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1화 (457/930)

그날 밤, 금군은 지옥이 뭔지 경험해야만 했다. 수만이나 되는 적의 기마대가 새벽녘이 될 때까지 진 안을 휘젓고 다녔던 것이다.

투구를 멋진 깃털로 장식하고 있는 장수는 피로에 찌든 안색으로 막사 밖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금군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쓰러진 시체들을 옮긴다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피해는 어떤가?”

그 질문에 그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던 무장들 중의 한 명이 대답했다.

“대단히 막심하옵니다, 원수. 특히 치중대(輜重隊)에서 수송하고 있던 군량을 모두 잃은 것이 가장 큰 피해이옵니다.”

원수는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직까지도 송에 그만한 정예 병력이 남아 있을 줄이야……. 놈들의 위치는 파악했느냐?”

“척후병들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보내라. 적의 규모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옛.”

지시를 받은 무장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것을 바라보며 원수는 중얼거렸다.

“군량만 불태우고 뒤로 빠진 것을 보면 적의 수는 생각 밖으로 적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말에 무장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회군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원수. 지금 남은 군량으로는 얼마 버틸 수가 없사옵니다. 설혹 무한을 점령할 수는 있겠사오나, 식량도 없이 그곳에 어찌 주둔하려고 하시옵니까?”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무장이 신경질을 버럭 내며 외쳤다.

“자네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원수, 지금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이 아니옵니까? 주위에서 거둬들일 수 있는 양도 꽤 될 것이옵니다. 병사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군량도 적은 양은 아니옵니다. 최소한 10일은 버틸 수 있사옵니다. 그동안 무한을 점령하면 문제될 것이 없사옵니다.”

그러자 그 의견에 동조한다는 듯 그 옆에 있던 무장 하나가 호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의 수가 적다면 계속 진격하는 것이 좋지 않겠사옵니까? 원수. 놈들이 야습을 가해 왔다고 하지만, 대비를 잘 갖춘다면 또다시 당할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잠시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군량을 잃은 것은 그만큼 뼈아픈 실책이었던 것이다. 그때 한 무장이 원수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수께서 야습 한 번에 기가 꺾여서 후퇴했다는 것을 황제 폐하께서 아신다면 크게 노하실 것이옵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무장이 질책했다.

“자네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겐가! 영민하신 황제 폐하께옵서는 원수께서 후퇴하신 것을 이해하실 걸세.”

마침내 원수는 마음을 정한 듯 벌떡 일어서며 명령했다. 부하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물론 황제가 이해해 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분노하여 자신의 목을 벨 확률 또한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원수는 나중에 후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간을 좀 더 뒤로 미루기로 결심했다. 만약 후퇴를 하더라도 누구나가 다 인정할 수 있을 법한 때에 후퇴하면 모양새도 좋을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좋을 듯했다.

“막사 주위에 방책을 치고 기습에 대비해라. 오늘 하루는 여기서 푹 쉰 다음 내일부터 다시 진군한다.”

원수의 지시에 무장들은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옛.”

다음 날, 금군은 다시금 진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 이동하지도 않았을 때 3천 기 정도의 기마대가 앞을 가로막았다. 전신을 흑색 갑주로 감싼 기마병들이었다. 바로 간밤에 자신들의 진영을 들쑤셔 놨던 그놈들……. 그들을 보자마자 금군 장수들 중 한 명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 나갔다. 그는 창을 휘두르며 상대방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것을 본 상대편 기마무사들 중의 한 명이 안장에 매어 둔 활을 벗겨 들었다. 그 무사가 살을 메겨 발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궁술에 조예가 있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피우우우웅――!

대기를 찢을 듯한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끝났을 때, 퍼억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 나가던 금군 장수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즉사였다. 그의 시체에는 화살 한 대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것을 본 금군 진영이 술렁거렸다. 사실 이런 식으로 달려 나가면 맞싸워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가. 그렇지 않고 곧장 화살을 날리다니 너무나도 비열한 행위였다.

하지만 금군의 반응이 어떻든 흑색 갑주를 입은 무사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동료가 금군 무사를 사살한 것이 마치 신호라도 된다는 듯 저마다 말 등에 매여 있던 활을 꺼내 들었다.

서로 간의 거리는 1백 장(약 3백 미터)이 넘었다. 활의 최대 사거리를 한참 벗어나는 그런 거리였다. 아마도 활을 준비한 채로 돌진하면서 쏘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예측한 금군 장수들은 창병들과 방패수들을 앞에 세우며 적의 돌입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기마병들이 화살을 쏴 대기 시작했다. 활시위를 가득 당겨 발사한 화살은 하늘을 꿰뚫을 듯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금에 비해 뛰어난 장인들을 보유한 송의 활은 사거리가 훨씬 길다. 하지만 길다고 해봐야 유효사거리 1백 보, 지금처럼 최대사거리로 쏜다면 250보를 넘기기 힘들다. 그렇지만 금의 장수들은 모르고 있었다. 상대방이 사용하는 것이 송의 활이 아니라 저 이름 높은 고려의 활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이(東夷)라고도 불릴 만큼 활에 능한 고려인들은 매우 정교하면서도 강력한 활을 만들어 냈다. 정교하게 제작된 만큼 습기에 매우 약한 것이 흠이었지만, 그 엄청난 사거리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 약점은 약점도 아니었다. 고려의 활은 송의 활에 비해 무려 1.5배가 넘는 사거리를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그 활을 사용하는 자들은 무공이 뛰어난 흑풍대의 고수들이었다. 똑같은 활을 사용한다고 해도 훨씬 더 멀리 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에게 고려의 활까지 주었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발휘했다.

저 앞 땅바닥에 꽂힐 거라고 예상했던 화살들이 무방비 상태로 서 있던 금군 진영에 우박처럼 쏟아졌다.

“으아악!”

갖가지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신을 차린 인물들은 등에 지고 있던 방패를 꺼내어 막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화살을 피해 뒤로 도망친다고 정신이 없었다.

“모두들 당황하지 마라. 방패수들은 앞으로! 위에서 떨어지는 화살을 막아라!”

몇몇 장수들이 뛰어다니며 혼란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수에게 창검을 겨누는 자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전위가 혼란의 극에 달해 있을 때, 후위에서 대기 중이던 기마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전위 부대를 지휘하던 장수가 앞에서 활을 쏴 대는 적들을 쫓아내기 위해 기마병을 투입한 모양이다.

기마병들이 달려 나오자 화살의 목표는 곧장 보병에서 기마병 쪽으로 돌려졌다. 말과 사람이 화살에 맞아 뒹구는 가운데, 금의 기마병들은 미친 듯 말을 몰아 서로간의 거리를 좁혀 갔다.

“하앗! 이랴!”

달리는 말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금의 기마병들은 칼을 뽑아 들었다. 이제 곧이어 놈들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흑색 갑주의 기마대는 금군 기마병들이 접근해 오자 재빨리 말고삐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놈들을 추격해라.”

“다시는 화살을 못 쏘도록 끝장을 내버려랏!”

곧이어 흑색 갑주의 기마대와 금군 기마병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금군 기마병의 수는 1만 2천. 겨우 3천 기밖에 되지 않는 흑색 갑주의 기마대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아군 기마병들을 응원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에게 무자비한 화살을 퍼붓던 상대가 저렇듯 죽자 살자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 속이 후련했던 것이다.

“전군 전투 준비!”

마화의 명령에 따라 숲 속에 매복하고 있던 흑풍대원들은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취향에 따라 장검이나 장도를 쓰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말 등에 비끄러 매뒀던 긴 자루가 붙은 참마도(斬馬刀)나 장창을 꺼내 들었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매복하고 있던 그들 앞쪽으로 관지가 지휘하는 부대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리고 분노에 찬 함성을 질러 대는 금군 기마병들이 그 뒤를 바짝 붙어 쫓아갔다.

그와 동시에 마화가 창을 번쩍 들며 외쳤다.

“돌격!”

마화의 뒤에 서 있던 6천 기의 인마가 그 명령에 따라 매복하고 있던 장소에서 벗어나 대지를 박차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산길을 따라 앞뒤에서 포위당한 금군 기마병들은 어디로도 도망칠 데가 없었다. 용맹스럽게 저항했지만, 이미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앞뒤에서 그들을 포위한 자들이 누군가. 바로 마교가 자랑하는 흑풍대다. 흑풍대를 구성하고 있는 무사들의 무공은 과거 변방의 이민족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찬황흑풍단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포위당했으니 그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피해는?”

부대장인 마화의 짤막한 물음에 각 대의 대장들이 피해 상황을 보고했다. 치열한 난전이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아무리 흑풍대라 해도 피해가 없을 수는 없었다. 물론 부상자들의 대부분은 격전의 와중에 쓰러지는 말과 함께 넘어져 구르다가 상처를 입은 자들이었다.

마화가 천인대장들의 보고를 받고 있는 동안 관지는 주인을 잃고 돌아다니고 있는 말들을 붙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수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1백여 명 정도입니다만 크게 다친 자는 없습니다.”

“자, 철수한다.”

그날 저녁 또다시 흑색 갑주를 걸친 3천 기의 기마대가 자신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금군 진영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저들을 격파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1만 2천 기의 기마병들이 전멸당했다는 것을 그들도 소문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상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등에 지고 있던 방패를 꺼내어 앞을 가리는 자들도 있었고, 방패를 지니고 있지 않은 자들은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금군의 장수들은 큰 소리로 병사들을 독려하며 진형을 짜는 데 여념이 없었다.

흑색 갑주의 기마대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더니 1백 장 정도 거리에서 딱 멈춰 섰다. 그리고 그때, 그들 중 한 명이 활을 꺼내 들었다. 활을 꺼내 드는 것과 살을 메기는 것은 거의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병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공포스러운 파공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피우우우웅――!

퍼억!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던 금군 장수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안 봐도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은 더욱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이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갑주를 걸친 무장을 해치운 것이다. 갑옷을 꿰뚫을 정도라면 나무에 가죽을 덧씌운 방패 따위는 있으나 마나가 아닌가.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방패를 들고 있던 병사들은 하나 둘씩 뒤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병사들이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기 시작했지만 장수들은 그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상대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병사들이 아닌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몇몇 장수가 말을 몰아 슬금슬금 뒤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입으로는 병사들을 독려하는 척하면서 말이다.

화살은 쉬지 않고 계속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화살이 대기를 가르는 공포스러운 소리가 끝났을 때, 어김없이 한 명의 시체가 남는 것이다.

이때, 아직까지 가만히 있던 다른 흑색 갑주의 기마대가 앞으로 조금 더 전진해 나오며 화살을 쏴 대기 시작했다. 이미 상대의 방패수들은 화살을 막을 형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쏜 화살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금군은 몰랐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고려 활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이 먼 거리에서 갑주를 꿰뚫을 정도로 강력한 화살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3천의 기마병들 중에서 관지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엄청난 수를 지닌 금군이 앞으로 밀어붙일 생각은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자 그것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병사들의 머릿속이 공포라는 감정으로 꽉 차 버리면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공포는 옆에 있는 병사들에게 전염되는 것이다.

6만이 넘는 금군의 전군(前軍)이 겨우 3천 기의 기마병에 밀려 뒤로 도망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공포감은 뒤로뒤로 전염되며 중군(中軍)까지도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3천 기의 기마대는 그들의 뒤를 여유롭게 쫓아가며 화살을 퍼붓고 있었다. 금군 장수들은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거느리는 병사들에 밀려 우왕좌왕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상대가 기마병이 아니라면 돌진해서 해치울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마병이 아닌가. 이쪽 보병들이 돌격해 들어간다면 슬쩍 뒤로 내뺀 다음 다시 활을 쏠 게 뻔했다.

‘도저히 저들을 상대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병사들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극에 달한 병사들의 혼란을 수습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무엇들 하는 것이냐? 놈들은 겨우 3천이 아니냐!”

갑주에 호화로운 장식을 달고 있는 금군 원수는 입에 거품을 물며 주위에 서 있는 장수들에게 호령했지만, 그들이라고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병사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일단 어느 정도 후퇴하셔야 할 듯하옵니다, 원수.”

“만약 이 상태로 적과 싸운다면 도무지 어떻게 손을 써 볼 방법이 없사옵니다.”

부하 장수들의 무기력한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원수는 노성을 터뜨렸다.

“이, 멍청한 놈들! 당장 쇠뇌를…….”

여기까지 말한 원수는 황급히 말을 끊었다. 쇠뇌 부대를 모두 양양성에 두고 온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한은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가 아니다. 무한을 공략하는 데 쇠뇌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었다. 20만씩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하는 데 쇠뇌쯤 없으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싶어 놔두고 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천추의 한이 될 줄이야…….

“기, 기마병들을 내보내라!”

금군 원수는 지금까지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역전의 맹장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군 붕괴로 연결되면 안 된다. 붕괴는 곧, 패망으로 직결된다. 20만이 3천 기에 박살 나는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옛!”

이미 전군(前軍)을 지원하던 기마병 1만 2천을 잃은 상태다. 그렇기에 기마병은 중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1만 5천이 전부였다. 병사들의 혼란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던 기마병들은 원수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원래 기마병의 역할이라는 것이 최전선에서 적진을 돌파하는 것과 후퇴하는 과정에서 가장 뒤에 남아 후방을 엄호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금군 기마병들이 돌진해 오자, 흑색 갑주의 기마대는 슬쩍 뒤로 후퇴했다. 저들의 매복에 걸려 아군 기마병 1만 2천이 박살이 났음을 뻔히 알고 있는 금군 기마병들이 그들을 뒤따라 깊숙이 쫓아올 리 없다. 서로 간의 거리가 적당하게 벌어지면 곧장 흑색 갑주의 기마대는 화살을 날렸다. 한 번에 수백 대가 넘는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다. 금군 기마병들의 피해가 없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죽고 말이 피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그렇다고 저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갈 수도 없었다. 어디에 또 다른 패거리를 숨겨 놓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동원된 적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동안 밀고 당기기를 하다 보니 금군 기마병들의 피해는 가랑비에 옷 젖듯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기마병들을 지휘하던 금군 장수는 부하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적들에게 계속 휘둘리다 보면 더욱 피해만 늘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군 기마병이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 보병대는 한시름 돌릴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다시금 전열을 회복하고, 방책을 세워 흑색 갑주의 기마대의 난입에 대비할 수 있었다. 금군은 기마병들의 막대한 피해를 등에 업고 전군 붕괴로 이어지는 패퇴를 막을 수 있었다. 대 요제국을 멸망시키고, 또 대 송제국의 주력 부대를 멸한 것도 다 이런 금군 장수들의 뛰어난 실력이 밑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날 밤, 금군은 적의 난입에 대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보초의 수를 평상시의 열 배로 늘이고, 주위에서 나무를 잘라다가 막사 주위에 수많은 방책들을 만들었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되어, 모든 병사들에게 갑옷을 입은 채 잠을 자라는 명령을 내려놨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금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엉망하고도 진창이었다. 모두들 갑옷을 입고 잠을 잤기에 온몸이 찌뿌둥했다. 거기에다가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에 깊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수면 부족으로 머릿속도 멍한 상태였다.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적들의 공포스러움에 대해 쑤군거리고 있었고, 각종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적과 싸울 수가 있다는 말인가.

“퇴각해야만 하옵니다, 원수.”

아직까지도 원수는 주저주저하며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20만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무한을 공격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3만이 넘는 병력만 잃고 후퇴한다면 잘못하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 우려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적과 싸움다운 싸움이라도 해 봤으면 모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병사들은 적과 접전을 벌이지도 못한 상황이 아닌가.

휘하에 있는 많은 장수들이 후퇴를 건의하고 있을 때, 정찰 나갔던 병사들의 일부가 돌아왔다. 그들의 보고를 받은 장수는 분노에 가득한 얼굴로 원수에게 보고했다.

“적군의 규모를 파악해 냈사옵니다, 원수!”

그 말에 원수는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일단 적의 규모를 알아야 후퇴할 것인지, 아니면 진격할 것인지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 말이다. 만약 적의 규모가 이쪽과 대등한 것이라면, 그런 강대한 적을 상대로 후퇴했다고 해도 자신에게 큰 책임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 어느 정도 규모라고 하더냐?”

관지의 명령으로 적의 척후병들을 눈에 띄는 대로 없애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일부가 흑풍대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겨우 1만 정도의 기마병들이라고 하옵니다.”

그 말에 원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기마병만 1만이란 말이냐? 혹시 보병대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주위를 샅샅이 뒤지라고 명령했사옵니다. 이 인근에 송군 보병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하옵니다.”

그 말에 원수는 분기탱천해서 으르렁거렸다.

“아니 그렇다면 겨우 기마병 1만 기에게 지금껏 조롱을 당하고 있었단 말이냐? 이런 씹어 먹을 녀석들! 내 그놈들의 간뎅이가 얼마나 큰지 필히 배를 갈라 볼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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