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8화 (644/930)

최후의 결전

금나라 패잔병들에 대한 학살극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제 제령단의 효과도 다 떨어져 버린 상태였기에, 금나라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고 있었다. 적들이 자신들을 향해 공격해 들어오지 않는 만큼, 마교도들은 그들을 따라가서 없애 버리느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시체가 즐비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묵향은 태연히 술을 마시며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하들이 이제 그만 춘릉성으로 돌아가서 쉬시라며 권해지만 묵향은 막무가내였다.

전투는 대승리로 끝이 났고, 숙적이었던 장인걸은 그의 발치에서 목이 없는 시체가 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교로 돌아가 원로원에 보고할 때 보여 주기 위해 목을 잘라 소금에 절여 놨기 때문이었다.

“내 딸은 어디에 있나? 빨리 자백하는 게 좋을 걸? 그렇지 않으면 네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

장인걸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묵향에게 대답했다.

“크크크, 그년은 저승에서 네놈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을 게다.”

그 말에 묵향은 장인걸의 멱살을 거머쥐고 왈칵 끌어당겼다. 서로의 코와 코가 맞닿을 정도로 장인걸을 끌어당긴 상태에서 묵향은 장인걸의 눈을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네놈은 지금 나를 화나게 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렇지?”

장인걸은 콧방귀를 뀌며 이죽거렸다.

“흥! 본좌가 뭐가 두려워 네놈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나는 그 계집을 태산파의 연공실 깊은 곳에 가둬 뒀었다. 네놈과 저승길 길동무나 하라는 본좌의 배려였지.”

“끄으윽! 거짓말이야!”

“미친 새끼. 본좌가 네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나는 네놈에게 딸이 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토록 딸을 아꼈다면, 처음부터 본좌와 반목하지를 말았어야지. 네 딸은 네놈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네놈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 거다, 크흐흐흐.”

“닥쳐!”

묵향은 화가 나서 외쳤지만, 오히려 장인걸은 그게 더욱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더욱 비비꼬인 어조로 이죽거렸다.

“본좌를 꺾었으니 부귀와 공명이 함께 하기는 하겠지만, 정작 네놈 자신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도 않을 게다. 딸을 죽인 비정한 애비라…, 크하하핫!”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리던 장인걸은 뭔가가 목구멍에 걸렸는지 심하게 기침을 해댔다. 입을 가리는 그의 손에 시뻘건 피가 묻어 있었다. 핏속에 내장 부스러기까지 끼어 있는 걸 보면 그의 내장이 완전히 박살난 듯했다.

장인걸의 비웃음에 묵향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소연이를 빗대어 자신을 비웃는 것인 만큼, 도저히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닥쳐! 닥치라구!”

이성을 잃은 묵향은 자신도 모르게 장인걸을 후려 쳤다. 한번 때리기 시작하자 자신의 행동을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부하들이 말리는 바람에 그가 겨우 손을 뗐을 때, 장인걸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이런 젠장, 이렇게 곱게 죽여 줘서 될 일이 아닌데…….”

묵향은 너무나도 화가 나서 손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때, 그의 뒤에서 대호법이 조언했다.

“교주님, 일단 아가씨의 시신이라도 수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홍진! 홍진 장로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잠시 후, 온 몸이 피에 젖은 홍진 장로가 달려와 예를 갖추었다.

“부르셨습니까? 교주님.”

홍진 장로가 달려올 때쯤 묵향의 분노도 많이 수그러든 상태였다. 묵향은 냉철한 어조로 명령했다.

“너는 지금 당장 태산파로 달려가서 폭발 현장을 샅샅이 파 뒤집어라.”

“이미 수하들에게 그리 하라 지시를 내렸습니다.”

홍진 장로는 이미 태산파에 수하들을 파견한 상태였다. 그곳에 매몰된 마교도들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데다, 패력검제가 가져간 묵향의 신물인 묵혼검을 찾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본좌의 딸이 갇혀 있었다고 하네.”

“예?”

“그 아이의 시신만이라도 찾아다 주게. 알겠나?”

묵향의 말에 홍진은 고개를 조아리며 외쳤다.

“존명! 태산 전체를 파 뒤엎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명을 완수하겠습니다.”

홍진 장로는 먼저 태산으로 달려간 부하들에게 전서구를 날리는 한편, 자기 휘하의 남은 부하들을 모두 이끌고 태산을 향해 달려갔다.

묵향은 싸늘하게 식어 버린 장인걸의 목 없는 시체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개새끼! 마지막까지 내 속을 뒤집어 놓고 가는군.”

묵향은 술병을 들고 거칠게 입으로 털어 넣었다. 그 지독한 천일취를 몇 병씩이나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취기는 전혀 올라오지 않았다.

“가서 술을 좀 더 가져와.”

묵향의 명령에, 그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우호법이 부하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그러자 부하는 춘릉성을 향해 술을 가지러 달려갔다.

한 번에 수십 병이라도 가지고 올 수 있었지만 부하는 단 두 병만을 가지고 돌아왔다. 천일취는 지독하게 독한 술이다. 만약 우호법이 이런 식으로 제어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묵향은 완전히 뻗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저녁놀이 지기 시작했다. 노을은 전장의 참상을 아는지 마치 피를 뿌려놓은 것처럼 붉디붉었다.

“술은 아직도 도착 안 했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교주님. 저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게 보입니다.”

“한꺼번에 많이 좀 가져오라고 해. 감질나게 두 병씩 가져오지 말고.”

“교주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춘릉성으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묵향은 그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짙은 노을이 깔리는 산등성이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마화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묵향이 이렇듯 슬퍼하는 게 소연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지금껏 만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호법님의 말이 맞아요. 춘릉성으로 돌아가요.”

“여기가 어때서? 소연이를 추억하는 데 있어 이곳이야말로 최고의 장소잖아.”

주위를 빙 둘러보며 묵향이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수천 아니, 수만이 넘어가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이번 전투에서 전사한 마교 고수들의 시체를 따로 모아 두고 있는 중이었다. 전투가 끝났으니,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춘릉성 인근을 가득 메운 시체들과 짙은 혈향. 거기에다가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 중상자들이 흘려내는 신음 소리까지. 짙은 노을로 인해 온 천지가 마치 피에 잠긴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뭐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였지만 묵향이나, 그의 수하들은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철혈을 숭상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어쩌면 이런 장소야말로 최고의 조문 장소일지도 몰랐다.

이때, 철영 부교주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였다.

“교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이 일대에 배치해 두었던 비마대원들과의 연락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마교 고수들의 경우 마기를 흘리는 만큼, 정찰을 위해 내보내기가 곤란했다. 상대편이 그 기척을 알아채고 재빨리 숨어 버릴 게 뻔하니까.

“언제부터 끊어졌나?”

“워낙 혼전 중이라…,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만, 속하가 관찰 초소 몇 군데로 수하들을 보내 본 결과 모두들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비마대원들에게도 연락을 취해 봤나?”

“예. 하지만 응답을 한 대원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묵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지금 당장 수하들을 모두 집결시켜라!”

“존명!”

철영 부교주는 입술을 오므린 뒤 가늘고도 긴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러자 그에 화답하듯 여기저기에서 휘파람 소리가 타원형을 그리듯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휘파람은 마교의 독특한 명령 전달 방법 중 하나였다.

“수하들이 모두 집결을 완료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금군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다. 더군다나 아직 살아남은 금군 병사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그런 그들을 모두 주살하기 위해 마교도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수하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그들을 쫓아갔는지는 철영 부교주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묵향은 대호법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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