음에 천진악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명만 하십시오.”

“그럼 지금 시작하기로 하지.”

교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천진악은 수하에게 지시했다.

“신호를 올려라.”

그 명령에 따라 수하 한 명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충분한 내력이 실린 장소성은 화산파 주위를 휘감고 돌며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화산파를 중심으로 다섯 군데에 나누어 대기하고 있던 염왕대가 돌격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모두 다 죽여 버려랏!”

묵향은 돌격하는 수하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해 지기 전에 끝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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