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무진은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살찐 말과 양을 잡고, 마유주에 취한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나와 몽고식 씨름인 ‘버흐’를 즐기며 자신의 용맹을 뽐냈다. 가죽으로 만든 꽉 끼는 반바지와 벗어젖힌 근육질의 상체가 그들을 더욱 용맹스럽게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부족장인 테무진과 묵향이 가장 상석에 앉고, 묵향의 옆에 초류빈이 자리를 잡았다. 몽고 여자들이 각종 음식들을 가져왔다. 초류빈은 먼저 보기 좋은 모양으로 잘라놓은 하얀 덩어리를 보고 약간 망설이다가 집어 들고 조금 맛을 봤다. 전체적인 향으로 보아 뭔가 동물의 젖으로 만든 것인 모양인데 고소한 것이 꽤 맛이 괜찮았다. 그걸 몇 개인가 집어먹고 있던 초류빈의 눈에 문득 커다란 가죽 부대가 보였다. 방금 전에 맛본 음식이 꽤 마음에 들었던 초류빈은 이번에는 가죽 부대에 든 음식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사발에 조금 따른 후 냄새를 맡았다.
‘으윽! 정말 이 냄새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군.’
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그는 조금 맛을 봤다. 냄새와는 달리 맛은 아주 좋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입속에 그것을 집어넣은 초류빈의 안색은 더욱 일그러졌다. 그는 그것을 마신 것을 후회하며 몰래 옆에다가 뱉어 버렸다. 맛은 냄새보다 더욱 고약했던 것이다.
“젠장, 이따위 걸 마시고 있다니…….”
이때, 기가 막힌 생각이 초류빈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음흉스런 미소를 지으며 혼자 즐거워하다가 이윽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짐짓 커다란 사발을 묵향에게 권하며 말했다. 물론 표정 관리를 충분히 하면서 말이다.
“아까 막이첨의 말을 듣자 하니 여기서는 이 술을 잘 마시면 아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교주님께서도 한잔하시죠. 동맹을 축하하는 자린데, 테무진이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묵향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오오, 자네가 그런 소소한 것까지 신경 쓸 줄이야, 제법이군. 그럼 따라 봐라.”
“옛.”
따르라면 못 따를 줄 알았는가. 초류빈은 커다란 가죽 부대를 가져와서 사발이 넘치기 직전까지 따랐다. 느글거리는 묘한 역한 냄새를 흘리는 희뿌연 액체가 찰랑거렸다.
저걸 한 사발 들이켠다면 뱃속이 아마 뒤집힐 거다. 물론 자신은 가죽 부대 덕분에 마시는 척만 할 수 있었지만, 저렇게 사발에 담아 줬으니 어쩔 수 없이 몽땅 다 마셔야만 한다. 더군다나 지금 이 자리는 동맹을 맺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닌가. 아무리 제멋대로인 교주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초류빈은 몇십 년 동안이나 묵혀 두었던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것만 같은 통쾌함을 느꼈다.
초류빈이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모르는지 묵향은 정중하게 테무진에게 사발을 들어 보인 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오잉?! 저럴 수가……. 아, 아니야. 억지로 참고 있는 걸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묵향은 숨도 쉬지 않고 그걸 다 들이킨 다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활짝 미소 짓고는 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말은 조금 엇갈려 있었다.
“젠장, 그래도 옛날처럼 역겹지는 않군.”
묵향의 호쾌한 모습에 테무진이 엄청나게 좋아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초류빈은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왜냐하면 묵향이 환히 웃으며 빈 사발을 자신에게 건넸던 것이다.
“자, 자네도 한 사발 하지. 이거 냄새는 좀 그렇지만 일단 적응만 하면 그런대로 참을 만할 거야. 나도 옛날에 어쩔 수 없이 엄청 먹었었지.”
그때가 생각나는지 묵향이 미소를 지었다. 하부르 때문에 과거 그가 얼마나 많은 마유주를 마셔야만 했던가. 그 맛이 고소하다고 최면까지 걸며 마셨었다. 역한 냄새기는 했지만, 그때의 추억을 마시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그런 추억 따위가 있을 리 없는 초류빈에게 마유주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다. 묵향이 넘치게 따라 준 마유주를 억지로 한 사발 마신 초류빈은 찡그러지는 얼굴 표정을 억지로 바로 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테무진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제, 젠장.”
입을 열면 마유주가 쏟아져 나올까 봐,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하지만 초류빈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테무진은 활짝 미소 지었다. 뭐라고 그가 말했지만 초류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뱃속에서 울컥 치밀어 올라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아 급하게 자리를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초류빈은 이를 악물며 재빨리 장내에서 벗어난 후, 경공술을 전개하여 멀리멀리 이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
“쿠어어억!”
묵향이 테무진과 반쯤 설익은 고기를 맛나게 씹어 먹고 있는 동안, 초류빈은 뱃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다 땅바닥에 토해 내고 있었다. 한참을 토했건만 아직도 그 빌어먹을 마유주의 역한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위장이 뒤집어졌는지 씁쓸한 신맛까지 느껴졌지만 계속해서 헛구역질만 나왔다. 얼마나 괴로웠는지 초류빈의 눈가에 살짝 눈물마저 맺혀 있었다.
“빌어먹을 그 새끼는 인간도 아니야! 이걸 참고 마시다니…, 우욱!”
열심히 구역질을 하면서 초류빈은 생각했다. 역시 그 인간과 가까이 있어 봐야 좋은 일이라고는 절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묵향은 이팔삼 대장을 호출했다. 묵향은 부리나케 달려온 이팔삼 대장에게 명령했다.
“내일 출발할 것이다. 준비해 두도록 해라.”
이곳에 온 지 며칠이 흘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상대방에게 실례되지 않을 정도로 머물렀다고 판단한 묵향의 명령이었다. 그 명령에 이팔삼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옛, 교주님.”
이제 이 지긋지긋한 몽고족들의 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팔삼 대장의 대답은 평소보다 더욱 기운찬 것이었다.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초류빈의 안색도 환하게 밝아졌다. 그 역시 이 황량한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소기의 목적을 다 완수한 지금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때, 밖에서 막이첨이 들어와 보고했다.
“교주님께 아룁니다.”
“무엇이냐?”
“테무진이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며 교주님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래? 어디로 가면 되지?”
“자신의 숙소에서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막이첨의 보고에 묵향의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래? 젠장, 또다시 마유주를 마셔야 하나? 생각만 해도 속이 느글거리는 것 같군.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놈에게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전해라.”
“옛.”
자신의 숙소에 불러들여서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을 보면 묵향을 그만큼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만큼 막대한 물자를 실어다가 줬는데, 그 정도 신뢰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날 저녁 묵향은 막이첨과 함께 테무진의 숙소로 갔다. 커다란 몽고식 파오 안으로 들어가자 테무진이 반기며 맞이했다. 테무진은 자신의 식구들을 묵향에게 소개했다. 테무진의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부인이었다. 그중 한 명은 테무진의 첫 번째 아들을 임신하고 있었다.
묵향이 인사를 하는데, 아무래도 테무진의 어머니라는 인물의 행동이 수상쩍다. 묵향을 보고는 흠칫하는 것 같더니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었다. 주름이 깊게 파인 그녀의 얼굴로 봐서 나이가 쉰은 넘어 보였다. 그녀는 묵향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제서야 자신이 손님을 앞에 두고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허둥지둥 서둘러 며느리에게 마유주를 가져오라고 일렀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맛이기는 했지만, 묵향은 마유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유주 한 사발을 묵향이 단숨에 들이키자, 테무진은 환히 미소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후, 그의 부인들이 음식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몽고의 음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흰 음식과 붉은 음식이다. 물론 흰 음식이라는 것은 유제품을 말하는 것이고, 붉은 음식은 육고기를 말하는 것이다. 가축들이 젖을 생산할 때는 유제품이 음식의 주를 이룬다. 가을부터 봄까지, 즉 유제품이 생산되지 않을 때는 육류를 섭취하게 된다. 가을에 살찐 가축들을 잡아 고깃덩이를 잘 말려 가루로 만들어 보관했다가 요리해 먹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주된 겨울 음식이 된다. 하지만 오늘처럼 중요한 손님을 초대한 경우에는 살찐 가축을 잡아 요리해서 내놓는다. 물론 요리라고 해 봐야 대충 삶는 정도다.
테무진은 손님들이 음식을 베어 먹을 작은 칼을 지니고 있는지 힐끗 바라봤다. 손님들이 그런 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알고 그는 칼을 가지고 와서 손님들에게 권했다. 칼을 가지고 있어야만 식사를 할 수 있는 몽고. 마음만 먹으면 상대를 찔러죽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몽고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는 것은 서로에 대한 대단한 신뢰의 표시였다.
설익은 고기를 썩썩 베어 먹으며 테무진은 묵향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이 초원 구석에 박혀 있는 그로서는 나중에 자신의 적이 될 대 금제국에 대해 들어 본 적도 거의 없었던 것이다. 막연하게 엄청나게 강하고 거대한 제국이라는 소문만 들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라도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열심이었다.
마유주를 조금씩 들이켜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도록 얘기를 하고야 말았다. 물론 중간에서 그들의 대화는 막이첨이 계속 통역을 했다.
술자리가 파한 후, 묵향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파오를 나섰을 때, 그를 부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있었다.
“저, 중원에서 오신 손님.”
막이첨이 뒤로 돌아선 순간, 묵향도 함께 돌아섰다. 막이첨이 통역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묵향도 안 해서 그렇지 어느 정도 몽고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누가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궁금했던 묵향이었기에 막이첨이 통역하지도 않았는데 뒤로 돌아선 것이다.
그곳에는 테무진의 어머니라고 소개받았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난처한 듯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손님께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기다렸다오.”
묵향은 자신과 막이첨을 번갈아서 손짓했다. 둘 중 누구와 얘기하고 싶냐는 뜻이었다. 그녀는 묵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님 말이오.”
묵향은 막이첨에게 돌아가라고 지시한 후, 그녀에게 약간 어눌하기는 해도 몽고어로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사실 그녀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온 묵향이다. 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 자신은 새파란 청년이고, 저 여인은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여인이 아닌가. 그것도 동맹을 맺은 인물의 어머니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이유도 없었으므로 묵향은 공손하게 물었던 것이다.
“혹시, 손님의 아버지께서는 대 송제국의 장군이 아니시오?”
내 아버지가 장군이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내 아버지라면 여러 수십 년도 전에 죽었을 것이 확실한데.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묵향의 대답을 그녀는 그의 아버지가 장군이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미안하군요. 바쁜 사람을 불러 세워서……. 하지만 그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서.”
닮았다고?
그 말에 묵향은 혹시나 싶어 뒤돌아서는 그녀를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하부르?”
그 말에 그녀는 멈칫하더니 뒤로 돌아섰다. 그런 그녀의 두 눈에는 조금씩 물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여, 역시 그분의 핏줄이셨군요.”
황당스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말이었지만 묵향은 격정에 찬 눈빛으로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하부르라는 이름이 아니시오?”
그러자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묵향을 빤히 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 처녀적 이름을 알고 계시다니 정말 그분의 핏줄이 맞는가 보군요.”
그분의 핏줄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묵향은 눈앞의 여인이 자신이 찾던 하부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를 바라보는 묵향의 눈빛은 어느새 아련하게 바뀌어 있었다. 묵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묵향의 말에 하부르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런 하대도 그렇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듯했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네 아들이 테무진이었구나. 용의 눈을 가진 그 아이에게 너를 부탁하긴 했지만, 설마 그녀석이 너와 결혼했을 줄이야…….”
그녀는 뭘 생각했는지 갑자기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묵향을 살펴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큰 소리로 말하면 상대가 사라져 버리기나 하는 듯.
“서, 설마……. 진짜로 당신이십니까?”
“맞아. 나야, 묵향…, 아니 국광.”
그녀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그럴 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계절이 바뀌었는데, 하나도 늙지 않다니…….”
묵향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중원에는 늙지 않도록 해 주는 무술도 있지. 배우기가 쉽지는 않지만, 나는 그걸 익혔거든. 물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오래 살기는 하겠지만, 내가 불로불사의 신체를 지닌 괴물이라는 말은 아니야.”
“저, 정말인가요?”
“내가 왜 네게 거짓말을 하겠니?”
묵향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들려줬다. 그녀와 자신이 아니라면 알 수가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말이다. 그것을 듣고서야 그녀는 그가 묵향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묵향에게 다가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얼굴을 살며시 만지며 말했다.
“그랬군요.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당신을 워낙 닮았기에 당신이 남기신 핏줄인 줄 알았답니다.”
하부르가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헤어진 지 벌써 몇십 년이 흘렀거늘 사람이 어떻게 하나도 변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정말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있었던 일이 꿈처럼 느껴져요. 그렇지만…….”
그러면서 그녀는 쭈글쭈글한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을 보면 이게 꿈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 하부르를 바라보며 묵향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나한테도 많은 일이 있었거든. 예수게이가 죽고, 네가 그토록 고생하고 있는 줄 진작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달려왔을 텐데…, 정말 미안하구나.”
하부르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예수게이는 없지만, 대신 그와 나의 핏줄들이 남아 있으니까요.”
주저 없이 말하는 그녀의 말 속에는 후회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당당함이 묻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묵향은 대견하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곧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묵향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왜 테무진은 하부르라는 이름의 여자를 찾을 때 너를 소개시켜 주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벌써 만났을 텐데.”
“저, 이름을 바꿨어요. 예수게이와 결혼하며 호에룬이라고…….”
그 말에 묵향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그렇게 된 거였군.”
하부르는 묵향과 오랜 시간 옛 이야기를 나눴다. 예수게이와의 결혼, 아이들을 낳은 것 그리고 남편의 죽음. 그 후 엄청난 고생을 하다가 첫 아들인 테무진이 이토록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그녀의 추억담은 한편의 잡극(雜劇 : 송 대의 연극)을 보는 듯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그녀가 나이에 비해서 이토록 겉늙은 것도 다 그때의 고생 탓이리라.
묵향은 애정이 담뿍 묻어 있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안아 주며 중얼거렸다.
“이제 더 이상 너를 고생시키지 않을 거야. 두고 보거라. 네 아들은 몽고 제일의 강자로 거듭나게 될 거야. 내 말을 믿어도 좋다.”
그 말은 하부르에게 들려준다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