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0화 (596/930)

“이게 놈들이 이번에 사용한 신무기들 중 하나야. 이 위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두꺼운 실에다가 불을 붙이면…….”

무영문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웬만한 암기에 대한 정보는 다 안다고 자부하는 옥화무제였다. 하지만 이렇게 괴상하게 생긴 암기가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쾅! 하고 터지면서 수백 개나 되는 철질려가 사방으로 튀어나가지. 놈들은 이걸 수백, 아니 어쩌면 수천 개 이상 보유하고 있을지도 몰라.”

“도저히 믿기 힘들군요.”

“못 믿겠으면 나중에 터뜨려 봐. 그것 때문에 전력의 태반이 한순간에 날아갔으니까.”

그 말에 옥화무제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만약 묵향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엄청난 암기였던 것이다.

“소중한 정보 정말 고마워요.”

“그 외에 양쪽에 날이 붙어 있는 창도 조심해야 할걸? 그거 언제 튀어나갈지 모르니까. 웬만한 놈은 그걸 다 가지고 있기에 상대하기가 아주 까다로워.”

어지간한 무기라면 묵향이 이런 말도 하지 않았으리라. 그랬기에 옥화무제는 귀를 쫑긋 세우며 다급히 물었다.

“그건 노획한 게 없었나요?”

“바라는 게 너무 많군. 이것도 어렵게 입수한 거야.”

“어쨌거나 고마워요. 당신의 제안은 이걸 한번 터뜨려 본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죠. 그러니까 장인걸이 워낙 강력한 함정들을 파 놨기에 안으로 들어가서는 승산이 없으니, 밖으로 끌어내자는 거 아니에요?”

“이제야 내 생각의 핵심을 이해하는군.”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무림맹이 얻게 되는 건 뭐죠?”

“이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뭐 그런 거야. 자, 보라구.”

묵향은 술잔에 들어 있는 술을 손가락으로 콕 찍어 탁자 위에 그림을 그려 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옥화무제는 그런 묵향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사실 워낙 머리가 잘 돌아가는 그녀였기에 묵향이 이런 설명을 하기도 전에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될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당신이 나한테 계책을 설명할 일이 다 있다니. 이렇게 세속에 물드는 것보다 단순 무식했던 예전의 당신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봐,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짜증어린 묵향의 물음에 옥화무제는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당신, 보기보다 설명을 잘하는군요.”

의외의 칭찬에 묵향은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그의 내심과는 전혀 다른 퉁명스러움이었다.

“젠장,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잘 들어. 한 번만 설명해 줄 거니까.”

하지만 옥화무제는 묵향의 설명을 듣지 않고, 핏대를 세워 가며 설명을 하고 있는 묵향의 열기 어린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재미있는 연극이라도 구경하듯.

‘이렇게 보면, 제법 귀여운 구석이 남아 있단 말이야…….’

설명을 끝마친 묵향이 옥화무제의 조언을 구했다.

“어때?”

“그렇게 나쁜 계책은 아니네요. 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어요.”

“말해 봐. 중원에서 가장 지혜로운 여인의 조언이니 세이경청(洗耳傾聽)해야겠지?”

묵향의 칭찬에 옥화무제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치켜세워 봐야 달라질 건 없어요. 자, 들어 봐요. 첫째, 맹주가 이 제안에 찬성할 리 없어요. 만약 이게 밖으로 밝혀지기만 한다면 파멸이니까요.”

“…….”

“둘째, 장인걸을 완벽하게 속여야만 하는데, 이런 엉터리 함정에 걸려들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영악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제안하는 거잖아. 맹주는 그쪽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맡아 줘. 그러면 장인걸은 이쪽에서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옥화무제가 문득 입을 열었다.

“만약 이대로 진행한다면 마교 쪽의 피해가 엄청날 텐데, 그걸 알고나 있는 거예요?”

묵향은 술 한 잔을 입속에 털어 넣은 다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어.”

“도대체가 알 수가 없군요. 이렇게까지 해서 당신이 뭘 얻겠다는 건지…….”

잠시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던 옥화무제는 갑자기 묵향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얻게 될 걸 한 치의 가감도 없이 정확히 말해 줘요. 그래야 내가 맹주를 설득하기도 쉬우니까요. 나도 납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맹주를 납득시킬 수 있겠어요?”

“장인걸에 대한 뼈에 사무친 원한이라고 한다면 불충분한가?”

옥화무제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많이 부족해요. 원한은 훨씬 이전에 발생했으니, 이제 와서 당신이 광분하고 있는 이유가 될 수 없죠.”

대답을 하지 않고 한동안 묵향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이윽고 결심이 선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전에 그쪽에도 의뢰가 들어갔으니 모를 리는 없겠지. 석량 형님 말이야.”

“석량?”

옥화무제가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며, 묵향은 급히 말을 이었다.

“참, 만통음제라고 하는 게 알아듣기 편하겠군.”

“만통음제가 왜요?”

“그의 실종에 장인걸이 개입되어 있어. 그리고 놈들은 그걸 시인했고…….”

순간 옥화무제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설마, 만통음제를 구출하기 위해 이런 미친 짓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건 아니겠죠?”

잠시 머뭇거리던 묵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 천지문도 몇 명과 제령문의 후계자인 서량, 그리고 만통음제 형님의 제자인 설취가 납치됐어. 장인걸 그놈에게…….”

묵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물어물 말했지만, 옥화무제는 그 중에서 ‘천지문’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천지문도 몇 명이라고요? 그렇다면 혹시…, 소 낭자 때문인가요?”

그 물음이 묵향에게 준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컸던 모양이다. 그 순간 마치 번개라도 맞은 듯 얼빠진 표정을 지었으니 말이다. 지금껏 자신에게 단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었던 묵향의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며, 옥화무제는 자신의 짐작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묵향은 급히 표정을 추스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당최 영문을 모르겠군.”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 짐짓 무표정을 가장하며 술잔을 들이키고 있는 묵향을 향해, 옥화무제는 생긋 미소 지으며 어기전성을 보냈다.

《당신 딸을 말하는 거예요.》

“풋!”

너무 놀라 입속에 있던 술까지 뿜어 낸 묵향은 옥화무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걸 언제 알았지?”

“언젠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당신과 영인이의 정략결혼을 계획할 때쯤이었던 것 같네요. 워낙 오래전 일이니까…….”

“무영문의 정보력은 정말 놀랍군.”

“과찬이에요.”

그렇게 대답한 옥화무제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급히 덧붙였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본문에서 새나 간 게 절대로 아니에요. 그런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래요.”

겉으로는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옥화무제의 어조 깊은 곳에는 그녀가 납치된 데 대해서 자신들에게까지 혐의가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우려와 달리 묵향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그건 알고 있어. 장인걸이 소연이를 납치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니까.”

“두 번째라구요?”

“뭐, 옛날 얘기는 이쯤에서 접고…, 그 정도면 대답이 되었나?”

“양녀 때문이라는 게 좀 의외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됐어요.”

『<묵향> 25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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