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봉문하라
장생전(長生殿)에 장문인의 지시에 따라 소림을 떠받치는 모든 원로들이 집합했다. 평소에는 모두들 늙어서 열반에 드신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될 정도로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공(公) 자배의 고승들이 모습을 비췄고, 대(大) 자배의 고승들도 이날만큼은 소림에 원로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을 정도로 많은 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문인은 장생전에 모인 고승들에게 현재 소림이 처한 위기를 소상히 말했다.
“물론 저들의 수가 엄청나다고 하지만 본사가 지닌 저력이라면 충분히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국가라는 데 있습니다. 이번에 저들을 물리친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만의 금군이 또다시 몰려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장문인의 말에 원로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공식적으로 입을 연 것은 전대 장문인인 공지대사(空知大使)였다.
“허어, 본사가 창건된 후 지금까지 수많은 제국들이 하남을 지배했었소이다. 하지만 이토록 광오한 요구를 해 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이오.”
“사숙, 더 이상 생각해 볼 것도 없습니다. 지금껏 쌓아 놓은 소림의 위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저들의 횡포에 굴복한다면 무림동도들이 소림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드높은 명예를 한순간에 떨어뜨리기는 쉽겠지만, 그걸 다시 되찾기에는 엄청난 피와 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제의 말이 옳소이다. 장문인께서는 상대가 국가라서 저어하시는 모양인데, 병사들이 집단 전투에는 이쪽보다 능할지 모르지만, 무공에 있어서는 보잘것이 없지 않습니까? 한밤중에 기습을 가한다면 집단전 같은 거 몰라도 하등의 지장이 없습니다. 또, 수십만의 병사들이 몰려와 도저히 상대하기 힘들다면 퇴각하면 되지요. 남쪽에는 무림맹이 있고, 또 대 송제국도 건재합니다. 그들과 합류한다면…….”
“사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나. 중원불교의 성지(聖地)인 소림사를 놔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오랑캐의 횡포에 굴복한다는 것이 치욕스럽기는 하지만, 성지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 후로 수많은 토론이 오고가자 결국 원로들은 두 파로 나뉘었다. 하나는 성지를 오랑캐들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치욕스럽더라도 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봉문하자는 파와 또 하나는 무림에서 지켜온 대 소림의 위상이 있는데 이렇듯 적의 무력에 굴복하여 꼬리를 내리느니 결사 항전(決死抗戰)하자는 파였다.
새벽이 되자, 양쪽은 더 이상 설전을 벌이기도 질렸는지 한 가지 타협안을 내놨다.
“공공 사형께서 돌아오셨다고 하니 그분께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사제의 의견이 옳도다.”
공 자 배의 최연장자라고 할 수 있는 공지대사가 그 의견에 찬성하자, 그 말에 모두가 찬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결사 항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소림 최강의 고수인 그의 도움은 절실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가장 깊은 수련을 쌓았다고 생각되어지는 공공대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수많은 원로고승들이 줄을 지어 참회동(懺悔洞)으로 향했다. 참회동은 소림의 가장 깊은 곳에 마련된 조사들의 유품을 모아놓은 조사전(祖師殿)의 뒷산에 뚫린 동굴이었다. 그렇기에 원로 고승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다른 승려들이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비육걸개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자신이 기거하는 암자 또한 소림의 아주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엇? 저분들은! 공 자 배 고승들이 아닌가?”
공 자 배라면 전대에 소림사를 이끌던 주축들이었다. 후진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후, 그들은 단 한 번도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보통이라고 하는 개방에서조차 대부분의 공 자 배 고승들은 열반에 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다. 무려 10여 명에 이르는 노승들이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소림사가 뭔가 결단을 내리려고 하는 모양이군.”
몰래 가져온 술을 한 모금씩 아껴 마시며 구경하고 있던 비육걸개는 그 육중한 몸을 비호처럼 날렸다. 과연 소림의 선택은 뭘까?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신법을 구사하며 조심스럽게 달려가는 비육걸개의 모습은 도저히 돼지 같은 몸매를 지니고 있음을 믿지 못할 만큼 은밀한 것이었다.
하지만 비육걸개의 그런 움직임도 오래가지 않아 소림승들에게 포착되었다. 이곳에 모인 고승들 중에서 무공이 낮은 승려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소림이 감춰 두고 있는 최강의 세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거기 숨어 있는 시주는 누구신고?”
고승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리자 비육걸개는 쑥스러운 미소를 띠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충분히 껴안을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되는 두께를 지닌 나무 뒤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비육걸개. 방금 전에 그 엄청난 덩치가 그토록 가느다란(?) 나무에 의지해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비육걸개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장문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시주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곳은 외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외다. 그러니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인자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그 무엇으로도 타협할 수 없는 단호함이 듬뿍 묻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방장 스님. 제가 워낙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지라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육걸개는 용서를 구한 후, 발길을 돌렸다. 암자로 돌아가는 비육걸개의 발걸음에는 아쉬움이 담뿍 배어 있었다.
“공공 사숙, 참회 도중에 정말 송구스럽습니다만,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긴히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고승들이 참회동 앞에 집결해 있음을 공공대사가 모를 리 없었다. 소림의 모든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일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잠시 후, 공공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모습은 처음 참회동에 들어갈 때에 비해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사실 하루 식사량이 겨우 벽곡단 한 알이라는 것은 굶어죽기 딱 알맞은 분량인 것이다.
“무슨 일인고?”
그 말에 공지대사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걸었다.
“사제 오랜만이구나.”
“예, 사형.”
정말 오랜 시간 헤어져 있던 사형제 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공지 사형만이 아니었다. 많은 사제들이 있었고, 또 사질들도 있었다. 그들의 거의 대부분을 공공대사는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에 뛸 듯이 기뻐해야 함에도 그들을 바라보는 공공대사의 두 눈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상의할 일은 무엇이오이까?”
장문인인 대덕대사가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 금제국과의 갈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무력을 앞세운 금제국의 협박을 들어줘야 하는지, 아니면 그에 맞설 것인지……. 그 말을 다 들은 공공대사는 무심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허어, 모든 것이 헛되고도 헛되도다. 명성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자존심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고? 그리고 불제자가 불도를 쌓는 데 산속이면 어떻고, 들판이면 또 어떤고?”
잠시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고승들을 바라보던 공공대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노납을 붙잡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모두들 불도에나 정진하시게나.”
더 이상 대화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공공대사는 조용히 몸을 돌려 참회동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말에 다른 고승들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자신들이 소림에 들어온 것이 무엇 때문이었던가? 바로 불도를 닦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언제부터 세속적인 명예와 위상에 눈이 멀어 이렇게 변해 버렸는지.
공지대사는 참회동 안으로 들어가는 공공대사를 바라보며 나직이 탄식을 터트렸다.
“허어, 지금까지의 수행이 헛되고도 헛된 것이었구나. 정작 참회동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노납이었는데 그걸 몰랐으니…, 아미타불.”
공공대사가 한 말은 몇 마디 되지 않았지만 공지대사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공공대사 말은 불도를 닦는 데 있어서 소림사라는 굴레에 집착하고 있는 원로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사실 공공대사의 말은 하나도 틀린 점이 없었다. 불도를 닦는 데 소림사에서 닦으면 해탈하고, 다른 곳에서 닦으면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미망 속에서 헤매던 자신을 일깨워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인지 공지대사는 참회동을 향해 합장을 하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장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 많은 것을 배운 듯하이. 그래, 장문인의 생각은 어떤고?”
그 말에 장문인은 합장하며 대답했다.
“사숙 어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원로들과 공공대사와의 만남을 기점으로 소림의 행동은 무림맹이 전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버렸다.
비육걸개가 멀리서 훔쳐보는 가운데 장문인의 발표가 있었다. 이런 저런 말이 많았지만 그 요점은 이런 것이었다.
‘세속적인 명예와 위상에 연연하지 말고, 불제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라.’
그 말은 곧 10년간 봉문하겠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었다.
선승들은 장문인의 결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대부분의 무승들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그들도 승려인 만큼 장문인의 결정이 심히 못마땅했겠지만 그걸 대놓고 따지지는 못했다. 그들이 장문인 앞에서 떠들어댈 만큼 발언권을 지니고 있지도 못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들 또한 불제자였다. 무공을 익히는 데 불경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오랜 세월 소림에 기거하며 주워들은 풍월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불제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라는데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젠장! 일이 꼬이는군, 꼬여.”
소림의 결정을 확인하자마자 비육걸개는 암자를 향해 구르는 듯이 달려갔다. 그는 암자에 도착하자마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며 사이좋게 이를 잡고 있는 거지들을 향해 소리쳤다.
“본방과 무림맹을 향해 전서구를 띄워라. 소림은 봉문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이다.”
그 말에 방도들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더니, 곧이어 허둥지둥 전서를 쓰기 시작했다.
장인걸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소림사가 이쪽의 제의를 수락했다고 했느냐?”
편복대주(??隊主)는 더욱 깊숙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옛, 교주님.”
소림사의 승려들은 상대의 협박 따위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무리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림은 찬란한 명예를 지니고 있었고, 지닌바 힘은 막강했다. 강호에 나가면 소림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강호인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성장한 승려들이 소림의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봉문 제의를 간단히 수락했으니 장인걸로서는 황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는 이 계획을 세우면서 소림이 그 제의를 순순히 응락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장인걸은 소림사를 공격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보유한 최정예 고수들을 모두 다 집결시켰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소림에 보내는 전령을 일부러 무공을 연성하지 않은 자를 골라서 보내지 않았던가. 소림이 이쪽을 가볍게 보고 대비를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한 가벼운 술수였다.
모든 준비를 다 갖춰 놓고도 안심이 안 되어 장인걸은 소림사가 거부했을 때 곧바로 공격을 가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많은 병력이 모일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릴 것인지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참이었다.
“허엇, 참. 언제나 본좌의 뒤통수를 치는 땡중들이구먼. 설마, 순순히 백기를 들어 버릴 줄이야.”
“계획대로 소림사를 공격하실 것이옵니까?”
장인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공격해 봐야 얻을 게 없다. 소림사가 지닌 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꼭 필요하다면 혹 모르겠지만, 구태여 찾아가서 싸울 만큼 만만한 상대는 아니야.”
그가 무림의 태두라고 불리는 소림사를 박살 내려고 한 것은,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면 아무리 강력한 무림의 방파라고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려 함이었다. 희생은 크겠지만 그만큼 얻는 것 또한 많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소림을 친다면 소기의 목적을 전혀 달성할 수 없었다.
소림은 이쪽의 요구를 들어줬다. 요구를 들어준 자를 쳐서 없앤다면, 다른 문파들에게 ‘이렇게 해도 죽고, 저렇게 해도 죽으니 최후의 힘까지 짜내어 발악해라’하고 충동질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힘들여 잡아들인 인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들이 되는 것이다. 인질을 잡고 상대를 협박할 때는 나름대로 신용도를 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인질의 안위를 생각하며 이쪽의 말을 들을 게 아닌가.
“인질들의 정확한 신상 명세를 파악하는 작업은 언제 끝나겠는가?”
“수많은 문파에서 잡혀오고 있는지라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교주님.”
“그래? 그렇다면 지금까지 작성된 명단을 무림맹에다가 넘기도록 해라. 본국에 반항하는 종남파 제자가 보인다면 종남파에서 잡아온 인질의 목을 벨 것이고, 황보세가의 제자가 반항한다면 황보세가에서 잡아온 인질의 목을 베겠다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많은 방파들이 무림맹으로부터 이탈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
“소림을 파괴하지 못한 이상, 그런 협박을 해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흠,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 그런 말을 꺼낸 것으로 보아 자네는 뭔가 생각해 둔 것이 있는 모양이군.”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만, 소림 대신 공동파를 치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공동파라고?”
“예, 공동파가 무림맹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대단히 높은 것이옵니다. 과거 무극검황 옥청학이 맹주직에 오른 후 장로들을 거의 대부분 공동파 출신의 인물들로 바꿨습니다. 지금 맹주가 태극검황(太極劍皇)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장로들은 공동파 출신이옵니다. 공동파를 파괴하고, 또 그 식솔들을 인질로 잡는다면 대단한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하옵니다.”
“하지만 공동파는 본국의 영토 밖에 위치하고 있지 않느냐?”
“오히려 그 때문에 공동파를 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되옵니다. 만약 본국의 비위를 거스른다면 어디에 위치하느냐를 불문하고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렇게 되면 수많은 무림의 방파들이 몸을 사릴 것이옵니다.”
그 말이 매우 장인걸의 마음에 들었는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조언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감사하옵니다, 교주님.”
“좋아, 무림맹에 사신을 보내는 것은 공동파를 파괴한 뒤로 미루도록 하지.”
“현명하신 판단이시옵니다. 참, 기왕에 소림사가 문을 닫았으니, 그들을 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이용할 수는 있지 않겠사옵니까?”
“어떻게 말이냐.”
“예, 무림에서 소림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대단히 높은 것이옵니다. 그런 그들조차 본국에 거역하지 못하고 봉문을 선언했다는 것을 전 중원에 걸쳐 광고하는 것이옵니다. 그렇게 되면 작은 군소문파들이 감히 본국에 대들 엄두를 낼 수 있겠사옵니까? 거기에다가 그렇게 하면 무림맹과 소림사 간에 갈등도 조성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겠사옵니까?”
그 말에 장인걸은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로다. 그대로 시행하라.”
“옛, 그럼 속하는 물러가겠사옵니다.”
“나가는 길에 나하추 원수보고 나한테 오라고 전하게.”
“예, 교주님.”
편복대주가 물러가고 난 다음, 잠시 후에 나하추 원수가 묵직한 갑주를 철그렁거리며 들어왔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군례를 올리며 외쳤다.
“대원수님을 뵈옵니다. 본관을 찾으셨다고 해서 달려왔사옵니다.”
“본좌는 공동파를 친 후 귀관과 합류할 것이다. 그동안 귀관은 본좌를 대신하여 즉시 모든 병력을 이끌고 남양(南陽)으로 가서 군량(軍糧)을 지켜라.”
양양성에서 후퇴한 무안 대장군과 5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한 고나합 원수가 합류하여 주둔하고 있는 곳이 노하구(老河口)였다. 그리고 이들 60만이나 되는 대군이 소비할 막대한 식량을 비축하고 있는 곳이 바로 남양이었다.
전사한 파저 원수가 양양성을 공격할 당시만 해도 남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양양성이 쉽사리 함락될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다. 이제 전쟁은 지루한 장기전으로 변질돼 가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다가 계절은 지금 겨울을 코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긴 겨울이 지나갈 동안 군사 작전을 감행할 수는 없지만, 싸움이 없다고 병사들을 굶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양은 금군 60만 대군이 수개월에 걸쳐 소비할 막대한 군량을 쌓아 두고 있는 장소였다. 만약 적들이 이곳 남양의 군량을 없애 버린다면 60만 대군은 싸우지도 못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남양의 방어는 매우 중요한 현안이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그렇게 장담할 만큼 손쉬운 임무는 아니야. 무림인이라고 불리는 무공이 뛰어난 놈들이 송군을 돕고 있어. 그 점을 감안하여 귀관에게 여섯 명의 고수와 쓸만한 녀석 1백 명을 골라 주겠네. 그들을 잘 활용한다면 무림의 떨거지들을 손쉽게 막을 수 있을게야.”
그 말에 나하추 원수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방금 전 대원수가 거론한 인물들은 모두 다 대원수 직속의 엄청난 수준의 고수들이었다. 특히나 그들 중 여섯은 대원수의 명령만을 받드는 도무지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강자들이었다. 그들을 자신에게 준다면 무공 강한 놈 한둘쯤 야밤에 침투해 와도 겁날 것이 없었다.
“옛, 감사드리옵니다, 대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