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9화 (535/930)

청호 장로는 다른 장로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노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데 최선을 다했다. 괜히 성질이 급한 장로들 중 한둘이 마교 쪽에 감당 못할 짓이라도 해 버리면 큰일이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맹주에게 회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걸어갔다. 이때, 공수개 장로가 맹주에게 드릴 말이 있다고 했으므로 그는 공수개 장로와 함께 맹주실로 들어갔다.

마침 맹주는 감찰부주와 담소를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게, 이리 앉게나.”

둘이 자리에 앉자, 맹주는 청호 장로에게 물었다.

“그래, 장로들의 생각은 어떻더냐?”

청호 장로와 감찰부주는 무당파의 은거고수였던 태극검제가 맹주에 선출되었을 때 무림맹에 데리고 온 인물들이다. 둘 다 태극검제의 사질들로서, 뛰어난 실력과 인품을 지닌 무당파의 고수들이었다.

맹주의 물음에 청호 장로는 쓸데없는 부분은 다 빼고, 회의 결과를 간략하게 간추려 대답했다. 그걸 다 들은 맹주는 수염을 쓱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결국은 두고 보며 관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맹주님.”

“청호 사질, 교주가 팽가와 사단을 벌인 이유가 천지문 때문이라고 했느냐?”

“예, 서문가주가 보내온 전서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금나라를 상대로 벌였던 작전에서 천지문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청호 장로는 그때 있었던 작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보고서를 슬쩍 맹주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맹주는 그걸 펼쳐 보지 않고 청호 장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마교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더냐?”

“조금 의심스러운 점은 있었습니다.”

맹주는 감찰부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청수 사질, 네 생각도 그러하냐?”

“예, 저도 사형과 같은 생각입니다. 천지문에서 큰 피해를 당한 것은 유감이지만 증거도 없는데, 팽선 같은 원로고수를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였습니다. 혹, 교주가 시비를 걸기 위해 일부러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는 맹주의 시선이 공수개 장로에게로 옮아갔다.

“공수개 장로의 생각은 어떻소? 기왕에 여기 오셨으니 개방의 고견을 들려주시구려.”

공수개 장로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저도 그 일 때문에 맹주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뵌 겁니다.”

공수개 장로는 청호 장로와 감찰부주의 눈치를 힐끗 살핀 후, 말을 이었다.

“어쩌면 교주의 의도는 다른 데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본방의 생각입니다.”

“다른 데 있을 수도 있다니요? 그게 뭡니까?”

“마교의 꿈 말입니다.”

마치 선문답이나 하자는 듯한 공수개 장로의 대답에 감찰부주의 안색에 약간의 짜증이 떠올랐다. 정보를 다루는 것이 주 업무이다 보니, 얄팍한 정보 하나를 가지고 뭔가 엄청난 것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이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수개 장로.”

“마교의 꿈이라면 다른 게 있겠습니까? 바로 무림일통을 말하는 것이지요.”

“무림일통이라니요. 왜 그 말이 여기서 튀어나오는지 빈도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소이다, 그려.”

“단일방파로서는 마교가 최강의 힘을 지니고 있을 겁니다. 역대 마교의 교주들은 그 힘을 이용하여 무림을 정복하려 했고, 좌절당했습니다. 그게 바로 무림의 역사였죠.”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오. 그런데 공수개 장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 도대체 뭐요?”

감찰부주의 채근에 공수개 장로는 자신이 생각해 온 결론을 밝혔다.

“이번에 천지문의 일을 빌미로 해서 팽가를 친 이유는 교주가 자신의 영향력을 무림에 과시하기 위해 벌인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현재 마교는 역대 최강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성만마대와 함께 마교에서 가장 하급에 꼽히는 것이 바로 흑풍단입니다. 핵심 전투단도 아닌 흑풍대가 대금전쟁에서 빛나는 전과를 올리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모두들 공수개 장로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욱 위험한 것은 그가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만통음제와 의형제를 맺었고, 황룡무제나 패력검제와도 꽤 친분을 쌓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더군다나 현천검제도 그의 수하로 받아들였지요.”

그 말에 감찰부주가 가장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정보를 취급하는 그가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현천검제라니요?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청호 장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사제. 화산파에서는 그가 은퇴했다고 발표했었는데…….”

“사형도 참, 마교의 첩자였던 사람을 어떻게 은퇴시키겠습니까. 죽여 버렸겠죠. 그 때문에 교주가 화가 나서 화산파를 멸문시켜 버린 게 아니겠습니까.”

“조용히들 해라.”

맹주는 청호 장로와 감찰부주를 질책한 후, 공수개 장로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자 빨리 말해 보게, 공수개 장로. 그 말을 꺼낸 이유가 뭔가? 혹, 현천검제가 마교에 있는 걸 찾아내기라도 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단전이 파괴되거나 한 것도 아니고, 아주 건강한 상태로 마교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럴 수가…….”

“그리고 무영문의 옥화 봉공님도 교주와 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천검제가 생존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현 무림에 존재하는 화경급 고수는 아홉 명으로 늘어납니다. 3황6제가 되겠지요. 그들 중 교주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수는 무려 다섯 명이나 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공수개 장로의 말에 좌중에 있던 세 사람은 말문을 잃어야 했다. 맹주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라도 하려는 듯 헛기침을 하며 공수개 장로를 바라보았다. 계속 말을 해 보라는 표시였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교주 같은 최강자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현 무림에 단 한 명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럿이서 협공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아홉 명의 화경급 고수들 중 다섯 명을 그가 포섭해 버렸다면 제대로 된 공격이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더군다나 교주 밑에는 최소한 한 명 이상의 부교주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극마급인 그들의 존재까지 가세한다면…….”

“그만! 그 말씀, 책임지실 수 있소?”

“물론입니다, 감찰부주. 만약 제가 말한 것 중에 엉터리 정보가 있다면,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공수개 장로가 워낙 자신 있게 대답했기에, 감찰부주는 입을 꽉 다물 수밖에 없었다. 맹주는 이 정보에 대한 판단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엄청난 충격을 준 정보였던 것이다. 개방과 공수개 장로의 공로를 치하한 맹주는 공수개 장로에게 마교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모아 줄 것을 당부했다. 지금으로서는 정보를 통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근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공수개 장로는 마교 쪽의 동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수개 장로를 내보낸 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던 맹주는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양양성에 가 보는 것이 좋겠구나.”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맹주님.”

“수라도제가 제 역할을 못 해 주고 있으니 교주가 그토록 간 크게 나올 수가 있는 게 아니겠느냐? 그가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노부가 가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맹주님. 차라리 이번 기회에 곤륜파를 끌어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썩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맹주가 대꾸했다. 곤륜무황은 그의 오랜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곤륜무황을 말이냐?”

“예, 맹주님께서 벌써부터 앞으로 나서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아직까지는 뭐 하나 제대로 된 정보가 취합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교주가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맹주님께서 양양성에 직접 가 계시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좋다, 그건 네가 알아서 처리하거라.”

“예, 맡겨만 주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맹주는 청호 장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영문에서는 뭔가 들어온 정보가 없었느냐? 개방에서 저런 결론을 내렸을 정도인데, 무영문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느냐.”

“아직 아무런 보고도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구나. 그렇다면 공수개 장로의 말대로 마교 쪽과 손을 잡은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노회한 옥화 봉공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리 없습니다. 계속적으로 양쪽을 저울질하며 어느 한쪽으로 평행추가 기울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계속되는 좋지 않은 보고에 맹주는 답답한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중원 전체에 괴이한 혈겁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정보에 있어 최고라는 무영문까지 믿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으니 정말 산 넘어 산이로구나, 무량수불.”

“심려 놓으십시오, 맹주님. 아직까지는 정확한 흉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저희 감찰부 소속의 고수들까지 다수 파견해 놨으니 조만간 결론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존경하는 사숙이 한숨을 내쉬자 감찰부주 역시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걱정 마시라고 말은 했지만 아직 흉수에 대한 조그마한 단서조차 찾지 못한 감찰부주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 * *

쾅!

“이럴 수가 없어, 어떻게 서문세가에서 우리 팽가를 이렇게 무시한단 말인가!”

서문길을 만나 마교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고 돌아온 팽지량 장로는 치미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자신을 상대하던 서문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팽지량이다. 은근히 발을 빼려고 하는 서문길의 기색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우리 팽가가 피를 흘리며 희생을 치렀건만 치하는 고사하고, 이런 무시를 당해야만 하다니…….”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다가 희생된 제자들을 떠올린 팽지량은 행패를 부린 마교 교주보다, 믿었던 서문길에 대한 원망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한동안 치미는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탁자 주위를 서성거리던 팽지량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밖을 향해 소리쳤다.

“게 누구 있느냐?”

“옛!”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2대제자 한 명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어왔다.

“너는 당장 이번 전투에 참여한 제자들 중 한 명을 데리고 오너라. 자세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제자여야 한다.”

“옛,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팽지량이 힐끗 보니 아직 상처가 채 낫지 않아 안색이 창백했다. 그런 자를 이쪽으로 불러들인 것이 안쓰러웠기에 질문을 던지는 팽지량의 음성은 부드러웠다.

“이번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상세하게 말해 봐라.”

“예, 처음 제가 지시를 받은 것은…….”

처음에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그 제자는 어느 순간 술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사건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제자는 그의 기대보다 훨씬 더 아는 것이 많았다. 천지문과의 불화를 시작으로 작전이 수립되고, 예상과는 달리 없어야 할 적병들이 대거 나타나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던 것까지. 한참 이야기를 듣던 팽지량 장로는 점차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왠지 팽선이 천지문에게 수작을 부렸다는 냄새가 짙게 풍겼던 것이다. 제자가 말한 내용 그대로라면 누구라도 팽선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천지문을 사지로 밀어 넣었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지 않은가.

“이놈! 허튼 소리를 했다가는 당장 목을 날려 버리겠다.”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지금까지 들어 본 바에 의하면 팽선보다 마교 교주의 말에 더 믿음이 갔다. 더군다나 이야기를 하는 제자는 2대제자로서 팽선의 행동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던 자였다. 당연히 팽지량으로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 팽선이 어찌 그런 악수를 저질렀단 말인가.’

잠시 망연자실해 있던 팽지량은, 정색을 하고 제자를 향해 엄한 어조로 말했다.

“추호라도 다른 곳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면 내 손으로 네 목을 벨 것이야.”

“옛,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입 조심을 하도록 조치를 취하거라. 아니, 아예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도록 해라. 본 세가는 이번 전투로 인해 고귀한 피를 흘렸다는 것 외에는 모두 다 잊어라. 알겠느냐?”

제자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한 듯 긴장한 안색으로 대답했다.

“절대 외부로 새 나가지 않도록 단속을 철저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만 나가 보거라.”

제자가 밖으로 나가자 팽지량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노회하던 팽선이 어찌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단 말인가?”

잘못하면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왔던 팽가의 명성이 일순간에 진흙탕에 나뒹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팽지량은 나오는 한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수심에 잠긴 팽지량은 사지가 박살 나 아예 사람 구실을 하기엔 불가능한 팽선의 모습이 떠오르자 가슴이 아파 왔다. 지금껏 팽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팽선이었기에 그 안타까움은 더욱 애절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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