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3화 (539/930)

어수선해진 실내를 치운 시종이 문짝을 새 걸로 다시 바꿔 달았다. 태을진인은 수라도제가 소림사로 향했다는 정보를 급하게 무영문 총단으로 보낸 뒤 차분히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흠, 양양성을 책임져야 할 수라도제가 왜 이곳에 나타나 소림사의 담을 넘는 침투로를 물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금나라와의 일전이 목전에 다가왔음은 낙양에 있는 자신도 아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수라도제가 누구인가. 양양성에 운집한 정파인들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나 소림사의 담을 타 넘는 방법을 물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수라도제와 마교 교주가 부딪칠 뻔했다는 정보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저 서로 노려보다 끝나긴 했지만 그 뒤로 수라도제가 칩거에 들어갔다는 정보였었다. 서문세가가 철저히 입단속을 시킨 탓인지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갑자기 태을진인이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섰다. 어쩌면 그때 치열한 기 싸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들은 둘 다 범인이 상상하기도 힘든 경지를 개척한 초절정의 고수들이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봐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수라도제는 그때의 싸움에서 큰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칩거에 들어간 것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함이고, 소림사의 담을 타 넘으려 하는 것은 영약으로 유명한 대환단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맞다, 대환단!”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추리가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소림사에서 그 귀한 대환단을 순순히 내줄 리 없다. 그러니 그는 담을 넘어가 대환단을 훔치려는 속셈인 모양이다.

“젠장, 괜히 지도를 준 것 같군. 그걸 들고 대환단을 훔친 게 밝혀지면 나는 끝장이잖아.”

태을진인은 거칠게 의자 뚜껑을 열고 밑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양양성의 서문세가에 대한 최근 정보들 좀 올려 보내!”

와장창.

그때 갑자기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의자 뚜껑에 머리를 박고 소리치던 태을진인은 흠칫 굳은 채 어정쩡한 자세로 문 쪽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이 새하얗게 굳었다. 또 한 명의 거물이 출현한 것이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패력검제 대협.”

“흠, 여기에 오면 노부가 알고 싶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패력검제는 뭔가 근심이라도 있는지 안색이 초췌했다. 현천검제와 헤어져 근방의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신수(神獸)에 정통한 학자들을 탐문해 보았지만 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그렇기에 중원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낙양까지 단숨에 달려온 것이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요?”

패력검제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괴이지(怪異誌)에 정통한 학자가 누구인지 알려 주게.”

“괴, 괴이지요?”

천하에 산재한 신기하고 괴기로운 이야기들을 집대성한 책이 바로 괴이지다. 잡학으로 치부되다 보니 괴이지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학자는 없다. 더군다나 화경급 고수가 괴이지에 정통한 학자를 찾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태을진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 학자를 왜 찾으십니까? 어느 정도 내용을 알아야 그에 알맞은 정보를 드릴 것이 아닙니까?”

잠시 주저하던 패력검제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용이든 이무기든 신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가 필요한 걸세. 그 이유는…….”

여기까지 말하던 패력검제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괜히 황금색 괴물을 만났다는 말을 꺼냈다가 미친놈 취급당할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유는…, 더 이상 묻지 말게.”

아르티어스를 만난 이후, 패력검제의 내심은 복잡하기만 했다. 전설로만 치부되던 용을 직접 목격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청룡이니, 백호니, 주작이니, 현무니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괴물이 사람으로 변신하기도 하고,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한순간에 살려 내는 것을 직접 보기까지 했지 않은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쌓아 왔던 관념의 틀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부처니 태상도군이니 하는 것도 사실일 수 있지 않을까? 패력검제는 전설로 내려오는 것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만약 전설이 사실이라면…, 무예의 끝을 보는 것보다 더 큰 목표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쪽으로 정통한 학자를 찾아 자문을 구하려는 것이다.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문 패력검제를 본 태을진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 뚜껑을 열었다.

“이봐! 지금 당장 괴이지에 정통한 학자들을 찾아 명단을 올려 줘!”

잠시 시간이 흐른 뒤 별걸 다 찾는다며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이 한 장이 튀어 올라왔다. 명단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든 패력검제는 태을진인을 보며 물었다.

“정보료는 얼마나 주면 되겠나?”

태을진인이 패력검제를 힐끗 보니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달라고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듯한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돈을 달라고 하겠는가.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마자 빠르게 태을진인의 고개가 좌우로 돌아갔다.

“정보료는 주실 필요 없습니다. 금나라를 상대로 분투하고 계신 대협께 저희 무영문에서 드리는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흠, 자네 제법 마음에 드는군. 자주 찾아오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으로 신형을 날린 패력검제는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춰 버렸다. 태을진인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록 태연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좀 전에 훔쳐본 패력검제의 싸늘한 눈빛에 그의 심장은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세차게 뛰고 있었던 것이다.

“미치겠군. 갑자기 이런 거물들이 연달아 찾아오다니.”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종이 부서진 문짝을 치우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놔두게. 또 어떤 놈이 찾아올지 모르니 말이야.”

거칠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던 태을진인은 문득 자신의 신상에 뭔가 변화가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두 거물이 연달아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것도 자신이 도무지 이해하기도 힘든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젠장, 용한 점쟁이라도 찾아가서 점이라도 쳐 볼까? 아무래도 이러다가는 명대로 살기 힘들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은 알지만 태을진인의 머릿속은 벌써 낙양에서 소문난 점집을 찾아 영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곤륜파를 끌어들여라

만현에 도착한 묵향은 만통음제를 데리고 그곳에서 가장 좋은 객잔으로 들어갔다. 만통음제에게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3일에 걸친 유람이 조금 힘들었던지 만통음제는 운기조식을 끝낸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묵향은 점소이를 불러 술상을 봐 오라고 이른 후, 달을 벗 삼아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탁자 위에는 술잔이 하나 더 놓여 있었다.

세 번째 술병이 비워져 갈 무렵, 옥화무제가 우아한 몸놀림으로 밤하늘을 가르며 객잔 담을 넘어왔다. 그녀는 도착함과 동시에 묵향의 맞은편에 앉아서는 새침한 어조로 따지기 시작했다. 등 뒤로는 긴장으로 인해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그걸 숨기기 위해 그녀는 더욱 새침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낮에도 시간은 충분한데, 꼭 밤에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죠?”

묵향은 그녀 앞에 놓인 술잔에 술을 따르며 딴청을 부렸다.

“만나자마자 그런 식으로 얘기할 필요는 없잖아. 자 한 잔 하라구.”

“당신에겐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죠? 하지만 나 아주 바쁜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이런 산골짜기로 불러내다니, 대체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아아, 덕분에 구경 잘하면서 왔을 텐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바쁘게 일만 하다 보면 일도 잘 풀리지 않고, 성질만 더러워지잖아. 그래서 오랜만에 바람이나 쐬라고 이쪽으로 불렀지. 어때, 내 배려에 감사하지 않아?”

‘헉! 뭔가 분위기가 수상쩍은데…….’

상대가 평상시와 달리 너무 능글맞게 나왔기에 옥화무제는 간이 콩알만 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상과 너무 다른 상대의 행동이 그녀를 더욱 불안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저자는 일부러 이러고 있는 줄도 모른다.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래, 시험이 분명해!’

그렇게 마음을 정한 옥화무제는 최대한 평상시 그를 대하던 것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마음의 불안 때문이었는지 평상시보다는 많이 퉁명스러웠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를 부른 용건이나 어서 말해요.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나를 직접 봐야겠다고 요청한 거냐 이 말이에요?”

“허, 미인의 입에서 이런 쌀쌀맞은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걸. 이렇게 감성이 메말랐을 줄이야. 자,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라구. 얼마나 아름다워? 은은한 달빛에…….”

하지만 묵향의 말은 옥화무제의 신경질적인 어조에 가로막혔다.

“정말 계속 흰소리만 할 거예요? 댁한테 그딴 감성 없다는 거 뻔히 알고 있는데.”

“이런, 그대야말로 나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군. 나는 그렇게 메마른 사람이 아니야. 삶이 나를 그렇게 보이게 했을 뿐이지.”

묵향은 품속에서 피리를 꺼낸 다음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옥화무제는 이 인간이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그저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의 싸늘한 표정도 잠시, 묵향이 피리를 불기 시작하자 싸늘함은 놀라움으로, 놀라움은 곧 탄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피리 소리에 빨려 들어간 듯 몽롱한 상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놀라운 솜씨!’

그녀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과거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녀가 묵향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기억을 잃은 현경급 고수가 옥영진 대장군과 함께 청성루에 왔다는 총관의 보고에 그녀는 다급히 그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었다. 그때 그녀는 그곳에서 처음 묵향의 탄금을 들었다. 어지간한 예인(藝人)은 감히 연주를 하겠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은 청성루였다. 하지만 그때 들은 묵향의 탄금 실력은 청성루에서도 특급으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났었다.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날카로웠던 그녀의 마음도 평상시와 같아졌고.

“음공(音攻)을 익혔나요?”

잠시 피리 소리가 멈췄을 때 옥화무제가 별생각 없이 건넨 질문이었는데, 그게 묵향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다. 묵향은 피리를 품속에 신경질적으로 집어넣으며 불쾌한 듯 투덜거렸다.

“겨우 사람 하나 죽이자고 음(音)을 이 정도까지 익히는 사람을 봤나? 그런 말은 나나 형님에게 모욕이라구.”

여기까지 말한 묵향은 말을 끊고 싸늘한 눈길로 옥화무제를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묵향이 먼저 그 침묵을 깼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과 달리 아주 사무적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방금 전의 불쾌함도,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느낀 뻔뻔함을 가정한 다정함도 없었다.

“장인걸의 정확한 위치, 그리고 그놈에게 위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놈을 구하기 위해 달려올 모든 전력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그 정보를 언제까지 제공해야 하죠?”

“놈이 죽을 때까지.”

옥화무제는 상대의 제안을 생각해 보는 척하면서 묵향의 안색을 살폈다. 왜 갑작스럽게 이렇게 그의 분위기가 변한 것일까? 처음부터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불쾌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처음에 친한 척 다정하게 말했던 것은 또 무슨 수작이었던 것일까?

워낙 생각이 많은 그녀였기에 태연을 가장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이게 아니라 다른 것이었는데, 그와 상관없는 별의별 잡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떠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잡념을 쫓듯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꽤나 힘든 의뢰로군요. 좋아요. 서로 협정도 맺은 사이니 싸게 해 드리죠. 매월 황금 백 냥이에요.”

황금 백 냥이면 은자로 치면 2천 냥이다. 머릿속은 딴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오랜 세월 정보 장사를 해 온 그녀였는지라 그녀의 입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시불이 아니라 매월이라면 엄청난 금액이로군.”

“이쪽도 땅 파 먹고 장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대신 그만한 값어치는 한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오랫동안 시간만 끌지 않는다면 그렇게 부담이 갈 금액도 아니잖아요?”

“좋아, 양양성에 돌아가면 매월 은자 2천 냥씩 그쪽에 지급하라고 명령해 두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요 근래 무영문에 요청했던 자료들 말인데…….”

그 말이 나오자 옥화무제는 내심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 근래 행해졌던 작전에 대해 될 수 있으면 마교와 팽가 간의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의 지시 하에 정보를 조금 왜곡해서 보냈었다. 그걸 묵향이 눈치 챈 것일까?

옥화무제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반문했다.

“본문에 요청한 자료라구요?”

“그래.”

“그런 게 있었나요?”

옥화무제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듯 맹한 어조로 되물었기에 묵향은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중요한 자료인데, 저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이봐, 본교에서 요청한 자료인데, 어떻게 모르고 있을 수가…….”

“그쪽은 현역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미 딸한테 문주 자리를 물려주고,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라구요. 내가 꼭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아닌 한, 모든 것은 딸아이가 처리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다면 모르고 있었나?”

“물론이에요. 그런데 뭐가 불만이라는 거죠? 당신이 뭔가를 원한다는 공문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답신이 안 왔다는 거예요? 아니면 이쪽에서 보내 준 정보의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거예요?”

‘그 일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군.’

묵향은 옥화무제의 눈을 자세히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은 결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순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묵향은 옥화무제에 대한 혐의를 풀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원한 정보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옥화무제가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 묵향은 다른 의미에서 그녀가 전해 준 정보를 의심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만큼 이 일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은, 묵향에게 전해 주는 정보를 약간이라도 왜곡해 놨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흐음, 받기는 했는데 너무 기대에 못 미친 게 사실이라…….”

옥화무제를 빤히 바라보던 묵향은 소연이 중상을 당했던 그 작전에 대해 무영문이 확보해 놓은 모든 자료를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다면 돌아가는 대로 총관을 불러 지시해 놓겠어요. 이쪽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해 주라고 말이에요.”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그런데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호오, 정보의 여왕이라는 그대가 나한테 물어볼 일이 있다니 놀랍군. 그래, 뭐야?”

비꼬는 상대의 어조에 그만 둘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중원 각지에서 혈겁이 벌어지고 있어요. 혹시 그쪽의 작품인가요?”

자신이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게 불쾌한 모양인지 묵향의 어조는 퉁명스러웠다.

“나는 금시초문이야.”

“그렇게 믿겠어요.”

둘의 대화는 여기서 끊겼다.

옥화무제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놈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음이 평정되자, 평상시와 같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묵향의 행동이 아주 불쾌했다. 꼭 상대가 자신을 가지고 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옥화무제가 가만히 눈치를 보니 묵향은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며 술만 들이켜고 있을 뿐, 더 이상 자신과 대화를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처음에 은근슬쩍 다정하게 대하는 척하더니 이쪽에서 조금 튕겼다고 그걸로 끝이다.

‘속 좁은 인간 같으니라구…….’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 쪽에서 분위기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홀가분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새침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이만 가 봐야겠군요. 나도 바빠서 말이에요.”

“좋을 대로. 하는 일 잘되기를 바래.”

그녀는 방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덕담을 해 준 보답으로 한 가지 알려 드리죠.”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묵향의 시선이 옥화무제에게로 옮겨 갔다.

“무림맹에서 곤륜파로 사람을 보냈어요.”

묵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꽤나 대단한 정보인 줄 알았는데 사람을 하나 보냈다고 하니 황당했던 것이다.

“맹에서 곤륜파에 사람을 보낸 게 나한테 생색을 낼 만큼 그렇게 중요한 정보인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묵향의 반응에 옥화무제는 더욱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항변했다.

“물론 문파에 심부름꾼 하나 보내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겠지만, 누굴 보냈느냐 하는 게 문제겠죠.”

그 말에 묵향은 아차 싶었다.

“그래, 누굴 심부름꾼으로 보냈는데?”

옥화무제의 눈이 야비하게 반짝 빛났다. 이 순간을 위해 서두를 꺼낸 것이기 때문이다.

“무료 봉사는 여기까지. 방금 전에도 말했죠? 한 가지만 알려 준다구요. 나머지를 알고 싶으면 돈을 지불하든지, 아니면 직접 알아보세요.”

화사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한 거였지만, 그걸 듣고 있는 묵향의 속은 그녀의 의도대로 확 뒤집혀 버렸다. 무영문이라는 단체 자체가 정보를 사고파는 것이 주업인 만큼, 돈 내라는 것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약 올리듯 하는 말투와 그녀의 표정이 그의 심사를 뒤집어 놨다고 해야 할까?

“젠장, 알았어. 직접 알아보지.”

“어머머, 그게 생각대로 잘될까 모르겠네∼. 어쨌건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볼일은 없는 것 같으니 그만 가 볼게요.”

마지막 한마디까지 비꼬아 준 뒤 옥화무제는 사라져 버렸다. 그녀로서는 오랜만에 작은 복수를 할 수 있었기에 무지하게 통쾌했으리라. 어쩌면 그런 식으로밖에 분풀이를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원통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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