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소연 일행이 도착했다. 그녀를 바라본 만통음제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확실히 수라도제의 말대로 진팔이라는 녀석과 그 기도가 너무나도 흡사했다.
“허어, 참. 저런 고수들을 키울 수 있다니……. 천지문은 소문과 달리 그야말로 용담호혈(龍潭虎穴)이로다. 그토록 노력해서 노부는 겨우 한 놈을 건졌거늘. 천지문주는 복도 많은 인물이로고.”
패력검제 또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그렇지요. 저 또한 제 아들 놈 하나를 겨우 절정의 반열에 올려놨을 뿐이니 말입니다. 가시죠. 수라도제 선배가 소연이라는 아이를 소개해 준다고 했으니 만나 봐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수라도제나 만통음제의 경우 신검합일급에 들어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 봤을 것이다. 또, 이번에 결성된 무림맹 연합에 속해 있는 인물들 중에서 그 정도 실력을 지닌 고수들의 수는 제법 많은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각 문파가 자랑하는 정예들을 보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 둘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은 첫째,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천지문의 제자라는 점이었고, 둘째는 그들의 특이한 기도였다. 전문적인 살수처럼 웬만한 이목으로는 정확한 실력을 꼬집어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이 지닌 기도가 아주 은밀했다. 어떤 심법으로, 어떤 무공을 익히면 저렇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아주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저(師姐)!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진팔의 당혹스런 물음에 소연은 살짝 아미를 찌푸리며 대꾸했다.
“원래는 임 사형께서 나오시려고 했었지만, 내가 대신 오겠다고 했다. 네가 행방불명되었으니 찾아봐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진팔은 고개를 푹 수그리며 풀 죽은 어조로 말했다.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사저.”
진팔을 가만히 바라보던 소연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게서 뿜어 나오는 기세를 보니, 그동안 무공이 몰라보게 진보하였구나. 아무튼 축하할 일이구나. 그래, 그동안 잘 지냈느냐?”
“예.”
진팔은 뒤쪽을 힐끗 본 다음 소연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사저께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는데요.”
“누군데 그러느냐?”
소연이 보니 저 뒤쪽에서 헛기침을 하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중에 한 명은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3황5제의 한 사람, 수라도제 대협이다. 그리고 남은 셋이 더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 여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그리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두 사내를 자신에게 소개하겠다는 말일 것이다. 둘 다 30대 정도로 보였고, 하나같이 무공을 익힌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그 말은 그들의 실력이 그녀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말일 것이다. 저런 사람들과 사제가 어울리고 있었다니……. 그것을 보면 사제의 가출(?)이 꽤 유익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소연이었다.
패력검제는 수라도제 등과 함께 소연을 만나 간단하게 다과를 함께 하며 담소를 나눴다. 그런 다음 패력검제는 그들과 헤어져 문도들이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길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패력검제는 문 앞에 서 있는 남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만통음제와 그의 제자였다. 아마도 경공술을 사용하여 앞질러와 여기서 패력검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서 오시게나.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구먼.”
객에게 주인이 자기 집 앞에서 어서오라는 말을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조금 우스웠지만, 패력검제는 그들을 자신의 거처로 초청했다.
만통음제는 제자를 따로 떼 놓고, 패력검제와 둘만 자리를 잡았다. 차가 나온 후, 만통음제는 자기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밝혔다.
“슬쩍 눈치를 보니까 자네는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더군.”
그 말에 패력검제는 슬쩍 시치미를 떼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저 둘에 얽힌 비밀을 말일세. 천지문의 다른 제자들이 풍기는 기도와 비교했을 때, 그 둘은 너무나도 달라. 자네는 뭔가 알면서 숨기는 듯한데……. 노부에게 알려 줄 수는 없겠나? 비밀은 꼭 지키겠네.”
만통음제의 경우 정사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인물로 인식되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하는 일에는 신경도 안 쓰는 인물이었으며,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보통 사람들이 정파와 사파라는 큰 둘레를 그어 놓고 사람을 사귄다면, 그는 음악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선을 긋는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런 인물인 만큼 진팔이 가진 비밀을 알려 줘 봐야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천지문이 마교와 협정을 맺은 유일한 문파라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너무나도 뻔한 질문이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지는 상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없었던 만통음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거야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 아닌가.”
“그걸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서, 설마 저것이 마공이라는 말인가? 마교의 무공과 정파의 무공이 합쳐지면 저런 독특한 기도를 풍기는 것인가? 이해할 수가 없구먼. 노부는 정통적인 현문의 것이라고 봤었는데…….”
그 말에 패력검제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교에서 흘러나온 무공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마교는 그 어떤 문파보다도 더 많은 정파의 무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각 문파에서 절전된 것까지도 가지고 있죠.”
만통음제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오, 그래서 자네가 비밀을 지키는 것이었군.”
“그건 아닙니다. 사실 그들이 협정을 맺었다는 것을 다 아는데, 무공 몇 가지 흘러 들어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뭔가?”
“저들이 익힌 심법이 현문에서도 잊혀져 버린 태허무령심법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통음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태허무령심법을 익힌 것이 뭐 그렇게 허물이 되겠는가. 그게 마교에서 흘러나왔다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말한 만통음제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현문이 만든 심법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태허무령심법이었다. 그런데 왜 그것이 도중에 절전되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워낙 뛰어난 것이었기에 인정받은 소수만이 익히다가 대가 끊어져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심법이었기에 누구나 다 익히도록 권장되었는데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지독하게 대성하기 어렵다는 점.
그렇다면 마교에서 그 심법이 적힌 비급만 슬쩍 건네준 것이 아니라 빨리 익힐 수 있도록 모종의 도움까지 줬다는 말이 된다. 마교가 골빈 집단이 아닌 이상에야 아무나 잡고 그만한 공을 들일 이유가 없다. 진팔과 소연은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마교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되는 인물임이 확실했다. 그만한 투자를 할 만큼.
“허어, 참. 일이 아주 심하게 꼬여 있구먼. 그래서 자네가 삼키다가 목에 걸릴 거라고 말했던 것이로군.”
패력검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그냥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그걸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 말이 그 상황에서 나올 이유가 없었으니, 노부가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지.”
여기까지 말한 만통음제는 느닷없이 어기전성을 날렸다.
《교주가 저들의 뒤에 있는 것인가?》
그러자 패력검제는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허어, 과연 대단하십니다. 어찌하여 선배님의 명호에 ‘만통(萬通)’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인지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만통음제는 피식 미소 지은 후 입을 열었다.
“그래, 저 둘 중에 그가 총애하는 아이는 누구인가? 아마도 자네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저라고 그 둘을 다 대해 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진팔이라는 녀석이 그의 욕을 엄청 하면서 이를 갈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진팔은 아니라고 짐작할 뿐이지요.”
“그렇다면 소연이라는 아이겠군. 그가 왜 그 아이를 그토록 총애하는 것이지? 이해할 수가 없구먼.”
패력검제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곧 바로 입을 열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배님. 어쩌면 한순간의 변덕이 아닐까요? 진팔이의 경우를 보니까 거의 충동적으로 가르쳐 준 모양이던데 말입니다. 진팔이 녀석의 말에 따르면 심법을 배운 게 아니라 지독한 고문만 당했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혈도에 강한 자극을 준 것을 가지고 고문이라며 엄살을 떠는지도 모르죠.”
잠시 말이 없던 만통음제는 문득 어기전성을 던졌다.
《자네, 진골축근마공(珍骨縮筋魔功)이라고 들어 봤나?》
패력검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뇨, 들어 보기도 처음입니다만.”
《노부가 알고 있는 친구들 중에 사파의 인물들도 몇 있지. 그들에게서 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적인 수법들 중에서 몇 가지를 들은 기억이 있네. 그중에 진골축근마공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마공이 있었지.》
“그, 그렇습니까?”
《말이 마공이지, 그건 마교가 개발한 최고의 속성법이라고 할 수 있다네. 그걸 받으면 임의로 환골탈태를 한 것과 비슷한 모양으로 뼈와 근육이 재배치된다고 하네. 똑같은 시간 동안 운기를 해도 그 효과는 몇 배가 될 걸세.》
패력검제는 만통음제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만통음제의 말대로 그런 마공이 진짜 존재하고 또, 환골탈태를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만 있다면 신검합일의 경지까지는 순식간에 올라갈 수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엄청난 무공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효과가 큰 대신 단점도 몇 가지 있다고 들었네. 일단 시전자의 능력이 최소한 극마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시전받을 때 지독한 고통을 당한다는 점이야. 이때, 고통을 참지 못하고 단 한 번이라도 비명을 지르면 모든 게 허사가 되지. 그리고 두 번 다시 그것을 받을 수 없다고 들었다네. 아주 재미있는 무공이었기에 노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이제서야 패력검제는 왜 만통음제가 어기전성으로 이 사실을 말해야만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만통음제의 말은 진골축근마공을 그가 직접 시전했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허어, 참. 바로 그것이었군요. 진팔이 받았다는 것이.》
《그래, 엄청난 기연을 받은 것이지. 모든 마교도들이 꿈에도 그리는 대법을 받은 거야.》
패력검제는 허탈한 듯 웃음을 터뜨린 다음 말했다.
“저는 또, 어떤 혈을 자극하면 내력을 쌓는 속도가 올라가나 하고 연구하고 있었더니, 그게 말짱 헛고생이었군요.”
만통음제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시행착오의 연속이 아니던가. 똑같은 잘못을 연속해서 반복하지만 않는다면 현자로 불리는 세상이지. 자네가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 그는 정사를 불문하고 아주 다방면의 무공에 조예가 깊다네. 그를 따라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일 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