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길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년 거지. 그야말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거지의 모습이다. 세파에 찌든 얼굴이긴 했지만 잠에 취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는 모습은 아주 평화롭기만 했다. 하지만 이 거지는 보통 거지가 아니었다. 그는 거지들의 문파인 개방에 소속된 자로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근처를 지나는 행인들을 감시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는 자였다.
땡그렁.
앞에 놔둔 깨진 바가지 안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중년 거지는 흠칫 놀라 잠에서 깬 척했다. 그리고 바가지 안에 들어 있는 동전을 확인한 후, 습관적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발했다.
“가, 감사합니다. 현세는 물론이고 내세에서도 복을 듬뿍듬뿍 받으실 겁니다요.”
“이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씀이야.”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동전을 던져 준 상대를 힐끔 살펴보는 중년 거지.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하며 얻은 그만의 비법 덕분에 그는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상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먼지가 잔뜩 끼어 구질구질해 보이지만 꽤나 고급 천으로 만든 옷, 그런대로 준수한 외모, 그리고 젊은 놈이 아무리 거지라지만 중년인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중년 거지는 언짢은 내색을 하지 않으며 슬쩍 상대의 손을 바라보았다. 아주 고운 손으로 지금껏 단 한 번도 거친 일을 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손이다. 그것만으로도 중년 거지는 상대가 신분을 숨긴 세도가의 자식이거나 뭔가가 있는 놈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뭘 물어보시려 하시는지? 소인이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지 성심껏 말해 드리겠습니다요.”
상대는 씩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그래, 이곳에 개방 분타가 있을 텐데, 자네가 안내 좀 해 주겠나?”
하지만 중년 거지는 ‘개방’이라는 말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개방이라굽쇼? 그게 뭡니까요?”
순간 상대의 표정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으니 말장난으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구. 나는 이곳 분타주와 급히 만나서 상의할 게 있단 말이다.”
상대는 이미 다 알고 자신에게 접근해 온 것이다. 중년 거지는 내심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인물을 분타로 데려가야 할까? 아니면…….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거지 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터득한 육감으로 이 이상 시치미를 뗐다가는 왠지 온몸이 성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불안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어, 타주님과 면식이 있으십니까요?”
“면식은 없지만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서로 얼굴을 익힐 수 있을 거 아닌가? 중원에서 개방을 따라 올 정보 단체가 없으니, 궁금한 것이 있을 때는 자네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최고지. 안 그런가?”
그러면서 상대는 바가지 안에 또다시 뭔가를 던져 넣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한눈에 척 봐도 한 냥짜리 은자다. 순간 중년 거지의 눈에 갈등하는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을 분타로 데려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결국 중년 거지는 은자를 움켜쥐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상대를 분타로 안내한다고 해도 그리 해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방이 다른 문파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가진 거라고는 정보뿐인 거지 떼를 공격해서 뭘 얻겠는가? 물론 우연히 상대의 치부(恥部)에 근접했다가 비명횡사당하는 개방도가 간혹 있기는 했지만, 특별히 재수 없게 걸려든 개방도가 아닌 한 죽임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고급 정보를 취급하는 무영문이라는 단체가 존재하는데 싸구려 정보만을 취급하는 개방도들과 다툼을 벌여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낸다는 것은 바보짓이기 때문이다.
중년 거지는 은자를 품속에 감추고 아첨이 섞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희들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건 저를 따라오시죠. 타주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요.”
개방을 찾는다는 것은 곧 정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상대가 저런 엉망진창인 모습으로까지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꽤나 비밀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쩌면 꽤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의 신분도 꽤나 높은 것 같아 보이니 말이다. 단지 저런 자가 왜 무영문을 찾지 않고 개방을 찾았는지 그게 좀 아리송한 문제이기는 했지만, 상대가 무영문보다 자신들을 더 높이 산다는 말이니 개방도인 그로서는 좋은 기분에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어쩌면 세상 물정 모르는 대갓집 자식일 수도 있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몫 단단히 뜯어낼 수 있겠어. 흐흐흐.’
이런 큰 물주를 물어 온 것을 알면 틀림없이 분타주는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거지 패거리라 별로 돈 쓸 일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개방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특히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들 때는 더욱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개방이 벌이고 있는 사업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것이 바로 빈민구제였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퍼지고 앉아 이를 잡고 있던 늙은 거지는 웬 낯선 사내가 분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며 그를 안내해 들어온 중년 거지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봐, 저 사람은 누구야?”
“아, 소팔개 어르신. 저분께서 타주님을 뵙게 해 달라고 해서 제가 급히 모시고 왔습니다요.”
그 말에 늙은 거지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뭣! 이놈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무나 이리 데려오면 어떻게 해?”
“허~ 참, 걱정도 팔자십니다요. 거지 소굴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손님을 가려 받겠습니까?”
“이런 넋 빠진 놈! 안 그래도 정체불명의 괴한이 나타나서 그놈을 찾는다고 전 제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이 없구만, 시키지도 않은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있다니…….”
소팔개의 말대로 분타 안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근래 대장군 실종 사건을 조사한다고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무식한 방법으로 검문소를 돌파해 들어온 무림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남은 제자들까지 몽땅 다 투입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놈의 행적이 워낙 신출귀몰하여 아직까지도 어디에 숨어들었는지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기에 소팔개는 애를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중년 거지는 소팔개의 그런 마음도 모르고 넉살좋게 대꾸했다.
“그래도 귀한 손님인데 어찌 박정하게 청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타주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요?”
“조금 전까지 저 뒤쪽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계시는 것 같았는데…….”
중년 거지는 묵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굽신거리며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십쇼. 타주님께 기별을 넣어 보겠습니다요.”
분타주가 있다는 곳으로 중년 거지가 걸어가는 것을 보며 늙은 거지가 외쳤다.
“지금 상당히 기분이 안 좋으시니 잘못하다가는 경친다, 너.”
“걱정 마십시오, 소팔개 어르신.”
중년 거지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자신이 지금 물주를 데리고 왔다는 것 말이다.
아무리 정보를 취급하는 개방도라고는 하지만 하급 제자는 정확한 현 상황을 알지 못했다. 악비 대장군이 실종된 것이며, 괴무사의 출현으로 남경이 발칵 뒤집힌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단순하게 물주를 물어 왔으니 아마 분타주도 칭찬을 하면 했지 절대 문책하지는 않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타주님, 손님을 모시고 왔는뎁쇼.”
이때 독두개는 악비 대장군의 실종으로 인해 머리가 몹시 복잡한 상태였다. 비록 총타에서 더 이상 파고들지 말라는 명령을 받기는 했지만 또다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신경은 곤두설 만큼 곤두서 있었다. 더군다나 의문의 괴무사가 검문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남경 전역이 발칵 뒤집혀 있지 않은가.
“손님이라고?”
“예, 타주님. 타주님께 몇 가지 정보를 의뢰할 것이 있다고 하셔서요.”
부하의 대답에 독두개는 인상을 팍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런 망할! 이 새끼, 너 죽을래? 그런 일이라면 소팔개에게 데려가면 되잖아!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그, 그래도 보통 손님이 아니신 것 같아서…….”
그러면서 중년 거지는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연신 독두개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치 자신이 봉을 한 마리 물어 왔다는 듯. 하지만 이미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독두개의 눈에 부하의 그런 눈짓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젠장. 이 새끼,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눈병이라도 걸렸냐?”
“그, 그게 아니고…, 한눈에 척 봐도 뭔가 귀한 집안의…….”
더 이상 참지 못한 독두개는 주위에서 잡히는 대로 중년 거지에게 집어 던졌다.
퍽!
바가지 하나가 중년 거지의 머리에 맞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독두개가 밥을 담아 먹는 바가지였다. 거지에게 있어 보물 1호가 바가지다. 그런데 그런 바가지를 던진 것으로 보아 얼마나 독두개가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크윽! 왜 그러십니까요?”
“뭐가 어쩌고 어째? 귀하긴 쥐뿔이 귀해? 저 새끼 하고 있는 꼬라지를 봐라. 몇 날 며칠을 목욕조차 하지 않은 상거지 꼴을 하고 있는데, 뭐가 귀한 집 자식이라는 말이야!”
한참 중년 거지를 구박하던 독두개는 갑자기 흠칫한 표정으로 사내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독두개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자 중년 거지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요?”
“씨팔! 이상하네. 어딘가 상당히 눈에 익은 상판대긴데……. 어디서 봤더라?”
평상시라면 곧바로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 이렇듯 허름한 옷차림으로 나타나니 독두개는 좀처럼 사내의 정체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마교 교주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고 단지 본부에서 보내온 초상화로만 봤다는 것도 그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데 크게 작용했다.
독두개가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며, 중년 거지는 처음에 자신이 했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저 사내가 꾀죄죄한 모습으로 이곳을 찾은 것은 그의 범상치 않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임이 분명하다. 분타주는 상대가 저런 모습으로 변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억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거 보십쇼. 제 말이 맞다니까요. 상당히 이름 있는 문파의 제자이거나 어쩌면 세도가의 자제 분일지도 모릅니다요. 아마 저러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숨기기 위해 변장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
독두개는 손가락으로 사내를 가리키며 주절거리는 중년 거지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 직접 만나 상대의 정체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리 데려와 봐.”
“옛!”
중년 거지의 안내를 받아 가까이 다가온 사내는 마치 오랫동안 독두개와 사귀기라도 한 것처럼 허물없이 말을 건네 왔다.
“자네가 분타주인가?”
새파랗게 젊은 것이 대뜸 반말지거리를 해 대자 아무리 개방이 거지들의 문파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중년 후반으로 접어드는 독두개는 슬그머니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독두개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무슨 일로 노부를 찾아왔나?”
“악비 대장군이 실종되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상대는 아무런 언질도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고 그 말을 들은 독두개는 소스라치듯 놀라 두 눈을 번쩍 떴다. 대장군이 실종되었다는 것은 그도 요 며칠 전에야 파악해 낸 극비 정보였다. 독두개의 표정에 희미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상대의 정체가 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래, 뭐 좀 알아낸 거 있나?”
독두개는 시치미를 떼며 느물거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독두개의 말투도 조금 바뀌어 있었다. 이런 고급 정보를 알고 있을 정도라면 상대의 신분이 예상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쎄요. 대체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대장군이 실종되었다는 건 어디서 들은 소리요? 노부는 그런 말을 전혀 듣지 못했는데…….”
“어쭈? 무영문을 비롯해서 웬만한 놈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데, 개방만 모르고 있다고 딱 잡아뗄 거야?”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댁은 뉘신지……?”
“거참, 딴놈들은 본좌를 보자마자 나불나불 잘도 가르쳐 주던데, 오랜만에 기가 센 놈을 만났군. 뭐, 그것도 좋지. 본좌는 입이 무거운 놈을 아주 좋아하거든.”
사내의 얼굴에 희번득거리며 살기 어린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본 순간, 독두개의 안색이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그 말에 뭔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방 제자들은 오랜 세월 정파를 수호해 온 명문이다. 그런 그들이 적의 위협에 쉽게 입을 열 리 없다. 하지만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마귀 같은 존재가 있다. 오죽했으면 개방 방주조차 어지간하면 정보를 가르쳐 주고 그와 절대 충돌하지 말라는 공문까지 전 분타에 내렸겠는가?
그 마귀 같은 존재를 떠올리자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왔다. 먼지를 뒤집어쓴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기에, 지금껏 상대가 마교의 교주일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독두개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며 힘겹게 열렸다.
“큭! 호, 혹시…, 교주……?”
“오, 이제야 알아보는군. 자네는 머리가 상당히 커 꽤 똘똘할 줄 알았는데, 보기와는 영~ 다르군.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묵향은 씨익 웃으며 독두개의 반질거리는 대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이런 식의 대접을 받아 보지 않았던 독두개였기에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지만, 그래도 어쩔 것인가? 개기다가는 남경 분타의 모든 거지들이 몰살당할 것이 뻔하니 참을 수밖에. 독두개는 봉이라며 묵향을 안내해 온 중년 거지를 꼭 박살 내 버리겠다고 내심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래, 이제야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겠군. 대장군의 행방은 찾아냈나?”
“아직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묵향의 눈이 실쭉 가늘어졌다.
“정말이야? 만약 조금이라도 숨긴 게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면 네놈의 반질거리는 이 머리 가죽을 통째로 벗겨 버리는 수가 있어!”
묵향의 위협에 독두개는 찔끔하며 얼른 입을 열었다.
“그,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긴 한데…….”
“뭐냐?”
“그자들이 일을 벌였다는 물증은 없습니다만…….”
애매하게 둘러대는 독두개가 별로 마음에 안 드는지 묵향의 눈초리가 더욱 가늘어지며, 매서운 안광을 발했다.
“혐의가 있고 없고는 본좌가 결정해. 네놈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결론부터 말해 봐.”
독두개는 묵향의 추궁에 찔끔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본방에서 조사한 결과, 황성사가 이 일에 관여한 것이 아닌가 하고…….”
“황성사?”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황성사라는 단체의 이름은 처음 들었기에 묵향은 고개를 갸웃하다 되물었다.
“황성사라는 문파도 있었나?”
“무림의 문파가 아니고, 황실의 감찰, 첩보 기관입죠.”
“감찰, 첩보 기관이라면 금의위가 있을 텐데?”
묵향이 이렇게 반문한 것은 그의 예전 기억 속에 있는 황실의 첩보, 감찰 기관은 금의위였기 때문이다. 그런 묵향의 모습에 독두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무림인이지만 거대 마교의 교주가 이토록 정보에 어둡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묵향이 지난 몇십 년간 무림을 벗어나 다른 세계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관부 쪽의 일에는 소식이 늦으…….”
그렇게 말하던 독두개는 묵향의 매서운 눈초리를 접하자 찔끔해서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금의위가 이름을 바꾼 게 바로 황성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편제가 조금 바뀌기는 했습니다만,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묵향으로서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재 황실에서 악비 대장군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이 아닌가. 그가 없다면 북방의 전선은 절대 유지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를 왜 황실에서 없애려고 든단 말인가? 머리가 돌이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가 없군. 지금 대장군은 황실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일 텐데, 왜?”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황궁 내에서 대장군을 소리 소문 없이 납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단체는 황성사뿐이라는 거죠.”
너무나 단호하게 자신하는 독두개의 말에 묵향은 이죽거리는 말투로 대꾸했다.
“과연 그럴까? 본좌의 수하들에게 시켜도 그 정도는 쉽게 해낼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 황궁은 과거와 달리 아미파의 정예고수들이 겹겹이 지키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천마신교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아미파의 이목까지 완벽하게 속이고 대장군을 납치하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아미파? 참, 아미파의 존재를 잊고 있었군.”
묵향은 이곳에 오기 전에 임충으로부터 아미파의 존재에 대해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임충이 보낸 수하들을 순식간에 구금해 버린 것을 보면 나름대로 꽤나 실력 있는 자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아미파의 이목을 완전히 속이고 대장군을 납치했다면 저들은 황궁의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흠, 범인을 짐작하고 있다면 이미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겠군.”
하지만 독두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뇨. 황성사가 개입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린 뒤 조사를 중지했습니다.”
“왜 그랬지?”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독두개는 황성사를 조사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황성사가 지닌 권력이 거대한 만큼, 만약 누군가가 자신들을 조사하는 것을 눈치 챈다면 그 보복 또한 엄청날 것이 분명했다. 무영문처럼 자신들의 본거지를 꼭꼭 숨기고 있는 비밀스런 단체라면 몰라도, 개방처럼 모든 게 다 드러나 있는 문파의 경우 자칫 멸문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조사를 중지한 겁니다.”
예전 금의위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던 묵향은 독두개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조사를 본좌가 대신해 주지. 자네가 지금까지 조사한 모든 정보를 본좌에게 다 넘겨.”
황성사가 개입되어 있다는 말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한 묵향의 요구에 독두개는 일순 깜짝 놀랐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그저 그런 문파가 아닌 마교의 교주였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독두개의 내심은 일면 착잡하면서도 일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묘한 것이었다. 워낙 세력이 형편없어 마교 교주 같은 놈에게까지 이토록 얕보인다는 게 서글펐지만, 그래도 그로 인해 대장군의 실종에 대한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지 않은가?
개방은 다른 무림방파들과 달리 일반 백성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그들이 먹고사는 방법은 바로 비럭질이었기에 서민들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희망이었던 악비 대장군의 실종에 대해 내심 크게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독두개였다. 그랬기에 독두개는 교주에게 성심껏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넘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