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3화 (489/930)

장인걸은 공동산에서 정파 연합의 고수 5백 명과 대규모 혈전을 벌인 결과 예상 밖의 큰 피해를 당했다. 어쩌면 장인걸 자신마저도 하마터면 그곳에서 뼈를 묻을 뻔했을 정도로 상대방의 전력은 막강했다.

전 중원을 통틀어 열 명도 안 되는 화경급 고수가 무려 셋이나 한꺼번에 등장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때, 장인걸로서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이 그들 중에 황룡무제가 끼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황룡무제가 극성으로 익힌 무공은 청월검법. 청월검법은 전전대 교주였던 한중길이 철저히 연구하여 파훼법까지 만들어 놓은 검법이었다. 그렇기에 장인걸은 상대의 공격로를 환히 꿰뚫고 있었고, 그것이 장인걸의 목숨을 살려 줬다.

황룡무제가 쓰러지는 순간 삼재진(三才陣)은 깨져 버렸고, 그 틈을 이용하여 장인걸은 탈출에 성공했다. 장인걸과 함께 탈출에 성공한 수하들은 4백도 채 안 되었다. 그나마 천마혈검대 소속의 고수들을 단 한 명도 잃지 않았다는 것이 장인걸로서는 큰 위안이었다.

장인걸은 생존자들을 수습하여 곧바로 남양으로 돌아왔다. 적들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아무래도 남양의 수비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공동파를 향해 떠날 때의 모습과는 달리 남양으로 돌아온 장인걸과 그 수하들의 모습은 패잔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편복대주는 오체복지하여 사죄했다.

“속하를 죽여 주시옵소서, 교주님.”

씁쓸한 미소를 지은 장인걸은 슬그머니 공력을 일으켜 편복대주를 일으켜 세웠다.

“싸우다 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일이다. 패배할 때마다 수하들의 목을 베어서야 어찌 대업을 이루겠느냐? 다만 똑같은 실수만 되풀이하지 않으면 된다.”

이번 장인걸의 패배는 전적으로 편복대주의 책임이 컸다. 그가 모든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정파 쪽에서 동원 가능한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파 쪽에서 동원한 전력은 편복대주가 예측한 것의 세 배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편복대주는 장인걸의 관대함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다시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어찌 되었건 놈들의 세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큰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화경급 고수를 셋이나 투입하다니……. 그놈들은 마교가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걱정되지도 않는 모양이지?”

“마교와 불가침 조약을 맺은 때문이 아니겠사옵니까?”

“어찌 되었건 이번 사건으로 한 가지 사실은 명백해졌다. 될 수 있으면 무림맹 놈들과는 정면충돌을 하지 않는 편이 이롭다는 것 말이다. 편복대주.”

“옛, 교주님.”

“사로잡은 인질들의 명단은 준비되었느냐?”

“예, 교주님.”

“그것을 무림맹에 보내거라. 그것을 통해 무림맹 세력들을 이간질한다면 아마도 큰 성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예.”

“그리고 비교적 방비가 허술한 무림맹 소속의 문파들이 있는지 조사해 보도록.”

장인걸의 명령에 편복대주는 의아한 모양이었다.

“예? 그것은 왜……?”

“본좌가 이곳으로 오면서 생각해 둔 계책이 있다. 비교적 방비가 허술한 문파 몇 개를 치면서 마교도들이 그렇게 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원수처럼 지내 왔던 마교와 무림맹은 어찌 되겠느냐?”

그 말에 편복대주는 감탄스럽다는 듯 말했다.

“훌륭하신 계책이십니다, 교주님. 당연히 휴전은 깨질 것이고 둘은 다시금 아귀다툼을 벌일 것이 분명하옵니다.”

장인걸은 흡족한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되면 무림맹은 더 이상 양양성에 저만한 고수들을 집중시키지 못할 것이야.”

“지금 즉시 시행하라.”

“옛, 교주님.”

편복대주는 서둘러 달려 나갔다. 이번에야 말로 실수하지 않고 정파 놈들을 제대로 함정에 빠뜨려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운이 좋았다

묵향이 양양성으로 돌아온 후, 며칠이 흐르자 공동파에 갔던 수라도제가 돌아왔다. 처음 공동파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갈 때의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달리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돌아오는 무림 연합 고수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마화가 문득 입을 열었다.

“교주님께서 함께 가셨어야 했어요.”

사실 장인걸이 거기에 있는 줄 알았다면 자신이 직접 가서 목을 땄을 것이다. 하지만 묵향은 그놈이 설마 거기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장인걸은 살아서 돌아간 것이다. 물론 묵향이 기대한 대로 공동파는 묵사발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묵향은 그것이 너무나도 아쉬운지 가볍게 혀를 차며 대꾸했다.

“본좌도 알고 있다. 천마혈검대만 보내도 충분했었을 텐데…, 설마 그 녀석이 직접 움직일 줄이야…….”

“이번에 흑살마제도 큰 곤욕을 치뤘을 테니, 다시는 이런 모험을 하지 않을 거예요.”

장인걸이 이번에 크나 큰 고생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화경급 고수를 무려 세 명이나 상대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곳에 천마혈검대가 없었다면 아무리 장인걸이 기괴한 마공들을 익히고 있었다고 해도 살아서 돌아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언젠가는 기회가 다시 올 거야.”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묵향은 마화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화!”

“예, 교주님.”

“총타에 연락을 넣어 초류빈과 철영에게 혈랑대와 수라마참대 그리고 천랑대를 이끌고 대별산맥에서 은밀히 대기하라고 일러라.”

상대는 장인걸이었다. 그렇기에 혹시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인선을 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별산맥은 양양성과 지척에 위치해 있는 험준한 산맥이었다. 고수들을 숨겨 뒀다가 써먹기에도 편리하겠지만, 혹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묵향이 그곳으로 달려가기도 용이할 것이다.

“드디어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당분간은 아니야. 이번처럼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해도, 본교의 주력이 십만대산에 틀어박혀 있어서는 도저히 손쓸 기회를 잡을 수가 없어. 좀 더 가까운 곳에 불러들여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런 이유라면 초류빈 부교주님은 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직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럴 수도 있겠군. 대신 초류빈에게는 몸이 다 나으면 철영과 합류하라고 지시해.”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묵향은 싸늘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중얼거렸다.

“아마 봄이 되면 그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조용히 참으면서 기회를 노리다 보면…….”

“걸려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그만큼 혼이 났으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궁리해 보면 되겠지. 그건 그렇고, 봄이 되기 전에 그 연놈들부터 처리해야겠군. 지금이 적기인 듯하니까 말이야.”

그 말에 마화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연놈들이라뇨?”

묵향은 빙긋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마화는 몰라도 돼. 본좌의 사소한 원한일 뿐이니까.”

이때,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흑풍대 소속 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 수라도제가 만통음제 대협과 함께 급히 와 달라고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그래? 알겠다. 가겠다고 일러라.”

“옛.”

급히 만통음제와 함께 와 달라는 수라도제의 전갈을 받은 묵향은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곳으로 갔다. 그 노회한 너구리가 이번에는 어떤 것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많은 무사들이 대기하고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슨 함정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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