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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묵향이 갑작스럽게 일으킨 대규모 전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옥화무제는 허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교주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건 진작에 눈치 채고 있었지만 설마 연경을 칠 줄이야…….
“이, 이게 사실인가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태상문주님. 교주가 직접 ‘1종대’를 이끌고 연경을 쳤다고 합니다. 연경의 중심가인 봉황로 일대가 완전히 잿더미로 화했고, 미처 피신하지 못해 죽은 고관대작도 한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황제까지 참살당했다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놀라움에 옥화무제의 커다란 눈이 조금 더 커졌다.
“황제까지 말인가요?”
“예.”
옥화무제는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지긋이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특급살수 몇 명 정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네요.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 보면 처음부터 황제를 노린 것이었어요. 하긴 그랬으니 황제에 대한 정보를 원했겠지만…….”
그 말에 총관은 놀라움을 감추기 힘든 모양이다.
“그렇다면 황제가 죽었다는 게 사실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에요. 교주가 어떤 인간인데 설마하니 그냥 돌아왔겠어요?”
이렇게 대답한 옥화무제는 갑자기 아름답게 세공된 부채를 꺼내 살랑살랑 부치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마교의 단독 행동에 열기가 치미는 모양이다. 한마디만 언질을 해 줬어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텐데…….
“며칠 전 마교의 ‘2종대’와 ‘3종대’가 남양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가 바로 그 때문인 게 분명해요. 그러니까 연경을 치기 위한 양동 작전인 셈이죠. 장인걸이 연경 쪽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러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총관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시했다.
“그 정도 전력을 투입할 거면서 왜 무림맹 쪽에는 협조를 구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참으로 이상합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옥화무제의 손에 쥐고 있던 부채가 박살이 나 버렸다. 짜증이 난 옥화무제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것이다.
“한마디라도 이쪽에 언질을 줬다면 장인걸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었는데…….”
그녀가 아쉬워하는 것은 바로 빈집털이였다. 장인걸의 모든 이목이 연경과 남양에 쏠려 있었기에, 그의 주력이 빠져나간 노하구는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마교와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양양성의 무림인들을 동원해 노하구를 치기만 했어도 손쉽게 엄청난 전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게 아닌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두 눈 빤히 뜨고 그냥 놓친 옥화무제는 아쉽다 못해 화까지 치밀었다. 한참 동안 씩씩거리던 옥화무제는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총관에게 물었다.
“무림맹에는 알렸나요?”
“예, 태상문주님. 문주님께서 정보를 입수하는 즉시, 무림맹에 알리라는 명령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옥화무제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호호, 보고를 받은 맹주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정말 아쉽군요. 내가 그렇게 왜군을 건드리지 말라고 조언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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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무제의 예상대로 그 보고를 접한 맹주의 얼굴은 그야말로 똥색으로 변해 있었다.
“뭣이? 그 말이 정녕 사실이란 말이냐?”
노성을 지르는 맹주의 수염이 방금 자신이 들은 보고 내용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부르르 떨렸다.
보고를 올리던 감찰부주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예, 맹주님. 처음 그 정보를 보내온 곳은 무영문이었는데, 워낙 정보의 내용이 황당하여 이게 사실인지 알아 보라고 지시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도 채 안되어 개방 쪽에서도 같은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양쪽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연경의 절반이 날아갈 만큼 엄청난 전투였다고 합니다. 당시 전투로 인해 금의 중추를 이루고 있던 대신(大臣)들까지도 상당수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영문 쪽의 정보에 따르면 어쩌면 황제까지도 전란의 와중에 사망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답니다.”
그러자 청호진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사제. 마교에서 황제를 암살할 거라는 정보까지 금나라에 은밀히 흘려줬건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혹시 정보가 제대로 그리 흘러가지 않은 게 아닌가?”
“교활하기 짝이 없는 마교 놈들이 남양의 식량 저장고를 치는 척하며 장인걸의 시선을 잡아 놓고는 그사이에 연경을 급습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연경 공략이 힘들었을 텐데…….”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마교 교주가 직접 이 작전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특급 고수만 2천 명 이상이 동원된 듯합니다. 금나라가 큰 피해를 입었듯 마교 쪽 또한 그 피해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 말에 청호진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허, 도대체 교주 그놈이 미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일을?”
청호진인이 어이없어 할 만도 했다. 사실 그 정도 규모의 대규모 전투를 계획하고 있었다면, 단독으로 할 것이 아니라 무림맹에 협조를 구했어야 옳았다. 그편이 훨씬 피해가 적을 건 당연한 이치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교가 혼자 움직인 것은 그 피해를 모두 감수하겠다는 의지였다. 더군다나 사지(死地)라 할 수 있는 연경에 교주가 직접 뛰어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청호진인이 고개를 내젓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한쪽에서 잠자코 말을 듣고 있던 만수진인이 입을 열었다. 왜군을 전멸시키고 돌아온 그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마교의 반격에 대비해 무사들을 해산시키고 않고 맹에서 대기 중인 상태였다.
“아니, 사형들. 마도 놈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웠는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십니까? 양쪽 다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면 오히려 우리 쪽에서는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감찰부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사제, 우리 정파의 근간이 뭐라 생각하는가?”
갑작스런 질문에 만수진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너무나도 뻔한 질문이라 대답하기가 오히려 곤란했던 것이다.
“정(正)과…, 협(俠)이 아닐는지요.”
“협의니 정의니 말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의명분(大義名分)일세. 현재 이 상황은 마교가 피 흘리며 공을 세우고 있을 때, 우리는 그런 동맹군의 뒤통수나 치고 있었다는 말이 되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맹주는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이 소식이 밖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정보를 통제할 수는 없겠는가?”
하지만 감찰부주는 어두운 안색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맹주님. 전투가 벌어진 연경은 본맹의 힘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아무리 정보를 틀어막으려고 해도 전혀 방법이 없습니다.”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특급정보라면 오히려 틀어막는 게 쉬웠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들을 회유하거나, 그게 힘들면 없애 버리면 되니까.
하지만 연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또 그동안 연경을 들락거린 사람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을 텐데 그들을 모두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허허, 이거 참…, 일이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마교의 반응은 어떻던가?”
무림맹에서 무사들을 보내 왜군을 친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사실은 마화가 의도적으로 묵향에게 전해지는 정보를 차단해 버려 아직까지 왜군에 대한 일을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무림맹으로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는 마교의 태도에 답답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동맹 관계를 깨고 적으로 돌아서든지, 아니면 황실의 압력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정중하게 사과를 하든지 말이다.
한동안 회의를 계속하긴 했지만 마교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회의가 끝난 뒤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자 맹주는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신음성을 흘렸다.
“끄응,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평생을 무공을 연마하며 살아온 태극검황이다. 더군다나 무당산에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며 도를 닦는 데 정진해 왔던 그였기에 상대적으로 음모와 술수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빈도에게 검을 들고 싸우라고 한다면…….’
이 순간, 태극검황은 전대 맹주였던 옥청학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그는 공동파 출신이기는 했지만 속가 출신이었기에 이런 쪽에 꽤나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다. 그때는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겼었는데 막상 자신이 겪어 보니 보통 머리가 아픈 게 아닌 것이다.
상념에 잠겨 있던 맹주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옥진호 장로를 그때 쳐 버리는 게 아니었어. 이런 쪽에는 그가 꽤나 소질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