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도제가 천지문도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왔을 때는 팽선과 소연의 대결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권풍과 도기가 흩날리고, 그 둘을 사이에 두고 광풍이 일고 있었다.
수라도제는 그곳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관전에 열중하고 있는 무당파의 장로를 발견하고 급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처음 파견된 무당파의 고수들은 지금 양양성에서 싸우고 있지만, 그다음 대규모로 파견된 고수들은 금군 때문에 양양성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에 와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수라도제는 다급히 질문을 던졌지만, 장로는 흥미롭다는 듯 장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혼원패권이 천지문의 아이를 상대로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는 중이지요. 물론 시비는 혼원패권이 먼저 걸었지만……. 노부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택한 것 같소이다.”
그 의견에는 수라도제도 동감이었다. 무시무시한 권법의 소유자인 팽선을 상대로 웬 중년 여인이 분전하고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팽선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중년 여인이 일부러 조금씩 양보해 주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할 수라도제가 아니었다.
“허헛, 참. 일이 고약하게 되어 버렸소이다. 함께 싸워야 할 동도들이 싸움질을 벌이다니, 그것도 일문의 장로라는 자가 앞장서서 말이오.”
그 말에 무당파의 장로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외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끝날 듯도 하오. 슬슬 혼원패권이 밀어붙이고 있지 않소? 천하의 혼원패권을 상대로 2백여 초식을 버텼다면 저 아이의 실력도 보통은 넘는 게지요.”
남들에게 멸시받는 천지문도를 상대로, 그것도 이름도 없는 여자를 상대로 2백여 초식이나 싸워야 했다면 그의 명성에 흠이 갈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무당파의 장로는 지금 그녀가 일부러 상대의 체면을 봐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까지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수라도제가 파악한 그녀의 실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허참, 실력만큼이나 마음 씀씀이도 곱구먼.’
하지만 감탄만 하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된다. 물론 승자는 팽선이겠지만, 후에 저 아이가 봐줘서 승리했음을 그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또 그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결코 뒷맛은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수라도제의 몸이 스르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몸은 한참 대결 중인 두 고수 사이에 서 있었다. 과연 화경에 다다른 고수라는 위명에 걸맞은 뛰어난 신법이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수라도제가 등장한 것이었기에, 대결에 몰두해 있던 팽선과 소연은 미처 쏘아 낸 공격을 회수할 여유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소연이 쏘아 낸 공력을 회수하려는 순간 그녀의 귀에 부드러운 전음성이 들려왔다.
<무리해서 공력을 회수하려고 하지 마라. 몸만 상할 뿐이다.>
그 순간 소연은 목소리의 주인공, 즉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믿기로 했다. 얼핏 봤을 때 그리 고강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때 그가 사용한 신법만으로도 그는 최강자의 대열에 서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양쪽에서 짓쳐들어오는 공격을 수라도제는 간단하게 막아 냈다. 물론 그것은 그 광경을 옆에서 구경한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수라도제 자신은 이를 꽉 깨물어야만 했다. 격전을 벌이는 둘은 모두 다 엄청난 고수들이었다. 그런 만큼 수라도제가 아무리 화경에 든 고수라고 하지만 쉽게 막아 낼 성질의 공격은 아니었다.
수라도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빠른 것은 눈의 착시 현상 때문에 오히려 느린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주위에 서 있는 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수라도제가 발휘한 최고의 한 수를 견식하는 영광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진 후, 장내는 정리되었다. 자신이 가한 혼신의 공격을 수라도제가 간단히 막아 내버리자 팽선은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자신의 체면이 달린 문제였기에 계집아이를 빨리 제압하기 위해 상당히 무리를 했던 탓이다.
“수라도제 대협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시오?”
“허허, 이 사람. 한 팔 더하겠다고 온 동지를 상대로 드잡이질을 하다니, 정신이 있는 겐가? 아무래도 저 아이가 다칠 것 같아서 노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네.”
팽선은 수라도제가 한 뒷말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자신의 체면을 지켜 주지 않았는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여아가 거도를 들고 다니기에 그냥 장난 좀 쳐 본 것뿐이오.”
말을 마친 팽선은 자신의 일이 끝났다는 듯 천천히 장내를 벗어났다. 그동안 수라도제는 소연을 향해 전음을 날리고 있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신경을 써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수라도제 대협.>
<허허헛, 노부를 알아보다니 영광이로세.>
<아닙니다. 수라도제 대협의 한 수를 견식할 수 있어 소녀가 더 영광이었습니다.>
소연의 전음에 수라도제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자신이 사용한 한 수를 완전히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아차렸다는 말이 아닌가.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고수가 분명했다. 참으로 무림은 와호잠룡(臥虎潛龍)의 세상이라고 생각해 보는 수라도제였다.
“천지문에서 왔다고 했는가?”
상대가 전음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소연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노부의 소개가 늦었구먼. 노부는 서문길제라고 한다네.”
“예, 소녀는 천지문도를 이끌고 수라도제 대협을 도우라는 문주님의 명을 받들고 온 소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라도제는 주위를 둘러봤다. 저쪽에 소연과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사내들이 보였다. 그 수는 5백여 명. 서문세가라는 거대 세가를 이끌고 있는 수라도제의 시각에서 봤을 때,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숫자였지만 그것이 천지문의 전체 문도수를 따져 본 경우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허어, 5백씩이나? 천지문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적지 않은 출혈을 각오한 모양이구먼. 그것도 저렇게 뛰어난 고수를 앞세우다니…….’
수라도제는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소연을 아래위로 자세히 한 번 더 훑어봤다. 이건 웬만한 명문 대파의 장로급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여고수. 거기에다가 그를 더욱 기분 좋게 한 것은 그런 여고수가 거대한 도를 등에 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刀)를 숭상하는 그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연은 평상시에 가벼운 도를 애용했지만, 전쟁터에 나가는 것인 만큼 전투용의 중도를 가져온 것이었다.
천지문은 작은 문파였다. 그런 문파에서 이토록 뛰어난 여고수를 키워 냈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녀를 아낌없이 전장에 투입한 점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생사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그녀가 덜컥 죽어 버린다면 그 피해는 얼마나 크겠는가. 그것만 봐도 천지문이 이번 양양성 전투에 어느 정도의 각오로 임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노부와 차나 한잔하지 않겠는가?”
“영광입니다, 수라도제 대협.”
소연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후 수라도제를 따라갔다.
수라도제 대협과 담소를 나누며 장내를 빠져 나가는 소연의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서 있던 천풍검 곡추는 입이 바싹 타는 듯 혀로 입술을 축였다. 방금 전에 벌어진 비무를 봤을 때, 결국에 가서는 소연이라는 천지문의 고수가 팽선에게 패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하북의 범 같은 고수인 팽선을 상대로 저 정도나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곡추 자신도 분노에 가득 찬 팽선을 상대로 1백 초식 이상은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것만 봐도 그녀의 실력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어∼, 진팔에 이어서 이번에는 소연이라는 여고수의 등장인가? 정말 천지문은 가볍게 볼 문파가 아니로구나.”
진팔을 억류하려고 했었던 남궁세가주의 결정은 정말 상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내린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생각하는 곡추였다.
무림 연합과 대 금제국군의 충돌
두려움에 떨던 금군의 모습은 하루의 충분한 휴식과 새로운 방어 도구의 장만으로 용기백배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 어려 있지 않았다. 적군의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새로운 방어 도구가 즉석에서 제작되어 지급된 것이다. 방패 두 장을 하나로 묶은 것이었는데, 적의 화살에 노출되는 병사들만 지니면 되는 것이기에 서로 교대해 가며 들고 가면 되니 방패가 2배로 무거워졌다고 하지만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장수들의 설명을 듣고 자신들과 싸우는 적의 규모를 알게 되었다. 겨우 1만 남짓한 기마병들이라니……. 17만 군세를 자랑하는 그들에게 그 수는 정말이지 가소로운 것이었다.
제아무리 적의 기마대가 신출귀몰한다 해도 무한만 점령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다. 무한이 주 전장이 된다면 그들은 그곳을 수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마대의 기동력이 보병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도 충분한 활동 영역을 보유하고 있을 때의 얘기다. 어느 한 장소에 얽매이게 된다면 그들을 전멸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봐야 했다.
또다시 금군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던 도중, 관지는 적병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봤다.
“일이 조금 어렵게 되었군.”
그 말에 제3천인대장 정삼(鄭三)이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오랜 세월 관지를 모시고 있었기에 상관이 이런 식으로 넋두리를 하는 것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장.”
관지는 금군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쯤이면 풀 죽은 강아지 꼴을 하고 비실비실 움직여야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 저놈들이 저렇게도 위풍당당하게 행군하고 있느냐 말이다. 아마도 이쪽의 세력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획득한 모양이야.”
그 말에 정삼은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대장. 놈들의 척후병들을 보이는 족족 사살하라고 명령하고 꽤 많은 인원들을 풀어놨었는데, 그들만으로는 부족했었던 모양입니다. 제 불찰입니다.”
“이미 지난 일이니 괘념치 말라.”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정삼의 의문에 관지는 간단명료하게 대꾸했다.
“뭘 어떻게 하겠나?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 가자!”
관지의 전투 방식은 어제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었다. 최대한 적들로부터 떨어진 거리까지 접근해서 화살을 퍼붓는 것이었다. 일단 관지는 말을 타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금군 장수들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말을 중군(中軍)에 맡기고 걸어서 부하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들이 보이지 않으니 목표는 선두에 선 병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의 화살이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가자, 처음 두 명까지 화살에 맞아 쓰러졌지만 그 뒤는 쉽지 않았다. 각자 방패를 꺼내어 앞을 가린 것이다.
퍽!
관지가 쏜 화살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방패에 꽂혔다. 두 겹을 덧대 놓은 것이었기에 뚫지 못한 것이다.
“제법이군. 조금 더 다가간다.”
관지의 명령에 기마대는 서서히 거리를 좁히며 화살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1백 장이었던 서로 간의 거리가 차츰 80장, 60장으로 좁혀졌다. 물론 그렇다고 금군 궁수들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후퇴!”
“후퇴하라!”
더 이상 적의 전위 부대를 상대로 이 방법이 효과가 없음을 깨닫고 관지는 후퇴 명령을 내렸다. 물론 아예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적군의 규모는 무려 17만이나 된다. 수십 리에 걸쳐 금군이 행군하고 있는 것이다. 제일 앞에서 걸어가는 적들이야 대비가 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중군이나 후위는 얘기가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날 흑풍대는 적들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화살을 무진장 쏴 댔다. 하지만 금군은 소수의 적 기마대와 드잡이질을 벌이는 대신 무한 침공을 우선시하는 듯 최대한 방어에 힘쓰며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면 힘들어지겠어.”
지도를 보며 관지가 중얼거리는데, 제3천인대장 정삼이 들어오며 보고했다.
“화살 보급이 끝났습니다. 또다시 출동하실 겁니까?”
“아니, 오늘은 그만 한다. 이런 식으로 화살을 마구 소모한다면 총타에서 많은 화살을 가져왔다고 하나 곧이어 바닥이 드러날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화살을 헛되이 소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관지와 마화 그리고 아홉 명의 천인대장들이 모여 차후의 작전에 대해 토의하기 시작했다. 한참 작전 토의를 하고 있을 때, 밖에서 10인대장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군례를 올린 후 보고했다.
“무한 방향에서 3만여 무리가 이쪽으로 이동해 오고 있습니다. 행색으로 봤을 때 병사들은 아닌 듯하고 무림인들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 보고에 관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합류 지점에서 기다리다가 지쳐서 이리로 올라온 모양이군. 좋아.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만나 봐야겠지.”
관지는 마화를 향해 명령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가겠다. 귀관은 수하들을 인솔하여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도록.”
“존명!”
수라도제는 경비무사의 안내를 받아 막사로 들어온 사내를 찬찬히 바라봤다. 다부진 턱선과 시원하게 솟은 콧날……. 그러면서도 어떤 일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담은 강렬한 안광(眼光)을 내뿜는 두 눈. 그야말로 패기(覇氣)가 넘치는 뛰어난 무사임이 분명했다.
‘허, 이런 인재가 마교에 있었을 줄이야…….’
감탄스러운 시선으로 새삼 다시 한 번 더 상대를 바라보는 수라도제였다. 상대가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시커먼 갑주로 감싸고 있다 보니, 문득 과거 변방의 오랑캐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찬황흑풍단이 생각났다. 검은색 갑주를 입은 단체는 지금까지 그것 말고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수라도제는 설마하니 상대가 찬황흑풍단과의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원래 마교도들이 검은색을 좋아했기에, 그저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흑색 갑주를 입은 무장은 눈매를 날카롭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노부는 흑풍대를 맡고 있는 관지라고 하오. 여러 무림의 명숙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하오.”
자성만마대를 제외한 마교의 상급 단체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흑풍대의 경우 마교의 내전에만 출동했을 뿐, 정식으로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좌중에 앉아 있는 인물들 중에서 흑풍대라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소개를 통해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상대는 바로 마교의 아홉 장로들 중의 한 명이었고, 마교와 무림맹이 연합하는 한 그만큼의 대우를 해 줘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관지 장로. 노부는 서문세가의 수라도제라고 하오.”
자신의 소개를 한 수라도제는 좌중에 앉아 있는 각 문파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관지에게 소개했다. 그런 다음 관지에게 말했다.
“귀교 단독으로 이곳에서 금군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놀랍소이다. 그건 그렇고, 노부들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귀교에서 우리들과 연합하여 작전을 수행할 의지가 있는지 알아 보려는 것이었소.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봤을 때, 귀교는 우리들과의 연합 작전을 망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오.”
그 말에 관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러분들을 못 믿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소이다. 저들의 수는 엄청나고, 이쪽의 수는 양쪽이 연합한다고 해도 매우 적다고 볼 수 있소. 그렇기에 이왕이면 본격적인 회전이 시작되기에 앞서 저들의 강성한 기운을 누르고,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가 있었소이다. 아마 나중에 귀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점까지 진출한 금군은 오랜 싸움에 지쳐 피폐한 몰골로 나타났을 거요. 그때, 연합하여 금군을 일거에 소탕할 생각이었소.”
“그렇소이까? 그런 줄도 모르고 달려온 노부들의 생각이 얕았는가 보오.”
수라도제의 말에 관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왕에 여기까지 오셨으니 좀 도와주셔야겠소이다. 이곳에 지도가 있소이까?”
곧이어 커다란 지도가 간이 탁자 위에 깔렸다. 관지는 지도의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으며 금군을 상대할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라도제는 그런 관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몇 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관지라는 마교의 장로는 마공을 연성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패도적인 마기가 뿜어져 나오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마공 대신에 뭔가 다른 무공을 익힌 모양이다. 그런데, 마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마교의 장로가 될 수 있을까?
둘째, 지도를 보며 그가 설명하고 있는 작전이다. 관지 장로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 그가 이런 일에 매우 능숙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만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수라도제는 그가 마교도가 아니라 군대의 장군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마교는 왜 저런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장수 같은 인물을 키웠을까?
셋째, 저자는 강철로 만든 갑주를 입고 있었다. 보통 무림인들이라면 웬만해서는 입지 않는 갑주를 말이다. 그 상태에서도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갑주를 그가 평상시에도 자주 입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저자의 수하들도 갑주를 입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신검합일의 경지에 오른 강력한 고수가 저토록 두터운 중갑주를 입을 정도인데, 그 부하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마교는 왜 저런 단체를 키워 냈을까?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측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지금 현재의 정보들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라도제는 나중에 무영문 쪽에다가 통지를 해서 알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마교가 무림일통을 하기 위해 흑풍대를 키운 것이라면, 무림맹 쪽에서도 그런 중갑주로 무장한 단체가 하나 필요할 테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수라도제는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너무나도 마교라는 곳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런 수하들을 키워 내고, 또 그들의 충성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마교 교주는 상상 이상의 거목일 것이 분명했다.
‘허어, 마교 교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저런 엄청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의도는 또 뭐란 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수라도제는 관지에게 점점 빠져 들었다. 처음에는 단지 마공을 익히지 않은 자가 장로라는 사실에 놀랐지만 관지 장로의 설명이 계속되는 동안 적의 허를 찌르는 그의 치밀한 전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수라도제는 어느 순간 관지 장로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금군 20만을 상대로 지금까지 싸워 왔다는 것이 수긍이 되었다. 아마도 자신들이 도우러 오지 않았다면 그들만으로 20만을 끝장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아까 전에 관지 장로가 말했던 것처럼 약속 지점까지 밀고 내려온 금군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일 게 뻔했다.
‘허어, 참으로 탐이 나는 인재로고. 이런 자가 어찌 흉악한 마교 무리에 섞여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수라도제는 관지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전략과 전술에 뛰어난 인재가 자신의 밑에 있다면 서문세가는 9파1방을 앞서가는 최강의 문파가 될 것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