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실종 사건
황도에서도 방귀깨나 뀐다는 고관대작들의 고래등 같은 저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등천로(登天路)다. 예전부터 남경을 다스리는 왕부에서 일하던 신하들이 이 일대에서 살아왔기에, 황도의 그 어떤 곳보다도 치안이 잘 잡혀 있는 곳이다.
밤이 되면 등천로 일대는 황군들이 철통같은 경비망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고관들의 저택이 많은 만큼, 잘못해서 어떤 집에 도둑이라도 드는 날에는 제아무리 위세 좋은 황군 교두라 해도 하루아침에 찍 소리도 못 내고 모가지가 날아갈 게 분명했다.
특히 오늘 아침에 웬 무장괴한이 검문소를 뚫고 시내로 잠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만큼, 평소에 비해 두 배나 많은 병사들이 배치되어 경비를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간 크게도 소부경(少府卿) 추린(秋潾) 대인의 저택 담장을 뛰어넘는 자가 있었다. 저택 내에 50여 명에 달하는 사병들까지 있어 철통같은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괴한은 마치 도둑이 빈집이라도 털 듯 여유롭게 저택을 헤집고 다녔다.
괴한이 향한 곳은 추 대인이 깊이 잠들어 있는 침소였다. 얼마나 잘 먹고사는지 젖살이 축 늘어질 정도로 비대한 그는 첩의 옆에 누워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괴한은 추 대인을 깨우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멈칫했다. 아무래도 추 대인을 그냥 깨우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깊은 생각에라도 잠긴 듯, 잠시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던 괴한은 처음 이곳에 나타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그 괴한이 다시금 추 대인의 방에 나타났을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디서 들쳐 업고 왔는지 꽤나 덩치가 장대해 보이는 장정 하나를 들고(?) 들어왔던 것이다.
괴한은 장정을 방바닥에 눕힌 후, 자세를 적당히 잡은 다음 무슨 일인지 미동도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이라도 하는 것일까? 한참 시간이 지나자 추 대인의 코 고는 소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보통 코 고는 사람들이 똑같은 음정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소리가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시적인 현상일 테지만 추 대인의 코 고는 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아주 작게 바뀌었을 때,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괴한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 순간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추 대인의 코 고는 소리는 딱 멈췄고, 대신 방바닥에 누워 있는 장정이 코를 골더니 그 소리를 점차 높여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코 고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바뀐 만큼, 뭔가 미묘한 소리의 변화가 있긴 했다. 하지만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추 대인의 부하들은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아마도 그들은 ‘아, 쓰펄! 돼지 같은 새끼. 조금 잠잠하나 싶었더니, 또다시 골아 대기 시작하네’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잠시 주위의 동정을 살피던 괴한은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추 대인에게로 다가가 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 하고 쳤다. 슬쩍 친 것처럼 보였지만, 맞은 추 대인이 느낀 충격은 달랐던 모양이다. 비대한 살집 사이로 감춰져 있던 추 대인의 새까만 눈동자가 번쩍 떠졌고, 벌떡 일어나 앉아 머리통을 감싸 쥐며 끙끙거렸기 때문이다.
“하이고…, 머리야.”
한동안 이마를 비벼 대던 추 대인은 어둠 속 저편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자가 바로 코앞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 대인이 그를 한참 뒤에야 발견한 것은 잠이 번쩍 깰 정도의 고통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괴한은 시커먼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 부위까지 복면으로 가리고 있어 어둠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다.
괴한을 발견한 순간, 조그마하던 추 대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확장됐다. 그런 그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허억! 누, 누구냐?”
추 대인은 깜짝 놀라 겁에 질린 표정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려 댔지만 비대한 살집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는 연신 영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 그건 알 필요 없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추 대인은 목에 힘을 주고 엄포부터 놓았다.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도 있었고, 밖에 대기하고 있을 경비병이나 공동파 고수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네 이놈! 감히 본관이 누군 줄 알고!”
하지만 오라는 부하들은 꿈쩍도 않고, 대신 추 대인의 눈앞에 괴한의 손이 어른거리더니 또다시 불꽃이 번쩍였다.
빠각!
“크흐윽!”
“한 번만 더 헛소리를 나불거리면 아예 머리통을 박살 내 버리는 수가 있어. 알겠나?”
추린은 머리통을 감싸 쥔 채 다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저택을 경비하는 사병의 수는 거의 50명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10여 명은 뛰어난 무예를 지닌 장정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주위에는 무공을 지닌 호위 한 명이 20보 이내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데, 추린이 황성사의 간부로 임명되었을 때부터 그의 그림자가 된 인물이었다.
언제나 듬직하게 여겼던 그조차도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이렇게 큰 소리를 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추린으로서는 작금의 현실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네놈이 소부경 추린이 맞나?”
욱신거리는 머리를 주무르고 있던 추린의 손이 딱 멈췄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의 숨까지 멈췄다. 그는 너무나도 놀랐던 것이다. 좀도둑이라고 생각했던 괴한이 알고 보니 정확히 자신을 알고 침입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재물을 훔쳐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추린은 등골이 오싹해 옴을 느꼈다. 괴한은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신에게 뭔가 목적이 있어 찾아온 것이다.
“맞아? 틀려? 그것부터 빨리 말해.”
얼핏 들으면 도저히 협박을 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낮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다. 마치 친한 지기와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
추린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자, 괴한은 그에게 다가서며 중얼거렸다.
“흠, 좀 멍청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놈이 맞는 것 같군.”
그리고 또다시 눈앞에 불꽃이 번쩍 하며 추린은 의식을 잃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추린은 현 상황이 분명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철통같은 경비를 뚫고 괴한이 자신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소부경 추린 대인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추 대인의 애첩이었다. 그녀는 잠결에 침상을 더듬거리다가 추 대인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귓청을 울리는 코 고는 소리는 어디서 들려오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억지로 눈을 떴다. 그리고 발견했다. 방 중앙에 드러누워 코를 골아 대고 있는 낯선 사내를 말이다.
“꺄아아악!”
그녀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마자, 곧이어 문짝이 부서지며 흑의를 입은 무사 한 명이 날아 들어왔다. 어느 결에 뽑아 들었는지 흑의무사가 뽑아 든 장검에서는 싸늘한 예기가 뻗어 나와 실내를 난도질할 듯했다. 하지만 곧이어 흑의무사의 표정은 낭패감으로 일그러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장검을 휘두를 대상이 없었던 것이다.
“추 대인은 어디에 계십니까?”
첩을 향해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그에 대답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문짝을 부수고 달려 들어온 외간 남자로 인해 더욱 놀란 상태였다. 필사적으로 이불을 잡아당겨 자신의 알몸을 가리기에 급급해하는 그녀에게 사내의 질문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무사들이 실내로 달려 들어왔을 때, 흑의무사는 첩에게 말을 거는 것을 포기하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사내를 깨우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는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점혈을 통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해 놨는지 모르겠지만 코를 요란하게 골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진(陣) 위사.”
경비무사들의 책임자는 흑의무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주저없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한동안 해혈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하던 그는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쉬며 일어섰다. 아직까지도 사내가 요란하게 코를 골아 대고 있는 것을 보면, 진 위사의 시도는 실패한 모양이다. 그때서야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경비무사의 책임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놈은 장원에서 잡일하는 하인 놈인데 왜 여기에 있지?”
“뭐! 잡일하는 하인이라고?”
“예, 확실합니다.”
흑의무사는 눈썹을 찡그리며 뭔가를 생각하다 경비무사들의 책임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흠, 총관에게는 기별을 넣었는가?”
“예,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실 겁니다.”
그 말에 흑의무사는 경비무사들까지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아예 이불을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추 대인의 애첩을 가리키며 말했다.
“작은 마님께 다른 숙소를 마련해 드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주변을 철저히 경비하되, 쓸데없이 돌아다녀 소중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발자국 따위를 없애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부하들에게 단단히 주의시키도록 하게.”
“예.”
“그리고 공동파에 사람을 보내어 추 대인께서 납치당하셨음을 알리도록 하게.”
그런 흑의무사의 말에 경비 책임자는 깜짝 놀라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추 대인의 비대한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의 안색은 핏기를 잃어버리고 새하얗게 변했다. 하필이면 그가 당번을 서고 있을 때 추 대인이 실종되다니. 혹시라도 나중에 무사히 추 대인이 돌아온다 해도 경비를 잘못 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의 안색은 침통할 수밖에 없었다.
“저, 납치당하셨다면 공동파가 아니라 형부(刑部)에 먼저 고하는 게 순서가 아닙니까?”
“형부 쪽에서 취급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세. 무림의 고수가 연관되어 있어. 형부보다는 공동파 쪽이 훨씬 도움이 될 걸세.”
“무림인이라구요?”
흑의무사의 말에 경비 책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도에 무림인이라니. 잠시 망연한 표정으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하인을 바라보던 경비무사들의 책임자는 다급히 부하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렸다.
“장삼, 넌 공동파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려라! 그리고 넌 이 방 안으로 그 누구도 들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비하도록!”
평온하던 등천로의 아침은 경비무사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소란스럽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 * *
공동파 무사들이 추 대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진 위사는 어디론가 떠나 버린 후였다. 세 명의 무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도착한 노련해 보이는 중년 무사는 공동파의 1대제자 유정길(劉停吉)이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총관과 경비무사들의 책임자를 불러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세한 정황을 물었다.
“그러니까 추 대인이 납치당한 것이 틀림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오.”
총관의 대답에 유정길은 경비 책임자에게로 시선을 돌려 허락을 구했다.
“현장을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안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유정길은 자신이 데려온 무사들에게 시선을 돌려 명령했다.
“너희들은 이분의 뒤를 따라가서 현장을 철저하게 조사해라. 뭔가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말이다.”
“옛!”
경비무사들의 책임자와 무사들이 떠난 후, 유정길은 다시금 총관에게로 시선을 돌려 물었다.
“추 대인의 방에서 발견되었다는 그 하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의 방에 옮겨 놓은 후, 보초를 세워 뒀습니다.”
“옮겨 두었다구요? 그렇다면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겁니까?”
“예, 이상한 것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계속 요란스럽게 코를 골며 자고 있습니다.”
총관은 일부러 진 위사에 대한 말은 생략했다. 진 위사는 황실의 비밀 기관에 소속된 인물이다. 그런 그의 존재를 허락도 없이 외부인에게 발설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쪽으로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럽시다. 노부를 따라오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