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0화 (466/930)

승려들과 초류빈의 대치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묵향과 만사불황과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봐, 본좌의 수하로 들어올 생각은 없나? 돈을 좋아한다면 평생 쓸 돈을 줄 것이요, 계집을 좋아한다면 원도 한도 없이 붙여 줄 수 있는데 말씀이야.”

“크흐흐흣, 본부처님에게 그따위 망발을 일삼는 미물이 존재할 줄이야. 좋다. 우선 그 주둥이를 찢어 놓은 후에 해탈에 이르게 만들어 주겠노라.”

공공대사라면 소림이 자랑하던 최고의 고수였다. 역대 최연소로 나한전에 들었으며, 지객당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3백 여 명의 이름 있는 무림인들을 상대로 비무를 펼쳐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화경에 든 후에도 수련에 방해가 된다며 방장직까지 사양하고 사형에게 물려 준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인세의 모든 욕심을 버려야만 해탈할 수 있다는 불경의 가르침을 거역했기 때문일까? 화경에 든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정진하던 공공대사에게 커다란 재앙이 닥쳤다. 어느 날 갑자기 미쳐 버린 것이다.

묵향을 공격하는 만사불황은 그의 무공 원류가 소림에 있음을 알려 주듯 소림 최강의 무공들을 줄줄이 쏟아 내기 시작했다. 반야신공, 대승범천신공, 무상대능력, 대력금강장, 금강권, 염화지 등등 상대와의 거리를 불문하고 갖가지 무공을 조합하여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는 연계기를 자랑했다. 그 하나만 봐도 그가 얼마나 숙련된 무승인지 알 수 있었다.

만사불황의 장력에 땅거죽이 푹푹 파여 들고, 엄청난 먼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뿐. 그의 공격은 묵향의 옷깃 한 올 건드리지 못했다. 한동안 여유롭게 만사불황의 공격을 피하던 묵향이 김샜다는 듯 투덜거렸다.

“젠장, 알짜배기인 줄 알았더니 빈껍데기잖아. 빈껍데기 초식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라니……. 내공만 심후하지, 형편없는 놈 아냐!”

미꾸라지처럼 자신의 공격을 피하고만 있는 상대가 얄미웠는지 만사불황은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해 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상대의 공격에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한 묵향이 한순간 손을 썼을 때, 묵향은 상대방의 반응이 뭔가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빈껍데기뿐인 초식만을 기억하는 자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교묘한 한 수로 묵향의 공격을 피한 만사불황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역공까지 가해 왔던 것이다. 그 공격은 방금 전까지 만사불황이 보여 줬던 공격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강맹한 위력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엄청난 경력을 일으키며 먼지를 비산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것이 더욱 무서웠다. 만사불황이 가지고 있는 웅후한 공력을 단 한 지점에 집중해 놓은 공격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겉으로 봤을 때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전에 펼쳤던 공격에 비해 수십, 아니 수백 배는 강한 위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그 공격은 제아무리 현경에 든 묵향이라도 회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쾌속한 속도와 교묘한 시간차를 두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묵향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반전을 통해 공중에서 세 바퀴 몸을 돌리며 재빨리 상대의 공격권에서 빠져나갔다. 한순간의 방심 때문에 일격을 허용할 뻔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묵향의 가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묵향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물론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3할의 실력을 감추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신검합일에도 들지 못한 고수가 일순간에 화경을 넘어서는 무공을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만사불황은 본신의 무공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반쯤 미친 그가 그토록 교활한 수법을 쓸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호오, 그렇군. 네놈의 머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구나. 이거 까다롭게 되었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소림에서 파견된 승려들도 소림무공에 극성인 항정멸법신공(抗正滅法神功)을 극성까지 익혔는데도 불구하고, 만사불황에게 결정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그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붙이고만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묵향은 잠시 망설였다. 과연 저자를 제압할 수 있을까? 상처 없이 제압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혈마(血魔) 선배의 경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상대는 화경의 끝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거기에서 한 발자국을 나아가지 못하고 실패해서 반쯤 미친 것이 아닌가.

과거 묵향이 만난 최강의 고수 카렐은 이렇게 말했었다.

「의식과 한계 이상으로 성장한 무의식이 충돌하며 미쳐 버리는 거야.」

미쳐 버렸으니 이제는 의도한 대로 자신이 깨달은 무공을 펼칠 수 없다. 하지만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무공의 경우는 완전히 얘기가 다르다. 그의 무의식은 현경의 무예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사불황이 위급 시에 무의식적으로 펼치는 무공은 화경이 아니라 현경급의 무예였던 것이다. 그런 자를 생포한다? 그건 말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젠장! 어쩐지 너무 쉽다고 생각했어.”

묵향은 재차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만사불황을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상대의 공력이 고갈될 때까지 슬슬 싸워서 힘 빼기로 나가 볼까? 하지만 공력만은 3황 중에서도 최강이라는 말을 수십 년 전부터 들어온 만사불황이다. 그를 상대로 지구전을 펼친다면 도대체 몇 날 며칠 동안 싸워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묵향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이런 빌어먹을! 좋다. 본좌가 언제 이것저것 따지고 싸웠었나? 너 이리 와 봐. 뼈가 녹도록 한번 싸워 보자.”

꽉 쥔 묵향의 주먹에서는 우두두둑하는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아, 아미타불…….”

대정선사는 너무나도 경악한 나머지 불호마저 외우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어느덧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교 교주와 세 시진째 치열한 사투를 전개하고 있는 만사불황, 아니 사숙의 모습은 과거 그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공공대사의 한창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소림승들과 싸우며 공공대사는 생명이 위급할 때 무의식적으로 펼쳐지는 단 한 수만을 보여 줬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소림승들의 포위망을 피해 도망치고, 또다시 포위당해 싸우고……. 이런 식의 반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마교 교주의 공격은 한 초식 한 초식이 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만사불황이 지닌 무의식적인 연계기 한 수 정도로는 한숨을 돌릴 여유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아미타불…,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보게 되는도다.’

지금껏 그는 공공대사를 뛰어넘을 만큼 강력한 고수가 있음을 단 한 순간도 믿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밤낮 생각한 것은 사숙, 아니 만사불황을 어떻게 해서라도 제정신으로 돌려놓든가, 아니면 소림의 이름에 더 이상 똥칠을 하지 못하도록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만사불황을 압도하는 무위를 지닌 인물을 만났다. 지금 만사불황은 정신없이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무공 중에는 깊은 불문의 깨달음을 간직하지 않은 것이 단 한 수도 없었다. 그만큼 상대는 단 한 순간도 만사불황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묵향은 언제부턴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만사불황을 상대하기가 조금 까다로워졌다고 느꼈다. 그 이유가 뭘까? 치열한 격전의 와중이었기에 이유를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거의 없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끊어지고 끊어지던 생각들이 하나씩 연결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 묵향의 뇌리를 때리는 것이 있었다.

‘공격이 대단히 능동적이잖아!’

지금까지 만사불황은 완전히 수동적으로 싸워 왔다고 볼 수 있다. 묵향이 압박을 가하면 가공할 만한 무공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는 만사불황이 지니고 있는 맹하기 그지없는 화경에도 못 미치는 초식에 의존한 무공이 튀어나온다. 그렇기에 그의 공격은 대단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먼저 시작을 해 줘야 그도 공격다운 공격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공격이 대단히 능동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이건 묵향의 느낌일 뿐이다. 서로 간에 숨 쉴 틈도 없을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는 중이 아닌가. 상대의 연계기에 의한 반격을 능동적 공격으로 잘못 느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묵향의 느낌은 그것이 연계기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묵향은 공격의 강도를 낮추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그에 맞춰 만사불황이 묵향을 따라붙으며 무지막지한 공격을 가해 왔다. 그 순간 묵향은 자신의 느낌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슬그머니 물러서면 상대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공격을 가해 와야 하는데, 이 엄청난 압박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묵향의 짐작대로 만사불황은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이 시대 최강의 고수라고 할 수 있는 묵향과 싸우며 만사불황은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순간 생명의 위협이 느껴졌고, 외부에서 가해지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의식과 무의식이 합쳐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만사불황의 탐욕 어린 눈매는 인자한 고승의 그것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놀라운 변화였다. 묵향 같은 불세출의 고수와 생사를 걸고 접전을 벌이게 된 것은 공공대사로서는 생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큰 기연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묵향은 재빨리 상대의 공격권에서 벗어나며 입을 열었다.

“지금껏 말은 많이 들었지만, 공공대사를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하오.”

묵향이 정중한 어조로 말하자, 초류빈과 그와 대치하고 있던 승려들의 시선이 묵향에게로 쏠렸다. ‘저자가 갑자기 왜 저러지?’하는 의문을 담고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말에 대한 화답이 있었다. 만사불황 또한 공격을 멈추고 장중한 움직임으로 합장하며 대답했던 것이다.

“아미타불…, 노납 역시 시주와 같은 무위를 지닌 인물을 지금껏 대면해 본 적이 없었소이다. 시주께서는 대체 누구시오?”

공공대사로서도 황당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고수와 싸우고 있지 않은가. 왜 그와 싸우기 시작했는지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태평스럽게 그런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촌각도 주어지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이 목전에 임박하고 있는데, 그따위 생각을 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싸웠고, 그다음에는 호승심 때문에 싸웠다. 그러다가 이제서야 상대의 정체를 물어볼 여유를 갖게 된 공공대사였다.

하지만 공공대사가 정신을 차렸음을 알 리 없는 승려들은 경악했다. 저 정상적이기 그지없는 만사불황의 대응은 또 뭐란 말인가? 어느 날 갑자기 미쳤을 때와 같이 갑자기 그의 정신이 되돌아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대정선사를 비롯한 승려들은 숨조차 죽이며 만사불황의 언행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묵향은 주위의 반응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싸늘하게 미소 지으며 공공대사의 물음에 대꾸했다.

“본좌는 천마신교의 교주 묵향이라고 하오.”

그런 다음 그는 허리에서 검을 쑥 뽑아 들며 싸늘하게 외쳤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그대를 살려 둘 수 없음을 이해하시구려!”

공공대사가 정신을 차렸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가 존재한다면 현경의 고수를 보유한 소림사의 위상은 얼마나 높아지겠는가. 지금 그를 없애 버리고, 또 저 떨거지 소림승들까지 쓸어버린다면 소림이 현경의 고수를 배출했다는 사실을 조용히 묻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승부사 묵향이 아닌 마교 교주 묵향으로서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묵향은 자신이 지닌 전력을 다해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 검을 뽑아 든 것이다.

상대의 패도적인 기세에 공공대사도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이 순간 인자하기만 한 고승의 모습은 사라지고 승부욕에 타오르는 무림인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시주가 마도에 몸담은 자라면 노납도 부득불 손을 써야만 하겠소이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빌겠소이다, 아미타불…….”

한마디로 ‘죽여 버리겠다’는 소림식의 엄포였다.

이렇게 해서 무림 역사상 처음 펼쳐지는 현경급 고수들 간의 대결이 갑자기 벌어졌다. 한쪽은 소림사가 낳은 최강의 고수였고, 또 다른 한쪽은 마교가 낳은 최강의 고수였다. 불세출의 두 고수가 마주한 자리. 어느 한쪽이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니었건만 둘 사이에는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와 범인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었다.

공공대사는 합장을 한 채 온몸의 기를 일주천시켰다. 일순간 지금까지 그를 괴롭혀 오던 모든 탁한 기운들이 전신모공에서 빠져 나가며 청순지체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는 은은한 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대정선사의 입에서는 경악을 담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금강불괴(金剛不壞)? 사숙께서 드디어 정신을 차리신 것인가?”

이제 분명해졌다. 불문의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는 금강불괴신공을 발현할 정도의 인물이 결코 미친 중일 수는 없었다. 금강불괴신공을 익히기 위한 기본은 중생을 보호하며, 타인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대자대비한 포용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말이다.

사숙께서 드디어 정신을 차리셨다는 감동에 대정선사의 눈에는 또다시 물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한가하게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마교 교주는 사숙을 없애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공 사숙을 지켜라.”

대정선사의 명령에 따라 승려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묵향과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초류빈은 거도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인상을 찡그렸다. 정말 일진이 사나운 하루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아무리 그대들이 소림승이라도 내 앞을 지나갈 수는 없다고 했소. 빨리 물러나시오.”

초류빈의 엄포에 대정선사가 장중한 어조로 대꾸했다.

“초류빈 시주, 문답무용(問答無用)이라 했소.”

더 이상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초류빈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이런, 떠그랄!”

소림에 돌아온 괴승

장인걸은 60만 명으로 몸집이 불어난 대군을 거느리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 중 절반은 요의 잔당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흡수된 거란족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양지에 장군에게 맡긴 10만 명도 거의 대부분은 거란족 병사들이었다. 장인걸이 봤을 때, 그는 거란족 병사들을 거느린 상황에서도 충분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에게 이곳의 상황을 맡긴 것이었다.

물론 그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의외의 변수라는 것은 언제나 발생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때대로 자신이 대군을 거느리고 한 번 더 올라오면 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 강대한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키운 정예병들을 분산시키면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특히나 기적과 같은 역사를 만들어 낸 최정예 병사 15만 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양보할 수 없었다.

60만 대군이 연경 부근을 통과하고 있을 때, 장인걸은 황제를 배알하기 위해 연경에 가 있었다.

“북방을 평정하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대원수.”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폐하.”

“안 그래도 짐이 대원수에게 남방을 평정해 달라고 청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듯 빨리 대원수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북방 전선은 벌써 평정되었소?”

그 말에 장인걸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신이, 양지에 장군에게 맡겼사오니 그가 잘해 낼 것이옵니다. 그건 그렇고, 폐하. 이번에 남방 전선에서 무림인들이 출몰했다고 들었는데, 폐하께서는 그 사실을 들으셨는지요.”

그 말에 황제의 안색이 흐려졌다.

“물론이오. 적들과 대치하고 있는 대원수가 심란해 할까 봐 짐이 연락하지 말라고 했었으나, 얼마 전 황궁에도 무림인들로 의심되는 무리들이 침입한 적이 있었소.”

그 순간 장인걸의 눈이 번쩍 하고 날카롭게 빛났다.

<환영비마(幻影飛魔) 장로.>

장인걸의 전음에 굵직굵직한 사내다운 전음이 화답해 왔다. 그가 바로 장인걸이 황제를 호위하기 위해 천마혈검대 40명과 함께 남겨 뒀던 구양운(丘陽雲) 장로였다.

<옛, 교주님.>

<어떻게 된 일인가 설명해 보게.>

<예, 약 1백여 명의 무림인들이 습격해 온 적이 있습니다. 모두들 대단히 무공이 뛰어난 자들이었는데, 그들이 사용하는 검술로 보아 종남파의 고수들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그 보고에 장인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종남파라고? 이런 썩을 놈들을 봤나.>

장인걸은 생각을 굳힌 듯 황제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무림맹이 참전을 결의한 것이 확실한 모양이옵니다, 폐하.”

“무림맹? 무림맹이 무엇이오? 대원수.”

황제가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자, 장인걸은 무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무림에 활동하는 고수는 크게 두 파로 나누어지옵니다. 사파와 정파가 그것이지요.”

그러면서 장인걸은 황제에게 무림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현재의 세력 판도에 이르기까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파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림맹이 본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모양이옵니다.”

“허어, 참. 경의 말을 들어보면 무림맹이라는 것의 세력도 대단한 모양인데, 그들이 적이 되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로고. 그래, 경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옳다고 보시오?”

“본국을 적대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때를 보이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장인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황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을 모두 잡아다가 목을 베자는 말이오? 그들의 무공이 뛰어나다면 모두 잡아들인다는 것은 아주 어려울 텐데…….”

“그것이 아니옵고, 정파에 소속된 거대 문파들의 상당수는 북쪽에 자리 잡고 있나이다. 즉, 폐하의 영토 안에 있다는 말이옵니다. 군사들을 파견하여 그들을 응징하고, 그 식솔들을 인질로 잡는다면 무림맹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옵니다.”

그 말에 황제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호오, 그것 참 기가 막힌 의견이로다.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시오.”

“예, 폐하.”

황제와의 회담이 끝난 후 장인걸은 재빨리 자신이 이끄는 부대로 돌아갔다. 장인걸이 돌아온 후, 60만 대군은 크게 두 개로 나뉘었다. 50만은 양양성 방면에서 후퇴해 오고 있는 무안 대장군의 병력과 합류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인걸이 직접 이끄는 10만은 무림의 각 방파들을 파괴하기 위해 흩어졌던 것이다.

10만 대군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장인걸이 직접 이끄는 1천 기의 기마대였다. 그들은 목적지가 워낙 멀다 보니 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서안 인근에 있는 검의 명가 종남파였다. 서안까지 가려면 정주와 낙양을 거쳐 머나먼 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렇다 보니 길을 서두르는 것이다.

장인걸이 왜 직접 종남파를 택했는가 하면 그들이 황제를 시해하기 위해 황궁에 침입했다는 혐의가 있었기에 그 죄를 물어 철저하게 파괴해 버릴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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