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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들이 언제 행동을 개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포두들은 병사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즉시 출동했다. 그들은 각자 부하들을 거느리고 세 방향에서 외곽부터 시작해 포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왕적삼은 자신이 맡은 방향으로 부하들을 이끌고 이동하며, 요소요소의 길목에 활로 무장한 포졸들을 배치했다.
“너는 저쪽에 숨어 있어.”
“옛.”
왕적삼은 자신의 지시대로 숲 속으로 달려가는 포졸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만약 이쪽으로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무조건 쏴 죽여!”
왕 포두의 지시를 받은 포졸이 히죽 웃으며 자신 있게 대꾸했다.
“알고 있습니다, 왕 포두 나으리. 이런 일 어디 한두 번 합니까.”
부하들을 이끌고 왕 포두가 가 버린 후, 그곳에 홀로 남겨진 포졸은 길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자리를 잡자마자 등에 메고 온 활을 내려놓은 다음, 화살을 하나 꺼내 시위에 걸어 두었다. 언제라도 신속하게 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놈들이 빠져나가지 않았어야 할 텐데…….”
포졸의 바램은 그것뿐이었다. 만약 저들이 포위망이 구축되기 전에 이미 도망치고 없다면? 그렇다면 자신들은 그들을 쫓아 산길을 달려 또다시 이동해야만 했다. 될 수 있으면 그런 수고는 안 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램인 것이다.
“오늘은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군.”
중얼거리며 산길을 관찰하고 있는 그의 뒤편에 놀랍게도 시커먼 그림자가 얼핏 보였다.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갑자기 쑥 튀어나왔다고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우드드득!
포졸은 자신의 뒤편에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손쉽게 목이 꺾여 버렸다. 포졸의 목을 붙잡고 뒤틀어 버린 것은 검은색 야행복과 복면으로 전신을 감싼 괴한이었다. 괴한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포졸의 몸을 살며시 땅바닥에 내려놓는 한편,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잠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주위에서 어떠한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자, 그는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크흐흐, 식은 죽 먹기겠군.”
적당한 곳에 한 명씩 포졸들을 배치하던 왕 포두는 잠시 후면 거금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몹시 좋았다. 사실 산적이 있다고는 해도 지금껏 몇 번씩이나 해 왔던 일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자기 외에도 다른 포두 두 명이 더 병력을 이끌고 오지 않았는가. 동원된 병사만 해도 56명이다. 그럭저럭 무예에 능한 자들은 채 20명이 되지 않지만, 농사만 짓다 칼을 든 산적들 쯤이야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모습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며 줄행랑을 칠지도 모른다.
자신감에 충만한 왕적삼의 관심은 이제 산적들보다 거금을 지니고 있을 서생 놈에게 쏠려 있었다. 사방에 궁수들을 매복시켜 놨기에 놈들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왕적삼의 머릿속에는 벌써 서가네 집에 묵고 있는 놈들을 잡아 거금을 챙기면 다른 두 명의 포두에게 어느 정도 나눠 줘야 할지 주판을 열심히 튕기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의 뒤를 따르면서 부하를 한 명씩 매복시킬 때마다 죽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 모두들 잠시 휴식.”
고개 하나만 더 넘으면 서가 놈의 집이다. 그렇기에 왕 포두는 부하들을 그곳에 대기시킨 후, 두 명의 포졸만 데리고 고개 위쪽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고개 위에 올라가면 사방을 폭넓게 관찰할 수 있는 만큼, 다른 포두들이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간에 신호에 맞춰 동시에 돌진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시간이 어긋나면 놈들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고개 위에 도착한 왕 포두는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기고 서가네 집을 관찰했다. 순간 왕 포두의 눈이 번쩍 빛났다. 서가네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장정 하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밀정의 보고대로 놈의 기골은 꽤나 장대했다. 제법 검술을 익힌 자인지도 모른다.
“흐흐흐, 산적 놈들이 아직 습격을 하지 않은 모양이군. 우리가 먼저 행동을 시작해도 되겠어.”
왕 포두는 품속에서 작은 동경 하나를 꺼내 햇빛을 반사시켜 다른 두 포두들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위치로 신호를 보냈다. 잠시 그렇게 신호를 보냈지만 두 포두들이 있는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왕 포두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군. 그나저나 산적 놈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할 텐데…, 어쩌지?”
산적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만큼 왕 포두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산적들이 먼저 털어 먹고 도망쳐 버린다면, 그들을 잡기 위해 산적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물론 병력의 차가 있으니 산적들을 잡는 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다 눈먼 칼에 다치면 자신만 손해 아닌가. 가장 좋은 방법은 산적보다 저들을 먼저 털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산적들도 포졸들과 싸우느니 그냥 물러날 게 틀림없다.
“젠장,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아직까지도 도착하지 않고 말이야.”
투덜거리며 왕 포두가 뒤로 돌아섰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이끌고 온 두 명의 포졸들이 어느새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검은색 야행복을 입은 괴한 하나가 자신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자신이 아래쪽을 관찰한다고 뒤쪽에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어떻게 아무런 기척도 없이 부하들을 해치울 수 있었을까?
살기를 뿜어내며 괴한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을 암습하려 한 죄, 죽어 마땅하다.”
순간 왕적삼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장사치나 산적이 아니다.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왕적삼은 잽싸게 칼을 뽑아 들었다.
“산적들이 출몰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출동한 포졸들에게 손을 쓰다니 당신은 국법이 무섭지도 않소?”
대기하고 있는 포졸들이 들을 수 있도록 왕적삼은 큰 소리로 말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 나왔다.
“큭큭, 국법? 감히 네가 국법을 논한단 말이냐?”
괴한의 비아냥거림에 왕적삼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애써 입을 놀렸다.
“보아하니 서로 간에 오해가 있는 듯한데 이 정도에서 물러간다면 죄를 묻지 않겠소.”
“오호, 죄를 묻지 않는다? 그건 좀 곤란하지. 그리고 네놈이 아니라 내가 너의 죄를 물을 생각이거든.”
“다, 당신이 뭔데 포두인 내게 죄를?”
“감히 진 대인을 암습하려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넌 죽을죄를 지었다.”
순간 왕적삼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진 대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재상 진회가 지방 순시를 나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씨불, 좆됐다. 그냥 주는 거나 챙겨 먹고 돌아가지, 웬 암행?’
잽싸게 땅바닥에 엎드린 왕적삼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을 했다. 그동안 열심히 모아 놓은 돈도 써 보지 못하고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했던 것이다.
“제, 제발 살려 주시오. 집에는 팔십 먹은 노모가…….”
퍽!
물론 집에 노모가 있지도 않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떠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통하지 않았다. 괴한의 매서운 손에 그는 뒤통수가 함몰되어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쓰레기 같은 놈. 이런 것들이 관리랍시고 설치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괴한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주위의 상황을 점검했다.
“이쪽은 얼추 끝났는데 혹시 놓친 놈이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군.”
괴한은 진회를 암중에서 호위하고 있는 복면인들 중 한 명이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포졸들은 국가의 녹을 먹는 관리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차 없이 죽이는 이유는 진회의 암행 순시가 밖에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괴한의 모습은 고개 위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진회는 짐을 꾸린 후, 농가의 아낙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남편은 일을 하러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만 가 봐야겠네. 어려운 형편에 찾아온 길손에게 온정을 베풀어 주어 고마울 따름이야.”
진회의 말에 아낙은 코가 땅에 닿도록 연신 절을 하며 감사해 했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요.”
어제저녁 생각지도 않은 은자 두 냥을 얻게 된 것이 그녀 가족에게는 너무나도 큰 축복이었다. 은자 두 냥으로 식량을 사서, 산에서 캔 나물과 나무껍질을 함께 먹는다면 내년 가을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녀에게 있어서 진회는 살아 있는 부처님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은인들을 이리 보낼 수는 없으니, 제발 애들 아버지가 올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진회로서는 난감한 부탁이기는 했지만, 여인의 말을 들어 보니 남편은 새벽녘에 손님들께 대접할 음식 재료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아마 늦어도 점심나절이면 도착할 테니, 제발 제대로 된 음식이나마 대접하여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녀는 간청했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청했기에 진회는 할 수 없이 떠나는 것을 잠시 보류했다. 아낙의 청을 차마 뿌리치고 떠나지 못한 진회 일행은 그날 점심나절이 다 되어 푹 삶은 닭국을 한 사발 먹은 후에야 그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비록 물을 잔뜩 넣어 끓인 멀건 닭국이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먹어 본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맛있다고 생각한 진회였다.
행방불명된 악비 대장군
임충은 관지 장로의 명령으로 악비 대장군을 호위하고 황도에 와 있었다. 그의 휘하에 있는 1개 천인대를 몽땅 다 데리고 왔지만, 천기나 되는 중무장한 인마를 황도 안에까지 끌고 들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황도 안에까지 그와 함께 한 인원은 50기뿐이었고, 나머지는 황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그가 들은 대로라면, 이번 임무는 임무라기보다 오히려 유람에 가까운 것이었다. 악비 대장군이 황도에 다녀오는 데, 그가 왕복하는 동안 원거리에서 철저히 호위하라는 것이 주된 임무다. 황도에는 3만에 달하는 황군이 치안을 유지하고 있기에, 그 안에서까지 그를 호위해 줄 필요는 없었다. 즉, 황도에 도착한 후에는 충분한 자유 시간이 보장되는 최고의 임무였던 것이다.
악비가 일을 다 마칠 때까지 현재 대송제국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남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임충의 마음은 꽤나 들떠 있었다.
황도에 도착한 후, 그는 가장 먼저 50기의 인마가 묵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객잔을 확보했다. 교주의 명령에 의해 이곳에 온 것이었기에 객잔에 묵을 돈은 공금으로 처리된다. 임충은 아주 괜찮은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려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수하들과 함께 거하게 술판까지 벌였다.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목에 낀 먼지를 씻어 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