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파의 멸문
수려한 절경을 자랑하는 종남산 기슭에는 거대한 문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9파1방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도가 계열의 그 문파가 바로 종남파다. 종남파는 무림맹에 5백이 넘는 고수들을 파견하고 있었고, 특히 공동파가 득세하고 있었던 무림맹에서 맹호검군(猛虎劍君) 백량(白諒)이 공동파 출신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장로직에 오르면서 더욱 무림에서의 입지를 튼튼하게 굳혔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요 근래 종남파에는 좋지 않은 일만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백량 장로가 자파 출신의 고수 1백 명을 이끌고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전원 사망시킨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말이 쉬워 1백 명이지, 그만한 고수 1백 명을 키워 내는 데 들어가는 세월이 하루 이틀인가.
무림맹에는 상당수의 종남파 고수들이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그 소식을 들은 후 종남파는 추가로 또다시 1백 명의 고수들을 파견했다. 무림맹에서 자파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1백 명분의 전력을 충당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참에 양양성에서 금군과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지자, 종남파는 태을검군(太乙劍君) 송류(宋柳) 장로에게 1천여 명의 고수들을 주어 그곳에다가 파견하는 대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종남파가 이보다 적은 수의 고수를 파견한다면, 9파1방의 대열에 끼인 거대 문파가 겨우 그 정도밖에 파견하지 않았다고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도 있기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래저래 종남파 내에 남아 있는 실력 있는 고수들의 수가 적은 이때, 종남파에는 크나큰 위기가 도래하고 있었다.
“배치는 끝났느냐?”
“옛, 교주님. 하명만 하십시오.”
장인걸은 저 멀리 수풀을 뚫고 솟아 있는 웅장한 건물들을 보며 슬쩍 비웃음을 던졌다. 설마 자신이 이 먼 종남파까지 곧장 달려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 시작하거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웅후한 내공이 포함되어 있는 긴 휘파람 소리가 종남산에 울려 퍼졌다. 그 장소성에 맞춰 종남파를 포위하고 있던 1천에 달하는 무사들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서 엄청난 기세로 달려가는 50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은 무시무시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바로 장인걸이 거느리는 천마혈검대 소속의 고수들인 것이다.
장인걸은 수하들이 달려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구경한 후에야 자리에서 털고 일어섰다.
“장문인의 목은 본좌가 직접 베어 주는 것이 예의겠지? 흐흐흐흐.”
잠시 후,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종남산은 아비규환의 혈전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소연이 마화에게 묵향이라는 인물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 지 며칠이 경과한 후, 마화는 소연에게 묵향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녀가 며칠이라는 시간을 끈 이유는 양양성에서 마교 총타로 연락을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 총타에서 조사하는 데 필요한 시간, 그리고 답장을 보내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모두 합하여 상대가 타당하다고 여길 정도의 기간 동안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소연이 그날 마화를 만났을 때, 그녀는 마화의 돌연한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흑풍대 부대주인 마화가 그녀에게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던 것이다.
“흑풍대 부대주 마화가 소 소저를 뵈어요.”
그 말만으로도 소연은 마화가 자신에게 양부에 대한 답을 해 주려고 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마화 같은 사람이 자신에게 이토록 존칭을 쓰며 인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연으로서는 마화처럼 지체 높은 무림고수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게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그런 인사는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소연의 마음속에는 마교 교주가 양부일 거라는 확신이 서서히 들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있어서 마화로 하여금 자신에게 고개를 조아리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 소저의 양부께서는 제가 너무나도 존경했던 분이셨으니까요.”
분이셨다는 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양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설레임에 소연은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드디어 양부의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총타로부터 답신이 왔군요.”
“예, 소 소저께서 그분의 본명보다는 추혈광마라는 명호를 대셨다면 총타에서 회답을 받는다고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지 않았을 텐데…….”
“추혈광마……. 그분의 명호가 추혈광마셨나요?”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명호에 소연은 혼이 다 빠져 나가는 듯했다. 소연은 그 명호 한마디로 자신에게 그토록 다정했던 양부가 마교 내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능히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소연은 그 명호만으로 자신의 예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교주가 두 번에 걸쳐 만통음제를 매파로 내세워 자신에게 청혼을 해 왔을 때, 이미 그가 양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것에 대해 크게 실망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예, 소저는 모르셨던 모양이군요.”
“저… 이런 말씀 드리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분의 명호를 몰랐어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마화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러셨군요.”
그런 마화의 표정을 살피며 소연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분께서는 건강하신가요?”
질문을 받은 마화의 표정에 잠시 당혹감이 어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마화가 이윽고 결심한 듯 말했다.
“그분께서는… 돌아가셨어요.”
사실 마화가 머뭇거린 이유는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해야만 한다는 양심상의 문제로 생긴 당혹감이었지만, 소연은 그것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뭔가 말하기 힘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양부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소연은 왜 마화가 잠시 머뭇거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화의 말은 그녀를 깊은 슬픔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소연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예? 돌아가셨다고요? 그렇다면 언제…….”
“소 소저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20여 년쯤 전에 장인걸과 교주님 간의 내분이 본교에서 벌어졌었죠. 추월광마 선배님께서는 가장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었던 총단 기습 작전 때, 장인걸 휘하의 수라마참대 고수들과 싸우다가 전사하셨어요. 선배님께서는 돌아가셨지만, 그분이 세운 전공이 워낙 뛰어난 것이었기에… 교주님께서는 그분에 대한 자그마한 사례로 과거 그분께서 이뤄 놓으신 것을 아직까지도 유지시키기고 계시죠.”
그런 말은 들어 본 것도 처음이기에 소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가요?”
“역시 소 소저도 그건 모르셨던 모양이군요. 천지문과의 협정을 말하는 거예요. 추혈광마 선배님께서 천지문과의 협정을 주도하신 모양이더군요. 저도 지금껏 무슨 이유로 본교가 천지문과 불합리한 협정을 지속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 소저 덕분에 그 의문을 풀게 되었지요. 설마 그분께 양녀가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었거든요.”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방울씩 눈물을 흘리는 소연을 살짝 껴안고는 등을 토닥거리며 마화가 말했다.
“선배님의 양녀시니, 같은 식구로서 한마디 충고를 드리자면… 그분이 소저의 양부라는 사실을 절대 입 밖에 내지 마세요. 선배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다른 사람들은 결코 소저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을 거예요.”
소연이 양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제일선에서 금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흑풍대가 회군해 왔다. 그들이 성문을 통과해서 당당하게 들어올 때, 양양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거대한 덩치의 전투마를 타고, 중갑주로 무장한 흑풍대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기 때문이다.
9천 기에 달하는 인마의 모습은 오랜 전투를 치르다가 귀환한 자들답지 않게 너무나도 용맹스러워 보였다. 모두들 얼마나 야지 생활을 오래했는지 갑주는 빛을 잃고 더럽기 그지없었지만, 그들이 타고 있는 거친 콧김을 내뿜는 난폭해 보이는 전투마의 털은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들이 자신의 몸보다 전투마를 우선적으로 관리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흑풍대의 대열은 성내에 마련된 광장까지 이어졌다. 그곳에는 악비 대장군을 비롯한 양양성 내 중요 무관들이 흑풍대의 선전을 치하하고 위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관지 장로는 멀리서부터 악비 대장군의 모습을 확인한 후,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관지 장로는 절도 있게 군례를 올린 후 말했다.
“이렇듯 대장군께서 몸소 마중 나오시어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무슨 말씀을……. 황상 폐하를 위해 이렇듯 몸 바쳐 일하시는데, 마중 한 번 나온 것이 무슨 큰 대수이겠소이까?”
잠시 관지 장로를 살펴보던 악비 대장군은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봐도 오랫동안 군문에 몸담으신 것 같은데, 과거 귀하의 관등 성명을 여쭤 봐도 실례가 되지 않겠소이까?”
“미관말직(微官末職)이었기에 대장군의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소이다.”
그렇게 말하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만으로도 상당히 높은 지위를 지니고 있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악비 대장군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그것을 숨기고 싶어 하는데, 구태여 캐물을 이유는 없었다. 지금 그는 흑풍대가 너무나도 필요했으니 말이다.
“허허헛,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어쩔 수 없구려. 자, 음식과 술을 넉넉히 준비했소이다. 모두들 마음껏 먹고 마시며 노고를 푸시기 바라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시어 감사하오이다, 대장군.”
“자, 가십시다.”
그날 저녁 흑풍대의 무사들은 음식은 배불리 먹었지만,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이곳은 수많은 정파의 무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최악의 경우 그들이 모두 다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는 이상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연회가 끝난 후 관지 장로는 묵향을 찾았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그동안 수고했네. 건강한 자네의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되어 기쁘구먼.”
“남만에 가셨던 일은 잘 처리되었다고 부교주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교주님.”
‘남만’의 일은 바로 몽고에서의 작전을 말하는 것이었다.
“축하할 일까지야 있겠는가? 이제 씨는 뿌린 것이니 잘 자라기만을 바래야겠지. 그래, 금나라 쪽의 사정은 어떻던가?”
관지 장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영문과의 연계 작전을 펼쳤었기에, 금군에 대해 비교적 풍부한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상대의 병력, 그들이 군수 물자를 옮기는 수송 경로 그리고 그 경로 상에 위치한 몇 곳의 물자 집결지 등등…….
“군수 물자를 대규모로 집결시키고 있는 곳이 남양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묵향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제법이군, 그런 것까지 소상하게 알려 주는 것을 보면 말이야. 그런데 그 할망구 속셈을 잘 모르겠단 말이야?”
교주의 시큰둥한 반응에 관지 장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예? 속하는 무영문이 교주님과 어떤 계약을 맺었기에 그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물론 협정서를 주고받은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할망구가 이토록 전폭적인 협조를 해 준 것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어. 뭔가 그걸 통해서 노리는 것이 있겠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여기까지 말한 묵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런 정보를 듣고도 남양을 치지 않았다니, 자네의 인내심에 탄복했네.”
“인내심이랄 것도 없습니다, 교주님. 본교에 있으면서 속하는 장인걸의 성격에 대해서 많은 말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군량이 집결된 곳을 허술하게 그냥 놔뒀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묵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본좌도 그걸 우려하는 것일세.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함정일 가능성이 커. 뭐, 어찌 되었건 자네가 그쪽으로 안 갔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자, 오늘은 이만 하고 푹 쉬게나. 얘기야 내일도 나눌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옛, 교주님. 속하는 물러가겠습니다.”
관지 장로가 물러가고 난 후, 묵향은 무영문이 그런 정보를 넘기면서 노린 것이 뭔지 한참 동안 궁리했다.
옥화무제가 이토록 대금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이룩해 놨던 모든 것을 금이 물거품으로 만든 것에 대한 보복 심리가 작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묵향으로서는 그녀와 금 간에 있었던 일을 알지 못하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알아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양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와중에 기가 막힌 계책이 떠올랐다. 옥대진과 능비화에게 사제를 대신해서 복수할 수 있는 아주 기막힌 계책이 말이다.
묵향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요컨대 이걸 언제 써먹느냐가 문제로군. 흐흐흣.”
요즘 들어 수라도제의 심기는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흑풍대가 회군해 오면서 마교 교주를 때려잡으려던 계획은 완전히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되려 그 사건 때문에 교주와 자신 간의 거리만 벌려 놓지 않았는가. 설상가상으로 다른 화경급 고수들에게는 옹졸한 늙은이 취급을 당하고 말이다. 그것 때문에 성질나서 이따위 계략을 자신에게 간(諫)한 젊은 것들을 불러들여 혼꾸멍을 내놨지만 수라도제의 속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수라도제는 무림맹 총타로부터 놀라운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전령으로부터 건네받은 봉서(封書)를 읽은 수라도제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정녕 이것이 사실이란 말이냐?”
수라도제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전령은 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공손하게 말했다. 모든 전령들이 그러하듯 그는 그 봉서 안에 기록된 내용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속하는 여기까지 오면서 품속에서 단 한 번도 봉서를 꺼낸 적이 없었사옵니다. 결코 다른 것과 뒤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사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마교 교주와의 사소한 갈등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총관!”
“예, 태상문주님.”
“원로들을 소집해라. 노부가 독단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사안이로구나.”
“옛.”
수라도제는 서신을 총관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맹에 전서구를 띄워 이것이 정녕 사실인지 확인해 보도록 해라.”
“옛.”
서신을 받아 들자마자 총관은 단숨에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서신의 어떤 내용이 수라도제를 그토록 놀라게 만든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다 읽은 총관의 표정은 수라도제의 그것보다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
“맹으로 가는 전서구는 아직 일곱 마리나 남아 있으니 그쪽으로 연락을 보내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양양성으로 회답을 보내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문파가 무당파니까 맹에서 그곳으로 전서구를 보내고, 거기서부터는 전령이 달려와야 하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립니다. 아마 짧게 잡아도 3일은 걸릴 것입니다, 태상문주님.”
비둘기라는 짐승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원하는 자에게 편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을 찾아서 본능적으로 날아갈 뿐이다. 그 본능을 이용해서 양양성에서 키우던 전서구를 저 멀리 떨어진 무림맹에서 가지고 있다가 놔준다면 곧장 비둘기는 양양성으로 돌아온다. 또, 양양성에는 무림맹에서 키우던 비둘기를 가지고 있다가 화답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어느 한쪽과 비둘기를 이용한 연락망을 갖추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새로운 세대의 비둘기들이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양양성의 일에 무림맹이 끼어든 것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전서구를 활용한 통신망이 뚫리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허어, 3일이라.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터인데, 3일이라고?”
어떻게 할 것인지 수라도제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총관은 사람을 시켜 무림맹을 향해 전서구를 날렸다. 봉서에 기록된 내용의 일부를 기록하고,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이것이 간악하기 그지없는 적들의 농간일 수도 있기에 확인 작업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이윽고 수라도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장중한 어조로 외쳤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시간을 끌 수가 없다. 각 문파의 수장들을 소집해라, 지금 당장!”
“옛, 태상문주님.”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가려던 총관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돌아와서 조심스럽게 수라도제에게 질문을 던졌다.
“교주에게도 사람을 보낼까요?”
“당연하지 않겠느냐.”
총관이 나가고 난 후, 수라도제는 심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얼마 전까지 자기를 죽이려고 이쪽에서 모의했다는 것을 놈이 다 알고 있는데, 그놈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