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惡戰苦鬪)
장인걸 등은 편복대의 도움을 받아 화경급 고수가 발견된 곳으로 달려갔다. 상대의 정체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그의 위치가 포착된 이상 확실하게 없애 버려야만 했다. 현재 그는 상대편에 화경급 고수 3명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일전의 격돌을 통해 화경급 3명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신검합일급 고수는 천마혈검대의 존재로 인해 그 수가 적들에 비해 우월하면 우월했지, 결코 상대방에 비해 모자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윗단계로 올라가면 절대적으로 이쪽이 밀리는 것이다. 장인걸 혼자서 상대편 셋을 상대하기는 너무나도 벅찼다. 전에는 운이 좋아서 살아서 나왔지만, 다음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기회에 한 명이라도 상대편 화경급 고수의 수를 줄여야만 했다.
“교주님을 뵈옵니다.”
자신을 향해 부복하는 편복대 대원을 향해 장인걸은 서둘러 외쳤다.
“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옛. 지시받은 대로 이천진 대장께서 그를 상대하고 계시옵니다.”
“그렇다면 아직 그놈을 놓치지 않은 모양이로군. 크흐흐흣. 하늘이 본좌를 돕는도다.”
장인걸은 자신을 따라온 천마혈검대원들을 둘러본 후 말했다.
“제6대만 본좌를 따라오고, 나머지는 이곳에서 대기해라.”
그 말에 제6대장 왕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상대는 화경급 고수. 아무리 교주께서 친히 나서신다고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는 이상 놈을 처치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만큼 상대의 실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2개 대를 이곳에 남겨 둔다니. 그러고도 놈을 없앨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문을 교주에게 말하지 않았다. 상명하복(上命下服). 윗사람의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마교의 율법이었으니까. 그는 애써 교주에게 어떤 계책이 있으니까 이런 명령을 내리는 것일 거라고 자위(自慰)하고 있었다.
장인걸은 야행복 속에 들어 있는 복면을 꺼내어 뒤집어쓰며 제6대의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모두들 복면을 써라.”
제6대 대원들이 복면을 착용하고 있을 때, 장인걸은 제9대장 진각(陣慤)에게 말했다.
“진각 대장, 자네 검을 빌릴까? 어차피 여기서는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9대장 진각은 등에 매고 있던 장검을 검집째 풀어 장인걸에게 바쳤다. 장인걸은 다른 천마혈검대 고수들처럼 천마혈검을 등에 메며 지시했다.
“본좌가 신호를 보내면 곧바로 달려와라. 추호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인걸의 명령에 제9, 10대장은 고개를 조아리며 낮지만 힘있게 외쳤다.
“존명!”
“가자.”
모두들 똑같은 복색이었고, 거기에 복면까지 뒤집어쓰니 겉모습만으로 그들 중에서 누가 장인걸인지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극마의 특징인 마기를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다면 그를 찾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으로도 장인걸의 기척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장인걸은 복면을 뒤집어씀과 동시에 지금껏 억누르고 있던 마기의 일부를 개방하여 동행하는 천마혈검대원들과 똑같은 수준의 마기를 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태에서는 그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고수인 묵향 정도나 되어야 그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이 모두 다 천마혈검대원들인 줄 착각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장인걸이 난투장에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머리통이 박살나서 죽은 일곱 구의 시체였다. 그리고 웬 화경의 고수가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한 놈까지 마저 없애 버리기 위해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화경급 고수. 적잖은 피해를 보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모두들 대법을 극성까지 익히고 있기에 대부분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수하들에게 이 정도 피해를 입힌 것만 봐도 확실한 화경급 고수였다. 순간, 장인걸의 입가에 살기어린 미소가 감돈다. 장인걸은 등 뒤에서 천마혈검을 뽑아들어 상대를 겨누며 싸늘한 어조로 외쳤다.
“쳐랏!”
“우와아아!”
장인걸의 명령에 따라 흑의복면을 한 수하들이 불꽃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만통음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만통음제는 결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홉씩이나 되는 새로운 먹잇감이 나타난 것을 내심 좋아하고 있었다. 놈들의 실력은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다. 놈들이 사용할 무공부터 시작해서 진법. 거기에다가 귀혼강신대법의 대응책까지 알고 있으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역시 그들과 부딪친 결과는 만통음제의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방금 전 여덟 놈을 상대할 때와 똑같은 검술과 진법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이상 이제 천천히 놈들의 힘을 빼놓고, 그다음에 술래잡기만 하면 이놈들도 머지않아 처음에 덤벼들었던 그놈들처럼 시체로 화할 것이 분명했다.
방금 전까지 만통음제의 공격을 피해 죽자고 도망다니던 그놈도 새로운 지원군의 합류에 힘을 얻었는지 곧장 그들과 가세하여 만통음제를 공격해 왔다. 만통음제로서는 가소로운 일이었다.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 그때를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면 목숨만은 건졌을 텐데…….
한동안 정신없는 공방전이 서로 간에 또다시 전개되었다. 바로 이때, 만통음제가 예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뒤쪽에서 가해진 공격을 포착한 만통음제는 재빨리 뒤로 돌아서며 그에 대한 방어를 했다. 장기전을 각오해야 하는 만큼, 공력을 아끼기 위해 적당한 수준으로 만통음제가 응대한 것이 탈이었다. 상대의 공격이 그의 방어막을 꿰뚫고 들어왔던 것이다.
퍼억!
“크윽! 이…, 이럴 수가!”
호신강기 덕분에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만통음제는 이놈들 중에 다른 놈들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한 놈이 숨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렇다면 아주 힘든 싸움이 될지도…….
이때, 방금 전에 자신을 향해 일격을 날린 놈이 뒤쪽으로 슬쩍 빠지더니 날카로운 신호음을 토해 냈다.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한 것으로 미루어 어쩌면 이들 외에 매복하고 있는 고수들이 더 있는 모양이다. 만통음제는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기회는 지금뿐일지도 모른다. 더 많은 적들이 도착한 후라면 아예 탈출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바로 저쪽에서 응원세력을 불러들이기 위해 웅혼한 공력이 실린 장소성(長嘯聲)을 날리고 있는 놈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만통음제는 그것을 행동에 옮겼다. 그는 순식간에 자신이 지닌 공력을 모두 끌어모아 패도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적의 고수 둘을 해치웠을 때, 그의 뒤에서 또다시 예의 그 특이한 느낌의 장력이 날아옴을 느꼈다. 피할 시간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뒤돌아서서 그것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방금 전 자신의 무리한 공격으로 뚫어 놓은 탈출로가 막힐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뒤쪽으로 공력을 모아 적의 공격에 대비하며 만통음제는 무작정 치달렸다.
펑!
“크윽!”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끌어모아 대비했건만, 내장을 뒤흔들 정도의 강력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그는 뒤에서 가해진 충격까지 더하여 더욱 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크흐흐. 제아무리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본좌의 흑살마장에 격중된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야.”
이때, 제7대장 이천진이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교주님께서 맡기신 수하들을 모두 잃어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속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장인걸은 오히려 이천진 대장을 부드러운 어조로 격려했다.
“자네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있겠는가? 오히려 본좌의 무리한 명령을 이행하느라 수고한 것에 치하는 못할망정, 무슨 죄를 용서한다는 말인가. 본좌가 올 때까지 그놈을 잡아두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정말 수고가 많았다.”
“감사하옵니다, 교주님.”
“자네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제9, 10대가 도착하면 그들을 본좌에게로 인도하라.”
장인걸은 등에 지고 있던 검집을 끌어 제7대장 이천진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진각 대장에게 전해 주게.”
“옛.”
“그럼, 가자.”
장인걸은 제6대를 이끌고 만통음제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달려갔다.
방금 전까지 쥐새끼처럼 도망치는 마교놈을 잡느라 동분서주했었던 만통음제는 이제 거꾸로 자신이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물론 화경급 고수인 그를 추격할 수 있는 자들은 최소한 그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은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극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던 것이다.
처음 그가 탈출할 때만 해도 상처는 그리 심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상처가 악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었는데, 상처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점차 증대되자 만통음제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때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과거 그의 사부께서는 마교에서 내려오는 패도적인 마공들에 어떤 것이 있는지 가르쳐 준 적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지독한 것이 바로 흑살마장이었다. 흑살마장은 마교가 만들어낸 독성(毒性)을 이용한 장법 중 가장 궁극적인 형태를 띈 무공이었다. 일반적인 독공들의 경우 그 바탕이 되는 독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체내에 침투한 것만 없애 버릴 수 있다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살마장은 그런 법칙을 깬 무공이기에 독공의 궁극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흑살마장의 무서움은 그 독기가 상대의 체내에 침투하여 조직을 파괴하고 썩게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썩어 들어가는 조직에서 새로운 독기를 만든다는 데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적은 분량의 독기가 침투하더라도 결국 상대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흑살마장은 그것이 지닌 위력만큼이나 익히기가 매우 까다로운 마공이었다. 장력의 사거리가 짧은 것이야 독공들이 지니는 공통적인 특징이었지만, 흑살마장은 거기에 더해서 발출하는데 걸리는 시간까지 아주 길었다. 고수들 간의 싸움은 시간과의 싸움이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장심에 독기를 모은다고 낑낑거리고 있다가는 칼맞아죽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과거에는 흑살마장을 익히기만 까다로울 뿐, 고수들을 상대로는 별 효과도 내지 못하는 엽기적인 독공 정도로만 치부되어 왔었다. 하지만 장인걸이 그것을 극성까지 익혀 그 엄청난 살상능력을 과시한 이후, 흑살마장이야 말로 마교의 장법을 대표하는 가장 극악무도한 마공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장인걸은 그날 이후 흑살마왕으로 불리고 있었다.
왜 사부님께 배운 것이 지금에야 떠오르는 것인지 머리통을 쥐어뜯고 싶어지는 만통음제였다. 생각이 나려면 그 전에 날 것이지.
“젠장. 그때 재빨리 응급조치를 취하고, 독기가 퍼지지 않도록 내공으로 억눌렀어야 했거늘. 상대가 장인걸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걸 놓치고 말았구나.”
지금이라도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몇 군데 혈도를 점한 후, 내공을 이용하여 독기를 억눌렀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응급조치에 불과했다. 어딘가에 숨어들어가서 흑살마장의 독기를 뽑아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상처가 악화되어 결국에는 더 이상 손을 쓸 수도 없을 지경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적들이 쫓아오는데, 어디에 숨어들어가서 운기조식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부상을 당한 상태라 그런지 평상시 달리던 것에 비해 속도도 많이 떨어졌다. 더군다나 전력으로 경공술을 전개하는 것만도 벅찬 일이었기에, 독기를 완벽하게 억누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을 틈타 독기가 조금씩조금씩 더 깊은 곳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만통음제는 저들과의 거리가 조금 떨어지자 곧장 방향을 남쪽으로 틀었다. 팽선 일행이 있는 곳으로 저들을 끌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 조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3천씩이나 되는 고수라면, 저들을 상대로 약간의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은 어딘가에 숨어 조금이나마 상처를 치료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질녀였다. 질녀가 그곳에 없다면 모르되,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저런 엄청난 적들을 끌고 그곳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잘못하면 질녀의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회하의 드넓은 수면이 모습을 드러내자, 만통음제는 이것만 잘 이용해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통음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재빨리 강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극상승의 경공술을 선보이며 그 넓은 회하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가기 시작했다.
“미꾸라지 같은 놈. 도망치는 것 하나는 타고난 것 같구나.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군. 크흐흣.”
천마혈검대의 대원 중에는 이토록 넓은 강을 단숨에 건널 만한 실력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들 흩어져서 자신의 몸무게를 조금이라도 분산시키기 위해 발바닥에 널찍한 나무판을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시간 동안 생쥐 같은 놈은 좀 더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통음제를 잡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 분명한데, 왜 장인걸은 미소를 짓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천마혈검대 같은 절정급 고수들조차도 단숨에 건널 수 없을 정도로 회하의 폭은 넓었다. 그런 곳을 성한 몸도 아닌 상태에서 단숨에 건너려면 필히 몸에 무리가 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흑살마장의 독기가 더욱 몸속 깊이 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이 강을 건넌 후쯤 되면 저놈의 상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을 다 알면서도 장인걸은 그 혼자 단독으로 추격전을 감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부상을 당했다고 해도 상대는 화경급 고수였다. 자신의 몸이 아무리 귀혼강신대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고 해도, 불사의 몸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추격하여 상처를 치료하지 못하게 방해만 해도 놈은 필사(必死)였다. 그걸 뻔히 알면서, 괜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고 장인걸은 판단했던 것이다.
“자, 모두들 준비되었으면 가자.”
장인걸이 앞장서서 등평도수의 경공술을 이용하여 달려 나갔고, 그의 수하들은 발바닥에 붙인 넓은 나무판의 힘을 빌려 물 위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만통음제는 강 건너편에서 기다렸다. 기회는 한 번 뿐. 놈이 수하들과 떨어져서 혼자 강을 먼저 건너왔을 때뿐이었다. 수하들이 도착하기 전에 저놈만 어떻게 없애 버릴 수 있다면, 겨우 8명밖에 안 되는 천마혈검대쯤은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저놈은 그토록 압도적인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행동하지 않고, 수하들을 대동하고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욕설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비겁한 새끼! 너 같은 놈은 무인도 아니야. 사내놈이 그렇게 간덩이가 작다니.”
만통음제는 장인걸이 수하들을 대동하고 강을 건너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그곳에 있어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에.
* * *
조선소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는 처음 잠시 동안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침입자들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장인걸이 동원한 고수들이 숫자도 많았지만, 질적으로도 천지문도들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모두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에, 조선소 일대는 각종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있었고, 살기 또한 하늘을 찌를 듯 진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인물들 중 유독 여덟 명만은 따분한 듯한 표정으로 간혹 하품까지 해대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이들의 눈에는 이 치열한 격전이 오히려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은 천마혈검대라는 무적의 단체에 소속된 고수들이었다. 여기서 싸우고 있는 놈들과는 그 차원이 다른 강자들인 것이다.
제8대장 조대삼은 조선소에 침입한 적들을 격퇴하라는 교주의 명령을 받았지만, 전혀 흥이 나지 않는 상태였다. 이곳에 동원된 방어병력은 무려 천 명. 모두 다 마공을 수련한 제법 쓸 만한 고수들이었다. 이들만 동원해도 적들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는데, 굳이 자신들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까지 쓸 필요가 없듯이 천마혈검대가 이곳에서 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 조대삼 대장은 수하들과 함께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이나 하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모든 것이 조대삼 대장의 예상대로였다. 실력은 물론이고, 숫자까지 이쪽에서 적들을 압도하다 보니 사방에서 죽어나가는 놈들은 다 침입자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 그의 눈에 상당한 실력의 계집과 사내놈이 포착되었다.
“큭큭큭, 제법이로군.”
마교도들과 달리 정파의 인물들은 그 기척을 읽기가 어려워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그런데 이 두 연놈은 특히나 그 기척을 철저하게 감추고 있어서, 수하 몇을 잃고 난 후에야 그들의 실력을 알아본 것이다. 그냥 놔둬도 결국은 이길 것이 분명했지만, 괜히 부하들을 희생시킬 이유는 없었다.
“이런 철통같은 곳을 기습하는데, 아무려면 저 정도는 되는 것들이 와야 정상이겠지. 누가 저놈들을 상대하겠느냐?”
조대삼 대장의 제안이 떨어지자마자, 재빨리 둘이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대장. 가만히 서 있자니 심심해서…….”
자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지원하자 조대삼 대장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 명만 가도 충분할 텐데, 둘씩이나 보내기에는 천마혈검대의 이름이 지닌 자부심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놈들 중에서 누구를 보내야 하나?
이때, 두 번째로 신청했던 음침한 표정의 사내가 조대삼 대장에게 제안했다.
“대장도 지금 심심할 것 아니오? 내가 화려한 구경거리를 제공해 드리지요. 계집의 옷이 한 겹씩 벗겨져 나가면 그 구경하시는 재미가 쏠쏠하실 겁니다.”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그렇기에 조대삼 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네가 가라. 대신 저 녀석들이 적들을 완전히 제압할 때까지는 구경거리를 제공해 줘야 한다.”
부하들이 적들을 완전히 제압할 때까지 시간을 보낼 구경거리를 달라는 뜻이었고, 그것은 음침한 사내의 구미에도 맞았다.
“대장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크흐흐흣.”
그는 등 뒤에서 천마혈검을 뽑아들고는 어슬렁거리며 상대를 향해 걸어갔다. 저것들을 어떻게 요리하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