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3화 (549/930)

남경 시내로 들어온 묵향은 먼저 임충 일행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갔다. 그들이 어느 객잔에 묵고 있는지는 이미 마화에게 들었기에 그곳으로 찾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묵향의 모습에 임충은 기절할 듯 놀라 벌떡 일어섰다.

“교, 교주님!”

“마화한테 얘기 들었다. 그래, 대장군은 아직도 못 찾았나?”

묵향의 질문에 임충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치 쥐구멍이라도 옆에 있다면 기어 들어갈 듯이 작은 목소리로.

“송구스럽습니다만…, 그렇습니다.”

“뭔가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아낸 건 없나?”

“며칠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그러면서 임충은 요 근래 자신이 조사한 것들을 묵향에게 보고했다.

“흐음,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 정도까지 조사한 걸 보니 아주 열심히 움직였군. 그런데 내가 가만히 들어 보니 가장 수상한 곳은 황궁인 것 같은데, 왜 거기는 조사하지 않았지?”

임충은 보고를 올리기가 난처했다. 자신이 아는 교주의 성격이라면 그 일을 듣자마자 아마 황궁 내부를 발칵 뒤집어 놓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 일을 보고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묻어 둬야 하나.’

머뭇거리는 임충을 보고 묵향은 무슨 일이 있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임충은 과거 군부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만큼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당연했다. 묵향은 임충이 머뭇거리는 것이 아마 황실과 자신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의 가감도 없이 있는 대로 말해도 좋다. 황실과 충돌을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묵향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임충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황궁을 조사하러 사람을 보내기는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전 자신이 황궁 안을 조사하기 위해 투입했던 부하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든 말을 다 들은 묵향은 고개를 주억거리기는 했지만 약간은 언짢은 표정이었다.

“흐음, 그래? 며칠 뒤 부하들은 무사히 돌아왔다 이거지?”

“예, 교주님.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미파의 승려들도 그때까지 대장군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걸 보면 황실 쪽은 이번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지금 황군들도 검문, 검색을 강화하며 열심히 대장군의 행방을 찾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제 생각이 맞을 겁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묵향의 목소리에는 아직까지도 의심이 완전히 지워진 것이 아니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도 가장 수상쩍은 곳이 황실이었으니 말이다.

“무영문에는 알렸나?”

“예, 하지만 아직까지 그쪽에서도 이렇다 할 정보를 보내온 건 없습니다.”

“그래? 그것 참…….”

잠시 이리저리 생각을 하던 묵향은 임충에게 명령했다.

“무영문에 다시 한 번 더 연락을 넣어라. 만약 내일까지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정보를 이쪽으로 넘기지 못한다면, 내가 그쪽의 정보력에 대해 크게 실망할 거라고 말이야. 알겠나?”

“옛, 교주님!”

임충에게 지시한 뒤, 묵향은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니, 어디를 가시려고……?”

“개방에 잠시 다녀오겠다.”

마치 개방이 마교의 분타쯤 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기에, 그걸 듣는 임충은 자신이 혹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느꼈다.

“개방에 말씀이십니까?”

“이곳에도 개방의 분타는 있을 게 아니냐?”

“예, 남경 분타가 있습니다.”

임충은 얼마 전에 묵향에게 연락을 넣기 위해 개방의 남경 분타에 부하를 보냈던 일을 떠올렸다. 그렇기에 그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분타의 위치를 알고 있는 놈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괜찮다. 거지 소굴쯤 찾는 거야 일도 아니지.”

그렇게 대꾸하며 묵향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던 임충은 갑자기 다급하게 묵향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요, 교주님. 그렇게 밖에 나다니시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게 될 겁니다.”

“그건 무슨 말이냐?”

“황도에서는 일반인이 무기를 휴대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대장군의 일로 남경 전체에 비상이 걸려 있죠. 그런 만큼…….”

임충은 묵향의 눈치를 힐끔 살피면서 다음 말을 이으려고 했다. 무기는 무인의 생명인 만큼 묵향이 검을 놔두고 갈 리 없으니 자신이 사람을 개방에 보내어 알아 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임충의 예상과 달리 묵향은 곧장 검을 풀어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럼 이건 네가 잠시 맡아 두고 있도록 해라.”

묵향의 예상외의 행동에 임충은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예? 예.”

얼떨결에 대답한 임충의 손에는 어느샌가 묵향의 신물(信物)이자 마교의 지존병기로까지 격상되어 있는 묵혼검이 들려 있었고, 묵향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호시절은 가고

남경의 서쪽 관도를 담당하고 있던 거지는 분타주가 있는 방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왔는지 거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분타주님! 굉장한 놈이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요 며칠 동안 악비 대장군의 실종으로 인해 신경이 얼마나 곤두서 있는지 독두개의 토실토실하던 볼은 핼쑥하게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은 피로로 인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방금 전에 어떤 놈이 무기를 휴대한 채 서부(西部) 제12검문소를 통과하여 시내로 들어왔습니다.”

“야, 이 새끼야. 그래서! 그래서 뭐 어쨌다고!”

아무리 황군이 무기를 통제한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병기를 놔두고 다닐 무림인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군다나 지금 남경에는 고위급 인사들을 호위하기 위해 공동파의 제자들이 와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자는 평복을 입은 공동파의 제자일 수도 있었다. 무림인 하나가 무기를 휴대하고 들어왔다고 난리를 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겨우 그따위 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떤 거냐고 호통 치려던 독두개의 입은, 거지의 이어지는 말에 의해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놈이 검문을 하던 군관과 황군 10여 명을 곤죽을 만들어 버리고 들어왔거든요.”

“씨팔, 그 새끼 혼자서?”

“예, 어디 산골짝에서 무공을 연마하다 하산한 놈인 모양입니다. 문파에 소속된 자라면 남경에 무기를 휴대한 채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텐데 말입니다. 어쨌건 황군들은 지금 그놈을 잡겠다고 남경 전체를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며 난리도 아닙니다.”

‘허, 그것 참. 어느 미친놈이 황군을 때려눕히는 그런 정신 나간 짓을…….’

이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독두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성동격서(聲東擊西)…, 그래! 바로 그거야! 어쩌면 이건 의도된 행동일 수도 있다.”

“예?”

“그 새끼가 서쪽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동안 다른 검문소로 악비 대장군을 빼돌리려는 수작일 수도 있잖아? 빨리 다른 검문소에 연락을 보내. 혹 그사이에 뭔가 외부로 빠져나간 것이 있는지 말이야. 마차라든지 가마, 뭐든지 좋아.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해.”

“옛!”

“그리고 시내로 잠입했다는 그 새끼의 행방도 반드시 찾아내. 도대체 어느 문파에 소속된 놈인지 알아내란 말이야. 알겠어?”

그 말에 밖으로 나가려던 거지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몰골이 아주 지저분한 것으로 봐서는 우리 개방의 인물인 것처럼 보였는데……. 어쨌든 알아 보겠습니다.”

“이 새끼 봐라. 지저분하면 모두 다 우리 개방 제자들이냐? 그딴 개소리 한 번만 더 지껄이면 아구창을 날려 버리겠다. 알겠어?”

성난 독두개의 호통에 거지는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팍 숙였다.

“조, 조심하겠습니다, 타주님.”

독두개의 명령에 따라 남경 분타에 소속된 모든 거지들이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하지만 독두개는 자신이 구태여 그 괴한을 찾으려고 뛰어다닐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괴한과 조만간에 만나게 되어 왜 내가 남경 분타로 오게 되었는지 한탄하는 처지가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독두개가 방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 부분타주가 뛰어 들어왔다.

“타주님, 개봉의 총타에서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개방 총타에서 보낸 전통(傳筒)이 들려 있었는데 황금색 수실로 묶어 촛농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특2급의 등급이 책정된 매우 중요한 전서가 들어 있다는 표시였다. 그 전서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은 분타주뿐이었기에, 독두개는 자신이 직접 암호를 해독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전통에서 조그마한 쪽지 한 장을 꺼내 깨알만 한 글자로 써져 있는 암호들을 읽어 내려가자니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더군다나 특2급에 해당하는 비밀인 만큼 거기에 사용된 암호 또한 난해하기 그지 없었다. 그야말로 눈도 아프고, 머리에는 쥐가 내릴 지경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극비 내용을 종이에 쓰면서 해독할 수도 없고…….

잠시 후 독두개가 암호를 다 해독했는지 쪽지에서 눈을 떼자 소팔개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타주님?”

특2급에 해당하는 비밀이었지만 오랜 세월 같이 고락을 겪은 사이였기에 소팔개의 질문에 독두개는 별다른 질책없이 전서의 내용을 자신이 제대로 해독한 것인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잠시 후 독두개는 전서를 찢어 입속에 털어 넣고 우물거리다가 꿀꺽 삼킨 뒤 소팔개에게 전음을 날렸다. 전서의 내용 때문이었을까 독두개의 얼굴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씨팔! 이번 일에서 손을 떼라는 상부의 지시다.>

<악비 대장군 사건 말입니까?>

독두개가 고개를 슬쩍 끄덕이자, 소팔개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팔개는 급히 전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악비 대장군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데 그에 대한 조사를 중단한다는 말입니까?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타주님.>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이치야. 상부에서는 이 일에 황성사(皇城司)가 개입되어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황성사가…, 말입니까?>

쾅!

은밀하게 소팔개와 전음을 주고받던 독두개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하겠는지 거칠게 탁자를 내리쳤다. 아무리 거지라지만 그 역시 송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새끼들이 아니고서야 황궁 안에서 어찌 악비 대장군같은 거물을 흔적도 없이 납치할 수 있겠냐? 안 그래? 상부에서는 왕태위가 이곳에 온 게 그 때문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야.>

<그렇다면 이 일에 재상까지 관여되어 있는 게 확실하다는 말입니까?>

<그거야 알 수 없지…….>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독두개는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더 이상 이 일에 대해서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듯, 독두개는 소팔개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자네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발설하지 않도록 하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쪽에서 손을 떼면 다른 문파들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지. 상부에서 원하는 건 겉으로 봤을 때는 열심히 조사하는 듯 보이게 행동하되, 절대로 황성사하고는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대충 조사하라는 말이야. 알겠어?>

<그렇게 실행하겠습니다.>

<좋아. 자네만 믿겠네.>

전음을 마친 독두개나 소팔개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현재 송을 떠받치고 있는 악비 대장군의 실종이 몰고 올 파장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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