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견정을 따라 한 사내가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사내의 두 눈은 지금부터 시작할 고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광기로 번들거렸다. 사내는 들고 온 연장들을 탁자 위에 쭉 늘어놓은 뒤 독두개의 전신을 훑어보며 이죽거렸다.
“제법 뼈대가 굵은 것 같은데 내가 즐거움을 듬뿍 맛볼 수 있도록 제발 오래만 버텨다오.”
어느새 부드러운 미소를 회복한 견정이 조용하게 말했다.
“입만 살아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너에게 맡기마.”
“예, 대인!”
달랐다. 견정이 데려온 수하는 말 그대로 고문에 있어서는 나름 일가를 이룬 자였다. 무림에도 분근착골과 같은 고문 수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처럼 몸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사내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고통스러운지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피부를 벗기고 소금을 뿌리는 것은 애교였다. 손톱과 발톱이 뽑힌 것은 이미 오래전이고, 이빨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내의 손길이 전신을 스칠 때마다 독두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통이 너무 심하면 졸도라도 할 텐데, 사내는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점까지만 고통을 주며 즐겼다.
어느새 감옥 안은 짙은 혈향으로 가득 찼고, 그 한가운데에는 피부가 모두 벗겨져 벌건 고깃덩이처럼 보이는 독두개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두개의 두 눈이 흐리멍텅하게 변해 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차츰 미쳐 가는 것이다.
“크으으, 날 죽여. 제발 죽여 달란 말이야.”
“이제 시작인데 벌써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허접한 놈들이야 고문을 하다 죽이기도 하지만, 난 그런 놈들과는 달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내가 주는 즐거움을 듬뿍 느껴 보라고. 좀 더 발악을 하란 말이다, 크크크.”
죽지도 못하고, 참을 수 없는 이런 고통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내의 말에 독두개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절망감에 미친 듯이 발작을 일으키던 독두개의 몸이 일순 빳빳하게 굳는가 싶더니 축 늘어졌다. 기절을 한 것이다.
사내는 재빨리 독두개의 코 밑으로 손가락을 대 보았다. 미약하지만 숨결이 느껴지자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독두개의 전신 기혈을 만져 주었다. 자술서를 아직 받지도 못했는데 죽으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때 감옥 안으로 언제 들어왔는지 견정이 사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찌 된 게냐?”
“고통에 기절을 했사옵니다, 대인.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충분히 입을 열게 할 자신이 있사옵니다.”
하지만 견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흠, 나도 그러고 싶지만 상부에서는 멀쩡한 모습의 죄수를 원하신다. 자술서를 쓰라는 건 그렇게 회유를 해서 황실을 위해 여기저기에 마교 교주의 악독함을 알리려는 게야.”
“그, 그렇다면……?”
견정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일단 물러가 있거라.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부를 테니 말이다.”
“예, 대인.”
사내가 연장을 챙겨 감옥 밖으로 나가자 견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독두개와 같이 의지가 굳건한 사람들을 한두 명 상대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문을 해도 이런 사람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의외의 자극에 그들은 쉽게 무너지곤 했다. 문제는 그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견정의 입가에 어느새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독두개를 무너트릴 좋은 방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독두개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전신을 엄습하는 고통에 치를 떨어야 했다. 어느새 그의 온몸에는 진한 연고가 발라져 있었는데 꽤 좋은 약인지 빠르게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독두개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고문하던 사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내는 보이지 않았지만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술잔을 들이키는 견정의 모습은 보였다.
“오, 이제 깨어났는가? 기다리기 지루해서 한잔하고 있었던 참일세.”
마치 친구에게 건네는 듯한 그 여유로운 말투에 독두개는 새삼 묵향보다 더 악독하고 잔인한 놈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쯧쯧, 아무리 내 수하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래서 난 무식한 놈들이 싫어. 충분히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를 그놈들은 무식하게 고문으로만 해결하려 하거든. 그렇지 않은가?”
독두개는 대답을 하지 않고 아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그의 귓가로 견정의 부드러운 말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자네가 만약 나보다 내 수하들을 더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안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강골이라고 서로 이 감옥 안으로 들어오겠다고 난리거든.”
또다시 그런 끔찍한 고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자 진저리를 치며 독두개는 두 눈을 번쩍 뜬 뒤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라 좆같은 새끼야! 죽여! 날 죽이란 말이야!”
“허허, 애써 약까지 발랐는데 흥분하면 몸에 좋지 않아. 진정하게나.”
견정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하지. 누구를 위해 그토록 버티는가? 자네가 이러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가? 그러지 말고 내 말대로 하게. 자술서만 쓰면 평생 배부르게 먹고살 만큼 재물도 주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정착까지 시켜 주겠네.”
독두개가 더 이상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자 견정은 빙글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마음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만. 혹시 아는가? 지금 이곳에 갇힌 거지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독두개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견정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계속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난 한 시진마다 한 명씩 그들을 이 방으로 데려와 죽일 게야. 그리고는 이렇게 말할 생각일세. 가슴 아픈 일이지만 자네가 그들을 살려 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이지.”
순간 독두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에 또 다시 정신을 잃은 것이다. 점차 사라져 가는 의식 속에서 독두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왜 자술서를 쓰는 것을 극구 거부했는지를.
묵향의 무자비한 보복도 두려웠지만, 썩을 대로 썩은 송 황실에 대한 반감이 더 컸다는 것을.
어긋난 여인의 사랑
조령은 양양성에 도착한 그날부터 마교와 제령문을 들락거리며 납치된 동료들의 안위를 묻고 다녔다. 심지어는 작은 규모의 무사들의 이동만 있어도 혹시 구출 작전이 시작된 것이냐며 집요하게 물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며 잘 대꾸도 해 주지 않던 무사들도 차츰 그녀의 정성에 감복하여 어지간한 것은 대꾸를 해 주기에 이르렀다. 납치된 동료의 안위를 걱정하는 조령의 마음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조령은 오늘도 아침을 먹자마자 마교와 제령문을 들락거리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객잔으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오동통하던 조령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방 안에 앉아 쉬려할 때 쟈타르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박쥐 한 마리가 처마 밑에 날아들었습니다, 황녀님.”
“들라 하세요.”
두 사람의 뜻 모를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 야행복으로 전신을 감싼 한 사내가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황녀 마마.”
“어서 오세요.”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마자 조령은 오늘 자신이 마교와 제령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현재 양양성에 파견된 편복대를 총괄하는 이철륜은 조령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교주를 최근 보지 못했다는 말씀이시옵니까, 황녀 마마?”
“본녀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이렇듯 중요한 시기에 모습이 보이지 않다니……. 하지만 아무리 캐물어도 아무도 대답을 해 주지 않아요.”
“흠, 사실 저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그자의 행방이옵니다. 황녀 마마.”
“최대한 알아낼 수 있도록 힘을 써 볼게요.”
현재 편복대가 수집하기를 원하는 최우선 정보는 묵향과 황도를 습격한 무사 집단의 행방이었다. 편복대가 양양성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마교와 관련된 흔적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곳 양양성에 와 있는 흑풍대는 정상적인 마교 세력이 아니다. 마교의 주력은 마공을 고도로 익혀, 무시무시한 마기를 뿜어대는 극강의 고수들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그들의 기척을 찾아내기는 아주 쉬워야만 했다. 하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양양성 인근을 아무리 뒤져도 그들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잠시 고개를 숙여 생각을 정리하던 이철륜은 조령을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외에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었습니까?”
조령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을 하다 뭔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오늘 흑풍대원들과 곤륜파 도사들이 싸우는 걸 봤어요.”
“예? 싸우다니요?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정식으로 첩보 교육을 받지 못한 조령이기에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보고 들은 것을 최대한 이철륜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철륜으로서는 조령의 말에서 뭔가 쓸만한 정보가 될 것 같다는 냄새를 맡은 것이다.
“오늘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에 금룡각이라는 객잔 뒷골목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중에서 몇 사람이 안면이 있더라구요. 바로 흑풍대 무사들 말이에요.”
“상대는 곤륜파 도사들이 맞습니까?”
“모두들 도복을 입고 있었는데, 소매에 태극 문양이 그려진 건 곤륜파 도사들이 맞잖아요. 그런데 하두 흑풍대, 흑풍대 하길래 굉장히 싸움을 잘하는 줄 알았더니 곤륜파 도사들에게 줘터지고 있더라구요.”
흑풍대의 저력을 익히 알고 있는 이철륜이었기에 조령의 말에 긍정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현재 동맹이라는 명분하에 손을 잡고는 있지만,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관계라는 점을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오랜 세월동안 피 터지는 전투를 계속해 왔던 두 단체가 어느 날 갑자기 사이가 좋아질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후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곤륜파 쪽은 모르겠지만 마교에 가 보니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어요. 얻어터지고 왔으니 위에 보고는 못 하고, 나중에 두고 보자며 단단히 벼르고 있던데요.”
그 말을 들은 이철륜의 눈이 번쩍였다. 곤륜파와 마교간의 뿌리 깊은 원한을 익히 알고 있는 그였기에 만약 여기에 조금만 더 기름을 부어 준다면 아예 사생결단을 내자고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것을. 수하들을 풀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이철륜은 조령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소중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황녀 마마께 이런 궂은 일을 부탁드리게 되어 너무나도 송구스럽사옵니다.”
“귀관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어요. 이건 본녀가 원해서 하고 있는 거니까요.”
말을 하던 조령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아미를 찡그리며 언성을 높였다.
“참! 얼마 전에 마교로 진 공자의 손이 잘려서 왔다던데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본녀가 신신당부하지 않았나요? 진 공자의 털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융숭하게 잘 대접하라고 말이에요!”
묵향이 당시 진팔의 손을 상자에 담아 가져온 금나라 장수의 왼손과 귀를 잘라 쫓아 버린 뒤 마교에서는 입단속을 철저히 했다. 괜히 이런 일이 주위에 알려져 봐야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령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하급 무사들과 이야기를 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령은 까무러칠 뻔했다.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이던가. 그런데 그런 사람의 손이 잘려 소금에 절여 보내져 왔다니. 보지 않아도 진팔 공자가 겪었을 고통과 좌절감이 느껴져 조령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매섭게 이철륜을 추궁하는 조령의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고여 그렁그렁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이철륜은 뭔가 떠올랐는지 탄성을 지르며 되물었다.
“아! 진팔 공자의 손 말씀이시옵니까?”
꽝!
이철륜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을 하자 화가 솟구친 조령이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네놈이 감히! 본 황녀를 능멸하겠다는 게냐!”
의외의 큰소리에 쟈타르는 급하게 방 밖으로 나가 주위를 훑어보았다. 혹시 근처에 누군가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철륜은 얼른 고개를 조아리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건 황녀 마마의 오해이시옵니다. 교주를 경동시키기 위해 진팔 공자와 비슷한 체형의 죄수의 손을 잘라 보낸 것일 뿐, 진팔 공자께서는 편히 지내고 계시옵니다.”
“그, 그게 정말이더냐?”
“제가 어찌 감히 황녀 마마께 거짓을 고하겠사옵니까. 진팔 공자의 손이라는 표식을 내기 위해, 그분의 반지를 뽑아서 함께 붙여 보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황녀 마마께서 착각하실 거라고는 속하도 예상치 못했사옵니다. 미리 말씀드려 마마를 안심시켜 드리지 못한 점 송구하옵니다.”
그제야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조령은 차분히 자리에 앉아 이철륜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나가 보라는 뜻이었다.
“그럼 소인은 이만.”
이철륜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조령의 눈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진팔 공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조령의 마음 같아서는 하루라도 빨리 황도로 돌아가 진팔 공자의 안위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사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을 만큼 지치기도 했다. 귀하게만 자랐던 조령이었기에 단순한 탐문 정도라고는 하지만, 심적으로 느끼는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이러한 부탁을 해 온 편복대주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만약 악적 묵향과 진팔 공자에 대한 연심이 없었다면 절대 이런 일을 맡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이 뒤바뀐 그때의 일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그녀의 눈앞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