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7화 (513/930)

혼비백산(魂飛魄散)의 장인걸

패력검제와 헤어진 후 묵향은 전속력으로 동쪽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이 팽선을 도와주라고 부탁했었던 만큼, 만통음제는 팽선 일행과 함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참 달려가던 그의 기감(氣感)에 강렬한 마기가 포착되었다. 그 순간 묵향은 달리던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좀 더 감각을 집중하여 주위를 살폈다.

마기가 느껴지는 곳은 회하 건너편이었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묵향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들이 팽 뭐시기를 치러가는 것이 맞다면 분명 강 건너편이 아니라 이쪽 편에 있어야 옳은데, 왜 저쪽에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한둘이라면 정찰을 목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 수는 거리가 멀어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절대로 한둘 정도가 아니었다.

“팽선이 있을 거로 생각되는 저쪽으로 달려가야 하나? 아니면 이쪽인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곳에서 궁리하고 있을 시간 여유도 없었다. 만통음제가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고 해도, 천마혈검대원들을 거느린 장인걸을 상대로 절대로 이길 수는 없었다.

이때, 묵향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맞다. 저놈들만 없애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잖아.”

그렇다. 구태여 묵향이 만통음제를 꼭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장인걸과 합쳐진 천마혈검대였다. 장인걸 혼자라면 결코 그의 생명을 위협하기 힘들었다. 몇 수 교환해보고 힘들 것 같으면 도망치면 될 테니까. 그런 만큼 저놈들만 없애 버리면, 일단 형님의 목숨은 안전하다고 봐도 무방해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자 묵향은 전속력으로 마기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장인걸이 수하들과 함께 회하를 건넜을 때, 순간적으로 적의 위치를 놓친 적이 있었다. 그로서는 다 잡은 먹이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놈은 자신의 흑살마장에 두 방을 맞았다. 복부에 한 방, 그리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등에 한 방. 복부에 먹인 것은 비교적 놈이 방비하기 쉬웠기에 막아냈을 가능성이 컸지만, 등판에 먹인 것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호신강기로 등판을 보호했다고 해도,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백 보 양보해서 그마저도 큰 부상을 입히지 못했다고 해도, 조금의 상처라도 입었다면 지금쯤 놈의 몸은 흑살마장의 독기로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수하들을 보내어 양양성으로 들어가는 통로들부터 차단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임인 제6대장이 건의해 왔지만 장인걸은 그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놈이 바보가 아닌 이상, 양양성으로 직행했을 리가 없다. 우선 우리들을 따돌리기 위해 양양성 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게 분명하다. 놈은 부상 때문에 빨리 움직일 수가 없다. 주위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이 잡듯 뒤져라.”

“존명.”

“놈을 발견하면 절대 공격하면 안 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에서 추격하며 놈을 포착했음을 알리기만 하면 된다.”

“존명.”

그때부터 도망치는 화경급 고수와 장인걸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여기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장인걸이었다. 처음에는 8명밖에 되지 않던 수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9, 10대와 이천진 대장이 합류하며 25명으로 불어났다. 아무리 상대가 화경급 고수라고 하지만, 중상을 당한 상태에서 그 많은 인원이 쳐놓은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장인걸은 상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여 결국 절벽이 있는 곳까지 몰아붙였다. 비틀거리며 사력을 다해 도망치던 상대는 그곳에서 멈춰섰다. 한쪽이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이상 사방에서 포위될 염려가 없기에, 이곳에서 최후의 승부수를 던지려는 모양이었다.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을 중심으로 천마혈검대는 물샐틈없는 포위망을 구축한 채 장인걸의 명령을 기다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느긋한 표정으로 포위망의 중심에 갇혀 있는 화경급 고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크흐흣. 이제 도망칠 여력도 없는 것인가?”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장인걸을 향해 제6대장 왕걸이 제안했다.

“교주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이제 놈은 독안에 든 쥐나 다름없습니다.”

제6대장은 자신만만하게 청했지만, 장인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청을 물리쳤다.

“모르는 소리. 아무리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하지만, 놈은 무서운 발톱을 감추고 있는 맹호(猛虎)다. 저놈은 지금 이쪽에서 공격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지. 우리들 중의 한 명이라도 저승길 동반자로 삼기 위해서 말이다. 그냥 놔둬도 죽을 놈 때문에 본좌의 소중한 수하를 한 명이라도 잃을 수는 없다.”

장인걸의 말에 제6대장의 얼굴에 엷은 감동의 빛이 떠올랐다. 수하들을 이토록 생각해 주는 것에 감동한 모양이지만, 장인걸로서도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저 망할 화경급 고수를 없애는데 이미 제7대 대원 7명을 잃어야만 했다. 원대한 자신의 꿈을 이루려면, 더 이상의 고수를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과거 그가 마교 총타를 차지하고 있을 때와 달리, 더 이상 최상급 고수의 충원은 불가능했기에.

“왕걸 대장.”

“옛.”

“자네의 철령전을 빌릴 수 있겠나? 본좌에게는 무거운 암기가 없어서 말일세.”

각각의 암기가 지니고 있는 장단점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림인들의 경우 한 가지 이상의 암기를 휴대했다. 암기의 종류를 크게 나눈다면, 우모침(牛毛針)처럼 아주 작고 가늘어서 적이 포착하기 힘든 것도 있었고, 철령전(鐵翎箭)처럼 크고 묵직한 것도 있었다. 우모침은 은밀하게 적을 공격한다는 암기의 목적에 가장 충실하게 제작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 파괴력이 너무 약했기에 독을 병행하여 사용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독기를 막아줄 특수한 장갑을 끼어야만 하는데다가 웬만한 내공의 고수라고 해도 3장 이상은 날리기 힘들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그에 비해 철령전 같은 무거운 암기는 그 특성이 정반대였다. 크고 무겁기 때문에 독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이 적을 격살할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지닌데다가 멀리까지 투척할 수 있다는 큰 잇점이 있었지만 파공성(破空聲)을 감추기 힘들기에 적이 눈치 채고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는 단점 역시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대규모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난장판이라면 파공성을 쉽사리 포착하기 힘들기에 철령전 같이 쉽게 쓸 수 있으면서도 강력한 암기가 그 진가를 발휘했다.

제6대장 왕걸은 재빨리 품속에서 철령전 다섯 대를 꺼내어 교주에게 바쳤다. 왕걸이 애용하는 것은 삼릉철령전(三陵鐵翎箭)이었는데, 6치나 되는 비교적 큰 크기를 가진 그것은 세모꼴의 강철 살대에 역시 세 조각의 얄팍한 강철 깃털이 달린 화살 같은 형태의 암기였다.

장인걸은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가볍게 적을 향해 날렸다.

쇄에에엑--!

묵직한 무게 덕분인지 서로 간의 거리가 무려 10장에 달했는데도 불구하고 철령전은 날카로운 파공성을 흘리며 상대에게로 날아갔다. 순간 인사불성인 듯 보였던 적의 몸이 튕기듯 날아올랐다. 아마도 암기를 피하기 위한 회피동작인 모양이었지만, 장인걸이 던진 철령전은 그의 발밑으로 통과하는 대신 곡선을 그리며 위쪽으로 떠올랐다. 막 그의 몸이 철령전에 꿰뚫리려는 순간, 화경급 고수의 몸에 붉은 빛의 장막이 번쩍이더니 철령전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밑으로 내려오는 그의 손에 붉은 빛이 나는 짧은 단검이 들려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이용하여 철령전을 박살내 버린 듯 보였다. 하지만 갑자기 몸을 움직인 것이 화근이었는지 땅에 착지하는 순간 비틀거리더니, 곧바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봤나? 아직까지 놈에게는 힘이 남아 있어.”

“속하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교주님.”

“그렇게 사과할 필요는 없네. 본좌가 저놈을 공격한 것은 자네의 잘못을 탓하고자 한 것이 아니니까.”

“…….”

“한 번씩 이렇게 자극을 줘야 놈이 상처를 치료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더불어서 공력 소모와 함께 독성이 저놈의 몸속으로 더욱 깊게 침투하게 되겠지. 크흐흣. 이제 놈이 버틸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장인걸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화경급 고수를 향해 비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장인걸이 목표물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저 먼 곳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접근해 오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전력을 다해 경공술을 펼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미처 자신의 존재감을 감출 여유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모든 것이 하나도 걸러지지 않은 채 장인걸과 그의 수하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상대는 엄청난 고수였다. 장인걸 같은 초고수조차 저 가슴 밑바닥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대체 어떤 놈이지?”

제6대장은 재빨리 장인걸에게 외쳤다.

“다른 화경급 고수가 지원하러 오는 모양입니다, 교주님.”

제6대장은 다른 대주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들 새로운 적에 대비하라. 전투 준비!”

“그게 아니다. 이 느낌은… 본좌로 하여금 이토록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얼마 전 화경급 고수 세 명을 상대로 싸울 때도 이 정도의 압박감은 받지 않았었다. 만약 이것이 일부러 자신의 기척을 극대화하여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 존재감을 뿌릴 만한 고수는 장인걸이 알기에 단 한 명뿐이었다.

“서, 설마 그놈이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

장인걸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이 낼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도망치며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들 도망쳐라! 빨리!”

장인걸의 갑작스런 후퇴 명령에 수하들은 일순간 당황했다. 그들이 지금껏 장인걸이 이토록 당황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후퇴」라는 말도 아니고 「도망」이라니. 하지만 그들은 저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재빨리 장인걸의 뒤를 따랐다. 후퇴하라면 후퇴해야 하는 것. 일단 교주의 결정이 내려진 상태에서 반론은 용서되지 않았다. 그것이 장인걸의 방식이었으니까.

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묵향이 도착했다. 저 멀리 절벽 밑에 만신창이가 되어 앉아 있는 만통음제의 모습을 본 순간 묵향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묵향은 재빨리 절벽 위로 몸을 날렸다. 아직 늦지 않았다. 꽤 먼 거리기는 했지만 수십 개가 넘는 강렬한 마기가 이동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묵향이 아니었다.

“이거나 먹어랏!”

순간, 묵향의 손에서 수십, 아니 수백 개에 달하는 응축된 강기의 구슬들이 연속적으로 쏟아져 나갔다. 적이 아무리 먼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묵향 같은 고수라면 충분히 몇 개의 구슬만을 발출한 후, 그것들을 기로 조종하여 놈들의 일부만이라도 확실하게 저세상에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묵향이 그렇게 하는 대신 무차별 공격만 퍼붓고 끝내 버린 것은 놈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데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강기가 날아가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지만, 놈들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 더군다나 놈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상태였기에, 그 거리는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 시간 동안 구슬들의 움직임을 조종하고 있을 시간 여유가 그에게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사경을 헤매고 있을 만통음제를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상대를 향해 강기의 구슬들을 날린 후, 그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묵향은 절벽 아래도 뛰어내렸다. 절벽 밑에 내려선 묵향은 만신창이가 된 만통음제를 보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었다. 괜히 잘 있는 사람을 보고, 딸아이를 도와달라고 해 가지고는 이 모양을 만들다니.

자책감과 함께, 질녀를 구하겠다고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홀로 뛰어든 만통음제에게 너무나도 큰 고마움을 느꼈다. 사실, 이 정도 위험을 당한 상태라면 팽선에게로 달려가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만통음제는 팽선에게로 가지 않고 이쪽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그쪽으로 가면 질녀가 위험할 테니까. 그것을 묵향이 모를 리 없었던 것이다.

“아니, 화경씩이나 되는 분이 상처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한 겁니까?”

퉁명스럽게 쏘아대는 말과 달리, 묵향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는 것을 보고 만통음제는 씨익 미소지었다. 온몸이 찢어질 정도로 아플 텐데도 그에 대꾸하는 만통음제의 목소리는 유쾌하기까지 했다. 동생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탓이리라.

“난들 그렇게 되도록 놔두고 싶어서 놔뒀겠나? 저놈들이 치료를 할 여유를 줘야 말이지.”

“제가 호법을 서 드리겠습니다. 일단 운기조식을 하여 독기부터 몰아내십시오.”

“내 몸 상태는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네. 공력의 소모가 너무 심했어. 지금 운기조식 해 봐야 이미 늦었다네.”

“공력이라면 제가 나눠드리겠습니다.”

묵향은 다급히 말했지만, 만통음제는 처연히 미소지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건 내 자신의 몫일세. 자네가 지닌 것은 역혈의 내공. 정종의 내공을 쌓은 나를 어찌 도울 수 있겠는가. 그러지 말고 이것을 내 제자놈에게 전해 주게.”

그러면서 만통음제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작은 비수였다. 하지만 묵향은 비수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급히 외쳤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를 믿고 빨리 운기조식이나 하십시오.”

“어쩔 수 없군. 내 동생 말대로 함세. 대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유언(遺言)은 남겨야 할 것이 아닌가?”

“빨리 말씀하십쇼. 시간 없습니다.”

“비수는 첫째에게. 그리고 금은 동생에게 주겠네. 제자놈들 중에서 그걸 제대로 쓸 수 있는 놈은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야. 받아주겠나?”

만통음제는 심각하게 꺼내는 말이었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묵향은 건성으로 대꾸했다.

“물론이죠. 감사히 쓰겠습니다. 자, 다 끝나셨으면 빨리.”

“뭐가 그렇게 급한가? 아직 숨넘어가려면 다소 여유가 있네. 다소 염치없는 부탁이기는 하지만, 내가 죽는다면 제자놈들을 부탁하겠네.”

“염려 마십쇼.”

“그리고…….”

“아, 내가 알아서 모두 다 완벽하게 처리해 줄 테니,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빨리 운기조식이나 하라는 말입니다.”

급기야 묵향이 벌컥 화를 내자, 만통음제는 어쩔 수 없이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묵향이 슬퍼할까봐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다. 독기가 내장까지 침투해 온 상태에서 공력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적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는 한편, 끓어오르는 독기를 억누르다 보니 공력 소모가 극심했던 탓이다. 이런 상태에서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때, 어디선가 어마어마한 공력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허억! 동생이 손을 쓴 건가?’

순간 그는 더욱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역혈의 심법을 통해 쌓은 마교도의 공력이 자신의 공력과 합해질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이 자신의 공력과 충돌을 일으키는 순간, 자신의 목숨도 끝날 것이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충돌할 것으로만 여겨졌던 두 개의 공력은 순식간에 합류하며 세차게 그의 몸속을 치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수가. 동생이 탈마의 고수라서 그런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경지가 높아진다고 해도, 내공의 기본적인 성질이 바뀔 수 있다는 말인가?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만통음제는 정신을 차리고 세차게 흐르는 기운을 조종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고 있던 그의 상처에서는 시커먼 피고름과 진물이 콸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속 깊이 퍼져 있던 모든 독기가, 그 부산물들과 함께 밖으로 밀려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의 반각 정도가 흘렀을까.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진물은 점차 연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흐름을 멈췄다. 잠시 후 만통음제는 눈을 뜨더니 감동섞인 어조로 묵향에게 감사했다.

“우형의 목숨을 살려주어 무어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구먼.”

묵향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섶으로 닦아낸 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오히려 형님을 사지로 보낸 꼴이 되어 제가 더 죄송합니다. 이제 독기는 어느 정도 몰아내셨습니까?”

“그런 것 같으이. 하지만 이미 완전하게 썩어 들어간 부분은 도려내야 할 것 같구먼.”

“그렇다면 빨리 양양성으로 가는 게 좋겠군요. 거기에는 실력 있는 의생들이 많으니 말입니다.”

묵향은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만통음제를 등에 업고 양양성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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