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0화 (556/930)

지선이 방으로 들어서자 정진사태가 급히 질문을 던졌다.

“침입자가 있다더니 어찌 되었느냐?”

“도망쳐 버렸습니다.”

보고를 받은 정진사태는 순간 당황한 모양이다. 침입자를 잡지도 못했는데 지선이 돌아왔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적이 탈출했다면 응당 그녀가 앞장 서서 추격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침입자의 무공이 대단히 강했던 게로구나.”

“예, 사부님. 그자는 제자들이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거느리고 온 제자들의 무공실력은 정진사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였기에 지선의 보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강하더냐?”

“예, 무공도 대단했지만 그자의 경공술은…, 너무나도 엄청나서 도저히 추격 자체가…….”

“허긴, 한밤중에 경공이 뛰어난 적을 추격해 봐야 좋을 게 없겠지. 그래, 그자의 무공이 그렇게 대단했다면 피해는 크지 않았느냐?”

“2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습니다.”

“불행 중…….”

정진사태의 입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지선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침입자가 연공공을 납치해 갔다는 점입니다.”

그 말에 정진사태는 굉장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예.”

지선은 사부에게 이번에 자신이 알게 된 것을 말할까 말까 잠시 고심하는 듯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알고 보니 연공공은 실력을 숨기고 있던 고수였습니다. 그가…….”

그녀는 연공공이 사부와 필적할 정도의 고수라는 걸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정진사태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지선은 자신의 눈이 낮음에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혹 사부님께서는 그가 무공을 연성했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지선아. 그토록 무림의 무공이 발전하고 있는데 그것을 어찌 황궁에서 그냥 보고만 있었겠느냐? 무림의 고수들을 흡수하는 한편, 나름대로 고수들을 키웠겠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황궁이 지금껏 무림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었겠느냐?”

9파1방과 몇몇 문파들만이 무림의 전부라고 생각할 만큼 자부심이 강했던 지선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마귀의 집단인 마교를 포함해서 말이다. 지선이 고개를 푹 숙이자, 정진사태는 잠시 부드러운 눈길로 제자를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사실 연공공은 대단한 실력의 고수이다. 그런 그가 납치되었다고 하니 내가 놀랐었던 게야. 어쨌거나 일이 아주 고약하게 되었구나.”

환관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십상시 중 우상시 연공공이 납치되었다. 그것도 아미파가 철통같은 경계망을 펼치고 있는 황궁 안에서 말이다.

“무림맹에 기별을 넣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잠시 염주만 굴리며 아무 말 없던 정진사태는 마지못한 듯 중얼거렸다.

“그래야겠지.”

대답을 하는 정진사태의 얼굴은 황궁에 드리워진 암운을 감지한 것인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최근 악비 대장군의 갑작스런 실종이나 괴한이 침입하여 연공공을 납치해 간 것이나 천하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정도의 파장이 있을 거라는 것을 예감한 것이다.

여기가 개방 분타야? 마교 분타야?

소팔개가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을 때, 독두개는 개 다리를 하나 구워 놓고 그걸 안주삼아 열심히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소팔개는 주위를 둘러본 뒤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안심이 안 되는지 다급하게 전음을 날렸다.

<큰일 났습니다, 타주님.>

하지만 독두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마시고 있던 술잔을 마저 깨끗하게 비운 후, 탐탁치 않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큰일? 큰일은 무슨 놈의 큰일. 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딴 거 알아서 뭐 해? 자네도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이리 와서 술이나 마셔.”

독두개는 아예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사발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소팔개에게 권하는 것이었다.

<타주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누가 그걸 몰라? 꺽! 젠장. 그 망할 새끼가 추린을 납치해 이리로 끌고 와서 고문을 했는데, 내가 지금 제정신으로 있게 생겼어?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나는…, 나는 끝장이라구!>

독두개는 도저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참을 수 없었는지 다시금 사발을 번쩍 들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소팔개는 독두개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게 그의 팔을 잡으며 다급히 말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지금 놈이 누굴 납치해 왔는지 아십니까?>

“뭐! 또 잡아 왔어?”

<황궁의 실세 중 실세라는 연공공을 잡아 왔단 말입니다!>

독두개는 술이 번쩍 깰 수밖에 없었다.

“뭣이? 지, 지금 그놈은 어디에 있나?”

<어디긴 어디겠습니까? 지하 창고에 있습죠.>

하루 빌어 하루 먹는 거지들 주제에 무슨 창고가 필요하겠는가 싶겠지만,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창고의 필요성이 있었다. 구걸해 온 돈을 모아 두는 데도 이용되었지만 여름에는 서늘했기에 술을 저장하는 데 딱 좋았고, 추운 겨울밤에는 모두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물론 이곳 남경은 지하 창고에까지 들어가 추위를 피해야 할 정도로 추운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팔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두개는 꽁지에 불붙은 닭마냥 지하 창고를 향해 달려갔다. 종5품 추린만 하더라도 하늘이 아득해질 정도인데 권력의 실세인 연공공까지 납치해 오다니, 이건 개방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달려가는 독두개의 입에서 마치 비명과도 같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 이런 개새끼! 날 아예 말려 죽이겠다는 거야!!!”

지하 창고를 향해 달려가는 독두개는 정말이지 혀를 깨물고 죽고만 싶었다. 극악무도한 마교 교주가 이곳에 등장한 이래, 그는 이곳 개방 분타를 마치 마교 분타라도 되는 듯 애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그 사실을 잘 숨겨 왔지만 그게 언제 들통 날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지하 창고로 들어가는 입구는 분타의 뒤편 으슥한 곳에 있었다. 독두개가 다가가자 창고 입구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히히덕거리며 얘기를 나누던 거지 둘이 화들짝 일어나 인사를 건네 왔다. 독두개가 아끼는 술독들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었기에, 평상시에도 경비를 세워 둘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교주의 만행이 밖에 새 나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타주님.”

“그래, 별 이상은 없었느냐?”

“조금 전에 부타주님께서 들어갔다 나오신 것 외에 다른 출입자는 없었습니다.”

“그래, 수고들 하는구나. 나중에 술독 하나 줄 테니 근무 끝난 후에 나눠 먹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타주님!”

경비를 서고 있는 거지들과 잠시 한담을 주고받은 후, 독두개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며 독두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쓸모없는 새끼들. 교주가 주구장창 들락거리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는 주제에 이상이 없다고? 저런 밥버러지 같은 새끼들에게 수고했다고 술까지 처먹여야 하다니. 에고, 내 팔자야.’

남경 분타의 지하 창고는 꽤나 널찍했지만 바닥에 여러 가지 쓸모없는 것들이 널려 있어 지저분하기 그지없었다. 등잔이 요요한 빛을 뿜는 가운데, 누군가의 신음성이 음산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끄으으윽, 끄응~.”

신음성 사이로 음침한 교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비 대장군은 지금 어디에 있지?”

곧이어 남자의 목소리도 아니고 여자의 목소리도 아닌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괴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그걸 네놈에게 말해 줄 이유가 없다.”

“호오, 아직 맛을 덜 본 모양이군.”

교주가 무슨 짓을 했는지 곧이어 뾰족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끼아아아악!”

“버텨 봤자 네놈만 손해야. 살아서 나가고 싶으면 빨리 불어. 혹시 대장군의 위치를 잘 모른다면, 저기 있는 돼지처럼 나한테 진실을 대신 말해 줄 사람을 알려 줘도 돼.”

교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처참한 비명성이 울려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즐기는지 교주의 말투는 음침하긴 했지만 상당히 편안한 편이었다.

“어때, 이젠 말할 생각이 들었나? 버텨 봤자 소용없어. 그래 봐야 네놈 몸만 상한다니까…….”

“크흑!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곧이어 교주의 그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오래 살고 싶지 않으니 제발 좀 죽여 봐. 지금껏 네놈과 같은 소리를 한 놈들은 엄청 많았는데, 단 한 놈도 실행을 하지 않고 있으니, 원…….”

그 말에 독두개는 자신이 능력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 교주의 머리를 박살 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이죽거리는 말투로 말할 때는 정말 울화병이라도 생길 정도로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그때 안쪽에서 교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들어왔으면 이리 올 것이지, 거기 서서 뭐 하고 있나?”

독두개는 어쩔 수 없이 교주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 교주는 독두개가 고이 모셔 놓은 술독을 열어 입술까지 축이며 연공공을 닦달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횃불 아래로 드러나는 전경은 참혹했다.

연공공은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손톱이 뽑혀 버린 것도 모르고, 그 손으로 땅바닥을 긁어 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 접근하자 연공공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그리고 새로 등장한 인물이 누구인지 곧바로 기억해 냈다. 황성사의 간부들 중 하나인 그가 이곳 황도의 개방 분타주 독두개에 대한 보고를 받지 않았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연공공의 얼굴을 보고 있던 독두개는 그의 묘한 표정 변화에서 상대가 자신을 알아봤음을 느꼈다. 정보를 취급하는 단체에 오랜 시간 종사해 온 그였기에, 이런 부분에 매우 민감한 신경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독두개로서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공포심을 느꼈다. 만약 저 망할 교주가 나중에 연공공을 풀어 준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회한 독두개는 짐짓 시치미를 떼고 느긋한 어조로 교주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셨습니까? 교주님. 원하시던 일에 대한 성과는 좀 있으셨습니까?”

얻어맞을까 봐 감히 내색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독두개가 자신의 존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묵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독두개가 갑자기 살갑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자 놈의 저의를 알 수 없었던 묵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꽤 질긴 놈이라 아직까지는 성과가 없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걸 실토할 거야.”

“만약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면 또다시 황궁에를?”

“그거야 알 수 없지.”

지금껏 당한 게 있었던 연공공은 독두개가 던진 먹이를 덥석 물었다. 사실 장시간 지독한 고문을 당한 연공공이 평정심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교주? 지금 교주라 했느냐? 그렇다면 네놈이 마교(魔敎)라는 단체의 수장이더냐?”

그 말에 묵향은 이죽거리며 대꾸했다.

“이런이런, 황성사의 정보력이 형편없는 모양이군. 마교가 아니라 천마신교(天摩神敎), 즉 마교(摩敎)지. 이쪽의 명칭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니, 가소로운 것들.”

“큭! 이런 육시할 놈 같으니라구. 너 같은 극악무도한 놈이 교주로 있으니, 마교(魔敎)로 불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육시(戮屍)란 이미 죽은 사람의 시체를 여섯 조각 내어 소금에 절여 각 처에 돌리는 극악한 형벌이다. 물론 그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묵향이 아니다. 그는 곧장 연공공의 얼굴을 밟고 지그시 힘을 가하며 으르렁거렸다.

“네놈이 아직까지도 자신의 처지를 잘 모르는 모양인데……. 본좌를 육시하기 전에, 본좌가 네놈을 먼저 육시할 수 있음을 명심해라.”

으지직.

얼굴이 땅바닥에 반쯤 파묻힐 정도의 엄청난 힘이었다. 연공공은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렇게 말한 묵향은 잠시 연공공의 면상을 지그시 노려보더니 툭 한마디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고문 도중에 죽어 버리면, 육시를 해서 그 조각들을 황궁에다가 뿌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군.”

지금까지도 묵향에게 당하고 있는 분근착골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그런 말까지 들으니 연공공으로서는 모골이 송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독두개가 구미가 당기는 듯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뒷탈이 염려스러운데 교주가 연공공을 죽여 준다니 기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공공의 목을 자르실 겁니까?”

“왜? 자네가 자르고 싶나? 뭐, 평상시에 맺힌 게 많았다면 육시하는 것쯤은 자네에게 양보하도록 하지. 지금 하는 꼴 보니, 몇 시진 안 기다려도 놈의 몸을 토막칠 수 있을 게야.”

연공공의 겉모습은 처참했지만 그보다 오랜 시간 가해 놓은 분근착골의 영향으로 인해 그의 근골은 더욱 엉망진창인 상황이었다. 아마 이곳에서 살아나간다고 해도 과거의 무위를 되찾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은 정양해야 할지도 몰랐다.

독두개로서야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연공공이 이곳에서 살아나가기를 원치 않기에 묵향의 제안에 구미가 당기는 듯 반색을 하며 물었다.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런 그들을 보며 연공공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 이런 악독한 거지 새끼! 내가 네놈과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렇게 악랄하게 구는 것이냐?”

이왕에 엎질러진 물이었다. 독두개는 능청스레 말했다.

“교주님, 저놈은 척 봐도 절대로 비밀을 발설할 놈이 아닙니다. 그냥 죽여 없애 버리시죠. 제가 술술 불 만한 다른 놈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럴까? 안 그래도 워낙 입이 질긴 놈이라 짜증나던 참이었는데…….”

묵향이 슬그머니 자신에게 다가오자 연공공은 다급히 외쳤다.

“잠깐!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걸 모두 실토하면 살려 주겠느냐?”

묵향은 연공공의 몸에 가해 놨던 분근착골을 해제하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추밀사(樞密使)가 이번 일을 벌였다고 들었다.”

“추밀사?”

묵향은 독두개에게 고개를 획 돌리며 물었다.

“추밀사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말해 봐.”

별로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지만, 독두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알려 줬다. 추밀사가 명목상 군부의 수장이긴 하지만 실권은 거의 없다는 점, 현재 그의 입김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라면 황군이 전부일 것이라는 정도였다.

“추밀사가 대장군을 없애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이유가 있을까?”

“그야 군권을 과거처럼 추밀원으로 집중시키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대장군일 테니까요. 악비 대장군이야말로 최대의 군벌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자신은 군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휘하의 장졸들이 모두 추밀원의 명령보다는 대장군의 명령만 듣고 있죠. 그게 바로 군벌이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이제야 확실하게 꼬리를 잡았군.”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은 묵향은 더 이상 이곳에서는 볼일이 없다는 듯 어딘가로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지하에는 연공공과 추린, 그리고 독두개만이 남았다.

“끄으으윽!”

신음성을 흘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연공공. 그를 보며 한순간 독두개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를 죽여 입을 막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방은 마교 교주의 하수인이라는 지독한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독두개의 눈빛이 일순 악독하게 변했고, 그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

“귀하가 이곳에서 살아나간다면 본방에 크게 위해를 가해 올 것이 분명하므로, 부득불 귀하를 처치하는 수밖에 없겠구려. 원망하려면 나보다는 저 망할 교주 새끼를 원망하도록 하시오. 모든 일은 그놈이 이곳 남경에 왔기에 시작되었으니.”

독두개가 공력을 끌어올리며 치명적인 일격을 준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공공의 안색은 전혀 변동이 없었다. 도저히 탈출할 방법이 없으니 이미 삶을 포기한 것일까? 더군다나 그는 오랜 고문을 당한 후라 몸도 마음도 엉망인 상태였다.

독두개의 손이 번쩍하고 연공공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가 시전하고 있는 것은 개방이 자랑하는 최강의 장법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으로, 그 한 수에 연공공의 목숨을 앗아 버리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고 있었다.

슈아아악!

삶을 포기한 듯 가만히 서 있던 연공공의 몸이 옆으로 슬쩍 움직였고, 놀랍게도 그 작은 움직임만으로 독두개의 일격은 옆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 독두개의 눈에 두려움이 짙게 깔렸다. 그는 그때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연공공은 자신보다도 훨씬 뛰어난 고수였다.

퍽!

단 일격에 독두개는 피를 토하며 쭉 뻗어 버렸다. 극심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독두개의 실력이 그렇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상대가 교주의 고문으로 인해 파리 한 마리 때려잡을 힘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상대를 과소평가한 것. 그게 그의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쿨럭! 별 쓰레기 같은 것이 감히…….”

연공공은 우선 추린에게로 다가갔다. 추린도 자신과 같이 극심한 고문을 당한 상태라 함께 탈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추린은 무공도 익히지 않은 몸이니 상태는 더 심각할 것이다.

“이봐, 어서 정신을 차려 봐.”

축 늘어져 있던 추린은 연공공의 채근에 억지로 눈을 떴다.

“우, 우상시 공공……?”

추린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연공공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의 입에서 예의 날카로우면서도 살기에 가득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본관이 머지않아 황병을 데리고 돌아올 것이니, 그때까지 죽은 척해서 저들의 눈을 피하고 있어라.”

“아, 알겠습니다.”

왠지 모를 한기를 느낀 추린은 연공공을 마주 보지 않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귓가에 다시 연공공의 말이 들려왔다.

“크크, 네놈이 예서 죽는다면 본관은 억울해서 잠도 못 잘 것이야. 반드시 돌아와 네놈의 주리를 틀고 말 것이다. 부디 꼭 살아남아 있어라.”

“그, 그게 무슨……?”

추린은 그제서야 자신이 연공공을 밀고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 연공공이 눈치 챘다는 사실도. 추린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황급히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애걸하기 시작했다. 그가 알고 있는 연공공은 한 번 앙심을 품으면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상대를 파멸시키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제, 제발 용서를…….”

“이번에 아주 좋은 것을 배웠다. 분근착골이라는 것을 말이다. 본관이 직접 겪어 보니 네놈에게도 반드시 맛보여 주고 싶구나. 그런 연후 네놈의 시체를 갈가리 찢어 버릴 것이다!”

연공공은 추린의 혈도를 짚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은 후, 재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위에 도착한 그는 문에 난 틈새를 이용하여 밖을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문짝이 워낙 두껍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이라, 밖의 상황을 엿보기가 아주 힘들었다.

이때 밖에서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뭣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거지?”

“그야 모르지. 안에서 한잔 꺾고 계신지 말이야.”

“빌어먹을! 타주님이 취해 버리면 약속하신 술 한 동이도 그냥 날아가 버리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지 말고 네가 한번 들어가서 살펴 봐.”

“미쳤냐? 그러다 걸리면 경을 치게 될 텐데…….”

목소리로 봤을 때 문 앞에서 떠들어 대는 놈은 단 두 명. 둘뿐이라면 자신의 이런 형편없는 몸으로라도 어떻게 될 수도 있을 듯했다. 연공공이 문을 살며시 열었을 때 타구봉을 들고 문 앞에 서 있던 거지 두 명은 독두개가 나오는 줄 알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고개를 조아려 인사를 하였다.

“볼일은 끝나셨습…….”

그리고 그것은 연공공에게 최고의 기회를 제공해 줬다. 연공공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거지들을 덮쳤다.

퍼퍽!

영문도 모르고 기습 공격을 당한 거지들의 몸이 쓰러지고 있을 때, 연공공은 이미 밖을 향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경공술을 전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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