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걸이 이번 작전에 투입한 천마혈검대의 고수는 5개 대, 총인원 40명씩이나 된다. 대주를 포함한 천마혈검대의 전체 인원이 81명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전력을 이곳에 집결시켜 놓은 셈이었다. 그들 중 이천진(李仟振) 대장이 이끄는 제7대, 8명은 팽선 장로가 지휘하는 연합세력이 침입해 온 곳에 가 있었고, 나머지 4개 대는 이곳에서 장인걸과 함께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놈들의 배들이 강가에 접안했고, 수백의 인원들이 앞 다투어 병장기를 들고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곧 있으면 화경급 고수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장인걸의 심장은 박동 수가 조금 빨라졌다.
두근두근.
“놈들의 퇴로를 막아라.”
조선소 양옆에는 각기 100명씩의 병사들이 작은 배 10척에 나눠 타고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출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인걸의 말은 이들을 출동시켜 퇴로를 막으라는 명령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출동 명령은 불빛이나 소리 같은 것을 신호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적이 모르게 은밀히 움직여 퇴로를 차단해야 하는 만큼, 그렇게 뻔히 보이는 신호를 줄 수는 없었기에, 전령이 직접 그들에게 달려가야만 했다. 편복대주가 슬쩍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두 명의 편복대원들이 각자 맡은 임무대로 매복조를 향해 달려갔다.
장인걸은 명령을 내린 후, 계속적으로 적들을 살펴봤다. 화경급 고수라 해도 모든 기척을 숨길 수 있다는 반박귀진(返縛歸眞)의 경지에 들어간 것은 아니기에, 잘 살펴보면 상대가 어느 정도로 뛰어난 고수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멀었기에 극마의 고수인 그라고 해도 상대의 실력을 한눈에 꿰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일단 공격이 시작된 후, 적들이 반항을 시작해야 화경급 고수가 이 안에 섞여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두운 강위로 20척의 작은 배들이 날쌔게 움직이는 모습이 장인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즉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제 퇴로가 차단된 이상 놈들은 옴치고 뛸 수 없으니 지닌 실력을 다 발휘하여 이곳을 탈출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다! 하루아 장군에게 공격 신호를 보내라.”
“옛, 교주님.”
장인걸의 뒤편에 서 있던 제6대장 왕걸이 날카로운 장소성(長嘯聲)을 날렸다.
휘이이익!
그가 분 휘파람에는 강력한 내공이 실려 있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잠시 후, 저 산 아래쪽에서 「우와아아아!」하는 괴성이 아련히 들려오며 800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적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전 장인걸이 보낸 신호를 들은 하루아 장군이 적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맞춰 강 위에 떠 있는 배들이 일제히 횃불을 밝혀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물론 이것은 적에게 자신들이 있음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이렇게 어두워서는 적들을 향해 화살 한 발 날리기 힘들기에 주위를 밝히기 위해 횃불을 각 배당 대여섯 개씩이나 밝혀 놓은 것이다. 일단 상대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드러나자 그들은 각자 활을 꺼내들고 침입자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조선소에 침입한 적들은 강쪽으로의 퇴로가 갑자기 막히고, 또 무지막지한 화살 세례가 퍼부어지자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 허둥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하루아 장군이 지휘하는 800명의 고수들이 그들을 덮쳤다.
아래쪽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기대어린 눈빛으로 꼼꼼하게 살펴보던 장인걸은 곧이어 허탈한 음성으로 외쳤다.
“이럴 수가…….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건만, 쓸 만한 놈은 하나도 안 왔다는 말인가?”
그 말에 편복대주는 급히 저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아래쪽은 너무나도 컴컴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교주의 말이 맞을까?’하는 의구심이 잠시 들었지만, 이내 편복대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주는 극마의 고수. 교주가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일 것이다.
편복대주는 급히 부복(俯伏)하고는 머리를 땅바닥에 처박으며 사죄했다.
“속하가 대세를 잘못 읽어 지고하신 교주님께서 헛걸음하시게 한 점 사죄드리옵니다. 속하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편복대주의 우려와 달리 장인걸은 그리 속 좁은 인물이 아니었다. 장인걸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작은 부분이 틀렸다고 해서 징죄를 한다면 누가 본좌를 믿고 큰일을 도모하겠는가? 어찌되었건 자네의 말이 거의 대부분 맞았지 않은가? 그러니 일어서게.”
“속하의 큰 허물을 이렇듯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니 너무나도 감사하옵니다, 교주님.”
장인걸은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 이 대주 쪽은 어떻다고 하던가?”
팽선을 상대하고 있는 제7대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고, 조금씩 미끼를 투입해 가면서 상대편의 전력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그들 중에 화경급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제7대 혼자서는 상대하기가 힘들기에, 즉시 전령을 보내오기로 되어있었다.
“아직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그쪽도 없는 모양이옵니다.”
장인걸은 아쉬운 듯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호랑이는 빠졌더라도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이천진 대장과 워더리 장군에게 전령을 보내어 더 이상 시간 끌 필요 없이 끝장내 버리라고 전하게. 이쯤에서 작전을 종료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먼.”
워더리 장군은 장인걸의 정예무사 1천과 그 주위에서 끌어 모은 5만에 달하는 병력을 거느린 채, 공격 명령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워더리 장군이 거느린 병력으로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이천진 대장이 지휘하는 제7대가 정면에서 공격한다면 그쪽으로 진입해 들어온 무리들도 이곳에 들어온 놈들처럼 전멸을 면키 힘들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교주님.”
“크흐흐흣, 가소로운 것들. 본좌를 향해 잔머리를 굴리다니……. 단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음이야.”
이렇게 되어 지금까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편복대주가 수립한 조호이산지계(調虎離山之計)가 막 결실을 거둬들이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던 호랑이가 그물에 걸려들지 않았으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인걸로서도 내심 아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때, 장인걸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다. 저 멀리 강 건너편 하늘 위에서 붉은 불꽃이 번쩍이는 것을 봤던 것이다. 곧이어 그것에 답하듯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역시 작은 불꽃이 빛났다.
장인걸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꺼져가던 희망이 다시금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호오, 뭔가 또 다른 준비가 있는 모양이군.”
장인걸은 다시금 시선을 저 아래쪽의 난장판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크흐흣,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가 되는군. 화경급이라도 뛰어오려나?”
장인걸이 음흉스런 웃음을 토해 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둠을 뚫고 녹색 야행복을 입은 사내가 달려왔다. 편복대 소속의 전령이었다. 그는 장인걸을 발견하자마자 땅바닥에 납죽 엎드리며 외쳤다.
“교주님, 이천진 대장님의 전갈이옵니다. 화경급 고수 한 명이 나타났사온데, 그 처리를 어찌해야 하올지 하명해 주시옵소서.”
장인걸의 두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포기했던 꿈이 다시 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장인걸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뭣이? 그래, 그놈이 누구라고 하더냐?”
“그것까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사옵니다. 턱수염을 아주 길게 기르고 있는 자이온데, 처음에는 권법을 사용하더니, 잠시 후 떨어져 있던 검을 집어 들고 사용했사옵니다.”
“권법과 검을 사용했다?”
장인걸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수라도제 그 늙은 것은 아닌 모양이군. 어찌되었건 가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놈만은 필히 죽여야 한다.”
막 출발하려던 장인걸이 멈칫 하더니 뒤돌아서서 제8대장, 조대삼(趙大三)을 호명했다.
“조대삼 대장.”
“옛. 교주님.”
“이곳에도 혹시 화경급 고수가 출몰할지도 모르니, 자네가 여기에 남아 있다가 그런 놈이 출현하면 본좌에게 속히 연락을 보내라. 그런 다음 놈을 본좌가 있는 곳으로 유인해라. 그 뒤는 본좌가 처리하겠노라.”
“존명.”
장인걸은 전력을 다해 경공술을 전개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에 편복대주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인걸이 전력을 다해 경공을 전개하는 것은 그도 처음 봤던 것이다.
곧이어 제6대장 왕걸이 길게 휘파람을 불더니 장인걸의 뒤를 따라 달려갔고, 다른 대장들도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저 밑에서 따로 대기하고 있던 천마혈검대원들이 대장들의 뒤를 따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 버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편복대주는 끓어오르는 자부심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교주의 무공은 극마급이라고 들었으니 엄청나게 대단할 것을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혈검대원들이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치는 것은 지금 처음 봤던 것이다. 주위의 사람을 압도하는 엄청난 마기(魔氣)를 뿜어내기에 어느 정도 강할 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그들 개개인의 실력이 저 정도일 줄이야. 그들이 달려가는 속도는 결코 교주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빨랐다. 그런 자들이 81명씩이나 교주 휘하에 모여 있는 것이다.
‘천마혈검대의 모든 고수들이 다 저 정도의 실력자들이라면, 교주님께서 중원을 취하고자 하시는 것도 결코 꿈은 아니야. 아아, 가슴이 끓어오르는구나. 나는 정말 주인을 잘 만났어.’
옆에 조대삼 대장이 없다면 광소라도 터뜨렸겠지만, 그는 감히 그 앞에서 그런 무례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천마혈검대의 고수들이 뿜어내는 마기는 너무나도 강렬하여 편복대주라 할지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들을 향한 공포감은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복대주는 조대삼 대장을 향해 말을 걸었다.
“조대삼 대장님.”
“왜 그러시오?”
“저는 이곳의 일이 다 끝났기에 수하들과 함께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하구려. 지금껏 수고가 많았소.”
“예. 수하 몇을 남겨두고 가겠으니 전령으로 이용하십시오.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편복대주는 조대삼 대장에게 깊숙이 절을 한 후, 수하들에게 손짓을 하며 돌아갔다.
만통음제는 소연을 찾아 달려가던 중 의문의 고수들을 발견했다. 모두들 뛰어난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었는데, 몸에서 뿜어 나오는 짙은 마기만 봐도 마공을 연성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묵향이 이 일대에 투입한 마교단체는 흑풍대 뿐이었고, 그들은 저렇게 강렬한 마기를 뿜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들은 흑살마왕의 수하들임에 분명했다.
관지에게 듣기로는 팽선은 무려 3천에 달하는 고수들을 거느리고 금군을 압박하기 위해 진격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생은 소연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도 했다. 또, 관지는 자신에게 혼자 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까지 했었다. 그렇다면 동생은, 아니 마교에서는 장인걸이 팽선의 세력을 격파하기 위해 방대한 전력을 투입했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입수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증거가 만통음제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8명이나 되는 절정고수가 수하들도 대동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절대 그들만으로는 3천씩이나 되는 고수를 전멸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만통음제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 외에도 많은 장인걸의 수하들이 팽선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아마 이들은 팽선의 세력을 무찌르기 위한 주력세력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던지, 아니면 그 주력세력을 이끄는 수뇌부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지 않은가. 만통음제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그들을 없애 버리기 위해 달려들었다.
1대 8의 싸움.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상대방은 등에서 4척씩이나 되는 핏빛장검을 뽑아들었다. 그것을 본 만통음제는 이놈들이 마교에서 흑살마왕과 함께 이탈한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천마혈검대는 무림사에 일획을 그을 정도로 막강한 집단이었다. 그들 개개인의 실력도 무서운 것이었지만, 그들의 진정한 무서움은 그 엄청난 수에 있었다. 일문의 장로급에 해당하는 강자가 101명이나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한꺼번에 진을 짜서 움직이면 설혹 화경급 고수라고 해도 그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과거 만통음제의 사부는 4척이나 되는 핏빛장검 즉, 천마혈검(天魔血劍)을 사용하는 마인들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칠 것을 당부했었다. 마교 최강의 단체 천마혈검대를 상대로 혼자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을 정도로 어리석은 행위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사부가 천마혈검대에 대해 그에게 말해 줄 때, 무조건 도망치라고 권한 것은 천마혈검대의 그 엄청난 숫자 때문이었다. 인간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 많은 수를 혼자서는 절대로 감당할 수가 없다고 사부는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통음제는 지금 사부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만통음제가 생각하기에 천마혈검대 전체라면 응당 사부의 뜻을 좇아 도망치는 것이 옳겠지만, 그들 중 8명이라면 한번 해 볼 만한 것이다. 아니, 자신의 먹잇감으로 딱 좋은 숫자에 불과했다.
만통음제는 그들을 빠른 시간 안에 없애 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아야만 했다. 그놈들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아주 특이한 진(陣)을 짜서 대항하고 있었기에 상대하기가 조금 까다로웠던 것이다.
1시진 정도 싸우고 나자 만통음제는 상대가 시전하고 있는 진법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명호에 만박통지(萬博通知) 즉 만통(萬通)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그다. 진법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이 있는 그에게 그 정도 시간 여유를 준다면 파훼까지는 힘들더라도 그 특성정도는 파악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만통음제가 서서히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 허점을 파고드는 만통음제의 예리한 공격에 상대가 조금씩 손해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들은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상대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흥! 그런다고 순순히 보내줄 것 같으냐?”
등을 보인 순간, 저들의 단결된 방어력은 일순간 무너졌다. 그 틈을 놓칠 만통음제가 아니었다. 순간의 틈을 이용하여 만통음제의 양손에서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두 줄기의 강기가 날아갔다. 화경의 고수가 발출한 것인 만큼 그것은 엄청난 파괴력을 내재하고 있었다. 목표물로 찍힌 둘은 재빨리 방향을 틀었지만, 뒤쫓아 오는 강기다발도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순식간에 각도를 꺾으며 따라붙었다.
퍼펑!
“크윽!”
“으악!”
심장 부근을 관통당한 것이다.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두 놈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때, 만통음제는 이미 공격을 가한 놈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두 번째 먹이를 향해 지금까지 품속에 숨겨두고 있던 혈영비를 날렸다. 혈영비는 저녁노을처럼 붉은 광채를 뿜으며 날아갔다. 검을 사용하는 무공의 마지막 경지라는 어검술(御劍術)이었다.
날카로운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간 만통음제의 검에 다시금 세 명의 적이 땅바닥에 쓰러졌고, 그때 만통음제의 몸은 어느새 다른 적들을 따라 전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화경을 깨달은 자들이나 할 수 있을 법한 기민하기 그지없는 몸놀림이었다.
“이제 세 놈 남은 건가?”
이때 갑자기 만통음제는 자신을 덮쳐오는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허억!”
‘뒤로 간 놈이 있었나? 아냐! 그럴 리가, 그쪽으로 간 놈은 몽땅 다 죽였는데.’
그는 재빨리 몸을 틀어 뒤에서 가해진 기습 공격을 전력을 다해 막았다. 그의 손이 기이한 각도를 그리며 움직이며 두터운 강기의 벽을 쌓았다.
퍼펑!
공격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다섯 줄기나 되는 강기의 다발들. 아마도 어검술을 쓰면 파공성이 흘러나오기에 좀 더 공력 소모가 크더라도 은밀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강기를 날린 모양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기습 공격에 만통음제는 크게 낭패를 당할 뻔 했지만, 화경의 고수답게 아무런 피해 없이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이때, 만통음제의 시선에 이미 죽어서 쓰러져 있어야 할 다섯 놈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 놈도 안 죽었잖아. 이게 어찌된…….”
만통음제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맞다. 귀혼강신대법(歸魂?身大法)! 저놈들도 그걸 익혔구나. 하기야 장인걸과 함께 마교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20여 년인데, 저놈들이 그걸 안 익혔을 리가 없지.’
수라도제와 패력검제, 황룡무제가 일차적으로 흑살마왕 패거리와 일전을 벌인 후, 그 황당함에 대하여 떠들어댄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 희한한 무공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직접 당해보니 이 시대 최강자들인 그들이 그토록 당황했던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심장을 바숴 버렸는데도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인간이 있다니, 정말 경악감을 감추기 힘들었던 것이다.
‘저런 인간 같지도 않은 놈들과 꼭 싸워야 할까?’
하지만 이건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런 강시 같은 놈들은 기회가 있을 때 보이는 족족 없애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있을 때가 최적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가만있자, 머리통만 박살내면 된다고 했나? 그렇다면 이건 더 이상 필요 없겠군.”
만통음제는 혈영비를 다시금 품속에 집어넣은 후,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오늘 노부를 만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