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를 완수한 매영인이 떠나겠다고 하자, 묵향은 그녀를 배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사실, 지금껏 누군가를 배웅해 본 적이 없는 그였으니 그 행동이 조금은 어색했다.
“어쨌건 중요한 정보를 알려 주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와 줘서 고맙군. 옥화무제에도 고맙다고 전해 줘.”
“예.”
지나가던 도중에 그들은 말들과 뒤엉켜서 짐을 정리하고 있는 흑풍대 무사들과 만났다. 얼마 전, 성문 밖에서 만났을 때와는 달리 모두들 전포(戰袍)만을 걸친 홀가분한 옷차림이었다. 투구의 안구 사이로 번쩍이는 눈만이 보일 때는 너무나도 사나워 보였는데, 지금 보니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한 인상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의 말을 돌보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어딘가로 급히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바쁜 모습들이기는 했지만, 그중 누군가는 묵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터였다. 그때는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매영인으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들 일제히 부복하며 ‘교주님 만세!’라고 외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연히 묵향의 모습을 발견한 자들이 군례를 올렸지만, 곧이어 자신의 할 일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매영인에게는 아주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지금껏 상상해 왔던 상명하복적인 마교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묘하게 일그러졌다. 한쪽에 서 있는 흑풍대 무사들 중에서 눈탱이에 시퍼런 멍이 든 사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있는 무사들 중 상당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있었다. 몇몇은 절뚝거리며 걸어 다닐 정도였다.
사나운 눈빛을 뿜어내는 그들의 강맹하기 이를 데 없던 모습과 영락없는 패잔병과도 같은 모습이 교차되며 하마터면 웃음이 새나올 뻔했다. 하지만 이들이 왜 이런 꼴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애써 웃음을 참았다.
흑풍대가 양양성을 떠난 표면적인 이유는 곤륜파와의 갈등이었다. 곤륜파 문도들과 대규모 난투극을 벌인 다음, 그걸 빌미로 양측의 수뇌부들까지 나서서 공개적으로 상대편을 비난하며 설전을 벌였다. 결국 흑풍대의 수장 관지 장로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묵인하고 있던 곤륜파의 장로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은 다음, 이곳 춘릉성으로 거점을 옮겨 온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전에 쌍방이 합의한 연극이었다. 이렇게 해야 장인걸이 이곳 춘릉성으로 흑풍대가 옮겨온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격투에 가담한 양쪽 하급무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기왕에 싸우는 것, 승리해야 할 게 아니겠는가. 양쪽은 사망자가 나오기 직전까지 박 터지게 싸웠던 것이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연인을 배웅하듯, 그렇게 기분 좋은 얼굴로 매영인을 배웅한 묵향은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집무실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에 피어 있던 미소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아주 힘든 일이라도 치른 듯 피곤한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밖에 대고 외쳤다.
“술 좀 가져와!”
“옛.”
“젠장, 이 짓도 힘들어서 못해 먹겠군. 왜 이렇게 자주 오는 거야? 아니면 아예 한방에 끝내 버리게 할망구가 직접 찾아오던지…….”
낮은 목소리로 궁시렁 투덜거리던 묵향은 마치 옆에 누군가가 서 있기라도 하듯 질문을 던졌다.
“자네가 우려한 대로던가?”
묵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다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설민이 허겁지겁 달려 들어왔다. 그는 방금 전까지 묵향의 옆방에 자리 잡고, 교묘한 각도로 뚫린 구멍을 통해서 매영인을 관찰하고 있었다.
설민은 이번에도 옥화무제가 오지 않고 매영인이 온 것을 보자 혹시 저쪽에서 묵향의 무영문 말살계획을 눈치 챈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 말에 묵향은 설민에게 옆방에서 그녀를 관찰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 아무래도 여자의 표정을 관찰함에 있어서 자기보다는 가정을 꾸리고 있는 설민이 월등하게 나을 거라는 가정 하에.
설민은 묵향과 대화를 나누는 매영인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그녀가 묵향을 아주 존경하고 있다는걸.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겉으로는 정파니 사파니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약육강식인 세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는 게 무림이라는 곳이다. 그 세계에서 최강의 고수와 면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묵향이 평소와 달리 얼마나 친절하게 그녀에게 대해 주고 있는가. 그녀로서는 이게 꿈인가 싶을 것이다. 마치 소녀가 자기가 좋아하는 경극배우와 만남의 시간을 즐기듯…….
“부문주는 교주님을 아주 좋아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 표정 하나하나에 흠모의 정이 담뿍 배여 있더군요. 속하가 너무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설민의 말에 묵향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것 봐, 내가 뭐랬어? 간단하게 속일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이때 수하 한 명이 술과 간단한 안주를 가져왔기에, 묵향은 그것을 받아 술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자네도 한잔 할 텐가?”
그 말에 설민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졌다. 그는 아는 것이다. 저 술병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말이다. 저걸 마시면 아마 며칠 동안 자신은 일어서지도 못하리라.
“감히 속하가 어찌 교주님과 대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괜찮아. 나는 그런 거 안 따지는 사람이거든.”
“속하가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해야 할 일도 많고 말입니다.”
“그래? 이 좋은 걸 안 마시겠다니…….”
짐짓 불쾌하다는 듯 투덜거리며 묵향은 거친 동작으로 술잔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크…, 좋군.”
묵향은 얼굴 여기저기를 문지르며 또다시 투덜거렸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얼굴 근육이 다 땡기는군.”
아마도 매영인을 상대할 때 줄곧 미소 짓고 있었던 걸 말하는 모양이다. 너스레를 떨던 묵향은 갑자기 설민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그곳에 내 딸이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묵향이 하는 행동을 내심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설민이었다. 그런데 묵향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질문을 던지자 자신의 속마음이 들켰을 새라, 황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9할이 넘을 걸로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묵향은 좀이 쑤시는 모양이지만, 설민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서둘러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습니다.”
“뭔가 좋은 생각이 있는 모양이군.”
“예. 현재 장인걸은 심각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병사들은 넘치지만, 정작 필요한 고수들의 숫자는 턱도 없이 모자라죠.”
“그건 본좌도 알고 있어.”
“현 상황만으로도 구출작전은 엄두도 내기 힘든데, 그곳의 기관진식을 장인걸이 더욱 강화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설민의 지적에 묵향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했다.
“글쎄. 그것만 가지고는 안심이 안 돼는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 그곳에 배치해 둔 고수들을 철수시키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고수가 모자라는데, 그런 곳에 언제까지 천마혈검대와 같은 고수들을 놔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흠, 그러니 그때가 소연이를 탈출시킬 수 있는 적기다, 이거로군.”
“예, 교주님.”
하지만 설민은 이때 한 가지 사실을 숨겼다. 장인걸이 저 먼 태산파에다 소연을 감금한 이유가 뻔했기 때문이다. 왕복 2천5백 리가 넘는 거리였다. 그 엄청난 거리 자체가 또 하나의 함정이었다. 저렇게 방어력이 뛰어난 곳에서 소연을 구출하려면 적지 않은 전력을 쏟아 부어야 할 건 당연한 사실. 이쪽의 전력이 분산되는 그 순간, 그걸 노리고 있던 장인걸은 곧바로 달려들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다 소연을 감금해 놓은 거라고 설민은 판단했다.
“좋아. 일단 태산파 내부의 자료를 좀 더 모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세.”
“예.”
대화가 모두 끝나자 예를 올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설민을 묵향이 급히 불러 세웠다.
“더 하명하실 게 있으십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년을 찾아내도록 해. 홧김에 관지에게 잡아오라고 고함을 지르기는 했지만, 그가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비마대를 투입하면 곧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묵향은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듯 탁자를 쾅 치며 외쳤다.
“썩을! 그때 그냥 목을 비틀어 버렸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장인걸을 속여 넘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젠장. 그걸 아니까 더욱 화가 나는 거라구.”
매영인이 돌아가고 난 그날 밤, 묵향은 착잡한 심정을 달래려 연신 술잔을 들이켰다. 장인걸에게 납치된 소연에 대한 미안한 감정 때문이었다. 자신의 능력이 이렇게 보잘 것 없게 느껴진 것도 처음이었다. 지금 같을 때, 아르티어스가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아버지는 꼭 필요할 때는 없단 말이야. 도대체 어디에 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니 더욱 울적해졌다. 이럴 때 누군가가 자신의 곁에 있어 줬으면 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르티어스도 만통음제도…….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자는 게 아니라 그저 술잔이나마 같이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울적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겠지만.
매영인이 준 자료를 아무리 검토해 봐도 태산의 경비 태세는 너무나도 튼튼했다. 소연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 외에 그 어떤 방법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도저히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 이곳에 없다는 걸 장인걸이 눈치 챈다면, 그는 과감히 춘릉성을 공격할 게 뻔하니까.
묵향이 씁쓸한 표정으로 천일취를 마시고 있을 때, 가벼운 기척이 그의 기감에 잡혔다. 그와 동시에 묵향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문 앞에 살며시 다가와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눈치 챘기 때문이다.
똑똑똑!
가벼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살짝 열리더니, 문틈으로 마화의 얼굴만이 빼꼼이 들어왔다. 그녀는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왜 혼자 술을 마셔요? 같이 대작해 드릴까요?”
“하하, 그거 좋지. 어서 들어와. 문 앞에서 그러고 있지 말고.”
묵향이 들어오라고 허락했음에도 마화는 얼굴만 붉힌 채 주저하고 있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슬그머니 방 안으로 들어오는 마화를 본 묵향의 두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마화의 옷차림이 평소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부드러운 천이 그녀의 몸에 착착 감기는 것은 물론이고, 속에 입은 옷까지 은근히 비칠 정도로 얇았다.
“추운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마화 정도의 고수라면 설혹 벌거벗고 돌아다닌다 해도 감기 따위에 걸릴 리가 없을 테니까. 묵향은 마화가 자리에 앉자 황급히 그녀의 어깨에 얇은 이불을 걸쳐 줬다. 마화의 옷차림이 너무 선정적이라서 도저히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저도 한잔 주세요.”
묵향은 마화가 내미는 잔에 천일취를 가득 따라 줬다.
술잔을 단숨에 들이켠 마화는 묵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분이 많이 울적하신 건 알아요. 이럴 때 제게 조금만 기대 주실 수는 없을까요? 물론 교주님이 보시기에 제가 많이 미흡할 거라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나는 마화가 미흡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
“그렇다면 왜 저를 멀리하시는 거예요?”
마화는 묵향의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어느새 그녀의 두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나는 감정도 없는 사람인 줄 아세요? 자, 느껴 보세요. 제 심장의 울림을…….”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마화가 이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묵향이었다. 무엇보다 무공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일지 모르지만, 여자관계에 있어서는 숙맥이나 다름없었다. 막상 이렇게 여자 쪽에서 과감하게 치고 들어오자 그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해 버려 아무런 대꾸조차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묵향은 그저 필사적으로 마화의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자신의 손을 떼어 내려 애썼다. 하지만 마화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천하제일 고수인 그가 내공조차 운용할 생각을 못할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요? 이러는 제가 싫으세요?”
“하, 하지만 나는……. 그, 그래. 동, 동자공(童子功)을 익힌 상태라…….”
예전에 그가 써먹던 연막전술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마화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물론 잘 알고 있죠. 그뿐만이 아니라 설약벽(薛若碧) 우외총관과의 하룻밤까지도요.”
“그, 그걸 어떻게……?”
순간 묵향의 얼굴 표정이 뜨악하게 바뀌었다. 마화는 묵향의 그런 표정 변화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당신이 행방불명된 뒤 행적을 조사하던 도중에 알게 됐어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는 그녀를 중앙으로 불러들이지 않고, 밖으로 돌린 건 그녀와 다시 대면하기가 껄끄러워서였나요?”
“그, 그건…….”
“당신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춘약을 쓴 건 그녀였으니까요.”
마화는 묵향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이제는 마화의 달콤한 숨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마화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짓궂은 어조로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려면 춘약이 꼭 필요한가요?”
“그, 그럴 리가 있…, 읍…….”
묵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인하려 했지만,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마화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틀어막아버렸기에.
긴 입맞춤이 끝난 후, 마화는 묵향의 품에 안기며 소곤거렸다.
“당신이 돌아온 뒤 나를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런데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도 무정해요?”
전장에 나서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적의 목을 베는 여인이 마화였다. 하지만 그런 강인한 마화조차도 장인걸과의 전투가 목전으로 다가오자 불안감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마교의 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묵향이 최강의 고수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은 금나라의 50만 대군였다.
어쩌면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마화 자신이 묵향보다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묵향만 무사하다면 자신이 죽는 것쯤은 두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마화는 이게 묵향과의 마지막 밤이라도 되는 양 그의 품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의 격정이 흘러간 다음, 마화는 묵향의 품속에 파고들며 조심스런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소 소저를 사랑하는지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런 말을 드리는 걸 오해하지는 말아 주세요.”
“나는 오해 같은 건 안 해. 솔직히 말해도 좋아.”
“제발 태산에는 가지 마세요.”
묵향은 마화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춘 다음 씩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안 갈 테니까.”
하지만 마화는 그런 묵향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화는 묵향을 꼭 껴안았다. 안 그러면 그가 지금 당장에라도 태산으로 떠나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밤은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