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1화-21권 (497/930)

깨어나는 드래곤

여기는 교주 전용의 연공실.

이곳에는 언제부터인가 그 큰 연공실이 비좁을 정도로 거대한 골드 드래곤이 낮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조용하던 연공실이 지진이라도 난 듯 부르르 갑자기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드르르릉!

거대한 드래곤답게 코고는 소리도 박진감이 넘친다. 코 한 번 골 때마다 연공실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드래곤이 코를 골기 시작한 것은 깊은 수면 상태가 이제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 드디어 그가 깨어날 때가 거의 다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이어졌던 코골이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르티어스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아르티어스는 갑자기 그 큰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한바탕 한 후에 중얼거렸다.

‘젠장. 이렇게 좁은 데서 자다 보니 온몸이 다 찌뿌두둥하구먼.’

이때, 갑자기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어?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곧이어 여기가 어딘지 떠오른다. 이곳은 바로 마교의 가장 최하층부에 위치한 교주 전용의 연공실이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들어온 이유는…….

‘이런 빌어먹을! 그것 때문에 내가 잠이 들었던 거였지.’

화가 나서 머리를 들자마자 머리통은 즉각 연공실의 천장과 부딪쳤다.

쿵!

‘으갹! 이런 빌어먹을!’

굉음을 울릴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공실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기야 이곳은 교주 전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연공실이다. 역대 교주들이 패도적인 마공을 연성하면서 애용했던 곳이라는 말이다. 그만큼 강대한 충격을 받아도 무너지지 않도록 특별히 튼튼하게 제작된 곳이었다.

아르티어스는 즉시 주문을 외워 이곳 세계의 토종 호비트로 변신했다. 바로 자신이 드래곤으로 변신하기 직전의 모습으로 말이다. 거대한 황금색 드래곤이 빛과 함께 사라진 후, 그 자리에 초로의 노인으로 변한 아르티어스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나는 분명히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는 만큼 또다시 위험을 감수하며 수련을 감행할 수도 없었다. 아니, 현재 아르티어스의 몸 상태로 그것은 거의 자살 행위에 가깝다고 봐야 했다. 오랜 시간 잠을 자며 몸을 추슬렀다고 하지만, 그의 몸은 아직까지도 완벽한 상태를 되찾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젠장, 아무래도 잘 모르겠군. 어쩔 수 없지. 자존심은 상하지만 그놈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빠를지도 모르겠어.”

「그놈」이란 바로 자신의 수행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그의 양아들 놈을 말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아르티어스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있을 때, 수석장로가 허둥지둥 달려 들어와 인사했다.

“안녕하셨습니까? 어르신.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곳의 수석장로를 맡고 있는 북궁뇌(北宮雷)라고 합니다.”

하지만 수석장로를 바라보는 아르티어스의 시선은 결코 곱지 못했다. 그는 아들놈을 호출한 것이지 수석장로를 호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르티어스는 수석장로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수석장로를 덮쳐 왔다. 수석장로는 식은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 교주들을 섬겨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압박감을 받아 본 것은 맹세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네놈이 누군지 내가 알 바가 아니고, 나는 아들놈을 오라고 했는데 왜 네가 왔느냐?”

수석장로는 간신히 대답했다.

“예. 교, 교주님께서는 지금 바쁜 일이 있으셔서 밖에 출타 중이십니다.”

아르티어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래?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 갔나?”

“아뇨. 금이라는 나라와의 전쟁 때문에 가셨습니다.”

그 말에 아르티어스는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금이라고? 그놈들 참. 이름 한번 간단해서 좋군. 젠장, 그런 소꿉장난 같은거나 하지 말고 나한테 부탁하지. 왕이건 황제건 말만하면 뭐든지 다 되게 해 줄 건데, 뭐하려고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쯧쯧.”

저런 광오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다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수석장로의 머릿속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르티어스의 존재감에 짓눌리고 있던 그는 그 말이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쯧, 그럼 언제쯤 돌아오느냐?”

“예. 속하가 알기로는 아마 몇 달은 족히 걸리시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습니다.”

수석장로의 입에서는 어느새 「속하」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강자지존(强者之尊)의 율법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그가 아르티어스를 상전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몇 달? 그렇게 길게? 이놈이 애비를 뭐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르티어스는 오히려 이것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자신의 망가진 몸이나 추스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들놈처럼 강제적으로 주위의 마나를 확 끌어들여 몸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귀찮게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티어스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꼭 그놈의 무공이라는 것을 익혀야겠다고 다시 한 번 속으로 다짐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무공을 익히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그러면 나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드래곤이 될 수 있겠지. 암, 그렇고 말고. 으흐흐흣.”

아르티어스가 키득거리기 시작하면서 수석장로에게 가해졌던 그 엄청난 존재감이 갑자기 사라졌다. 더 이상 수석장로를 상대로 화풀이할 마음이 없어졌던 것이다.

“너는 그만 가 보고, 그 마화라는 아이를 불러오너라. 그 애가 제법 싹싹하니 마음에 드니까 말이다.”

압박감이 사라지자 수석장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뢰기 송구스럽습니다만, 마 부대주도 교주님과 함께 갔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르티어스는 음료수를 깨끗하게 비운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다시 연공실로 돌아가 볼까나?”

압박감이 사라져서 그런지, 수석장로의 머릿속에 갑자기 묵향이 떠날 때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수석장로는 재빨리 아르티어스에게 말했다.

“저…, 어르신. 어르신께서 연공실에서 나오시면, 꼭 전해 달라고 교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나를 보고 자기 있는 곳으로 오라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르티어스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퉁명스레 물었다.

“뭐냐?”

“교주님의 동생분을 치료해 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부상당한 초류빈 부교주도 함께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뭣이? 이놈이 나를 뭐로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와 동시에 또다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수석장로를 덮쳤다. 이제서야 수석장로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영감이 기분 나쁠 때마다 자신에게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힘없는 자기가 참아야지.

수석장로는 이제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것을 참으며 간신히 항변했다.

“저…, 꼭 치료를 해 달라고 간청드린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간청」했다는 말에 아르티어스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흥, 뭐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어디 한번 봐줄까나?”

아르티어스의 기분이 약간 좋아진 듯하자, 수석장로는 상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옛. 즉시 이리로 그분들을 데려오라 전하겠습니다, 어르신.”

* * *

북쪽의 야만족들에 의해 광활한 대지를 뺏겼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송제국의 저력은 바닥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다. 양양성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여 금의 대군이 남하하는 것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서서히 바뀌려고 하고 있었다.

재상 진회는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서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신의 내용대로라면 친구들과 명승지를 유람하겠다며 나갔던 아들놈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강직한 선비인 진회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들의 목숨 따위가 아니었다. 아들의 목숨이 아무리 중하다고 하지만, 나라와 황실의 안위보다 중할 수가 있겠는가?

이때, 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인, 대인을 뵙겠다고 온 자가 있사옵니다.”

사색을 방해받은 진회는 약간의 짜증을 담은 헛기침을 터뜨리며 외쳤다.

“커흠, 누군데 그러느냐?”

하인은 재빨리 실내로 들어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이것을 드리면 아실 것이라고 했사옵니다.”

그러면서 하인이 조심스럽게 진회에게 건넨 것은 얇고 자그마한 어떤 토막이었다. 그것을 받아 들고 쳐다보는 사이 진회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잣거리에 나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듯한 싸구려 옥 노리개. 거기에 새겨진 문양 또한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진회는 그것을 받아든 순간 품속을 뒤져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진회의 품속에서는 그것과 똑같은 조각이 하나 더 튀어나왔다.

“흐음…….”

두 개의 옥 조각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것을 확인하며 진회는 신음성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품속에서 나온 또 다른 조각은 아들의 납치범들이 보낸 서신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었기에.

“너는 빨리 가서 박 교령(僑令)을 불러오너라.”

“옛, 대인.”

잠시 후, 박 교령이 달려왔다. 군부의 무장다운 장대한 체구를 지닌 그를 보자 적잖게 마음이 놓이는 진회였다.

“찾으셨습니까? 대인.”

진회는 박 교령에게 지시를 내려 잘 무장한 병사들을 매복시킨 후, 하인에게 자신을 찾아온 괴한을 이리로 안내하라고 일렀다.

잠시 후, 남루한 흑의를 입은 괴한이 하인의 안내를 받고 들어왔다. 손질도 안한 수염이 사방으로 숭숭 뻗쳐있는 강직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런데 사내가 실내로 들어서자 진회는 뭔가 기분 나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마교의 무리들과 몇 번 조우해 본 무림인들이라면 이것이 마공을 연성한 자들이 뿜어내는 독특한 기운인 마기(魔氣)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겠지만, 불행하게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무림인들이 아니었다.

진회는 자신의 기분이 슬그머니 나빠지는 것이, 아들을 납치해 간 놈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넘겨짚으며 탐탁치 않은 어조로 외쳤다.

“그래, 무슨 일로 노부를 보자고 한 것이냐?”

사내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대꾸했다.

“소인과의 대면을 허락하신 것을 보면 대인께서도 이미 짐작하고 계실 것이 아니겠소이까?”

진회는 미간에 살짝 주름을 잡으며 퉁명스럽게 외쳤다.

“네놈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진회가 이렇게 물은 것은 단독 범행을 저지른 자가 직접 이곳에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진회의 좌우에 시립하고 서 있는 병사들을 힐끗 바라 본 후 느긋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선 좌우를 물리쳐 주셨으면 좋겠소이다. 그리고 저 안에 숨어 있는 쓰레기들도 말이오.”

그러면서 괴한은 진회가 박 교령에게 명하여 병사들을 매복시킨 곳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인의 침실 서탁에 서신을 올려놓은 것만으로는 본인의 실력을 믿지 못하시겠는 모양이지요? 괜한 소란 일으키지 마시고 좌우를 물리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순간 진회의 안색이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잘 훈련된 황병들에 의해 엄중하게 경비되고 있는 자신의 처소에 숨어들 정도로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자였다. 더군다나 상대는 여기저기에 황병들이 매복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잘 알면서도 저토록 태연자약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던 진회는 자신의 뒤에 시립하고 서 있던 박 교령에게 명령했다.

“좌우를 물려라.”

박 교령은 시국이 워낙 어수선했기에 재상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황실에서 직접 파견한 인물이었다. 물론 무림의 고수처럼 고강한 무예를 지니고 있지는 못했지만, 소림 속가 출신으로서 어느 정도 무공의 겉은 핥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저토록 위험한, 괴이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수상쩍은 놈을 상대로 상관을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킬 리 없었다.

“결단코 그렇게는 할 수 없사옵니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좌우를 물리치라고 했다.”

“재상께서는 저자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모르시는…….”

하지만 박 교령의 항변은 진회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건 노부도 잘 알고 있다. 이쪽이 대비가 확실히 되어 있음을 잘 알고 들어온 놈이 아니더냐. 저자의 목적은 노부의 목숨 따위가 아니다. 그러니 염려 말고 병사들을 물리거라.”

박 교령은 또다시 뭐라고 항변해 보려 했지만 진회의 눈동자는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옛, 명을 따르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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