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9화 (615/930)

이진덕이 지휘하는 212조는 개방도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워낙 촘촘하게 포위망을 구축해 놓은 상태라, 개방도들이 그들의 이목을 끌어 주지 않았다면 탈출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무영문의 비밀 분타로 이동하는 즉시 총단을 향해 보고서를 날렸다. 그리고 그 전서를 해독한 추밀단에서는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212조가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건져 냈기 때문이다. 추밀단주는 그 정보를 즉각 태상문주와 문주에게 알렸다.

* * *

이곳은 대송제국 황도 남경. 무영문의 남경분타주는 허겁지겁 걸음을 옮겼다. 문주를 수신인으로 하는 총단에서 띄운 전서가 방금 전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계시느냐?”

왕 타주의 질문에 경비 무사는 낮은 어조로 대답했다.

“창(敞) 선생과 환담을 나누고 계십니다.”

창 선생이라면 비영단주를 칭하는 은어였다.

“그래?”

평상시라면 그냥 돌아갔겠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르다. 전서구가 가져온 대롱에 찍힌 문장은 특1급을 나타내고 있다. 즉시 문주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문주가 임시로 기거하고 있는 방에 다가가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성사에서 문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뻔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만나보는 게 좋겠지요. 아직은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문주께서 직접 가실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후한 음성의 주인공은 비영단주의 것이었다. 여기까지 정감 있게 말하던 비영단주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무슨 일인가?”

아직 문을 연 것도 아니건만, 왕 타주는 납쭉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총단에서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오게.”

“예.”

왕 타주는 자신의 무례를 사죄한 후, 방금 전에 도착한 급전을 문주에게 건넸다. 전서의 등급은 특1급. 남경분타 내에서는 그 누구도 전서를 해독할 수 없었다.

왕 타주가 다시 고개를 조아린 뒤 밖으로 나가자, 문주는 비영단주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전서가 담긴 대롱을 개봉했다.

전서의 내용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특1급이라는 등급이 붙여졌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문주는 전서를 비영단주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아주 재미있는 정보로군요.”

문주에게서 전서를 받아든 비영단주의 눈매가 매섭게 빛났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 정보는 천금(千金)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개방을 배제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

대답은 안 했지만 문주의 표정을 보니 자신의 제안에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이 정보를 혼자서 독식할 수만 있다면, 무림맹으로부터 엄청난 대가를 뽑아낼 수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완벽한 처리라는 말에 비영단주는 멈칫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변수가 너무 많았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모든 가변 요소들을 검토해 본 비영단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이진덕 조장의 보고대로라면 212조가 무사히 그곳을 탈출했다는 것 자체가 천행이라고 할 정도로 운이 좋았습니다. 만약 미끼가 되어 준 개방도들이 없었다면 탈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을 테지요. 제 판단으로는 그곳에서 살아서 탈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확신하듯 말하는 비영단주의 말투에 문주는 가볍게 놀라는 눈치였다. 언제나 신중하던 비영단주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진덕 조장을 상당히 신뢰하시나 보군요?”

“겉보기와는 달리 화술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주 용의주도한 녀석입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사소한 것조차도 허투루 여기지 않고, 그 이면을 꿰뚫어보는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 났지요. 그 정도 나이에 조장에 임명된 사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진덕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비영단주는 그의 보고를 완벽하게 신뢰했다. 그렇기에 그는 보고서 중간에 등장하는 가짜 패력검제 따위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문주는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을 말했다. 비영단주가 그토록 신뢰하는 사람인 만큼, 그의 보고서가 틀림없다는 가정하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 것이다.

“하지만 부상자들은 물론이고, 마을 여기저기에 비표들을 남겨 뒀다고 하는데, 모두 찾아 없앨 수 있겠어요? 만약 이진덕 조장이 개방도들이 어디에 비표를 숨겨 놨는지 모르고 있다면?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그 비표들 중 하나가 개방도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렇다면 자칫 개방과의 무력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너무 컸다. 하지만 비영단주는 별것 아니라는 듯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비영단주는 슬쩍 문주에게 조금 더 다가앉으며 낮은 어조로 말했다.

“마교 놈들은 212조가 탈출에 성공했다는 걸 아직까지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마을에 남아 있는 개방의 부상자들과 비표들을 찾아내어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린 뒤 최대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려 할 겁니다. 그럼 우리는 놈들이 떠난 뒤 혹시라도 남아 있을 수 있는 흔적들만 없애버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설혹, 나중에 개방에서 그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뭔가 눈치를 챈다고 하더라도 모든 혐의는 흑살마왕 쪽에서 뒤집어쓰게 되겠지요.”

비영단주의 말에 문주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궁리하던 문주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교주와 무림맹 간의 중계를 통해 무영문 역사상 최대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건이 이제 막 성사되려는 시점에, 이런 것에 신경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깝기는 하지만 차라리 최대한 빨리 무림맹에 알리는 게 좋겠어요. 지금은 교주와의 건에 무영문의 전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되어지는군요.”

“그러지 마시고 태상문주님께 먼저 여쭈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맹에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정보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노회하기 그지없는 옥화무제라면 이 상황에서 무영문이 최대한 이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리라는 굳은 믿음의 말이었다. 문주 역시 비영단주의 마음과 같았기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수하들을 출발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거기까지는 워낙 먼 거리니까요.”

옥화무제의 허락이 떨어지면 곧장 우이 마을로 달려가 모든 걸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곳까지의 거리가 먼 만큼, 나중에 철수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부하들을 출동시키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조심하도록 하세요. 이게 외부에 밝혀지게 된다면, 개방과 아주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핫핫!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심스런 문주의 말에 비영단주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호탕하게 대답했다. 비영단주는 밑바닥에서부터 온갖 험한 일들을 처리하며 성장해 이 자리에까지 선 사람이다. 당연히 옥화무제의 딸로서 곱게 곱게 성장한 문주와는 그 배짱부터가 다른 것이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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