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한이 돌아간 후, 진회는 하녀에게 명하여 뜨거운 차를 내오라고 일렀다. 향긋한 다향을 맡으면서도 진회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방금 전에 물러간 사내가 한 말 때문이었다.
“허어, 말을 듣지 않는다면 희야의 목숨을 끊어버리겠다?”
물론 그러고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비밀 유지를 위해 자신의 목도 따버리겠다는 추가적인 협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밤중에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와서 서신을 놔두고 간 놈이다. 진회의 목숨 정도는 언제든지 취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행동이었다.
“어찌 아들놈의 목숨 따위가 대송제국의 앞날과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말하며 지그시 눈을 감는 진회였다.
둘만 남게 되자 사내는 예상외로 공손한 어조로 제의했었다.
「과거 귀하는 매우 청렴한,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관리라고 들었소이다. 뇌물을 받지도 않았지만, 바치지도 않았기에 미관말직(微官末職)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 않았소이까? 만약 귀하가 정녕 백성들을 위하는 관리라면 그들을 위해 어느 쪽이 좋은지를 생각해 보시구려.」
사내의 말은 언뜻 무례하기 그지없다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진회의 가슴을 들쑤시고 있었다.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라…….”
현재 송의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 전란으로 인해 재정은 파탄나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징수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결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진회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강한 금 제국이 코앞에서 위협해 대는 지금, 그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 다른 방법은 그 결과가 나오려면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중앙이 어수선한 틈을 악용하여 변방의 관리들까지 온갖 못된 짓을 다 벌이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아는 진회는 관리들을 파견하여 그것을 뿌리 뽑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괴한의 요구대로 나라를 망하도록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송이 망한다면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올 나라는 십중팔구 금일 것이다. 과연 오랑캐들이 세운 금나라가 백성들을 위해 제대로 된 정치를 펼 수 있을 것인가?
진회는 씁쓸한 듯 입맛을 다시며 다시금 찻잔을 들어올렸다. 바로 이때, 총관이 달려 들어오며 외쳤다.
“대인! 대인! 큰일 났사옵니다.”
사색을 방해받은 진회는 못마땅한 어조로 총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냐?”
“황궁에서 태공공(泰公公)께서 오셨사옵니다.”
“태공공이? 무슨 일인데…….”
진회가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태공공 같은 높은 직위를 지닌 내시(內侍)가 여기까지 왔을까? 안 그래도 내일 아침이 되면 또다시 등청(登廳)할 텐데 말이다.
진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총관이 외쳤다.
“민란이 일어났다 하옵니다.”
“뭣이?”
민란이라는 말에 진회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민심이 흉흉했기에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터질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의 놀라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금이 압박해 오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거기에 민란까지 겹친다면 송은 무너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속히 준비를 갖추라 일러라. 입궁할 것이다.”
민란을 어떻게 진압하고, 또 그 후속 조치는 어떻게 취할 것인지에 대해 중신(重臣)들과 오랜 시간 토의한 진회는 밤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민란이라니……. 이제 망해 가는 제국의 말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듯하여 그의 마음은 더없이 착잡했다.
그렇기에 그는 하인들에게 일러 간소하게 술상을 봐 오게 이른 다음, 박 교령을 술자리에 청했다. 사실 이 집에서 그와 함께 대작을 할 만한 이가 그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자, 자네도 한잔 들지.”
그렇게 말하면서 진회가 술병을 집어 들자 박 교령은 황송하다는 듯 재빨리 잔을 비우고 빈 잔을 받들었다. 진회는 박 교령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박 교령. 자네 또한 그렇게 우둔한 사람이 아니니 작금의 상황을 결코 모르지는 않을 터. 그래, 자네가 보는 송의 미래는 어떠하리라 생각하는가?”
“어찌 소인같이 무지한 무관에게 그런 혜안(慧眼)이 있겠사옵니까?”
진회는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공허하게만 들렸다.
“허허헛, 이 사람. 술이 모자랐던 모양이구먼.”
진회는 뒤에 시립하고 있던 하녀에게 말했다.
“가서 커다란 사발을 가져오너라.”
하녀가 사발을 가져오자 진회는 그 사발 가득 독한 술을 따르며 술을 권했다.
“자, 이걸 한잔 쭉 들고 대답해 보게. 오랫동안 자네를 곁에 두고 지켜보고 있었네. 노부는 그렇게 둔한 사람이 아닐세. 자,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게나. 만약 대답하지 않는다면 벌주를 더 마셔야 할 것이야.”
말도 안 되는 위협에 박 교령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물으시니 얕은 소견이지만 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 먹으면 죽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라에도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있다고 배웠사옵니다. 유사(有史) 이래 수많은 강성한 제국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사옵니다만 그중 4백년을 넘긴 제국은 단 하나도 없었음을 고금(古今)의 역사서들이 증명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소장의 얕은 생각으로는 한 번 꺾여진 국운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니올런지요.”
그 말에 진회는 슬쩍 심술이 나서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국운이 무너지던 제국들 중에서도 현명한 군주와 신하들이 나타나 나라를 부흥시킨 예도 있지 않은가?”
“물론 드물기는 하오나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건 외침이 없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않사옵니까? 하물며 군 조직이 완전히 붕괴되고, 각지에서 군벌(軍閥)들이 일어나 그 세를 확장하는 최악의 상태에 직면하여 다시금 부흥에 성공했던 제국은 단 하나도 없었사옵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결국 송도 그런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말인가?”
박 교령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껏 있어 왔던 제국들의 흥망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혹 송이 그 모든 악조건을 깨고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전무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그걸 윗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회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쭉 비운 후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힘이 하나도 없었다.
“쇠퇴하는 국운을 되돌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절대로 아니지.”
그날 진회는 대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그날처럼 자신의 능력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변방에서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만 봐도 송의 국운은 반쯤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상황에서 안으로는 민란을 진압하며, 밖으로는 강성한 금 제국을 상대한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을 한다고 해도 그건 송의 명줄을 몇 년 더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그만큼 백성들은 더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것이고…….
* * *
초류빈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과 동급인 상대를 만났다. 물론 마공을 익힌 자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것은 현천검제의 존재를 아주 극소수의 인물들만 알고 있었던 탓도 있었지만, 초류빈이 그런 것에 무신경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의 경호를 호법원에서 책임지고 있었던 만큼, 초류빈이 알고자 했다면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아르티어스는 그 둘을 치료한 후 다시금 연공을 한답시고 연공실로 가 버렸고, 그곳에 남은 둘은 서로의 존재에 경외감을 느끼며 통성명을 주고받았다.
“나는 고천(古闡)이라고 하오. 설마 이곳에서 정파의 무공을 극성으로 익힌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소.”
초류빈도 마주 포권하며 대답했다.
“아, 고천 대협이셨구려. 나는 초류빈이라고 하오. 외람되게도 이곳의 부교주직을 맡고 있소이다.”
정파의 무공을 익힌 자가 부교주라는 말에 현천검제의 안색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젠장. 그러고 보니 남의 일이 아니구먼. 나도 곧 있으면 부교주 노릇을 해야 하는 거 아냐?’
한동안 초류빈의 안색을 살피던 현천검제는 마음을 정했는지 슬쩍 상대의 속을 떠봤다.
“혹시…, 그 극악무도한 교주에게 붙잡혀 마음에도 없는 부교주 노릇을 하고 계신 것 아니오?”
물론 현천검제는 사형을 극악무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상대의 속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극악무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너무나도 확실하게 나타났다.
초류빈은 너무 놀랐는지 ‘흡’하고 숨을 멈추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엿듣는 자는 없었다. 「극악무도」라는 그 한마디에 초류빈은 오랜 지기(知己)를 만난 듯 들떠 버렸다.
“그, 그럼 당신도?”
다시 한 번 더 엿듣는 자가 없는지 살핀 후 초류빈은 안심하고 속내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그놈이 당신의 손발을 그렇게 만들었단 말이오? 나중에 치료해 줬다고 하지만 정말 하는 짓이 왜 그리 잔인무도한지 모르겠소.”
본격적으로 사형의 욕이 시작될 것 같았기에 현천검제는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뭐, 그 얘기는 그만합시다. 그때 생각을 하면 나도 속이 쓰리니 말이오. 그런데, 초씨라면…. 혹시 초씨세가의?”
초류빈은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왜 아니겠소. 휴우∼,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으니 망정이지, 지금의 내 꼴을 보셨으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지 생각만 해도 두렵소이다.”
잠시 우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던 초류빈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형씨는 여기에 어떻게 오셨소? 나야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속아가지고 들어왔소만.”
“뭐 그렇게까지 터놓고 얘기하시는데, 거짓을 말할 수는 없고……. 죄송하오. 교주는 나의 사형(師兄)이시라오.”
“…….”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초류빈은 지금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놈이 사형이라고? 이런 젠장. 저놈에게 속아서 별의 별 소리를 다 늘어 놨는데……. 그걸 저놈이 교주에게 일러바치면 그날이 바로 내 제삿날이구나.
초류빈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현천검제는 활짝 미소지으며 활달하게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소. 그런 말을 사형한테 나불거릴 사람은 아니니 말이오.”
그래도 초류빈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듯하자 현천검제는 한숨을 쉬며 뒷말을 덧붙였다.
“사실, 내 처지도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 대화산파의 장문인이었던 내가 마교의 부교주 노릇을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던 참이었소. 그렇기에 당신을 만난 것이, 헤어졌던 친지를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듯하여 말을 건네 본 것 뿐이었소.”
초류빈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당신이 화산파의 장문인이셨단 말씀이오?”
“그렇소.”
“이런 일이……. 정말 그대를 본 순간 지기를 만난 듯하더니, 그 느낌이 틀림이 없었는가 보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형씨에게 말을 건 것이외다.”
역시 마교 내의 외톨이 정파들이라 그런지 둘은 말이 잘 통했다.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한없이 주고받았다.
초류빈과 대화를 주고받던 현천검제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아무래도 나는 사형한테 가 봐야 할 듯하오. 치료까지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몰라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 사형이 그 성질머리에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 확실하니 말이오.”
“확실히 교주와 사형제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구려. 교주의 음흉한 속셈을 그리도 잘 꿰뚫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오. 생각 잘하셨소. 하지만 나 같으면 그냥 두들겨 맞고 말지. 무림에 나가 그 망신을 당할 엄두도 못 낼 텐데…. 참으로 대단하시오.”
망신이라는 말에 가슴이 쑤시는 현천검제였다. 자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산파의 장문인으로 활동한 사람이었고, 그런 만큼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널려 있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사형에게 줘 터지는 것보다는 그나마 나을 테니까.
“대단할 것은 없소. 지금 생각해 봤는데 말이오. 그, 사형의 아버지라는 사람, 정말 화타 정도 되는 신의(神醫)이신 듯했소.”
그 말에 초류빈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치료를 받아 봤으니 말이다.
“그건 동감이오. 무슨 요사스러운 술법을 쓰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한순간에 상처가 쓱싹 낫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서 기절할 뻔 했소.”
“그런 사람이 옆에 없는 상태에서도 사형은 곤죽이 되도록 마음껏 두들기는데…, 으유∼ 그때 생각만 하면 치가 떨리오. 몇 날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맸으니 말이오.”
잠시 공포감에 부르르 떨던 현천검제는 말을 이었다.
“든든하게 뒤처리를 해 줄 사람까지 있다면, 이번에는 사형이 무슨 짓을 할지 상상도 하기 싫소. 내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그 말에 모골이 다 송연해지는 초류빈이었다. 하지만 초류빈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도망갈 구멍이 생각났던 것이다.
“흐흐흐, 나는 여기에 남아 있을 명분이 있다오. 교주가 나를 보고 본교를 지키라고 했으니, 이곳을 지켜야지 별수 있겠소? 안 된 얘기지만, 형씨 혼자만 가 봐야겠구려.”
“…….”
잠시 말이 없던 현천검제는 심각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그거 혹시 내가 대신해 주면 안되겠소? 형씨는 비교적 오랫동안 행방불명이 되어 있었으니, 알아볼 사람도 별로 없을 것 아니오?”
초류빈은 빙긋 미소지으며 야멸차게 대꾸했다.
“거절하겠소.”
“…….”
둘 사이에는 다시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문득 현천검제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흐흣, 좋소. 정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형씨가 사형을 어떤 식으로 욕 했는지 모두 다 일러바치겠소. 그래도 괜찮겠소?”
그 말은 즉각 효과를 발휘했다. 초류빈의 안색이 허옇게 바뀌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류빈은 세차게 머리를 휘젓더니 이를 악 물고 대꾸했다.
“좋을대로 해 보시구려. 몇 대 맞고 말지, 가문의 이름에 똥칠하는 것은 사양이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교주한테 걸려서 몇 번 쥐어 터진 적이 있으니, 아마 교주도 그런 일 가지고 나를 죽이지는 않을게요. 에휴∼, 내 팔자야.”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는 초류빈. 그의 뒷모습을 보고 현천검제가 재빨리 말을 걸었다.
“걱정하지 마시구려. 내 답답해서 잠시 농을 해 본 것 뿐이오.”
하지만 초류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내저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됐소. 말하건 말건 마음대로 하시오.”
초류빈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현천검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휴∼, 나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사형을 닮아가나? 뭐, 어쨌건 농담 한마디에 그토록 완벽하게 걸려드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런대로 농담이란 것도 재미는 있구먼.”
다음날 아침 일찍 현천검제는 십만대산을 떠났다. 물론 양양성에 있을 묵향을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오랜만에 만나게 될 사형을 찾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안색은 전혀 밝지 못했으며 발걸음 역시 굼벵이가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억지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