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4화 (520/930)

귀로(歸路)에 생긴 일들

마교에서 벗어나 2시진 동안 줄곧 달리다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객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자꾸나.”

“예.”

물걸레로 탁자를 닦고 있던 점소이가 재빨리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옵쇼!”

점소이는 빈자리를 권하며 싹싹하게 말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여기 잘하는 게 뭐냐?”

이때, 객잔 안으로 마기가 물씬 풍기는 흑의사내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점소이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패력검제가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해 주고 말이다.

“어서옵쇼, 손님. 날씨가 참 좋죠?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비굴하게 미소지으며 말하는 점소이의 모습은 확실히 이곳이 마교의 영향권임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것이었지만, 막 점소이에게 주문을 하려던 패력검제로서는 썩 기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불현듯 저놈들을 박살 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드는 패력검제였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이곳은 마교의 영향권 안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소연이 원하는 대로 하루라도 빨리 양양성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이놈들과 노닥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저놈들이 아무리 총타에서부터 슬금슬금 따라오며 신경을 거슬러도 참아야만 했다.

이때, 패력검제로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마인들 중 한 명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점소이를 향해 호통을 쳤던 것이다.

“저분들의 주문부터 받지 않고 어찌 이리로 오는 것이냐?”

“예? 아, 알겠습니다요.”

힘없는 점소이는 하라는 대로 해야만 했다. 그는 재빨리 패력검제에게로 돌아와서 억지로 미소지으며 물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방금 전에도 물었지만, 여기 잘하는 것이 뭐냐?”

점소이가 양쪽의 주문을 다 받고 주방으로 가 버린 다음, 패력검제는 마인들을 차근차근 관찰했다. 지금까지 패력검제가 살아오며 이토록 지독한 마기를 뿜어내는 인물들은 별로 본 적이 없었다. 있다면 요 근래 마교 총타에 가서 본 몇몇 인물들이 다였을 정도다.

그들이 내뿜는 마기가 얼마나 지독했으면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곳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던 모든 손님들이 핼쑥해진 안색으로 모두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점소이는 저쪽 구석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이곳에 있다는 것이 그의 두려움에 질린 표정이 말해 주고 있었다.

“이보게. 자네들은 누군가?”

상대의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의외로 공손한 대답이 날아왔다.

“저는 여문기(呂文起)라고 하고, 이들은 제 수하들입니다.”

여문기라. 들어 본 적도 없는 이름이다. 사실 마교의 강력한 고수들은 총타에 꽁꽁 처박혀 있을 뿐, 무림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패력검제로서는 그 이름만으로는 그가 누군지 알 도리가 없었다.

“호, 여 대협이셨구려. 나는 서진이라고 하오. 그리고 이쪽은 내 동행이고.”

이런 ‘대마두’를 향해 ‘대협’이라는 단어를 쓰게 될 줄은 패력검제는 꿈속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 대마두셨구려’하면 괜히 싸움 거는 거 밖에는 안 될 테니 말이다.

“알고 있습니다. 패력검제 대협.”

“내가 누군지 알고계시니 한 가지 물어보겠소이다. 줄곧 우리를 뒤따라오던데, 그 이유가 뭐요? 우연히 길이 겹친 것이오?”

“저는 대호법님으로부터 아가씨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동했습니다.”

“아가씨?”

너무나도 의외의 대답이었기에 잠시 멍하게 있던 패력검제는 소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이 아이를 말씀하시는 것이오?”

“예.”

“허어, 그것 참…….”

깜빡 잊고 있었는데, 소연은 교주의 딸이다. 그런 만큼 이들이 소연을 호위하겠다고 해도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참, 대호법의 명령으로 출동했다고 했소?”

“예.”

그렇다면 이들은 패력검제도 말로만 들었던 호법원의 고수들임이 틀림없었다. 호법원이라면 교주 및 그 측근들 중 가장 중요한 인물들만을 경호한다는 마교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정예 집단이다. 그들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교가 무림을 정복하겠다고 나섰을 때였다. 교주가 교 밖으로 나온 만큼, 그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서 나왔던 것이다. 그런 교주를 정파의 고수들이 없애기 위해서는 호법원이 치고 있는 보호벽부터 뚫어야 했기에, 그들과의 정면 충돌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때, 그들이 보여줬던 엄청난 전투력. 그것은 정말 경천동지(驚天動地) 그 자체였다.

패력검제는 새삼 그들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내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그가 들었었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아니, 저들 개개인에게서 풍겨나오는 엄청난 마기로 봤을 때, 오히려 그 소문이 모자라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때, 소연이 여문기에게 말했다.

“대호법께서 저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곁에는 패력검제 대협께서 계신 만큼, 여 대협께까지 수고를 끼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교로 돌아가 주세요.”

여문기는 난처한 표정으로 정중하게 대답했다.

“대협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말씀을 낮추십시오, 아가씨. 속하, 참으로 듣기가 민망합니다.”

여문기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소연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저런 엄청난 고수에게 하대를 할 만큼 간이 크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보다 신분이 낮다고 막 대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연이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자, 여문기는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속하도 패력검제 대협께서 대단하신 분이고, 그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아가씨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대호법님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파견된 저희들의 사정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이대로 저희들이 교로 돌아간다면 크게 문책을 당하게 됩니다, 아가씨.”

듣고 보니 여문기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소연은 뭐라고 말은 못하고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패력검제만 바라봤다.

“…….”

이윽고, 패력검제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소연에게 말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패력검제는 이번에는 여문기를 향해 말했다.

“여 대협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나로서도 한 가지는 말 해두고 싶은 게 있소이다.”

“말씀하십시오.”

“호법원에서 소연이를 호위하겠다고 따라오는 것은 그쪽의 법도가 그런 것이니 내가 참아야겠지요.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여 대협 일행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오. 우리 주위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는 수많은 고수들은 또 뭐요? 언뜻 느껴지기에도 10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이들도 호법원의 무사들이란 말이오? 한 명을 호위하는 것으로는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소?”

여문기는 대호법의 명령으로 호법원 세력의 절반을 이끌고 왔다. 모두들 마기가 강한 놈들이기는 했지만, 그 대부분이 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도 패력검제가 그걸 알아본 것이다.

“대호법께서는 이 정도는 되어야 아가씨를 충분히 호위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패력검제와 달리 소연은 그것을 미처 못 느꼈지만, 여문기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분들은 교에 돌려보내세요.”

“예? 하지만…….”

“이곳에는 패력검제 대협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여 대협과 동행하신 분들도 충분한 실력들을 지니고 계시니 더 이상의 호위는 불필요합니다. 그러니 제발 그들만은 돌려보내세요.”

여문기는 한참 동안 난처한 표정으로 궁리했다. 하지만 소연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었기에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명령을 내렸다.

“자네가 가서 외곽 호위를 맡고 있는 녀석들을 돌려보내게.”

“옛, 우호법님.”

그가 달려 나간 후, 여문기는 소연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속하가 아가씨의 부탁을 들어드린 만큼, 아가씨께서도 속하의 청을 좀 들어주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우선 여 대협이라는 호칭은 속하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드려야 합니까?”

“정 이름을 부르시기 어려우시다면 그냥 우호법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예.”

“그리고 원래는 속하가 원거리에서 호위를 해 드리는 것이 옳으나, 이렇게 아가씨 앞에 나선 것은 아무 말 없이 아가씨를 따른다면 혹여 불안감을 드릴 수도 있기에 저희들의 소개를 올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문기는 자신의 주위에 앉아 있는 9명의 무사들을 소연에게 소개했다. 그런 다음 여문기는 제발 자신들에게 하대를 해 달라는 것으로 그의 청을 끝마쳤다.

“마지막 청은 받아드릴 수 없어요. 저는 천마신교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혈통만으로 우호법님 같으신 분들에게 하대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휴우∼, 정 뜻이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일단 첫 만남을 통해 호법원에서 파견된 호위무사들과의 통성명은 끝났다. 그들의 동행을 소연과 패력검제가 어쩔 수 없어서 허락했지만,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워낙 살벌한 것이었기에 길동무로서 썩 좋은 상대라고는 볼 수 없었다.

“수석장로님께서 회신을 보내오셨는데, 소 소저께서는 무사하시답니다.”

마화의 말에 묵향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아르티어스에게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연을 무사하게 살려내다니. 과연 그는 불가능을 모르는 존재인 모양이다.

“정말 잘되었군, 잘되었어.”

“축하드립니다, 교주님.”

“그래, 지금 그 아이는 어디에 있다고 하던가? 대접에는 소홀함이 없겠지?”

“도착하신 다음날 오후, 수석장로님께서 만류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양양성을 향해 패력검제 대협과 함께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을 텐데, 벌써 출발했다고?

“제가 그곳에 있지 않았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석장로님의 회신에 의하면 완쾌되셨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소 소저께서는 그곳에서 살아남은 동문들의 안위가 걱정되셨던 것이 아닐까요?”

“그, 그렇겠군.”

일단 소연이 무사한 것이 확인되자, 묵향은 이번에 있었던 작전 전체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를 되찾게 되었다. 한동안 말없이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묵향을 마화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묵향이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에 대해 자네가 입수한 모든 정보를 이리 가져와 봐.”

“예.”

마화가 입수한 정보라고 해 봐야 무영문에서 전해준 것이 다였다. 묵향은 자료를 쭉 훑어본 후 고개를 갸웃 하더니 마화에게 물었다.

“천지문의 위상이 그렇게 높았었나?”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이 자료에 따르면 천지문은 매복조로 남고, 나머지는 옆으로 삥 돌아가서 놈들의 이목을 교란시키는 작전을 쓰는 모양인데 말이야.”

“예. 관지 장로님도 아마 그런 계책을 쓰는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하셨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런 계책을 썼다면, 이곳에는 가장 신뢰하는 최정예를 배치했을 거야. 잠시 동안 나타날 수 있는 적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일격을 가한 후 재빨리 후퇴해야 하니까.”

“그렇다면 교주님께서는 팽선이 일부러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너는 지금 당장 나가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라. 과연 팽선이 왜 이곳에 천지문을 남겨둔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봐라.”

“옛, 교주님.”

마화가 달려 나간 후, 묵향은 주먹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만약 이것이 팽선 그놈의 농간이라면 기필코 용서하지 않겠다.”

소연과 패력검제는 식사를 마친 후 다시금 서둘러 길을 떠났다. 이번에는 그들 둘만이 아니라 10명이나 되는 꼬리를 매달고. 패력검제는 소연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려갈 수 있었지만, 소연의 속도에 맞춰 자기 딴에는 천천히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 뒤를 여문기와 그가 이끄는 9명의 호법원 고수들이 뒤따라왔다.

진팔이나 다른 천지문도들의 안위가 궁금했던 소연이었기에, 그녀는 최대한 빨리 양양성에 도착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패력검제가 길을 서두르기는 했지만, 그는 산야를 관통하는 지름길을 선택하지 않고 관도 부근을 따라 이동하는 것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숙식을 해결하는데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만 리가 넘는 길을 달려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패력검제가 생각했을 때, 소연은 죽을 고비를 얼마 전에 넘긴 상태였다. 그녀의 몸이 얼마나 상태가 좋아졌는지는 그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백 보 양보하여 그녀의 몸 상태가 완벽해졌다고 할지라도 그런 짓을 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 더군다나 그런 상태에서 산야를 가로지르며 부실한 음식을 섭취하고 노숙까지 감행한다면 그녀의 몸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패력검제는 길은 서두르되, 양질의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로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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