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0화 (616/930)

“크아아악!”

너무나도 끔찍한 악몽에 독두개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온 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흘리며 윗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포기해야만 했다.

“여, 여기는……. 어디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본 그는 자신이 꽤 근사한 침상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형틀에 매여 지독한 고문을 당했던 것 같았는데……. 그게 모두 꿈이었나? 몸이 아픈 상태에서 악몽까지 뒤섞이자 독두개의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치 아편이라도 한 듯 왠지 몽롱하면서도 어질어질한 것이 도저히 정상적인 생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 건지 모든 게 불분명했다.

그 와중에도 독두개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 한 가지는,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개방의 분타들 중 하나는 절대로 아니라는 점이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廢家)를 애용하는 개방의 분타에 이렇게 좋은 방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러다 자신이 황성사의 고문 기술자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을 간신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감옥? 하지만 여, 여기는 아무리 봐도 감옥인 것 같지는……?”

그는 재빨리 몸속의 기를 움직여 봤다. 일단 내공이라도 쓸 수만 있다면, 최악의 경우 자살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혈도를 제압당했는지 단전에는 실낱같은 기운조차 모이지 않았다.

독두개가 기를 쓰며 제압당한 혈도를 풀어보려 애쓰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의생인 듯 보이는 중년인이 들어왔다. 독두개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걸 상대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편이 탈출하기도 용이하리라.

중년인은 독두개를 진맥한 다음 이불을 들쳤다. 독두개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여기저기에 나 있었지만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깊은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중년인은 상처를 감싸고 있던 면포들을 벗겨 낸 다음, 새로이 약물을 바르고 깨끗한 면포로 다시 감싸 주었다.

중년인이 치료에 열중하고 있을 때,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중후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독두개는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눈을 뜰 수는 없었다. 들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몸 상태는 어떤가?”

“예. 대단한 실력자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게 오히려 행운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당했을지는 몰라도, 신체적인 손상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니 말입니다. 아마, 오늘 안으로 깨어날 테니 조장께서 걱정하실 필요까지는 없겠군요.”

“잘됐구먼.”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조장이라 불린 사내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환자가 정신을 차리면 곧바로 내게 기별을 해 주게.”

“예.”

독두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형부의 눅눅한 감옥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여기가 황성사란 말인가?’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놈들이 원하는 걸 해 주지는 않은 것 같았으니까. 아마 놈들은 고문이 통하지 않자, 자신을 황성사로 끌고 온 모양이었다. 형부보다는 그쪽이 훨씬 더 다양한 고문 도구들이 갖춰져 있을 건 자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그 사람 같지도 않았던 놈의 기억이 떠오르자 독두개의 온몸에는 소름이 확 돋았다. 뼛속 깊은 곳까지 고통과 두려움이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놈의 고문은 지독했다. 만약 또다시 그놈에게 고문을 당한다면, 이번에는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어쩌면 지금 이렇게 치료를 해 주는 것이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 약물로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중후한 음성의 사내가 밖으로 나가고, 의생인 듯한 중년인 혼자만 방에 남았다. 그마저도 밖으로 나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는 전혀 밖으로 나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차가운 물수건으로 독두개의 몸을 닦아 주기도 하고,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씩 그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는 게 느껴졌다.

중년인의 눈치를 살피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독두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행동을 개시했다. 내공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의생이 또 뭔가를 하기 위해 그에게 바싹 접근했을 때, 독두개의 상체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끄윽!”

순간적으로 독두개에 의해 목이 졸린 중년인은 끅끅거리는 소리를 토해 내며 버둥거렸지만, 더 이상의 행동은 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곧이어 축 늘어졌다.

독두개는 중년인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손에서 힘을 뺐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을 치료해 준 사람인 만큼, 죽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의생이 가지고 있던 보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샅샅이 뒤졌지만, 아쉽게도 그가 원하는 걸 찾지는 못했다.

“젠장, 무슨 놈의 의생이 칼 한 자루도 안 가지고 다녀.”

방 안을 살피던 독두개는 투덜거리며 침상 위에 놓여 있던 면포들을 묶어서 길게 하나로 연결했다. 면포 세 개를 묶으니 자신이 원하는 길이만큼은 되었다. 그걸 손에 들고 독두개는 천장을 두리번거리며 뭔가 걸 만한 자리가 있는지 살폈다. 곧이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낼 수 있었다.

“한창때는 싸우다 죽는 걸 꿈꾼 적도 있었지. 하지만…, 젠장! 서까래에 목매달고 죽을 팔자였을 줄이야.”

그로서는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판에 탈출을 감행한다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몇 발자국 채 나가지도 못해서 곧바로 붙잡힐 게 뻔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

의자 위에 올라선 독두개는 서까래에 매단 면포에 목을 걸었다. 이제 의자를 발로 밀치기만 하면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리라. 하지만 그는 마지막 행동을 하지 못하고 계속 머뭇거렸다. 그라고 해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겠는가.

“교주! 이 개새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남경분타주로 있으면서 배 두드리며 편안히 잘 먹고 잘살았던 독두개였다. 그런데 그놈의 교주 놈 때문에 이렇게 인생이 확 꼬여 버린 것이다. 자살을 하기 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욕설을 교주에게 퍼붓던 독두개는 이를 뿌드득 갈며 의자를 발로 차 버렸다. 잠시 허공에서 버둥거리던 독두개의 두 다리가 얼마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축 늘어졌다.

* * *

“지급(至急)으로 도착한 전문입니다.”

문관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오며 전서 한 장을 내밀었다. 전서에는 총관을 수신인으로 지정하고 있었으며, 수신자 외에 그 누구도 암호를 해독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보통 외부에서 날아오는 전서들은 모두 다 추밀단으로 보내져 해독된다. 정보를 수집하는 비영단(秘影團)과 그 정보를 해독하는 추밀단(諏密團)의 2원적 체계로 만들어진 이유는, 어느 한쪽이 의도적으로 정보를 외곡하거나 차단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 공식적인 정보 이동의 체계를 무시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전서의 내용이 기밀을 요한다는 표시였다. 추밀단에게까지도 숨겨야 할 정도로.

전서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암호로 기록되어 있긴 했지만, 총관은 책자 따위에 의지하지도 않고 단숨에 그걸 풀어 냈다. 머릿속에서 내용이 해석되어 나감에 따라 총관의 눈은 놀라움으로 인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나!”

총관은 전서를 꾸깃꾸깃 한 덩어리로 만들어서는 입속에 털어 넣은 다음, 밖으로 나가면서 자신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약당으로 갈 테니 급한 일이 있다면 그쪽으로 기별을 하도록 해라.”

“옛.”

총관은 전력을 다해 경공술을 전개해 달려갔다. 하지만 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했다. 오히려 총관보다는 그를 수행하고 있는 두 명의 무사들의 발걸음이 훨씬 더 안정되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젊었을 때부터 행정직에 종사해 왔고, 어느 정도 높은 직책에 오른 후에는 너무 바빠서 무공 수련을 할 짬을 내기도 힘들었다. 그가 총관에 임명된 것은 무공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정보를 처리함에 있어 특출난 능력을 보인 덕분이었다.

“수고가 많구만, 약당 당주.”

“총관님이 아니십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약당에 올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차라도 한 잔 드시겠습니까?”

“성의는 고맙지만, 그럴 시간이 없구먼. 내가 당주를 급히 찾은 건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일세.”

“말씀하시지요.”

총관은 거의 습관적으로 주위를 쓱 한 번 둘러봤다. 비밀을 요하기 위해 자신을 호위하고 온 무사들은 처음부터 방 밖에서 대기하라고 지시를 내려두었기에 당주의 집무실에는 총관과 약당 당주 단 두 사람뿐이었다.

<약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 몇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있기에 자네를 찾은 것이네.>

총관의 전음에 당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자네가 파견해 준 의생 있지 않나.>

<아, 예. 나이는 젊지만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총관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방금 전에 전서에서 봤던 내용을 당주에게 들려줬다. 환자가 목을 맸는데, 마취약의 약효가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게 한 가지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약물에 문외한인 그로서는 목을 매다는 것과 마취약이 무슨 연관을 지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걸 알아야 상관에게 제대로 된 보고를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래서 체면불구하고 약당으로 달려온 것이다.

당주는 총관의 의문에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마취약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대상이 죽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전신(全身)에 작용하는 강력한 것이었지요.>

고문 중의 실수로 독두개가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그를 빼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고 있네.>

<이 마취제는 대상이 죽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신체 활동을 극도로 저하시킵니다. 신체 활동이 저하되는 만큼, 신체의 각 부위가 필요로 하는 혈액의 양 또한 현격히 줄어들게 되죠.>

약당 당주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은 모양을 취해 보였다.

<평상시보다 머리 쪽에서 필요로 하는 혈액의 양이 줄어드는 만큼, 여기가 이렇게 꽉 틀어 막혔다고 해도 뇌가 좀 더 버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야 이해가 가는지 총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 자네 설명을 듣고 보니 상황이 아주 고무적이로구먼.>

<그렇게 고무적은 아닙니다. 어찌 되었건 마취약의 기운이 없을 때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은 건 사실이겠지요. 환자가 숨은 쉬게 되었다니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그 상태로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은 총관께서도 미리 인지하시고 계셔야 할 겁니다.>

<영영 못 깨어날 수도 있다고?>

<예. 만약 뇌에 충격을 받았다면 그 상태로 계속 누워만 있는 것이죠. 물론 목에 가느다란 관을 박아서 음식물을 조금씩 넣어 주는 등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기법들이 있긴 합니다만, 그런 것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3개월 이상 생명을 유지시킨 전례는 없으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