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혹시 교주가 사실은 천지문과 뭔가 원한이 있었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로 처절했던 비무가 끝나자마자 만통음제는 묵향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허어, 동생.”
“왜 그러십니까?”
“동생의 지도 방법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네. 하지만 저렇게 무자비하게 두들겨서야 어디 되겠는가.”
머리에 정통으로 한 대 맞고 기절한 채 업혀 가는 진팔을 가리키며 만통음제가 말했지만, 묵향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사실 마지막 한 방은 잡생각 떠올리지 말고 푹 쉬라고 의도적으로 날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사부님께 저런 식으로 당하면서 성장했죠.”
그러면서 묵향은 자신의 사부 유백을 떠올렸다.
물론 유백의 방법이 묵향의 방법보다 훨씬 조악하다고 봐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백은 그렇게 큰 깨달음을 지니고 있지 못했기에 가차 없이 밀어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련 시간이 조금 단축된다는 것만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묵향은 달랐다. 사부의 방법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먼저 이론 교육부터 시켜 놓고, 그다음은 몸이 그것을 익히게 만든다. 물론 진팔의 경우 이론은 자기 스스로 어느 정도 터득해 놓은 상태인데, 그것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기에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묵향은 이론 교육은 생략한 채 다짜고짜 매질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수련시키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은 초류빈이라는 실험 대상(?)이 이미 증명한 상태였다.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르면서 말이다.
“아, 동생의 사부께서 그런 방법을 창안하신 모양이군. 정말 창의력이 대단하신 분일세.”
만통음제는 약간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제자를 교육시키는 것도 좋지만 저토록 지독한 방법을 선택하다니. 도저히 그들 사제지간에 정이라는 것이 있었을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향은 추억 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대단하신 분이셨죠. 그리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묵향에게서 사부에 대한 은근한 정이 느껴졌기에 만통음제는 자신의 제자에게도 이 방법을 써 볼까 하는 마음이 새록새록 들기 시작했다. 역시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게 다 좋은 법이니 말이다.
‘하루 동안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결과가 나타나면 제자 녀석도 이해해 줄 거야, 암.’
“복 받은 녀석이로군. 오늘의 비무는 그 녀석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겠지.”
묵향은 느긋한 어조로 대꾸했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십니까? 겨우 하루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일단 시작했으면 뿌리를 뽑아야죠.”
그 말을 듣자마자 만통음제는 경악감과 함께 진팔에 대해 불쌍한 감정마저 느꼈다. 설마 그걸 그렇게 지독하게 강행하겠다는 말인가? 만통음제는 방금 전에 세웠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서는 사랑하는 제자를 이토록 무자비하게 몇 날 며칠 동안 두들겨 팰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 하지만 그녀석이 그걸 알면 비무를 계속할 리 있겠나? 우형 같으면 아무리 배움도 좋다지만, 오늘 밤 당장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하겠네만.”
묵향은 그쯤은 미리 다 생각해 놨다는 듯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기절시켜 놨잖습니까? 내일 아침까지 아무 생각 없이 푹 잘 겁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또 다른 방법도 써 놓은 게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코 야반도주는 할 수 없을 테니까요.”
“다른 방법이라고? 그게 뭔가?”
하지만 묵향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해 주지는 않았다. 대신 묵향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돌렸다.
“참, 저는 볼일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십시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만통음제의 시선을 뒤로하고 묵향은 업혀 가는 진팔의 뒤를 따라 천지문도들의 숙소로 향했다.
묵향은 천지문 내에서 잡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물을 길어오는 사람, 장작을 져다 나르는 사람, 대부분이 천지문의 문도들 중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었지만, 간혹 하인들도 있었다. 천지문을 거느리고 온 소연이 여고수인 만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하기 위해 데려온 듯한 하녀도 한 명 보였다.
‘이상하군. 내 예상이 틀렸나?’
막 발길을 돌리던 묵향의 눈에 땔감을 나르고 있는 늙은 하인의 모습이 보였다. 묵향은 그 비쩍 마른 늙은이를 향해 한동안 따뜻한 눈길을 보내더니 어기전성을 날렸다.
《흑월야사(黑月夜死) 전룡(全龍), 오랜만이구나.》
누가 봐도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 하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에게서 곧장 묵향에게 전음이 날아왔다.
<전룡이 교주님을 뵙습니다.>
《자네는 본좌가 내린 명령을 완수했어. 본좌가 원한 것은 3개월이었는데, 이토록 오랜 시간 일해 주어 너무나도 고맙게 생각한다네. 이제 자네는 자유의 몸일세. 참, 혹시 원하는 것이 있는가? 뭐든지 말해도 좋네. 본좌를 위해 일한 것에 대해 대가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그래도 뭔가 주고 싶군.》
하지만 전룡의 대답은 묵향의 예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약속한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 저는 자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주님의 실종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남을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하지만 저는 남는 것을 택했습니다. 교주님과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무림에 돌아가 봐야 피밖에 볼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나름대로 행복합니다. 그러니 그냥 저를 놔두십시오.>
《그런가? 본좌가 괜한 소리를 했군. 그래, 자네가 곁에서 지켜본 내 딸은 어떻던가?》
전룡은 주름진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피워 올리며 대답했다.
<제가 지금까지 모신 분들 중 최고셨습니다.>
《허허헛, 그랬단 말이지? 과연 본좌가 딸 하나는 제대로 택한 모양이군. 그럼 잘 있게. 행복하기를 빌겠네.》
<안녕히 가십시오, 교주님.>
묵향은 전룡을 만나고 이 피에 절은 강호에 저토록 의리 있는 인물이 남아 있다는 것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자신이 존재할 때 충성을 바치는 인물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지자 마교는 어떻게 되었는가. 마화 등 몇몇 인물은 충성을 다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도 컸다.
예를 들어 관지가 묵향이 사라진 후에도 그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따져 보면 그것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온건파인 그는 마교의 무시무시한 힘이 강호를 덮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자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종된 교주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묵향파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 식의 여러 가지 복합된 이유가 존재해서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순수한 충성심, 혹은 대가 없는 의리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묵향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줬다.
그날 저녁, 기절해 있는 진팔을 간호하던 소연의 뇌리를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그다음은 놀라운 무공을 지켜보느라 잡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듯 시간이 남게 되니 자연 그녀의 사념(思念)은 점차 한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분이 혹시 양부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도 닮은꼴이 아닌가.
그녀가 묵향을 만난 것은 지금까지 세 번이었다. 한 번은 처음 묵향을 만나 그의 양녀가 되었을 때다. 아마도 그녀의 인생에서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음은 사형들과 함께 몽땅 다 마교에 잡혀 들어갔을 때다. 그때, 양부가 선물한 장신구는 지금까지도 그녀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 그분께서는 마교에 몸담고 계신 것이 확실했다. 그것도 상당히 높은 직책을 지니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번, 그녀가 양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장인걸에게 잡혀 들어가 모진 고초를 당한 후였기에 양부를 회상하고 있을 정신이 없었다. 그녀 자신이 그곳에 왜 잡혀 들어갔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이렇듯 순순히 풀려 나왔는지 그것조차 이해 못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소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생각을 애써 부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양부께서 마교의 교주라니……. 중원 최강의 고수이며, 암흑마제라는 극악무도한 패륜아가 그분일 수는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양부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입으로는 부인했지만, 사려 깊은 그녀의 사념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있어. 천지문이라는 작은 문파가 마교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 이런 식으로 마교의 보호를 받고 있는 문파는 천지문뿐이라는 것, 아빠는 마교 출신이라는 것, 이 모든 것을 함께 뭉뚱그린다면 그분이 아빠일 가능성도 있잖아. 아빠가 교주 정도의 고위 직책을 지니지 않고 계시다면 천지문과의 동맹을 맺을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야. 만약 동맹이 한중길 교주 혼자만의 작품이라면 새로이 교주가 바뀌면서 그런 거는 하루아침에 파기되어 버렸을 거야. 그걸 보면 현 교주도 천지문과 뭔가 연관이 있다는 말. 틀림없어, 그분이 아빠야.’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던 소연은 기다리기로 했다. 양부가 자신에게 정체를 밝히기를 말이다. 그분이 자신에게 양부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것은, 그 말을 꺼내지 못할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 테니까…….
매일 당해야 하는 진팔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모두들 그날 하루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교주와 진팔 간의 비무는 그 후로도 꽤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교주에게 진팔을 두들기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두들겨 맞는 양에 비례하여 진팔의 실력은 급상승하고 있었다. 두들겨 맞는 것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그가 배우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안 맞으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동작으로 일치시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곧장 몽둥이가 날아오는 것이다.
빡!
“크어어억!”
“빨리 일어서.”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진팔은 몸을 재빨리 일으켰다. 뭉그적거리다가는 몽둥이가 또 날아온다는 사실을 잘 아는 것이다.
‘이런 시팔! 차라리 나를 죽여라. 네놈이 나하고 무슨 철천지원수를 졌다고 이토록 사람을 핍박한단 말이냐.’
속마음은 그랬지만, 차마 그걸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다. 만약 말로 내뱉었을 때 그 후환이 얼마나 클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희대의 고수가 자신에게 한수 지도해 준다는 말에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비무였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서 보니 이건 사람 잡는 최악의 고문이었다. 만약 이쪽에서 움직임을 멈추면 곧장 다가와서 무자비한 몽둥이질을 가한다. 안 맞으려면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일단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만 하는 거야. 한 번 승낙한 이상 네 녀석한테 선택권은 없어. 본좌가 이제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무조건 비무를 해야만 해. 도망가면 어쩌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만약 네놈이 도망친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이 몽둥이로 패 죽여 주마. 그리고 저기 서 있는 네놈의 사저라는 계집도 덤으로 저승길 동반자로 만들어 주지.》
교주의 살벌하기 그지없는 협박이었다. 물론 묵향은 소연이 듣지 못하게 어기전성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고, 진팔에게 그 협박은 절대적으로 먹혀 들어갔다. 묵향이 덤으로 죽여 버리겠다고 우연히 끼워 넣은 소연은 진팔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진팔이 그녀에게 피해가 갈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진팔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또다시 교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도망가는 것은 애당초 글렀고, 남은 것은 한 대라도 적게 맞도록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지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맞은데 또 맞지 않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쓰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몽둥이를 피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 순간 사력을 다해 몸을 틀어 지금까지 안 맞은 곳에 몽둥이가 꽂히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까지 부리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움직임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었다. 정작 그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정말 놀라운 일이로다.”
옆에서 만통음제가 중얼거리자 소연의 시선이 만통음제에게로 살짝 돌아갔다.
“저렇듯 강제적으로 무공을 주입시키는 탁월한 방법이 존재할 줄이야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약간의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아직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을 때, 저런 식으로 그것을 강제적으로 소화되게 만든다. 기발한 착상이야. 노부도 그런 방법을 진작 알았다면 그놈을 몇 단계는 위로 끌어올려 놨었을 텐데, 안타깝구먼.”
아마도 냉파천이 이 말을 들었다면 기겁을 했겠지만, 소연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저렇게 극심한 몽둥이질을 당하고 있는 사제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루하루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가는 사제의 무공을 봤을 때 그녀는 한편으로 부럽기까지 했다. 만약 비무하는 상대가 사제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사제 열심히 해. 아마 아빠는 나에게 최고의 무공을 보여 주기 위해 사제를 택한 모양이지만, 사제도 이것을 기회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야. 만약 아빠가 나를 비무 상대로 삼아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진팔의 움직임은 며칠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해 있었다. 잘 연결되지 않아 버벅거리던 초식들이 지금은 제법 부드럽게 연결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진팔이 발악할수록 교주가 시전하는 초식의 교묘함도 그 정도를 한층 더 깊게 했기에 하루에 두들겨 맞는 양으로 따진다면 별로 변한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진팔은 자신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그의 마음속에는 해묵은 원한까지 더해서 교주에 대한 악감정만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다.
동경과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소연이 비무를 관찰하고 있을 때, 만통음제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자네는 교주를 어떻게 생각하나?”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교주를 어떻게 생각하느냔 말이야. 극악무도한 자라는 소문이 항간에는 파다하게 퍼져 있지만, 한 며칠 지켜봤으니 그게 완전히 헛소문임을 자네도 알 걸세. 만약 그런 자라면 노부가 의제를 삼지도 않았겠지.”
“예, 저도 그런 풍문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뵈니 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믿을 것이 못 되는지 알겠더군요.”
그 말에 만통음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상대방도 동생에게 약간의 호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에.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는가? 내 듣자 하니 자네는 아직까지 홀몸이라면서?”
갑자기 만통음제가 왜 그 말을 꺼냈는지 몰랐기에 소연은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예? 예.”
만통음제는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어떤가? 자네가 정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지만, 천지문과 마교는 그렇게 동떨어진 곳도 아니지 않은가? 동생은 자네가 마음에 있는 것 같던데, 자네 의향은 어떤지 묻고 싶구먼.”
그 말에 소연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또 무슨 소린가? 양부와 혼인을 하라니 말이다.
“좀 소문이 안 좋게 퍼져 있어서 그렇지 저만한 신랑감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닐 걸세.”
“저분의 뜻이신가요? 아니면…….”
소연이 그 질문을 한 의도는 생각하지도 않고, 만통음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생의 눈치를 보아하니 그가 소연에게 상당한 호감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동생의 의향을 물어본 후에 자네에게 하는 말일세. 동생은 자네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던데…….”
그 말에 소연은 당황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저… 죄송합니다, 대협.”
“왜 그러는가? 그가 마교도라서 그러는가?”
“그건 아닙니다, 대협. 예전부터 마음을 주고 있던 사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말에 만통음제는 아쉬움이 잔뜩 배인 어조로 대답했다.
“허어, 그런가? 하기야… 마음에 없는 사람하고 함께 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미안하다는 투로 만통음제가 대답했지만, 소연은 그 말을 들을 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결혼을 제의해 오다니…….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말인가? 그가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양부라면, 결코 결혼을 제의해 올 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