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0화 (436/930)

화산파에서는 요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침입입니다.”

“마교 놈들이 침입했다!”

여기저기에서 도포 자락을 날리는 화산파의 제자들과 흑녹색의 옷을 걸친 마교 고수들 간의 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는 화산파 쪽이 월등하게 많았지만, 마교도들은 염왕대의 고수들. 그것도 처음부터 기습으로 시작된 전투다 보니 마교 쪽으로 전세가 급속도로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화산의 고수들도 적의 침입에 맞서 칠성검진(七星劍陣)이나 옥청검진(玉淸劍陣) 등 각자의 수준에 맞는 검진을 구축하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끝날 것처럼 보였던 전투는 조금씩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천진악이 나섰다. 그는 여기저기 전장을 누비며 검진에서 주축이 되는 한두 명만을 없애 버리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검진은 자연스럽게 무너져 버렸고, 순간적으로 검진이 와해된 틈을 노려 공격해 오는 마교도들에 의해 하나하나 죽음을 당하기 시작했다.

묵향은 사방에서 칼부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 신경도 쓰지 않고 화산파의 중심부로 걸어 들어갔다. 과연 그곳에는 대단히 뛰어난 고수들이 칠성검진을 치고 격렬한 저항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봐, 너희들은 딴 데 가 봐.”

“존명!”

그와 동시에 가장 핵심이 되는 칠성검진을 공략하고 있던 마교도 수십 명이 공격을 멈추고 다른 곳을 지원하기 위해 달려갔다.

칠성검진을 구성하고 있던 자들 중에서 가장 연배가 높아 보이는 듯한 인물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는 바로 장로들 중에서 가장 맏이인 백화 장로였다.

“귀하는 누구시오? 노부는 화산의 백화라고 하오.”

그때 옆에서 다른 장로가 외쳤다.

“대사형, 저자가 바로 장문인실에 침입했던 마교 교주입니다!”

그 말에 백화 장로는 다시 한번 묵향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그때와 상황도 다르고, 또 옷차림도 달라서 교주를 못 알아봤음을 용서하시구려. 그런데 대체 왜 본문을 침입한 것이오이까?”

그 말의 대답은 묵향이 아니라 공천 장로가 대신했다.

“대사형, 그것도 모르시오이까? 저자는 지금 그놈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겠소!”

그 말에 묵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복수? 누구의 복수를 말하는 것이냐? 오호라, 현천 사제를 말하는 모양이군.”

묵향이 사제라고 하자 장로들은 모두 흠칫했다. 사제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교주,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그가 어떻게 교주의 사제라는 말씀이오?”

“아아, 정식 사제라는 말은 아니야. 내 사부들 중의 한 명이 그놈에게 심심풀이로 검술을 조금 가르쳐 준 모양인데, 그 때문에 편의상 사제라고 부르는 거야.”

백화 장로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따졌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제의 복수를 위해 본문을 공격했다는 말씀이오?”

“아니, 그것은 그 멍청한 녀석이 자초한 것. 녀석은 충분히 도망칠 수도 있었어. 그런데 사문에 대한 얄팍한 충성심이 그놈을 그 모양으로 만든 것이지. 그건 놈의 선택이었다. 어찌 감히 네놈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 수 있었다고 개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왜 화산파를 공격한 것이오?”

“물론, 본좌와의 협상을 거부했기 때문이지. 그렇게 되면 화산을 완전히 쓸어버릴 것을 네놈들은 몰랐단 말이냐?”

그 말에 장로들은 현천검제가 마지막으로 청했던 부탁을 거절한 것을 떠올렸다. 현천검제는 그것을 거절하면 마교가 곧바로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 그럴 수가……. 겨우 사파의 작은 문파와의 다툼 때문에 대 화산파를 건드린단 말이오? 무림맹에서 당신들을 가만히 놔둘 것 같소?”

“호오, 감히 무림맹 따위로 노부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냐? 무림맹 따위가 무서웠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이 멍청이들아.”

현경의 고수가 행하는 기습 공격은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었다. 화산의 장로들은 상대가 언제 검을 뽑았는지 그것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한동안 입씨름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또 마교의 교주쯤 되는 인물이 이토록 치졸하게 기습을 가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던 터라 기습에 대한 대비는 갖춰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묵향의 목표는 단 한 사람. 칠성검진을 이끌고 있던 핵이라 할 수 있는 백화 장로였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연결되는 묵향의 공격은 빛과 같이 빨라서 감히 눈으로 쫓아가기도 힘들 지경이었지만, 백화 장로는 최선을 다해서 회피하며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현경의 고수에게 기선을 뺏긴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실책이었다. 주위에 있던 사제들이 대사형을 돕기 위해 뛰어들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결전은 끝난 후였다.

“으아아악!”

푸른빛이 번쩍이는 순간 백화 장로의 두 다리가 뭉텅 잘려 나간 것이다. 피가 뿜어져 흘러내리자 백화 장로는 재빨리 점혈하여 출혈을 막았다.

“대사형, 괜찮으시오?”

“노부는 괜찮으니 사제들은 저자의 공격을 조심하게. 언제 또다시 기습을 가해 올지 알 수 없으니 말일세.”

바닥에 주저앉은 채 검을 잡고 전의를 불사르는 백화 장로를 보며, 사제들은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교주라고 해도 자신들 모두를 상대하려면 결코 쉽지는 않을 거라고 서로를 격려하며 말이다.

하지만 한번 빼앗긴 기선은 결코 되찾아올 수가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며 공격을 가해 오는 묵향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사이에 이동은 하지 못하고 검만을 휘두를 수 있는 백화 장로가 끼여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존재가 그들의 통합적인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또다시 피 보라가 피어나며 한 사람이 쓰러졌다. 공천 장로의 다리까지 깨끗하게 잘려나가자 그들은 이제야 백화 장로의 다리를 자른 것이 완전히 고의적인 행위였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이렇게 잔인무도할 수가.”

“네놈은 어떻게 이런 흉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빈틈을 노려 공격한 것도 아니고, 다리만을 자르다니! 네놈이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묵향의 싸늘한 비웃음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얼굴 가죽이 두꺼운지 모르겠군. 자칭 도사라고 하는 네놈들도 그렇게 했잖아. 안 그래?”

묵향의 지적에 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들도 현천검제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저놈을 쳐라.”

하지만 이미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던 두 명이 사라진 지금, 그들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고 도주한다면? 자신들보다 경공술이 월등히 빠른 상대를 앞에 두고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끝까지 저항하는 것 외에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으아아악!”

묵향에게 저항하던 화산의 장로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 명씩, 한 명씩 다리가 떨어져 나간 불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지만, 희망이라고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 한 사람의 다리까지 잘라 버린 후, 순간적으로 묵향의 손에서 일곱 줄기의 시퍼런 강기의 덩어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들은 기묘한 곡선으로 휘어지며 이동하더니 일곱 장로의 단전을 한순간에 꿰뚫었다.

“크아아악!”

내가의 공력을 익힌 상승고수라면 단 한 올의 기만 있어도 자신의 생명을 끊을 수 있다. 하지만 단전이 파괴되어 기가 흩어진다면, 결코 그런 방식으로는 자살할 수 없게 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뭔지 깨달은 순간, 그들은 사형제의 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놈의 목적을 막는 것. 그것 외에는 복수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묵향의 손에서 일곱 줄기의 지풍이 쏘아져 나와 검을 쥐고 있는 각자의 손을 격중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크악!”

각자가 쥐고 있던 애검들은 주인의 뜻을 배반하고 맑은 쇳소리를 울리며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크흐흐흣,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어리석은 것들. 이제 네놈들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러라.”

또다시 묵혼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들의 팔은 몸에서 떨어져 나가 땅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제, 제발 죽여 주시오. 그대도 무인이라면 노부들에게 이런 치욕까지 안기지는 말아 주시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들을 묵향이 아니었다. 묵향은 그들의 혈도를 점하여 지혈까지 시켜 준 다음 싸늘하게 말했다.

“물론 무인에게 치욕을 가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네놈들은 도사도, 무인도 아니야. 현천 사제에게 행한 일을 생각해 봐라. 네놈들이 과연 무인으로서 행할 일을 했는지 말이야.”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단전이 파괴된 화산의 노고수들은 자신들이 현천검제를 제거한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나를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들은 탄식과 신음 소리만을 울릴 수 있을 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에게 죽음이 찾아오기를 무작정 기다리는 것뿐.

묵향의 작은 복수가 끝났을 때, 화산에서 들려오던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도 이미 멎어 있었다.

천진악은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버둥거리고 있는 화산 장로들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교주께 결과를 아뢰었다.

“교주님, 승전을 경하드리옵니다.”

“모두들 수고했다. 너희들은 이 길로 본교로 돌아가도록 해라.”

“옛, 그런데 저들은…….”

자신이 그들의 목을 잘라서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 줘도 되겠느냐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묵향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저놈들은 그렇게 죽을 가치조차 없는 놈들이다! 그대로 놔두도록 해라!”

“옛! 그런데 화산의 무공비급이나 재물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모두 다 끌어내어 본교의 창고에 넣어 두도록 해라.”

“옛!”

“그리고 건물에 불을 지르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도록!”

“예?”

보통 쑥대밭을 만든 후 불을 지르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지시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천진악이었다.

“불을 지르면 그것을 보고 어떤 놈이든 올라올 것이 아니냐. 본좌는 화산이 멸문되었다는 것이 빨리 밝혀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니 저 밑에다가 ‘본문에 일이 있어 당분간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방을 붙여 놓거라. 그러면 너희들이 총타로 돌아가는 데 편리할뿐더러 저 버러지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참회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얻게 되겠지.”

천진악 장로는 교주의 잔인함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묵향은 백화 장로가 사용하던 검을 집어 들어 천진악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화산을 멸문시킨 기념품은 챙겨야겠지? 이건 그대가 가지도록!”

그 검은 바로 화산 장문인을 뜻하는 신물인 보검이었다. 천진악 장로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고개를 깊숙하게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자신에게도 좋은 검이 있긴 하지만, 이런 훌륭한 기념품을 자신에게 양보하는 교주의 배려에 그는 크게 감동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이건 사제한테 주면 좋아하겠군.”

묵향은 또 다른 검을 주워 들며 중얼거렸다. 그것은 바로 공천 장로가 떨어뜨려놓은 것으로, 현천검제의 애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묵향의 사부인 유백의 애검 명옥검이기도 했다.

검을 주워 든 묵향은 천진악을 향해 말했다.

“그럼 본좌는 이만 가 보겠다. 더 이상 시킬 일은 없으니 정리가 끝나면 수하들과 함께 본교에 귀환하도록 해라.”

“옛!”

묵향이 돌아가고 난 후, 염왕대는 전사자들과 중경상자들을 수습하는 한편 화산파 곳곳을 뒤져 보검 같은 귀중한 물품들을 모두 다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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