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7화 (493/930)

수라도제가 양양성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난 다음에야 묵향에게 개방에서 보낸 사자가 도착했다. 묵향은 그날 관지 그리고 마화와 함께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의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석장로님께서 선물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철영 부교주가 거느린 주력(主力)이 출발했다는 의미였다. 총단에서 날린 전서가 호북분타에 도착하고, 그것을 또다시 양양성으로 가져오는 데 걸린 시간을 고려한다면 부교주가 거느린 주력은 넉넉잡아도 5일 전에 출발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늦어도 3주 후면 도착하겠군.”

아무래도 야밤에 몰래몰래 이동하려면 시간이 두 배는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에 하는 말이었다.

“예, 그럴 것 같습니다.”

이때, 밖에서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 개방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마화는 묵향을 슬쩍 바라봤다. 묵향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그녀는 재빨리 넓은 탁자 위에 놓여져 있던 커다란 지도를 접어 구석에다가 치웠다.

마화가 어느 정도 실내를 정리한 후에야 묵향은 문밖에 대고 말했다.

“들어오라 일러라.”

“옛.”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땟국물이 흐르는 거지 하나가 들어왔다. 비공식적인 자리라서 매듭이 지어진 허리띠를 차지 않고 있었지만, 상대가 내뿜는 전체적인 기도로 판단했을 때 아마도 4결이나 5결 제자쯤이 아닐까 생각되는 거지였다.

“부운걸개 장로님께서 이것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거지가 내미는 것은 두툼한 봉서(封書)였다. 묵향은 그것을 받아 들자마자 서둘러 봉인을 뜯어 내고 내용물을 정신없이 읽으며 거지에게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이 나가라는 뜻임을 눈치 챘지만 거지는 잠시 시간을 끌며 교주가 그 봉서를 정신없이 읽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 다음 그는 교주가 자신을 보고 있지도 않은데 정중히 인사를 건넨 후 밖으로 나갔다.

거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묵향은 봉서의 내용물은 이제 더 이상 읽을 가치도 없다는 듯 획 집어던지고 오히려 봉인이 뜯겨 나간 겉봉만을 세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관지 장로는 도저히 상관의 의중을 알 수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화급을 요하는 서신이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묵향은 겉봉만을 살피며 시큰둥한 어조로 대꾸했다.

“전혀! 미끼를 던졌는데 어떤 놈이 걸려들지 그게 궁금하단 말이야. 무림맹일지, 아니면 옥대진 그 새끼일지……. 생각 같아서는 그놈이 걸렸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만…, 모든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욕심은 버려야겠지. 허, 참. 그놈이 도중에 봉서를 가로채서 읽었다면 뭔가 표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재주가 좋은 건지… 아니면 안 읽었는지 겉봉만 살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구먼.”

“미끼라니요?”

“먹음직한 걸 던졌거든. 참, 자네는 오늘 밤 쓸 만한 놈 열댓 명 정도 데리고 몰래 성을 빠져나가게.”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세히 알 거는 없고 은밀히 남양 인근에 갔다가 오면 돼.”

“적정을 살피고 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정찰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은밀히 갔다 오란 말이야. 이런 봉서까지 받았는데 거기 갔다 오지도 않으면 말이 안 되는 거거든. 그냥 갔다가 한 이틀 정도 숨어 있다가 돌아와. 그러면 돼. 그렇게 해야지 이쪽에서 계략을 썼다는 게 드러나지 않지.”

그 정도 말만으로는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관지 장로는 고개를 깊숙이 조아리며 대답했다.

“존명.”

남양 인근에 도착한 수라도제는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금군 병사들이 성난 벌 떼라도 된 듯 사방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고, 개중에는 제법 무공을 익힌 듯한 금군 병사들까지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수라도제는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 남양에는 장인걸이 그의 정예 무사들과 함께 와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남양의 경비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젠장, 어떤 놈이 벌써 벌집을 쑤신 모양이군.”

“이대로 침투하시겠습니까? 태상문주님.”

“지금 들어가 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아쉬운 일이지만 돌아갈 수밖에…….”

수라도제는 발길을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어떤 놈이 먼저 여기에 다녀갔을까? 금군이 군량을 야적해 놓은 곳에서 불길이 치솟지 않는 것을 보면 먼저 온 놈은 실패한 모양이었다.

‘마교인가?’

수라도제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교 교주를 옆에서 지켜본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 않은가. 그런 실력자가 일을 처리하면서 이렇게 어리숙하게 끝내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수라도제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토록 큰 대사를 엉망진창으로 망쳐 놓은 놈들이 과연 어떤 놈들인지 말이다. 하지만 수라도제의 그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잠깐!》

수라도제가 어기전성을 발하자 모두들 멈춰선 후 이곳저곳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지만 그 어떤 이상한 점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라도제의 귀에는 뚜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련히 들려오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말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격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저쪽이다!》

수라도제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네 명의 무사들이 금군들을 상대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온몸이 피투성이라 언뜻 봐서는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을 보고 수라도제는 이들이 누군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황보세가, 사천당문, 공동파인가? 이들이 왜 이곳에?’

하지만 수라도제로서는 한가하게 생각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가 도착하기 직전에 황보세가의 무공을 사용하던 복면인이 허리에서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런 제기랄!”

욕설을 내뱉으며 수라도제가 도착했을 때, 꿈틀거리고 있는 복면인의 몸에서는 아직까지도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이 조금만 빨랐었다면 그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수라도제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멈춰랏!”

수라도제는 공력을 잔뜩 돋워 노성을 터뜨렸지만 금군 장병들이 수라도제의 명령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황보세가의 진산절기라고 할 수 있는 뇌진검법을 극성까지 익힌 자를 없애는 데 성공했지 않은가. 만약 상대가 조금 빨리 도착하여 이 둘이 연합을 했다면 매우 까다로웠을지 모르지만, 저놈 또한 짝 잃은 기러기 신세. 지금은 제법 번듯한 신위를 과시하고 있지만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저놈 또한 시체로 만들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금군 장수는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수라도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흥! 어리석은 것!”

순간, 수라도제의 등에서 거대한 도가 뽑혀 나왔다.

쿠쿵!

검과 도가 부딪쳤을 뿐인데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오며 사방으로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을 뿐인데, 호기롭게 달려들었던 금군 장수는 검이 부서져 나간 채 뒤로 튕겨 나가서 땅바닥에 처박힌 후 잠시 부들부들 떨다가 축 늘어져 버렸다. 아마도 절명한 듯했다. 이 한 번의 격돌만으로도 서로 간의 실력이 어느 정도로 차이가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한 수를 보자마자 엄청난 마기를 뿜고 있는 금군 장수 한 명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아마도 그가 이 무리의 지휘자인 듯 병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처, 철수해랏!”

금군 장수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일격으로 상대가 사용한 도법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뇌전도법. 뇌전도법은 서문세가의 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천마혈검대의 고수를 한 방에 걸레로 만들 정도의 인물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상대가 수라도제임을 알면서도 이곳에 남아 있는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늦은 감이 있었다. 수라도제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도망쳤어야만 했다. 황보세가의 고수를 죽인다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적들을 쫓아 수하들이 움직이려는 것을 손짓으로 막은 수라도제는 재빨리 자신의 도를 날렸다. 수라도제의 손을 떠난 애도는 엄청난 파공성을 흘리며 금군 장수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 고수는 그것을 눈치 채고 재빨리 방향을 틀었지만, 애도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뒤따르며 더욱 거리를 좁혔다.

“크아악!”

금군 장수를 선두로 그를 뒤쫓던 금군 병사들의 허리가 양단되며 피보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목은 그들이 뿜어낸 핏물에 붉게 물들었다.

휘리리릭!

20여 명의 금군 장졸들을 양단해 버린 자신의 애도가 돌아오자 수라도제는 무표정한 안색으로 그것을 잡아들었다. 그런 다음 그는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려 탈진한 채 여기저기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젊은이들을 노려봤다.

그제서야 젊은이들 중의 하나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인사를 건넸다.

“목숨을 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라도제 대협.”

수라도제가 보니 얼굴에 긴 검상과 함께 핏물에 뒤덮여 있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옥대진이 분명했다. 그를 알아본 수라도제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 젊은이의 앞날이 어찌 될지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목숨을 살려 줬다? 허…, 과연 이것이 살려 준 것인지 노부로서는 알 수가 없구나.”

잠시 탄식한 수라도제는 수하들을 향해 명령했다.

“부상자들을 수습하여 양양성으로 돌아가자.”

“옛.”

수라도제의 수하들에게 둘러싸여 양양성으로 향하는 옥대진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처음에는 금군으로부터 살아남기에 바빠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수라도제의 탄식을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절망감까지는 느끼지 않고 있었다. 무림맹 장로인 할아버지의 존재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자 남양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파악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을 제일 먼저 파악한 쪽은 정파 무림의 정보통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방이었다.

“무림맹의 허락을 얻어 살아남은 자들을 면담해 본 결과 그들의 단독 범행이라고 합니다.”

“단독 범행이라고요? 그럴 리가…, 절파검 같은 절정고수가 죽었소이다. 이건 각 문파에서 후기지수들을 키워 주기 위해…….”

“아아, 그건 아닌 것 같소. 노부가 관련된 각 파에 사람을 보내어 직접 확인해 봤소. 이건 문파 차원에서 벌인 일이 아니고, 그 어린 것들이 만약을 대비하여 몇몇 고수들에게 호신을 부탁한 정도인 모양이오.”

“허어, 그렇다면 일이 아주 고약하게 꼬이겠소이다. 무림맹은 물론이고 마교 교주마저도 본방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텐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마교 교주야 그렇다고 치고, 왜 무림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말이오?”

“그걸 말씀이라고 하시오? 이번 일을 입안한 것이 본방이 아니오? 그리고 그 어린 것들에게 정보가 새 나간 곳도 본방이고 말이오.”

“허, 그럴 수도 있겠구려.”

“그래, 그놈들에게 정보를 흘린 멍청한 놈들에 대한 처리는 어떻게 하셨소?”

“아직까지도 조사 중이외다. 혐의가 입증된 놈들을 모두 다 잡아들여서 신문하고 있소이다. 하지만 옥대진 그 영악한 놈이 옥진호 장로의 이름을 팔면서 은근히 협박을 했다고 하니……. 그 녀석들로서도 협조를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분타주에게 보고를 했어야지 슬쩍 정보를 넘기다니 그게 말이나 되오? 그런 놈들은 몽땅 다 잡아들여서 박살을 내놔야 하오.”

“어쩔 수 없지 않소? 다 힘없는 자의 서러움인 것을……. 그건 그렇고 모두들 이 사태를 타개해 나갈 좋은 방법이나 생각해 보시구려. 언제까지 이미 지나간 일을 잡고 씨름할 수는 없는 일이잖소?”

이때,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취선개 장로가 신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방법은 있소.”

“취선개 장로는 뭔가 고견이 있으시오?”

“그걸 모두 다 옥대진의 단독 범행으로 몰아붙이는 거요. 그러면서 무림맹 장로인 옥진호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소이다.”

“옥진호 장로는 맹 내에서 우호 세력을 많이 거느린 거물이오. 그렇게 손쉽게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외다.”

“물론 그렇소. 하지만 그의 뒤를 떠받치고 있던 공동파가 무너져 버린 지금, 그것도 많이 약화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오.”

“취선개 장로의 말이 맞소이다. 사실 옥진호 장로는 맹 내에서 너무 큰 세력을 지니고 있소. 맹주 쪽에서 봤을 때도 그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 틀림없소이다. 넌지시 빌미만 안겨주면 그쪽이 알아서 처리해 주지 않겠소?”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양양성 내에 위치한 객잔의 넓은 객실에서는 옥대진에 대한 신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취조관과 옥대진이 나눈 말은 옆에 앉아 있는 서기(書記)가 기록하여 증거로 남기고 있었다. 나중에 그 모든 자료는 무림맹으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옥대진에 대한 신문은 말이 신문이지, 맹에서 파견되어 온 취조관에게 오히려 옥대진이 당당하게 외치고 있었고, 그런 그를 향해 취조관이 오히려 쩔쩔 매는 기괴한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옥대진이 그 취조관을 신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저는 황실과 무림을 위해서 남양을 공격했을 뿐입니다. 운이 없어 실패했지만, 남양을 친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취조관은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어허, 자네는 뭔가 오해하고 있구먼. 노부는 결코 자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네. 다만 그 결과가 안 좋았다고 하는 거야.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여러 고수들이 희생되었다네. 그리고 그중에는 자네의 약혼녀인 능비화 소저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자네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순간 옥대진의 뇌리에는 금군 고수들의 공격을 받고 피를 뿜으며 죽어 가던 능비화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사실 그는 그녀가 지닌 화산파라는 배경과 전 중원을 통틀어 네 명뿐인 4봉이라는 희소성을 사랑했을 뿐이니까. 이용가치가 거의 없어져 버린 그녀를 향한 옥대진의 사랑 또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죽음은 오히려 앓던 이를 뽑은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옥대진은 얼굴 가득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발악하듯 외쳤다.

“그만 하십시오! 그녀의 죽음을 이 두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제 심정은 편했는 줄 아십니까? 두고 보십시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금나라 놈들 씨를 말려 버릴 겁니다.”

취조관은 괜히 약혼자의 말을 꺼냈다고 후회하며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휴…, 자네는 아직까지도 자네 처지를 잘 모르는 모양이군. 맹에서 정예를 투입하여 남양을 치기 직전에 자네들이 들어가서 난장판을 만들었다 그 말일세. 그 덕분에 지금 남양의 방비는 철옹성처럼 튼튼하게 되었지. 잘못하면 이적 행위를 한 자로 처벌될 수도 있음을 왜 모르는가?”

그 말에 옥대진은 핏대를 올리며 외쳤다.

“이적 행위라니요!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제가 왜 금에 이로운 행동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남양의 수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공격한 것이 어찌 죄가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오랑캐가 국토를 유린하는 상황에서 선배님이시라면 그런 정보를 얻었는데 가만히 계셨겠습니까?”

얘기가 계속 겉돌고 있었다. 옥대진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었다. 다만 그 시기가 안 좋았을 뿐이었고, 또 실패했다는 것이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만약 이 일을 성공했다면 그는 영웅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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