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수라도제 일행 또한 경악감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고, 공공대사가 제정신을 차렸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방금 비육걸개가 말했지 않습니까? 아마 사실일 가능성이 클 겁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노부는 소림에 좀 다녀올 테니 남은 일행들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라도제도 공공대사를 만나러 가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물론 다른 사람들도 공공대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공공대사는 참회동에 들어 있다. 그런 만큼 정식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그를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만날 수밖에 없는데, 그걸 감행하자면 무공이 뛰어나야 함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소림의 중심지까지 몰래 숨어 들어가자면 보통 실력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돈. 이곳은 안심하시고 다녀오십시오.”
수라도제도 소림사의 내부를 소상히 알지는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장실 뒤편으로는 외인의 출입을 불허하는 곳인 것이다. 그렇기에 수라도제 또한 교주가 들어간 방향, 즉 비육걸개가 알기 쉽게 설명해 준 길을 통해 참회동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소림사가 지닌 저력은 막강한 것이었다. 실질적으로 무승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건물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드러나 있는 경비보다 숨어 있는 경비들이 더욱 무서웠다. 매복해 있는 자들의 실력은 세인들이 말하는 신검합일급에 달하는 막강한 실력을 지닌 승려들이었다.
물론 한밤중에 몰래 숨어든다면 조금 더 손쉬웠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대낮이었다. 거기에다가 묵향이 통과하는 경로 상에는 방장실이 있지 않던가.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갈수록 삼엄해지는 경비에 묵향 같은 탈마급 고수로서도 어려움을 느낄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통과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마교 총타처럼 진세라든지, 함정까지 골고루 깔려 있었다면 그가 아무리 탈마급이라고 해도 몰래 통과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저기 있는 것이 조사전인가? 그렇군, 저기 현판에 조사전이라고 쓰여 있네. 그 뚱뚱이가 제대로 설명했군. 그럼 저 길로 올라가면 되겠군.’
묵향이 참회동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워낙 비육걸개가 설명을 자세하게 해 준 덕분이었다.
‘바로 이곳이군.’
묵향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커다란 동굴 위에 ‘懺悔洞(참회동)’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묵향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참회동 안에서 웅후한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오시게나.”
상대가 어딘가에 숨어서 기습을 가해 올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묵향은 서슴지 않고 참회동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제법이로군. 본좌가 왔음을 바로 눈치 채는 것을 보면 말이야.”
“교주와 빈승 간에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을 어찌 알겠소이까? 다만 자연의 소리가 누군가 이곳에 들어왔음을 알려줬을 뿐이지요.”
몇 날 며칠 동안 동굴 안에서만 기거해 온 공공대사였다. 그렇기에 주위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라든지 바람 소리 등등 각종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시각에는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파악하고 있었던 그였기에 순간적인 외부인의 침입을 파악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침입자가 이토록 가깝게 접근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상대의 기척을 파악해 낼 수 없자,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침입자의 정체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자는 그가 알기에 단 한 명뿐이었기에.
“흠, 그럴 수도 있겠군. 그건 그렇고, 전에 봤을 때보다 좀 야윈 것 같군.”
“허헛,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육신인데 조금 야위면 어떻겠소이까. 그런데 시주께서는 어찌하여 이곳까지 오셨소?”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지.”
“말씀해 보시구려.”
“왜 봉문을 결정했는가? 소림은 엄청난 힘이 있어. 그것은 그 무엇보다 자네가 잘 알잖아? 그놈의 교리 때문에 살생을 하기 싫었던 것인가? 아니면 뭔가 약점이라도 잡힌 것인가?”
“시주, 이곳은 불도를 닦는 곳이라오.”
왜 당연한 소리를 떠드는 것인지 의아하게 여기며 묵향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건 본좌도 알고 있어.”
“그걸 아신다면서 왜 이곳까지 오셨소이까?”
“그야…….”
말대답을 하려던 묵향은 자신의 실책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상대는 불도를 닦는 승려가 아닌가. 승려가 추구하는 것은 모든 욕망을 버리는 해탈이다. 사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모든 욕망을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묵향이 살아오면서 그런 참된 구도의 길을 가는 승려는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 그런 승려가 하나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묵향으로서는 그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 옥영진 대장군부에서 식객으로 있을 때,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던 묵향이다. 자신의 감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제대로 된 길을 가는 승려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어렴풋이나마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물론 묵향보고 그 길을 가라고 한다면 결단코 사양하겠지만 말이다.
멈칫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묵향은 공공대사를 새삼스레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봤다. 혜안이 어린 듯 깊숙이 가라앉은 눈동자. 얼마나 금식하며 참회했는지 헐렁한 가사 자락 사이로 깡마른 그의 육신이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런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에 비해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대사께서는 도(道)를 얻은 모양이구려.”
“허허헛, 얻은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소이다.”
공공대사가 옅은 웃음을 짓고 있을 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종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누군가가 격투를 벌이는 듯, 병장기 소리와 폭음이 들려왔다.
“오늘 본사에 손님이 많은 듯하구려.”
“나가 보지 않을 거요?”
“빈승이 꼭 나가 봐야 할 이유라도 있소이까?”
“물론 저 녀석도 대사의 손님이니까 그렇지. 간간이 들려오는 폭음. 뇌전도법이 지니는 특징이 아닌가. 아까 객잔에서 거지 녀석하고 얘기하고 있을 때 그놈이 엿듣고 있는 건 알았지만, 따라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하지만 공공대사의 반응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서문세가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한 모양이구려.”
“대사도 알 거외다, 서문길제라고.”
아마 공공대사도 알 것이다. 공공대사보다는 30년 정도 연배가 뒤쳐지지만, 그가 미치기 전쯤에 이미 수라도제는 뛰어난 도객으로서 명성이 자자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공대사는 무림의 일에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이제 하실 말씀 다 하셨으면 돌아가 주시겠소이까? 빈승은 할 일이 있어서…….”
축객령에 묵향은 돌아서서 몇 발자국 나가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반전하여 공공대사를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도대체 그가 언제 돌아서서 달려들었는지 눈치 채지도 못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언제 뽑아 들었는지 묵혼검이 푸른 궤적을 남기며 빛과 같은 속도로 공공대사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왜 안 피하는 게요? 대사의 능력이면 충분할 텐데…….”
묵혼검은 공공대사의 세 치 앞에 멈춰 서 있었다. 하지만 묵향이 무의식적으로 시전한 어검술에서 뿜어 나오는 푸른 강기로 인해 공공대사의 옷은 조금 찢어져 있었고, 옅은 선혈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공공대사는 내공을 한 올도 끌어올리지 않은,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공공대사는 감정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시주와 싸울 이유가 없소이다.”
공공대사는 묵향의 검에서 살기가 느껴지지 않자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답하는 공공대사의 눈에서 묵향은 더 이상 승부욕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만약 예전의 공공대사였다면 적이 자신을 죽일 마음이 있건 없건 호승심 때문에라도 맞상대를 해왔을 것이다. 엄청난 무위를 과시하며 승부욕에 불타오르던 공공대사를 마주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다고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이 추구하는 강함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공공대사를 향해 묵향은 존경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재빨리 검을 거두며 정중하게 말했다.
“대사는 정말 도를 얻었구려.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잘해 보시오. 그럼 이만 가 보겠소.”
뒤돌아서는 묵향을 향해 공공대사가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서문 시주가 교주를 따라왔다고 하셨소?”
“그렇소만.”
“그런데 어찌하여 이곳으로 오기에 가장 어려운 길로 오셨소? 그 방향은 방장실이 있어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곳이라오. 그러니 갈 때는 다른 길로 가시는 것이 편할 거외다.”
“고맙소.”
묵향의 대답은 아무런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 듯했지만, 그 속마음은 달랐다. 이따위로 길 안내를 한 비육걸개를 다음에 만나면 뼈를 추려 놓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놈이 감히 가장 지독한 통로를 안내해? 내 이놈을 가만히 두나 봐라.’
묵향은 참회동을 나서자마자 곧장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숨어 들어올 때야 인기척을 숨길 필요가 있었지만, 볼일 다 마쳤는데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속력을 다해 경공술을 전개하고 있는 묵향을 따라올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묵향이 보라는 듯 엄청난 파공성을 흘리며 나한전 근처를 통과할 때, 수라도제가 승려들에게 포위된 채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그가 뇌전도법을 사용한 이상, 승려들은 곧장 상대가 누군지 파악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쯤에서 서로 간의 다툼은 끝이 난 모양이었다.
“잘해 봐라. 그래 가지고야 백날 가도 공공대사를 만날 수 있겠냐?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크흐흐흣.”
묵향이 비웃음을 흘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수라도제라고 못 봤을 리가 없었다. 수라도제 같은 고수가 저렇듯 엄청난 파공성을 흘리며 쏘아져 나가는 상대의 기척을 모른대서야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한껏 비웃음을 짓고 있는 묵향의 얼굴을 본 순간 수라도제의 얼굴이 똥이라도 씹은 듯 일그러졌다.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어엇! 저자는 뭐냐?”
“어디서 온 거지?”
수라도제를 포위하고 있던 승려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 중에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승려가 일갈했다.
“동요치 마라. 저자는 밖으로 나가는 자가 아니냐?”
이때, 수라도제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장문인이 침중한 안색으로 그에게 말했다.
“사질, 자네는 빨리 조사전으로 가 보게. 아무래도 그가 튀어나온 방향으로 보아 그쪽인 듯싶으이.”
“예, 방장 스님.”
그 승려가 달려가려 할 때, 수라도제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어조에는 씁쓸함이 짙게 묻어 있었다.
“조사전이 아니라 참회동일 것이외다.”
“아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서문 시주.”
“노부는 마교 교주의 뒤를 쫓아서 이리로 왔소이다. 나는 들켜서 여기 있고, 그는 아마 들어가는 데 성공한 모양이오. 그가 저렇듯 기척을 숨기지 않고 달려가는 것을 보니, 이제 볼일은 다 마쳤다는 뜻이겠지요.”
그 말에 장문인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빨리 참회동으로…, 아니 노납이 직접 가지.”
“이보시오 방장 대사, 노부도 함께 가면 안 되겠소?”
“아미타불. 서문 시주, 그곳은 절대로 외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소림의 중지외다. 노납이 그걸 어기면서까지 시주의 청을 들어드릴 수는 없소이다. 용서하시길 바라오이다.”
나한전 소속의 무승 몇을 거느리고 재빨리 달려가는 장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라도제는 자신이 경솔했음을 후회했다. 이토록 경비가 엄중할 줄 알았다면 밤에 들어왔을 것이다. 밤이라면 자신의 실력으로 충분히 뚫고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교주와 자신의 실력 차는 생각하지도 않고 괜히 따라 들어와서 이런 개망신을 당할 줄이야 그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실 그도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초강자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시주님께서는 본사를 위해서 이곳에 오셨었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면 서로가 좋지 않았겠습니까?”
아마도 이 승려는 수라도제가 마교 교주가 소림사에 침입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막기 위해 이곳으로 달려온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수라도제 같은 무림의 명숙이 무슨 할 짓이 없어서 소림의 담장을 넘었겠는가? 절간에서 재물을 훔치기 위해 왔을 리도 없고, 무공서를 훔치기 위해 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승려에게 그런 심증을 더욱 명확히 굳혀 주는 것이 그가 밤도 아니고 낮에 소림의 담을 넘었다는 사실이었다.
승려가 오해를 하건 말건 수라도제야 지어 놓은 죄가 있다 보니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
“남은 일은 빈승들이 처리할 것이니 시주께서는 그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어쨌건 교주가 이곳에 침입한다는 것을 아시고 여기까지 달려와 주신 점, 방장 스님을 대신해서 빈승이 깊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데야 노부도 어쩔 수 없지. 그럼 수고들 하게나.”
더 이상 방법이 없음을 알고 수라도제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