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요란스러운 말발굽소리가 들린 후, 곧이어 마화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교주님은 무사하셔?”
마화의 목소리에 이어 정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교주님께서는 괜찮으시지만, 만통음제 대협이 큰 부상을 당하셨어. 지금 의생이 치료 중이야.”
곧이어 내실로 통하는 문이 벌컥 열리며 마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묵향이 무표정하게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건 그의 몸은 무사한 것 같았으니까.
마화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묵향이 먼저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의 어조로 봤을 때 그 일이 전혀 궁금한 것 같지 않았지만, 마화에 대한 예의상 그걸 물어본다는 인상을 강하게 던져주고 있었다.
“정 대장에게 들으니, 철영에게 갔었다면서?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마화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벌컥 냈다. 묵향이 묻는 의도가 어찌되었건, 그녀는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었고 그녀는 때마침 그 돌파구를 찾은 셈이었다.
“아니, 그렇게 말이 안 통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뾰족한 마화의 외침에 묵향은 빈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여전했다. 왜냐하면 그는 마화가 왜 화가 난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마화의 분노를 달래주기 위해 다 알면서도 말을 걸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교주님께서 위험하시다고 철영 부교주에게 전한 후, 수하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가 달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퉁명스러운 어조로 교주님께서 직접 명령하셨는지 물으면서, 공식적인 명령서를 달라고 하더라구요. 기가 막혀서.”
묵향은 입속에 술을 털어 넣은 후, 부드러운 어조로 마화를 달랬다.
“그건 당연한 거야. 내가 명령하지 않는 한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그 녀석에게 명령해 놨으니 그로서는 달려가서 싸우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겠지. 마화가 이해하라구.”
“그래도 교주님의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으면 뭔가 반응이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쩌면 초류빈이었다면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철영은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 본교에서 성장한 만큼, 그 녀석은 철혈의 율법에 길들여져 있거든. 그놈이 내 명령에 위반되는 행동을 할 때는, 바로 나를 없애고자 할 때뿐이겠지.”
“어떻게 그런 무서운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죠?”
“어쩔 수가 없지. 나도 그놈과 똑같은 환경에서 성장했으니까. 어쨌건 나를 위해서 수고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 나는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예.”
서로 간에 대화가 끊기자 마화는 묵향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무표정한 묵향의 얼굴만 보고는 그가 갔던 일이 잘되었는지, 아니면 잘못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화경을 뚫었다는 만통음제까지 중상을 당해 실려왔을 정도다. 그만큼 장인걸 쪽에서 단단하게 준비를 하고 이쪽을 기다렸다는 말인데, 그런 상황에서 소연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지금 묵향은 딸을 잃은 아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그에게 그 얘기를 꺼내 상처를 다시 헤집어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마화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자, 묵향이 먼저 말을 걸었다.
“뭐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나?”
“만통음제 대협께서는 괜찮으신가요? 정삼에게 들으니 중상을 당하셨다고 하던데요.”
“위급한 고비는 이미 넘겼으니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썩어 들어간 살덩이를 도려낸 다음, 잘 치료하면 조만간에 완쾌하실 거야.”
“잘됐네요.”
그렇게 대답한 마화는 다시 한 번 묵향에게 소연에 대한 것을 물으려고 시도하다가 그만뒀다. 이번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관한 것은 무영문을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서문세가를 통해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마화는 묵향의 앞에 슬쩍 앉더니 그가 입으로 가져가려던 술잔을 가로채서 입속에 털어 넣은 다음, 묵향에게 술잔을 권하며 말했다.
“만통음제께서 위기를 넘기셨는데, 축배를 들어야겠죠? 자, 한잔 드세요.”
“왜 같이 대작이라도 해 주려고?”
“혼자 마시는 것 보다는 같이 마시는 게 좋잖아요.”
넉살 좋은 마화의 대답에 묵향은 키득거렸다. 그녀가 은근슬쩍 자리를 잡고 앉아 자신의 슬픔을 달래주려고 하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같이 마시고 싶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왜요? 뭐 할 일이 있으세요?”
“그래. 내가 아니고 네가.”
“제가요?”
“응. 잊고 있었는데, 천지문에 사상자가 아주 많은 것 같았어. 이쪽에서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주 힘들 거야.”
“알겠어요. 지금 바로 준비해서 떠나겠어요. 혹시 지시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그런 것은 없으니 마화가 알아서 처리해 줘.”
“예. 그럼 속하는 가 보겠습니다.”
마화는 묵향에게 예를 올린 후, 밖으로 나가며 생각했다.
‘중상자가 많다고 하셨으니,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겠는데? 일단 의생과 약재. 그리고 부상자를 운반할 마차는 필수겠고…….’
패력검제 마교를 가다
마교 교주와 헤어진 패력검제는 소연을 어깨에 들쳐 메고 서둘러서 마을을 찾아갔다. 마침 어두운 밤이었기에 망정이지, 거의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녀를 운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 분명했다. 패력검제는 소연을 숲 속에 숨겨놓은 다음 그녀에게 입혀놓을 만한 옷부터 구입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이 워낙 딱딱하게 굳어있었기에 도무지 그것을 입힐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패력검제가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그녀를 관 속에 집어넣어 운반하는 것이었다. 밤이 늦었기에 문을 연 장의사가 단 한 곳도 없었지만, 패력검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잠자던 장의사를 두들겨 깨워 관을 구입한 그는 재빨리 소연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소연을 관 속에 집어넣은 후, 그녀의 몸을 옷으로 덮었다. 나중에 총타에 도착하게 된다면 필요하게 될 테니까.
그런 다음 그는 관을 들고 객잔(客棧)으로 달려갔다. 객잔의 점소이는 웬 사내가 관을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지만, 패력검제가 돈푼을 던져주자 두말하지 않고 바로 방으로 안내했다. 만약 그 속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쥐어준다 해도 절대 방을 빌려주지 않았겠지만, 점소이는 전혀 그런 것은 예상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패력검제는 그 관이 마치 빈 관이나 되는 듯 아주 손쉽게 다뤘으니까.
방에 들어온 패력검제는 쓰러지듯 침상에 누워서 골아 떨어졌다. 아닌 밤중에 잠도 자지 않고 천 리가 넘는 거리를 전력 질주 했으니, 피곤하지 않다면 그건 사람도 아닐 것이다.
패력검제가 눈을 뜬 것은 해가 중천에 떠오른 다음이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운기조식부터 한 다음 객점(客店)으로 내려가 텅 빈 뱃속부터 채워 넣었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가 있는 식사로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패력검제는 방으로 돌아와 관 뚜껑을 열었다. 관 속에는 소연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다. 교주가 시전한 대법에 의해 완벽하게 냉동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패력검제가 관을 연 것은 교주의 당부 때문이었다. 지금이 겨울이라 그렇게 자주 해 줄 필요는 없지만, 하루에 두 번은 꼭 대법을 시전하여 그녀의 냉기를 지속시켜 줘야만 했다. 안 그러면 도중에 냉기가 풀리면서 소연의 목숨이 끊어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패력검제는 양손을 뻗어 한 손은 그녀의 심장에, 또 다른 한 손은 그녀의 단전에 장심(掌心)을 밀착시켰다.
‘처음 하는 건데 잘 될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이 상태에서 운기(運氣)를 어떻게 했더라?’
패력검제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대법이라고 해 봐야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 한 손은 이곳에, 또 다른 한 손은 이곳에 장심을 밀착시킨 후 운기를 하는 거야. 내가 기(氣)를 이끌어줄 테니 그 경로를 꼭 명심해. 그리고 그대로 하기만 하면 돼. 」
그런 교주의 말에 패력검제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떤 대법이오?」
「사람을 냉동시키는 거라고 할 수 있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이 방법을 써봤자 헛일이야. 그 뒷감당을 할 수가 없거든. 하지만 총타에는 유일하게 그 뒷감당을 해 줄 만한 사람이 하나 있지. 그분이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어쩌면 소연이를 살릴 수 있을 거야. 본좌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네.」
어찌 보면 아주 무책임한 소리였다. 하지만 패력검제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교주의 열기어린 표정에서 희미한 희망을 발견했다. 그는 여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이런 편법이라도 동원하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 분명한 소연이었으니까.
교주가 알려준 대로 기를 움직이자 패력검제의 손은 투명하게 변하면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옷! 뭔지 모르겠지만, 제법 시각적인 효과는 쓸 만한 걸?’
아직까지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실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패력검제는 교주가 알려준 대법이 보여주고 있는 시각적 효과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의 손은 투명할 정도로 희게 변하기 시작했고, 벽옥처럼 푸르스름한 광채를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푸르스름한 광채였다. 냉동시킨다고 하더니 과연 교주가 알려준 대법이라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빙공임이 분명했다.
‘이거 뜻하지 않게 기연을 얻은 셈인가? 이 정도 수준의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예상보다는 공력의 소모가 조금 크기는 했지만, 뭐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니까 제법 쓸 만하겠어. 그런데, 이걸 실전에서 쓴다면 어떨까?’
혼자서 좋아하며 이런저런 초식들을 생각하고 있던 패력검제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이거 비슷한 무공이 있다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을꼬? 마공이었던가? 아니야. 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봤을 때 정종무공이 분명해. 그렇다면 마교 교주가 어째서 이런 무공을 익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먼.”
패력검제가 마교의 정예들과 직접적인 대결을 자주 벌였었다면 곧바로 해답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소수마공(素手魔功)의 변형된 형태인 무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마교의 간판급 무공들 중의 하나인 소수마공을 왜 그가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그가 지금껏 들었었던 소수마공과 방금 전 자신이 사용한 대법이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소수마공이라고 하면 모두들 소수(素手) 즉, 흰 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투명하고 하얀 손이 맞기는 하지만, 그의 경우 하얗다 못해 푸르스름하게 보일 정도의 깊이를 담고 있었다. 더군다나 소수마공의 경우 상대를 압도하는 지독한 마기를 뿜어낸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것은 그 어떤 사이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패력검제는 이것이 소수마공일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못했던 것이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패력검제는 길을 떠났다. 그는 관을 어깨에 메고 가급적이면 소연에게 큰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경공을 전개하여 달려갔다. 마차를 빌리면 간단히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생각되겠지만, 마차의 구조상 노면의 굴곡에 따라 잦은 흔들림과 충격이 고스란히 소연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다. 교주는 최대한 충격을 주지 말아줄 것을 그에게 당부했었다. 그 때문에 패력검제는 관을 들고 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총타까지 1만 리에 달하는 엄청난 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런 만큼 얼마 전에 교주를 추격하는 만용을 부릴 때처럼 전력 질주는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아직까지도 근육들은 피로가 안 풀려서 제대로 된 힘을 못 내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쉬엄쉬엄 달려갈 수도 없었다. 교주가 가급적 이 일을 빨리 완료해 주기를 원했었으니까. 교주는 아무리 늦어도 칠주야(七晝夜)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단서까지 붙였었다. 그 이상 경과되면 소연이 영원히 잠들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그렇다면 그가 하루에 달려야 하는 거리는 최소한 1천5백 리는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 한다.
“그때 내가 왜 교주를 따라갔을꼬? 허허이∼, 참. 내가 뭔가에 씌었던 게야.”
낮은 어조로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패력검제는 교주와의 약속을 어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럴 셈이었다면 그는 처음부터 못하겠다고 거절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 * *
아무리 봉우리의 수가 많다고 해도 결코 10만 개씩이나 될 리 없었지만, 어쨌건 사람들은 수많은 봉우리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십만대산(十萬大山)이라 부르고 있는 거대한 산악이 저 오지(奧地) 깊은 곳에서 하늘이라도 뚫을 듯 솟아올라 있다. 이곳은 저 먼 옛날부터 마교의 본거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는데, 워낙 튼튼한 방비와 천연적인 악조건으로 말미암아 단 한 번도 외세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십만대산은 수십 겹의 방어선이 쳐져 있었는데, 그것을 크게 나눈다면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바깥쪽은 외총관 휘하의 외곽 경비대원들이 맡는 구역으로써, 그들의 무공수위는 비교적 낮았다. 그리고 안쪽은 내총관 휘하의 자성만마대원들이 투입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그 방비가 튼튼했다. 그리고 총타로 들어오는 가장 중요한 통로들은 염왕대가 맡고 있었으며, 그 외 다른 단체들은 총타 내부를 경계하거나 빈자리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대기조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요 무력세력들의 거의 대부분이 총타를 떠나 버린 상태였다. 관지 장로가 흑풍대를 이끌고 떠난 것을 시작으로, 얼마 전에는 철영 부교주가 혈랑대와 수라마참대, 그리고 천랑대를 이끌고 교주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 버렸다. 그렇기에 지금 현재 십만대산 내부의 경비는 오로지 자성만마대와 염왕대의 고수들만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곳은 십만대산의 가장 초입으로 연결되는 널찍한 관도상. 이곳을 경계하고 있는 것은 외곽 경비대 제15조로서 그 수는 총원 112명. 그리 무공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기에, 마교의 입장에서는 그냥 생색용으로 앞에 세워놓은 무사들이었다.
도로상에 목책(木柵)을 세워놓고 검문하고 있던 마졸(魔卒) 셋이 갑자기 쑤근거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웬 사내가 관처럼 생긴 커다란 나무 곽을 등에 지고 눈길을 헤치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달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으로 보아 짐은 그 크기에 비해 아주 가벼운 듯 보였다. 그렇다면 관 속의 내용물이 매우 수상쩍어진다. 저 정도 크기에 그토록 가벼운 물건이 존재하다니 말이다.
지금껏 그들이 이곳에 있으면서 총타로 공급되어 들어오는 각종 물품을 실은 마차들을 수없이 검문해 봤지만, 저런 행색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그들은 더욱 의아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워낙 추워서 들어오는 물건이 하나도 없을 줄 알았는데, 뭔가 하나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
“서라! 그 곽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입증부터 내놓고, 곽을 열어라.”
상대가 자신들의 앞에 멈춰 서자, 경비무사들 중의 한 명이 품속을 뒤져 검사도구를 꺼내들었다. 혹시 물품 속에 독극물이라도 들어 있는지, 그런 것을 검사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여기에 처음 와 보는 모양이었다. 방문자는 우선 곽을 옆에 내려놓고 출입증부터 제시해야 할 텐데, 그는 곽을 땅바닥에 내려놓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쪽이 출입증의 진위 여부를 먼저 판단한 후, 출입증에 기록된 내용과 곽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이 동일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때 독극물 검사도 함께 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하지만 그는 곽을 등에 진채 품속을 뒤져 뭔가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