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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언제 살수를 보내올까?”
복수의 의미인 만큼 편복대주는 살수를 보내는 시점을 저쪽에서 황제 암살에 실패한 후로 잡고 있었다. 따라서 구양운 장로에게서 살수를 없앴다는 연락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날도 편복대주가 차를 마시며 애타는 속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밖에서 수하가 다급히 달려 들어오며 외쳤다.
“대주님, 급보가 도착했습니다!”
“크흐흣, 드디어!”
수하의 말에 편복대주는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놈들의 살수가 붙잡혔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미소는 곧이어 들려온 수하의 말에 흔적도 없이 무너져 버렸다.
“대규모로 이동 중인 마교 집단이 포착되었답니다.”
“뭣이! 대규모라고?”
입으로는 경악성을 터뜨리면서도, 그의 눈은 수하에게서 건네받은 전서를 읽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새롭게 포착된 마교 고수의 수는 대략 2천여 명! 물론 그 숫자만으로 그들이 어느 정도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면, 2천 명 규모로 이뤄진 염왕대의 전투력이 겨우 1백 명 정도인 천마혈검대보다 훨씬 뒤쳐지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마교 고수들의 이동을 포착한 첩자가 보낸 전서에는 상대의 무공에 대한 예측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특1급 고수 1백여 명, 특3급 고수 5백여 명, 나머지는 1급 고수들로 추측된다는 것이었다. 특1급 고수들이 끼어 있는 걸 보면, 얼마 전 행적을 놓친 바로 그 마교 전투단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고 판단하는 게 옳을 것이다.
숫자만으로 따져 본다면, 과거 장인걸 교주 시대 때 마교가 보유하고 있었던 전투단 중 천마혈검대, 수라마참대, 천랑대가 함께 출동한 것과 유사한 전력을 지녔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즉, 묵향 부교주가 그 휘하의 가장 강력한 전투단 세 개를 한꺼번에 투입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도대체 이들이 왜?”
편복대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묵향 부교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들이 여기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적들의 정면 공격의 징조인가?
편복대주는 급히 수하에게 물었다.
“이들 외에 다른 움직임을 포착했다는 보고는 없었느냐?”
“전혀 없었습니다, 대주님.”
“이해할 수가 없군. 아무리 마교가 최강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손 치더라도 이들만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편복대주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아차! 내가 실수했다. 부교주는 처음부터 살수를 투입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편복대주는 자신의 멍청함을 한탄했다. 사실 마교에서 살수를 보낼 거라는 정보가 무림맹에서 흘러나왔을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는데……. 그게 자신이 하고 있던 생각과 맞아떨어졌기에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인 게 문제였다.
“빌어먹을! 연경에 살수를 보낸다는 건 이쪽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연막전술이었어! 내가 그런 초보적인 간계(奸計)에 놀아나다니…….”
정말이지 묵향 부교주는 계책에 능한 인물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모사가 뛰어난 놈인지도 모른다. 설민이라고 했던가? 설무지라는 뛰어난 실력자의 아들이라고 하더니, 과연 혈통이라는 건 무서운 것인 모양이다.
“놈들의 농간에 완전히 당했군.”
편복대주는 급히 지도를 활짝 펴고 상대방의 진로를 판단했다. 놈들의 전력과 그 규모로 봤을 때 노릴 만한 곳은 세 군데 정도였다. 연경과 남양, 그리고 노하구. 편복대주는 이를 으드득 갈며 거칠게 지도를 움켜쥐었다. 놈들이 어딜 노릴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남양!
만약 놈들이 이곳에 쌓여 있는 군량미를 불살라 버린다면 60만 금군 전체가 위태롭다.
“교주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
“집무실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편복대주는 장인걸이 있는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드러난 묵향의 약점
장인걸은 고위급 장수들과 함께 봄에 시작될 군사 작전에 대해 논의하던 중이었다.
이때 아무런 통보도 없이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며 편복대주가 뛰어 들어왔다. 편복대주는 장인걸이 장수들과 함께 있는 걸 보자마자 급히 발걸음을 늦추며 전음을 보냈다. 장수들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주님!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이냐는 듯 잔뜩 얼굴을 찌푸린 장인걸의 시선이 편복대주 쪽으로 향했다.
<묵향 부교주가 움직이기 시작했사옵니다.>
그 말에 장인걸은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려 휘하 장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편복대주가 본좌에게 할 중요한 얘기가 있는 모양이네. 작전 회의는 다음에 하는 게 어떻겠나?”
장수들이 모두 집무실을 나간 후 장인걸은 편복대주에게 말했다.
“소상히 고해 보거라.”
편복대주는 재빨리 지도를 편 후 그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마교의 3개 전투단이 포착되었사온데…….”
3개 전투단이라는 말에 장인걸의 표정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놈들의 목표는?”
“그 위치에서 놈들이 공격해 올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이곳과 이곳이옵니다.”
편복대주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노하구와 남양이었다.
노하구는 장인걸의 주력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이곳을 공격 목표로 잡을 멍청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복대주가 두 번째로 가리킨 곳이 목표일 가능성이 컸다.
순간, 침착하던 장인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군량미를 잃게 되면 60만에 달하는 대군을 유지할 방법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군량미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선 장인걸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편복대주는 급히 그 뒤를 쫓아가며 말했다.
“이미 각 장수들에게 출동 준비 명령을 내렸사옵니다.”
편복대주가 말하는 건 장인걸 직속으로 편제되어 있는 마공을 수련한 수천에 달하는 고수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림맹의 움직임은?”
“일전에 보고드린 것에서 변동 사항은 없사옵니다. 우리 쪽의 작전대로 황실의 압력에 의해 왜군을 격파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곤륜에서 양양성으로 움직이고 있는 도사들은 그 이동 속도로 보아 이번 작전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듯 보이옵니다.”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장인걸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무림맹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는 게 의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양성의 움직임은?”
“그쪽도 아직까지 아무런 변동이…….”
장인걸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마교의 단독 작전이란 말인가?”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봐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교주님.”
“이상하지 않은가? 노하구나 남양을 마교 혼자서 치려면 막심한 피해를 각오해야 할 텐데, 그런 미친 짓을 놈이 왜 하려고 하는 거지? 뭔가 딴 계략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연경을 치려고 연막을 친다든가…….”
“놈들이 만약 연경을 노린다면 더욱 잘된 일이옵니다. 황제 폐하의 암살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을 때, 연경에 5백 명의 고수들을 이미 지원해 놓은 상태이지 않사옵니까? 그들이 연경으로 이동해 들어간다면 교주님께서는 전 병력을 이끌고 그들을 추격하여 연경 인근에서 포위, 격멸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편복대주의 말대로 되기만 한다면 놈들을 이리저리 몰며 박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놈들의 움직임이 어디로 향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좋아, 일단 남양으로 가서 사태를 관망하기로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