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9화 (645/930)

“지금 당장 부하들을 보내 주변을 샅샅이 정찰해 보도록 해라.”

“옛.”

대호법이 호법원 고수들을 두 명씩 짝을 지어 사방으로 내보내고 있을 때, 묵향은 철영 부교주을 바라보며 물었다.

“시체는 확인해 봤겠지? 언제쯤 죽은 것 같던가?”

“제법 시간이 경과된 상태였다는 보고였습니다. 어쩌면…,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죽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흠, 혹시 장인걸의 소행일까?”

그러자 철영 부교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편복대에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속하의 생각으로는 무영문의 소행이 아닐는지…….”

철영 부교주의 추측에 묵향의 눈이 번쩍 빛난다.

“무영문?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뭔가?”

“이 일대에 쫙 깔아 뒀던 비마대원들이 한 명도 남김없이 전부 다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비마대는 무영문과 공조 체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이쪽 사정을 가장 낱낱이 파악하고 있는 것 역시 무영문이라는 거죠. 그들이 만약 한순간에 뒤통수를 쳐왔다면, 비마대원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흐음…, 그런데 무영문이 우리를 배신할 이유가 없지 않나?”

“혹시 교주님의 계획을 눈치 챈 게 아닐까요?”

철영 부교주의 말에 묵향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무영문을 없앨 궁리를 하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듯, 옥화무제 또한 이쪽의 속셈을 눈치 채고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교활한 계집! 내 이년을 잡기만 하면…….”

묵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쪽에서 수없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무사들을 보고는 일순 말문이 막혀 버렸던 것이다.

달려오는 무사들 중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경공술을 전개하고 있었다. 즉,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는 저들 모두가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처음 그들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마교 고수들의 눈에는 비웃음이 어렸었다. 교주 주위에 모여 있는 고수들은 거의가 다 호법원의 고수들이었다. 마교의 최정예인 만큼, 저 정도 숫자의 고수들쯤이야 그들의 눈에 차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산 뒤편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사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최소한 만 명은 넘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계속 산을 넘어 오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원이 몰려오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제야 모두의 얼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교주님, 일단 춘릉성으로 철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호법의 조언에 묵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일반 병사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저런 고수들에게 춘릉성처럼 작은 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차라리 여기서 부하들을 기다리는 게 더 나아.”

묵향의 말대로 사방에서 휘파람 소리를 들은 부하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치열한 전투를 치렀을 뿐만 아니라, 도망치는 금군 병사들을 주살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만약 묵향이 춘릉성으로 철수한다면 달려오던 부하들은 하나씩 흔적도 없이 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다.

묵향은 자신이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음을 깨달았다. 부하들이 온전한 상태라면 혹 모르겠지만, 이 상태로 저 많은 무사들과 싸운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지금 자신이 도망친다면 이 일대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마교 전력 대다수가 위험했다.

잠시 생각하던 묵향이 달려오는 무사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마화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전장을 거쳐 온 마화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에게 맞선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묵향을 만류할 수가 없었다. 이쪽에서 물러선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묵향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철영 부교주를 비롯해 대호법 등 주위에 있던 고수들이 뒤를 따랐다. 신호를 받고 황급히 달려온 고수들 역시 거친 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랐다.

묵향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달려오던 정파 고수들은 경공술을 멈추고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선두에 서 있는 인물들은 모두 다 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정파 최고의 명숙들이었다. 맹주를 비롯하여 곤륜무황, 황룡무제, 청호진인, 맹호검군, 공지대사 등 전대고수들부터 시작해 현재 각파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묵향은 맹주의 뒤쪽에 공지대사와 함께 서 있는 공공대사의 얼굴을 보자 자신에게 최악의 상황이 닥쳤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마화와 함께 탈출하는 것조차도 힘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때문이었을까, 묵향은 매서운 눈초리를 공공대사에게 보내며 이죽거렸다.

“그렇게 안 봤더니…, 그때 보여 준 귀하의 모습은 가식이었소?”

하지만 공공대사는 묵향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맹주가 묵향을 향해 가볍게 포권하며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구려, 교주.”

“흥! 지금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일을 다 끝내고 난 다음에야 달려 나온 속셈이 뭐요?”

맹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악을 말소하기 위해 왔소이다.”

“너무 늦게 왔구려. 본교의 반도는 이미 본좌가 끝장을 냈으니 말이오.”

“허허, 흑살마왕만이 악은 아니지 않소이까. 노부는 이번 기회에 악의 근원인 귀교를 아예 세상에서 멸하려 하오.”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맹주의 뒤편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마교를 없앤다는 말을 지금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천하를 어지럽히는 금나라와 그를 돕는 흑살마왕을 뿌리 뽑을 때라는 격문(檄文)을 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격문의 그 어디에도 마교를 공격하자는 말은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좌가 장인걸과 놈이 이끄는 50만 대군과 격전을 벌일 때, 행여 들킬세라 꽁지를 빼고 숨어 있었다는 말이오?”

“허허,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지 않소. 세상의 악을 제거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움츠려 있어야 한다고 해도 노부는 그리 했을 것이오.”

태연하게 대꾸하는 맹주의 모습에 묵향은 울화통이 터져 죽을 뻔했다. 치밀어 오르는 혈압에 묵향은 뒷골을 지그시 누르며 으르렁거렸다.

“하는 행동으로 본다면 네놈이 더 악당인 것 같은데, 누구를 보고 악의 근원 운운하는 것이냐?”

묵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건 말건, 맹주는 전혀 상대와 말싸움을 할 생각이 없었다. 맹주는 뒤쪽에 서 있는 군웅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마교는 지금껏 중원정복을 위해 수없이 많은 혈겁을 일으켜 왔소. 근래 중원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수많은 혈겁들 또한 본맹이 금나라와 정면충돌하도록 마교가 꾸민 계략이었소. 노부는 그 증거를 이번에 입수했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맹주의 말에 묵향이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맹주는 그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자기 할 말만 지껄였다.

“저 인간의 탈을 쓴 마두는 나라를 위해 구국의 심정으로 힘을 합치자고 노부를 속였고, 노부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기에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소이다. 은밀히 조사해 본 결과, 마교가 중원정복을 위해 사용한 악독한 계책들을 수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발견했소. 그에 노부는 마교의 계략을 역이용해 흑살마왕과 정면충돌하도록 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오.”

“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군. 그건 본좌가…….”

하지만 맹주는 묵향이 해명할 기회 따위는 처음부터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검을 쑥 뽑아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더러운 입으로 지껄이는 변명 따위는 들어 줄 생각이 없소이다. 자, 철혈을 숭상하는 귀교의 율법대로 칼을 뽑으시오.”

“이런 썩을!”

맹주가 검을 뽑아드는 것과 동시에 그의 주위에 서 있던 정파의 핵심고수들 역시 모두들 검을 뽑아들었다. 그중에는 황룡무제처럼 교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고수들도 있긴 했지만, 맹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무림맹이 승리할 가능성이 거의 9할을 넘어선 상황이었다. 이럴 때 괜히 교주 편을 드는 듯한 인상을 보여 맹주에게 찍혔다가는 뒤끝이 안 좋을 게 뻔하지 않은가. 교주에게 미안한 노릇이기는 했지만,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그건 뒤쪽의 군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맹주의 폭탄 발언에 웅성거리던 군웅들 역시 전투가 벌어질 분위기가 되자 모두들 검을 뽑아들었다.

맹주가 내심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군웅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청아한 공공대사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아미타불! 모두들 잠시만 기다리시오.”

공공대사의 목소리에서 감히 거스르기 힘든 힘과 무게가 느껴졌다. 모두들 멈칫하는 순간, 공공대사가 앞으로 쓱 나섰다. 공공대사는 묵향에게 합장을 해 보이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주.”

‘이건 또 무슨 속셈이야?’하는 생각을 하며 묵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조차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빈승은 교주께 일대일 비무를 청하고자 하는데, 받아들이실 의향이 있으시오이까?”

공공대사의 목소리가 사방을 향해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고수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공공대사라면 수십 년 전에 정파 최고의 고수로 추앙받았던 고승이다. 그런 인물이 교주와 일대일 대결을 청하고 있으니, 모두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묵향은 뒤에 서 있는 부하들의 상태를 힐끔 바라봤다. 공공대사의 의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들어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부하들이 모두 모이고, 또 원기를 회복할 시간적 여유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좋소. 본좌도 원하는 바요.”

그때 맹주가 난감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서며 뭐라 말하려 했다. 묵향은 그걸 보고는 재빨리 큰 소리로 말했다.

“우선, 대사께서 현경의 지고한 경지에 오른 것을 축하드리오.”

묵향이 일부러 모든 군웅들이 들을 수 있도록 내공을 실어 말했기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묵향의 말에 군웅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공공대사가 현경의 벽을 깼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본좌 또한 탈마 즉, 현경에 준하는 경지에 올라 있으니 이렇게 되면 무림사 최초로 현경급 고수들끼리 대결하는 것이 되겠구려.”

묵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기대에 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와아아아!”

공공대사를 말리려고 앞으로 나섰던 맹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맹주의 힘으로 이들의 대결을 말릴 단계는 이미 벗어나 버렸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곳에 모인 모든 군웅들의 얼굴은 세기의 대결을 관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군웅들이 저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그에 호응해 주는 게 도리겠지요?”

“아미타불…….”

묵향은 고개를 돌려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100장 뒤로 물러나라.”

그에 맞춰 공공대사 역시 무림의 동도들에게 합장을 하며 부탁했다.

“모두들 100장 뒤로 물러나서 관전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소이다. 협조를 부탁드리오이다.”

그 말에 정파의 군웅들 역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맹주가 동원한 인원은 거의 6만에 달했다.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앞으로 밀려들고 있다 보니, 앞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윽고 반경 100장에 달하는 빈 공간이 만들어지자, 그 한 가운데에 이 시대가 배출한 최고의 고수 두 명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시주께서 먼저 손을 쓰시겠소?”

공공대사는 예의상 건네본 말이었다. 교주보다 자신이 나이가 훨씬 더 많았으니까. 하지만 묵향은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공격해 들어갔다. 묵향의 평소 지론은 선수필승(先手必勝)! 비슷한 수준끼리는 먼저 공격하는 쪽이 승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걸 실천하는 인물이었다.

“흐읍!”

언제 튀어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묵향의 손에는 빛으로 만들어진 검이 하나 들려 있었다. 묵향은 그것을 검처럼 다루며 공공대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에 대응하는 공공대사의 손도 뿌연 빛줄기가 솟아 올라와 감싸고 있었다.

스팟, 스팟.

묘한 작은 소리를 내며 빛줄기끼리 부딪쳤다. 하지만 비무를 지켜보는 군웅들은 잘 알고 있었다. 빛줄기에 감겨 있는 힘과 위력이 자신들의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수십 초식이 흘러갔다. 웬만한 고수가 아니라면,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들 정도였으니, 세세한 움직임은 아예 보지도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우와아!”

과연 현경급 고수간의 대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치열한 육박전이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무공의 차원을 아예 벗어난 듯한 절대자들의 움직임에 모두들 경탄을 금치 못했다.

공공대사와 묵향간의 거리는 많이 벌어졌을 때라도 3장을 채 벗어나지 않았다. 정말이지 지독할 정도의 초근접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1류를 상회하는 실력을 갖춰 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가 되면, 그때부터는 적과 나와의 거리의 개념이 사라진다. 아무리 먼 거리의 적이라도 기를 이용해 공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근접전을 벌이는 일은 차츰 줄어든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일반적인 무공의 개념을 뛰어넘었다. 묵향은 검술을 펼쳐 공공대사의 굳건한 방어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고, 공공대사는 권장을 위주로 하여 묵향의 공격을 막아 냈다. 묵향의 심검과 공공대사의 주먹이 맞부딪칠 때마다 뭔가가 갈리는 듯한 묘한 소리와 함께 강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한참 동안 공수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거리를 벌렸다. 묵향이 무림에 출도한 이래 이 정도로 숨 막히는 대결을 한 적은 아마 공공대사가 최초일 것이다. 예전에 이세계에서 엘프 카렐과도 비무를 한 적이 있었지만, 카렐은 묵향이 사용하는 무공을 잘 몰랐기에 박빙의 공방전을 펼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공공대사는 그렇지 않았다. 묵향이 지닌 모든 무공을 아낌없이 펼쳐도 될 만큼 그의 무공은 정심했고, 깊이가 있었다.

뒤로 물러선 묵향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묵향은 공공대사를 향해 정중히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과연 명불허전. 이제야 대사 같은 인물을 만난 게 통탄스러울 뿐이오.”

“아미타불, 일전에 시주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이 정도까지 맞춰 드리기도 힘들었을 거외다.”

대답하는 공공대사의 얼굴에도 자애스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공공대사는 과거 묵향과의 비무를 머릿속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깨달음을 얻어 진정한 현경급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그는 예전의 묵향처럼 몸은 현경에 올랐으면서도 그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몰랐었다. 만약 묵향과의 비무가 없었다면 결코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묵향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면 깨달음은 커녕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겠지만.

“이제 몸이 풀렸을 테니 본격적으로 해 봅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무공 위주로 공격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에 공공대사 또한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내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황금색으로 달아올랐다. 몸 전체를 금강불괴신공으로 감싼 것이다.

쾅! 콰쾅!

그때부터 벌어진 두 사람의 대결은 범인들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강기의 회오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비무를 바라보는 군웅들의 얼굴에는 믿기 힘들다는 경악이 어렸지만, 화경급 고수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산 속에서 숨어서 지켜봤던 장인걸과의 대결에서 선보인 무공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 저럴 수가…….”

맹주를 비롯한 그의 측근 고수들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마교 교주를 없애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저렇게 강한 무공을 지닌 자가, 마교처럼 막강한 단체까지 거느리고 있지 않은가. 만약 저자가 역대 교주들처럼 무림일통을 부르짖으며 쳐들어온다면, 그때는 정말이지 대책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정파 쪽에도 공공대사와 같은 뛰어난 인물이 있긴 했지만 방금 전에 봤듯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 어떠한 무리를 해서라도 정사 대전으로 몰고 가 교주를 죽여야 한다고 맹주는 다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좋은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때, 뒤쪽에서 허겁지겁 달려온 무사 한 명이 감찰부주에게 다가가 뭔가를 전했다. 작은 쪽지였다. 급하게 쪽지를 읽은 감찰부주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어렸다. 생각지도 못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그는 쪽지를 가져온 부하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뒤쪽으로 끌고 와서 대기시켜 놓도록 해라.”

“예.”

감찰부주는 두 사람의 비무를 관전하느라 정신이 없는 맹주에게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쪽지를 건네며 속삭였다.

“바라지도 않았던 대어를 확보했습니다, 맹주님.”

맹주는 쪽지를 읽자마자 불태운 뒤 행여 누가 봤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모두들 교주와 공공대사 간의 비무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쏙 빠져 있는 상태였다. 맹주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시선을 다시금 교주와 공공대사를 향해 돌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방금 전과 달리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주를 없앨 수 있다는 뭔지 모를 자신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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