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 큰일 났습니다, 대주님.”
전황을 표시한 지도를 쳐다보던 관지는 급하게 보고를 하는 부하를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를 자랑하는 흑풍대의 일원으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부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
“지금 교주님께서 팽가에 쳐들어 가셔서…….”
관지는 그 뒷얘기는 듣지도 않고 지도를 내팽개친 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워낙 서류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였기에 혹여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던 그였다. 물론 팽가를 상대로 혼자 쳐들어간 묵향을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보다 묵향의 성질을 건들이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마화!”
“예, 왜 그러십니까? 장로님.”
“큰일 났다. 빨리 흑풍대를 출동 준비시켜라.”
흑풍대 대원 전체가 항시 출동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나라와의 대치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일부는 성 주변을 정찰하거나 물밑 작전에 투입되지만, 그 외의 인원은 개인 훈련을 하거나 술을 마시든 장원에서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 그건 무슨 말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 바로 전투 가능한 인원들을 모아라. 중무장을 갖출 필요도 없다. 검 한 자루라도 들고 빨리 모이라고 해!”
관지의 명령에 마화는 급히 끌어 모은 천 명 정도의 흑풍대원들을 이끌고 팽가가 묵고 있는 장원을 향해 달려 나갔다. 모두들 장검 한 자루만 달랑 들고 있을 뿐, 워낙 급하게 나온 탓에 암기를 휴대한 놈조차 거의 없었다. 그건 흑풍대원들이 작고 휴대가 편한 암기보다는 철령전이나 비도(飛刀) 계열의 크고 묵직한 암기만을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화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어 있었다. 팽선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묵향을 중심으로 백여 명에 달하는 팽가의 무사들이 나자빠져 있었다. 간혹 신음성을 흘리거나, 바닥을 기어가는 자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몽땅 다 죽여 버린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그나마 마화에게는 큰 위안이었다.
묵향을 중심으로 거의 2천이 넘는 팽가의 제자들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고, 이 진귀한 광경을 구경한답시고 인근의 문파에서 구경나온 자들이 거의 만 명에 육박하는 실정이었다. 거기에 마화가 이끄는 천여 명의 흑풍대원들이 도착한 것이다.
팽가의 무사들은 흑풍대의 등장에 당황한 듯했다. 전면전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상황을 종결할 것인가. 팽지량 장로는 순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상황을 끝내기에는 자존심의 상처가 너무나도 컸다. 그렇다고 대대적으로 전면전을 벌이기에도 만만치가 않다. 마교 교주가 거느리고 온 흑풍대의 수는 9천이 넘는다. 그리고 그들의 전투력은 금나라와의 전투를 통해 이미 입증된 상태였다. 만약 그들과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양양성에 파견 나온 팽가의 무사들은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비감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던 팽지량 장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웅성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평소 안면이 있던 문파의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팽지량 장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그대들은 본가가 이런 무뢰배들의 공격을 받고 수모를 당하는 것을 그냥 구경만 할 거요?”
팽지량 장로의 추궁에 종리세가(鍾里世家)의 가주 패도(覇刀) 종리영우(鍾里英優)가 앞으로 나서며 묵향에게 말을 걸었다. 그 역시 내키지는 않지만 말을 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보시오, 교주. 도대체 왜 팽가에 난입하여 이런 무도한 일을 벌인 것인지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 주시구려.”
묵향은 이제 완전히 걸레가 되어 있는 팽선의 옆구리를 한 대 더 걷어찬 후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
“본교는 천지문과 협정을 맺은 관계임을 모두들 잘 알 것이다. 여기 있는 팽선이 천지문과 무슨 원수가 졌는지 본좌는 알지 못하나, 이자는 천지문도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아 막대한 피해를 안겨 줬다. 본좌가 손을 쓴 것은 그 때문이다.”
종리영우는 침중한 표정으로 팽지량을 바라보았다. 만약 묵향의 말이 사실이라면 쉽게 끝날 일이 아니다.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같이 싸우는 문파를 사지로 몰아넣는다면 누가 무림맹의 명령에 따르겠는가. 이 말이 사실로 들어난다면 맹의 권위는 추락할 것이 분명했다.
“팽지량 장로, 귀하가 천지문에 큰 피해를 안기기 위해 일부러 사지로 내몰았다는 교주의 말이 정말이오? 사실대로 말해 주기 바라오.”
그때 정신을 잃은 듯 보이던 팽선이 몸을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드는데 참혹한 모습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는 듯 팽선은 죽을힘을 다해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었다. 물론 그런 의도로 일을 벌이긴 했지만 아무도 모른다. 자신만 입을 굳게 다물면 끝날 일이다. 묵향의 말에 그렇다고 시인하면 자신의 복수는 물 건너가는 것뿐만 아니라, 자칫 팽가가 무림의 공적으로 몰리게 될 일이다. 그걸 잘 아는 팽선이기에 필사적으로 반박했다.
“마, 말도 안 되는 어, 억지외다.”
이빨이 몇 개 빠져서인지 발음이 어눌하기만 했다. 하지만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팽지량도 팽선의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자칫하다가는 팽가가 모든 죄를 뒤집어쓸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들 아실 겁니다. 이번 작전에서 피해를 당한 것이 어디 천지문 한 곳뿐이오? 그 교활한 오랑캐들의 계책에 넘어가, 본가는 물론이고, 거기 참가했던 모든 문파들이 다 막심한 피해를 입었소이다. 만약 이 일이 팽 장로의 지휘 능력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노부로서도 할 말은 없소. 그가 판단 착오를 해서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 줬다는 것은 더 이상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니 말이오. 하지만 천지문을 상대로 차도살인의 계책을 썼다는 누명만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소이다.”
팽지량의 말에 묵향은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것이다. 물론 팽선의 말실수를 이끌어 내기는 했지만 그 당시 그 말을 들은 건 자신뿐이다. 팽선을 묵사발 내기 전에 살살 구슬려 확실한 증거를 찾아냈어야 했는데,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손부터 나간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 그러나 묵향은 차후 일어날 사태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벌레 같은 놈들이 자신을 오해해 봐야 어쩌겠는가.
묵향은 주위를 오만하게 둘러보며 소리쳤다.
“본좌는 이놈이 죄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른 적절한 응징을 가했을 뿐이다. 만약 팽가 쪽에서 피 값을 받겠다면 상대해 줄 용의는 충분히 있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끝이라는 듯, 묵향은 주위 사람들은 안중에 두지도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주위에 흑풍대 무사들이 깔려 있는 상황이었기에 섣불리 아무도 손을 쓰지는 못했다. 여기서 칼을 휘두르려면 흑풍대를 상대로 대 혈전을 벌일 각오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옆으로 다가오며 마화가 근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이대로 그냥 가도 됩니까? 교주님.”
그 말에 묵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복수를 하고 싶다면 나중에 찾아오겠지. 뭐, 제발 그래 준다면 좋겠지만 말이야.”
그동안 쌓여 있던 짜증을 말끔히 풀기는 했지만 그래도 묵향의 분노는 쉽게 가실 줄 몰랐다. 그만큼 중상을 당한 소연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던 것이다.
옥화무제의 꿍꿍이
묵향이 양양성에서 사고 친 게 무림맹에 보고되지 않았을 리 없다. 맹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감찰부주에게 되물었다.
“팽선을 아예 폐인으로 만들었다고?”
“예, 맹주님.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합니다. 그를 치료한 의생의 말로는 뼈가 완전히 가루가 난 상태이기에 완치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 결국 절단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답니다.”
팽선이 벌인 일에 대해서는 맹주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이미 무영문에서 보내 온 보고서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무영문에서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맹에 알리고, 그 사실을 교주가 알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후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무영문에서는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교에 보낸 자료에 왜곡을 가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맹에서도 마교와의 공조 체제를 순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춰 교주에게 보내지는 자료에 대해 정보 단속을 해 줄 것을 요청해 왔던 것이다.
“허허,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구먼. 혼원패권(混元覇拳)의 잘못을 어떻게 그가 눈치 챘단 말인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무영문의 협조 공문을 받는 즉시, 개방과 서문세가에 통보하여 만약 마교 쪽에서 이러한 정보에 대한 협조를 구해 온다면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까지 했었습니다. 그리고 차후에 서문세가와 개방에서 마교 쪽에 보낸 문서의 사본까지 받아 확인 작업까지 했었습니다. 따라서 절대로 그 문서들을 통해서는 혼원패권 장로에 대한 혐의점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겁니다.”
감찰부주가 워낙 자신 있게 말했기에, 맹주는 교주의 행동을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무량수불…, 그렇다면 그는 무슨 배짱으로 혼원패권을 그렇게 만든 거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본맹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걸까?”
“그럴 가능성도 없잖아 있습니다. 사실, 그런 다툼을 사전에 방지하자고 무영문에서 정보를 왜곡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어찌 되었건 일은 벌어졌으니 어쩌겠습니까?”
잠시 궁리하던 맹주가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일단 항의문을 발송하는 게 예의겠지?”
“초안을 준비해 두라고 지시했으니, 내일 중으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맹주님.”
“어쩌자고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지…, 무량수불…….”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고 있는 맹주를 향해, 감찰부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사건 덕분에 얻은 것도 있습니다.”
“얻은 게 있다? 그래, 그게 뭔가?”
“이번에 왕첨 당주가 꽤나 재미있는 가설을 세워서 보고서를 올렸더군요. 그게 꽤나 그럴듯해서…….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맹주는 그다지 흥미 없다는 어조로 대꾸했다.
“말해 보게.”
“놀라지 마십시오, 맹주님. 어쩌면 교주에게 혈육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묵향은 지금껏 그 어떤 약점도 보이지 않고 있는 완벽에 가까운 - 어떤 의미로 보면 괴상한 - 인간이다. 그 나이를 먹을 때까지 결혼을 안 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단 한 명의 여자와도 사귀었다는 증거조차 찾아낼 수 없는 별종인 것이다.
사람이라면 응당 성적인 본능이라는 게 존재하기 마련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는 중도 아니었고, 도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돌부처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 필히 자신의 성적 욕구를 다른 방향으로 배출하고 있을 거라는 추측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간에는 그가 동성연애자라는 둥, 가학성 변태라는 둥… 별의 별 억측이 난무하고 있었다.
맹주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시큰둥한 어조로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을 뿐이다.
“말도 안 되는 추측은 곤란해.”
듣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극대화할 수 있는 어순으로 말했는데도 맹주의 반응은 의외였다. 감찰부주는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자, 들어 보십시오. 마교가 협정을 맺은 건 천지문 단 한 곳뿐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거의 불평등에 가까울 정도로 비굴한 협정을 맺어야만 했을까요? 천지문은 그럴 만한 가치가 한푼도 없는 3류문파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맹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글쎄…, 그 부분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가 아닌가? 가장 유력한 가설은 무림맹 체제를 흔들어 보기 위해 일부러 천지문에 접근한 거라고…….”
“예. 감찰부에서도 그렇게 추리했었지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자료들을 뒤져 본 결과, 천지문과 마교의 협정을 참관한 용천익 당주가 올린 보고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천지문과 협정을 맺던 날, 당시 마교측 대표였던 부교주 묵향이 진양 문주의 둘째 아이에게 지독한 수법을 사용해 괴롭히며 즐거워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도 있었나? 괴이한 일이로구먼.”
맹주가 작긴 하기만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자 감찰부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보고서는 묵향이란 인물을 가학성변태로 매도하고 있었습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의 성격이 괴팍한 건 사실입니다만, 협정을 막 끝마친 축하할 만한 자리에서, 그것도 진양 문주의 둘째 아들을 상대로 그런 해괴망칙한 취미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만큼 파렴치한 인물은 아니잖습니까?”
“흠, 노부의 생각도 그렇다네.”
“거기에 착안한 왕첨 당주는 마공들 중에서 어린아이에게 시전하며, 뭔가 무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그런 게 없나 찾아봤답니다.”
무공 증진이라는 말이 나오자 맹주는 다음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찾아볼 필요나 있을까? 그가 아이에게 추궁과혈(椎躬過穴)을 해 줬다면, 꼭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물론 아이에게 추궁과혈 따위를 해 줄 사람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추궁과혈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꼭 상대를 두들겨 패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감찰부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추궁과혈이 아닙니다, 맹주님. 그가 그때 사용한 것은 진골축근마공(珍骨縮筋魔功)이라는 마교의 전설적인 대법이었습니다. 사람을 상하게 만드는 무공이 아니다 보니, 마교 밖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공이지요.”
새로운 무공에 맹주도 호기심을 나타냈다.
“진골축근마공? 어떤 효능이 있는데 전설적인 대법이라는 건가?”
“예. 본맹의 자료실에 그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감찰부주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사실이었겠지요. 놀라지 마십시오, 맹주님. 그 대법은 벌모세수(伐毛洗髓)보다 훨씬 뛰어난 효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대법에 성공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성공하기만 한다면 환골탈태한 것과 유사한 근골로 만들어 준다고 고서에 기록되어 있더군요.”
그런 엄청난 수법이 있다는 말에 맹주는 혹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노련한 고수답게 그 대법이 지닌 약점부터 파악하려고 애썼다.
“성공하기 힘들다면…,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혹시 혈도가 터져 죽는다든지…….”
“아닙니다. 실패하면 다시는 대법을 받지 못한다는 것뿐, 다른 부작용은 없다고 합니다.”
그 말에 맹주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오,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나구먼.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무공을 꼭 입수하도록 하게. 본문이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될 테니 말이야.”
만약 그 대법만 획득할 수 있다면, 무당파는 소림과 쌍벽을 이루는 게 아니라, 무림 최강의 독보적인 문파로 거듭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맹주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대법을 받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고 합니다. 꼭 분근착골을 당하는 것 같이 극심한 고통이 몰려오는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맹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애를 고문했다는 말이 나왔던 거로구먼.”
“예. 어쨌건 대법은 성공한 모양입니다. 그 나이 대에 비해 진팔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진팔이었나? 어쨌건, 자네가 그렇게 칭찬하는 걸 보면 그 시주가 꽤나 우수한 실력을 지닌 모양이군.”
“예. 아직 40살도 안 됐는데, 벌써 절정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렇게나?”
맹주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명문대파가 자신들이 지닌 모든 힘을 다 쏟아서 키우는 적전제자들이나 그 정도 발전 속도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천지문은 그리 대단한 문파가 아니지 않는가.
“놀라운 얘기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데 왜 교주에게 혈육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의 설명에 진양 문주의 둘째 아들 얘기가 나오는 겐가?”
“진팔과 교주와의 인연이 거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으니 그런 추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주는 지금도 양양성에서 진팔에게 공공연하게 무공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합니다.”
맹주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꽤 놀란 모양이다.
“어떻게 그런 귀중한 정보를 오늘에야 노부에게 말하는 거지?”
“속하가 맹주님께 보고를 올리지 않은 것은, 그건 누가 봐도 제대로 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고?”
감찰부주는 고문에 가까운 혹독한 교육법에 대해 설명했고, 맹주는 그제야 그 사실이 왜 자신에게 보고 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감찰부의 첩자들은 그걸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교주가 짜증을 해소하기 위해 생각해 낸 한 가지 방편쯤으로 추측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천지문이 괴멸당할 뻔했을 때, 그때도 교주는 천지문도들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그 먼 거리를 달려갔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렇다면 교주가 직접 거기까지 달려간 게 진 시주 때문이었단 말인가?”
“예. 왕첨 당주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더군요. 사실, 그렇게 따지면 지금까지 그와 천지문에 얽힌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맹주님.”
그 말에 맹주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와 진팔이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사실일지도 모르겠구먼. 좀 더 확실하게 조사해 봐. 진팔의 생모와 그 가족 관계 등을 말일세. 어쩌면 그에 대한 약점을 한 가지쯤 틀어쥘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미 첩보조를 보냈습니다.”
맹주와 감찰부주가 교주의 약점을 쥘 수 있을지도 모르는 크나큰 기회를 잡았다고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옥화무제는 묵향의 연락을 받고 기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묵향이 그녀에게 급전을 보내, 만현에서 만나기를 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급전이 도착한 시간이 아주 묘했다. 팽선이 묵사발이 났다는 보고를 받고, 총관과 대비책을 의논하고 있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팽선에 대한 정보 조작을 해 놨었기에, 그게 들통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에 기절할 지경이었다.
옥화무제는 절망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어조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교주가 왜 만현(萬縣)에서 날 만나자고 하는 거지? 혹시 나를……?”
“그건 아닐 겁니다, 태상문주님. 그의 성격상 태상문주님께서 정말 의심스러웠다면, 당장 양양성이나 그 인근으로 달려오라고 통보했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만현에서 만나자고 한 날짜까지는 여유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 그렇군요.”
약간 안심이 되었는지 그녀의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여유가 좀 생기자, 그녀의 머리도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총관의 말이 옳다. 그는 배신자를 싫어했다. 그리고 뭔가를 처리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단숨에 해치워 버린다. 만약 그가 자신을 의심했다면 이미 손을 써 왔을 것이다.
“어쩌면 의심은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정도만 가지고 본녀를 없앨 수는 없을 거예요. 나는 아직 그에게 쓸모가 있을 테니까.”
“혹시 만나실 때 유도 심문에 넘어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딱 잡아떼십시오.”
“그건 염려할 필요 없어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그녀의 뇌리 속에는 어느 순간부터 사지가 박살난 처참한 몰골의 팽선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