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0화 (626/930)

함정인가? 아니면 기회인가?

마교에서 비급들을 입수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았지만, 그로 인해 맹주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약조한 대로 장인걸에게 밀사를 파견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맹주는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흑살마왕에게 누구를 보내는 게 좋을꼬?”

참으로 어려운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제대로 된 협정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니니 문제인 것이다. 즉, 사자로 파견된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제가 가겠습니다, 맹주님.”

보다 못한 청호진인이 자청했지만, 맹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청호진인은 끈질겼다.

“아무나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흑살마왕이 바보가 아닌 이상, 맹주님의 최측근이 아닌 인물이 사자로 온다면 의심할 게 뻔하겠지요. 그러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

맹주는 다시 한 번 힘겹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본 감찰부주 역시 간곡한 음성으로 청했다.

“사형이 안 된다면 저를 보내…….”

“어허, 너희 두 사람은 절대 안 된다. 마교에 마령섭혼심법(魔靈攝魂沁法)이 있음을 벌써 잊었더냐?”

맹주의 지적에 두 사람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령섭혼심법은 상대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는 악질적인 마공이다. 그걸 이용해서 대상의 심지를 제압한 후, 맹 내의 기밀사항들을 물어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특히, 이번 일이 함정인지 아닌지 캐내 보기라도 한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들통 날 게 뻔했다.

정순한 내공을 쌓은 도인에게는 그런 사악한 마공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장인걸이 그 마공을 쓸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편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일단 단전을 파괴해서 내공을 흩어 버린 다음, 고문을 통해 정신까지 황폐화시킨 후라면 아무리 도사의 할아버지라 할지라도 마령섭혼심법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인질을 온전한 상태로 돌려보내야 한다면 그런 악독한 수법을 쓰지 않겠지만, 일단 인질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순간 장인걸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맹의 일에 대해 그리 많이 알고 있지 않은 사람이 적임자라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맹주의 측근이 아닌 사람을 밀사로 보내자니 장인걸이 의심을 할 게 뻔하고……. 이래저래 고민인 것이다.

잠시 말이 없던 감찰부주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만수 사제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수를 말이더냐……?”

“사제는 맹 내의 일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으니 만약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고 해도 흑살마왕이 캐낼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만수진인은 맹주의 측근이기는 했지만, 장로회의에서 듣는 정도를 제외하면 깊은 정보는 거의 알고 있지 못했다. 어쩌면 감찰부주는 처음부터 만수진인을 밀사로 보낼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이번 일에 대해 그 어떤 언질도 주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순간 맹주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끼던 사질들 중 하나를 희생해야만 하다니……. 하지만 운이 좋다면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도 있었다. 장인걸이 오판을 해 주기만 한다면.

“무량수불…, 잘되어야 할 터인데…….”

맹주의 부탁에 만수진인은 군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장인걸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호위는 물론이고 수행원이나 짐꾼 또한 없었다. 다만, 그의 품속에 맹주가 장인걸에게 전하는 두툼한 서신 한 통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절대적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걸 흑살마왕 본인에게 직접 전해라.”

“만약,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전하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도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그 때문에 노부가 너를 택한 거니까.”

자신에 대한 사숙(師叔)의 굳건한 믿음에 만수진인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서신을 흑살마왕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마. 무림의 안녕은 물론이고, 무당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맹주님.”

소중하게 품속에 서신을 집어넣은 만수진인은 서신의 내용이 뭔지는 몰라도, 무슨 일 때문에 맹주가 이 서신을 장인걸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내심 짚이는 바가 있었다.

며칠 전 있었던 장로회의에서 맹주는 교주가 어떤 일을 무림맹에서 행해 주기를 원하고, 그 대가로 지금까지 마교에서 약탈해 보관하던 모든 정파 무공 비급의 사본을 지급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물론 이때 맹주는 비밀이라면서 교주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 주기를 원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었다. 대신 그 일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며, 맹의 위상에 전혀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했었다.

‘이상한 일이군. 교주가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고 하기에 흑살마왕과 하루 빨리 전면전이라도 벌여 달라는 주문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뭐지?’

품속 깊숙이 들어 있는 두툼한 서신은 제법 묵직한 무게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뭔지를 알 수 없는 만큼, 장인걸에게 이것을 전한 후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더욱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몰래 뜯어볼까?’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봉인(封印)이 되어 있기도 했지만, 사숙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이런 하찮은 일로 저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신황제를 선출할 때가 되자, 지금까지 부족연합식의 느슨한 통치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던 금나라의 한계가 곧바로 드러났다. 각 부족 간의 숨겨져 있던 갈등과 그 와중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족장들의 이기심이 그것이었다.

“멍청한 것들, 그렇게 자기 생각밖에 안 하다니…….”

생각 같아서는 거슬리는 부족장들을 몽땅 다 죽여 없애 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지만, 그렇게 간단히 처리할 만큼 그들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들은 ‘금’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여진 사회를 이끌어 가던 지배 계층이었고, 또 오랜 세월에 걸쳐 서로 간에 혼약을 통해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장인걸이 그들을 몽땅 다 처형해 버린다면 당장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지겠지만, 자칫 여진 사회 귀족층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우려는 있었다. 동료 부족장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그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위기감을 지니게 된다면 귀족층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리고 그런 내부의 갈등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그렇기에 장인걸은 애써 성질을 죽이고 그들을 회유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죽여 없애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난이도가 더 높은 작업이었다. 철혈의 세계에서 성장한 단순무식한 장인걸에게는.

“지금은 모두들 동요하고 있사오나, 황제의 즉위식이 끝난 후에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장인걸은 답답하다는 듯 의자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튼튼한 참나무로 만든 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가락은 거칠게 나무 속으로 파고들었다.

“고정하시옵소서, 교주님.”

편복대주의 말에 장인걸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심결에 의자를 부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손가락에 힘을 풀며,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여진족 놈들 얘기만 나오면 혈압이 올랐으니까.

“참, 요즘 놈의 동태는 어떠한가?”

장인걸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다짜고짜 ‘놈’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묵향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입으로 내뱉기 싫었기 때문이리라.

“그, 그게…….”

머뭇거리는 편복대주의 모습에 장인걸의 눈이 실쭉 가늘어졌다. 지금 당장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아닌가. 황성이 놈에게 털린 후, 놈의 움직임을 철저히 추격하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직까지도 자신의 명령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니……. 안 그래도 여진족 놈들 때문에 짜증이 나 있던 상태였다. 장인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설마…, 지금 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듯한 장인걸의 질책에 편복대주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송구스럽습니다, 교주님. 제발 고정하시기를……. 워낙 무공이 고강한 자라, 도저히 추격할 수가 없었사옵니다.”

장인걸이 보기에 놈은 겉보기와 달리 아주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 놈은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면대결을 즐기지 않았다. 아니, 비열하게 최대한 적의 빈틈을 노려 뒤통수치는 걸 더욱 좋아했다. 그전에도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아서 십만대산에서 쫓겨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놈은 일전의 전투로 인해 막심한 전력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의 전투 이후로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손실을 입은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마교의 정예를 몽땅 다 양양성 방면으로 이동하고도 시간이 남을 정도로.

장인걸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지도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에는 씁쓸함이 묻어 나왔다. 똑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장인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편복대주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몇 군데에서 부교주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는 했사온데,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 교주님께 말씀 올리지 못한 것이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인걸은 편복대주에게 명령을 내렸다.

“확인되지 않은 거라고 해도 상관없다. 말해 보거라.”

“예. 여러 가지 정보가 있었사오나, 그중에서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그가 십만대산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옵니다.”

편복대주의 말에 장인걸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십만대산에? 거기에 갔다는 게 왜 가장 신빙성이 높다는 것이냐?”

“다른 곳에서는 그자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정보가 꽤나 공신력이 있는 곳에서 획득한 것이라는 것이옵고, 세 번째는 그자가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유일한 정보인지라…….”

“그래, 뭣 때문에 놈이 십만대산으로 갔다고 하더냐?”

“예. 이번에 엄청난 피해를 입은 만큼, 장로들의 반발을 무마해야 할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부교주가 올해 안으로 전쟁을 끝내지 못한다면, 십만대산으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장로회에서 선언했다고 하더군요.”

편복대주의 보고에 장인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예? 이건 무림맹 내에서도 꽤나 고위급에서 흘러 들어온 정보이옵니다.”

“너는 십만대산에서 성장하지 않았기에, 그런 엉터리 정보를 믿었던 것이겠지. 본교에서 교주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교주가 장로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 따위는 결단코 일어나지 않아. 수하들은 교주의 명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완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야. 설혹, 교주가 잘못된 명령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하,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장로들이 반발할 수도 있지 않겠사옵니까?”

장인걸은 주먹을 꽉 쥐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힘과 공포로 억누르면 된다. 물론 그러다가 자신의 능력이 모자라면 수하들에 의해 축출당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다 그자의 힘이 모자라는 것일 뿐, 더 이상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느냐.”

“그렇다면 그가 십만대산으로 돌아간 이유가……?”

장인걸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확언했다.

“십만대산에 있는 모든 병력을 꺼내 이쪽으로 집결시키기 위해서겠지. 아니, 그따위 일로 놈이 직접 거기까지 달려갔을 리 없다. 명령서만 보내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그편이 편리할 뿐더러, 훨씬 빠르지 않겠느냐?”

장인걸은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지도 쪽으로 시선을 획 돌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수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밀분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놈이 그런 곳에서 허송세월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겠지.”

장인걸은 양양성 일대의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지금쯤이라면 이 일대 어딘가에 마교의 모든 전력이 집결되어 있을 게다.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는 게 놈의 장기니까.”

과거 십만대산을 기습당했을 때도, 그는 놈의 주력부대가 이동하고 있다는 걸 눈치조차 채지 못했었다. 그는 똑같은 일을 두 번씩이나 당할 만큼 멍청한 인물은 절대로 아니었다.

편복대주는 슬쩍 장인걸의 눈치를 살핀 후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만약 모든 병력을 꺼냈다면…, 그렇다면 십만대산이 텅 비어 있을 게 아니겠사옵니까? 집결지를 찾는다고 시간 낭비를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병력을 투입해 빈집을 터는 것은 어떻겠사옵니까?”

꽤 타당한 의견이었지만, 그건 마교의 현실을 모르는 계책이었다.

“구양운 장로에게서 듣지 못했느냐? 십만대산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외세의 침략을 불허한 이유는, 그곳이 천혜의 요새라는 점도 있지만 원로원(元老阮)의 존재 때문이야. 원로원이 보유한 무력은 본교 전체 무력의 3할에 달하지. 모두들 과거에 한가락씩 했던 놈들이 은퇴해서 원로원에 들어가는 거니까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전체 무력의 3할에 달한다는 말에 편복대주는 경악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전력이로군요. 그런데 어찌하여 속하가 아직까지 원로원의 존재를 듣지 못했는지……?”

“원로원은 교주의 명령을 받지 않아. 그리고 그 어떤 공격에도 가담하지 않지. 원로원이 움직이는 경우는 단 한 가지, 십만대산이 적의 공격에 노출됐을 때뿐이야.”

“그래서 여태껏 외부에…….”

“교주가 중원 정벌을 하겠답시고 모든 고수들을 이끌고 나가서 몽땅 다 죽어 버렸다고 해도 그게 본교의 패망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지. 이제 알겠느냐?”

“예, 교주님.”

“편복대의 총력을 동원해서라도 놈을 반드시 찾아내라!”

“존명!”

이때, 밖에서 가벼운 문 두드리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장인걸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에 찔끔한 편복대주는 장인걸의 양해를 구한 다음 급히 문 쪽으로 달려갔다. 회의 도중에 방해받는 걸 장인걸은 대단히 싫어했다. 흐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잠시 소곤거리던 편복대주가 급히 장인걸에게 돌아왔다. 그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인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예민한 귀는 이미 편복대주가 문 앞에서 주고받은 말을 빠짐없이 들었던 것이다.

“도대체 만수라는 말코가 누군데 나한테까지 보고가 올라온단 말이더냐?”

“무당파의 전대고수들 중 한 명인 만수진인이옵니다.”

편복대주의 말에 장인걸은 그제서야 그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무림맹의 장로로서 맹주의 최측근들 중 한 명이었다.

“그를 본좌가 만나 볼 필요가 있을까?”

“많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온 거라면 그렇습지요. 하지만 그는 이곳에 혼자 왔사옵니다.”

순간 장인걸의 눈매가 실쭉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비공식적인 일이라는 말이로군.”

“예.”

“설마 그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말코들이 굴복을……?”

장인걸은 자신의 생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중원 북부를 점령한 후, 장인걸은 영토 내에 있는 제법 이름깨나 알려져 있던 문파들을 몽땅 다 토벌해 버렸다. 저항이 만만찮았지만, 장인걸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그들을 잡아들인 이유는 단 한 가지, 무림맹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옥에 감금해 놓은 무림인들의 수도 엄청나게 많았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들을 몽땅 다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수없이 했음에도, 무림맹의 반응은 완전히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금나라에 대한 적대 행위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자신의 협박이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에 분기탱천한 장인걸은 그 보복으로 잡아들인 인질들에 대한 세뇌 작업을 지시해 버렸다. 인질로서 가치를 상실한 만큼, 그렇게 해서라도 써먹는 게 그의 방식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뻣뻣하던 무림맹이 갑자기 숙이고 들어온다? 그것도 지금은 마교의 동참으로 인해 저쪽이 월등한 전력적 우세를 보이고 있는데 말이다.

“거참, 이해할 수가 없구먼. 맹주가 본좌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낼 이유가 없지 않느냐?”

“뭔지는 모르겠사오나 비밀스런 제안을 하기 위해서 달려온 것이겠지요.”

비밀스런 제안이라는 말에 장인걸은 슬쩍 입맛을 다신 후, 편복대주에게 명했다.

“말코를 만나 보도록 하지.”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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