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0화 (646/930)

콰콰쾅, 꽈쾅!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승부의 추가 묵향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군웅들은 느꼈다. 공공대사의 무공 역시 가공할 경지였지만 그의 공격은 교주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 채 소멸되고 말았다. 그에 비해 교주의 공격은 벌써 3번이나 공공대사의 방어벽을 뚫고 들어와 금강불괴지체에 부딪쳤다.

“아미타불!”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공공대사는 최후의 대결을 준비했다. 지금까지 수세를 취하던 것에서 벗어나 공공대사의 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묵향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또다시 초근접전이 벌어졌다.

서로간의 몸과 몸이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충격파가 뻗어 나왔다. 엄청난 굉음이 터질 때마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반경 100장이 수십 개의 폭탄이 터진 것처럼 움푹움푹 파였고, 뿌연 먼지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군웅들은 뒤로 더 물러서야만 했다. 100장 밖임에도 몸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의 충격파가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군웅들이 지금 비무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 빠르게 비무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굉음보다 훨씬 더 큰 폭발음이 터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밀려 나갔다. 군웅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보자 교주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혀 있었고, 공공대사는 그런 교주의 등을 향해 무시무시한 강기의 세례를 퍼부었다.

콰쾅, 콰콰콰쾅.

“고, 공공대사께서 이기셨…….”

하지만 소리치던 군웅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당장 죽을 것만 같았던 교주가 어느새 일어나 또다시 공공대사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어, 정말 대단하구려. 수십 년을 고련해도 넘을 수 없었던 현경의 경지가 바로 저런 것이었다니…….”

곤륜무황의 감탄에 맹주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주가 무적이라고 할 수는 없소. 흑살마왕이 그의 수하들과 함께 교주를 밀어붙이는 장면을 보지 않았소? 준비를 제대로 갖추기만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노부는 생각하오.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교주와 맞수를 이룰 수 있는 공공대사가 계시지 않소?”

“그렇구려.”

일세를 풍미한 두 고수간의 격돌은 점차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물론 승자는 묵향이었다. 공공대사가 아무리 뛰어난 무인이라도, 현경을 경험한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그 경험의 차이가 승패의 향방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한참을 싸우던 공공대사가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옷은 충격파로 인해 걸레로도 못쓸 정도로 넝마가 되어 있었고, 온 몸에는 비오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내상까지 입었는지 공공대사의 입가에는 피를 토한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묵향 역시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공대사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였다. 묵향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낸 뒤 쾌활한 음성으로 말했다.

“핫핫, 이제 힘이 다하신 게요? 대사.”

“허허, 워낙 나이가 들다 보니 더 이상은 힘에 부치는구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맹주는 주위에 있는 측근들에게 눈짓을 했다. 교주를 향해 집중공격을 가할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공공대사는 묵향을 향해 차분히 합장을 하며 입을 열었다.

“오늘의 비무는 빈승 생애 최고의 비무였소이다. 이제야 마지막 번뇌의 사슬을 끊어 버릴 수 있을 듯하구려.”

“핫핫, 당장 해탈이라도 하실 듯한 표정이시구려. 이거 배가 아파서 그냥은 못 보내드리겠는데.”

공공대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소림을 잘 부탁하오.”

말을 마친 공공대사의 입가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준수했던 그의 얼굴에 주름이 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서 있는 것조차 힘겨운 늙은이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스스로 단전을 파괴해 무공을 없애 버린 것이다.

깜짝 놀란 묵향이 황급히 공공대사를 부축하며 말했다.

“왜, 왜 그러셨소이까?”

“아미타불, 비우고 버리지 아니 하면 미련으로 인해 번뇌만 쌓이는 법. 현경의 깨달음을 얻고 난 뒤, 빈승은 또 다른 번뇌에 시달려야 했소이다. 천성이 돌중인지라 이번에 깨달은 것이 과연 어떤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실험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외다. 그러던 차에 오늘 시주로 인해 그렇게 궁금해 하던 것을 모두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승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겠지요.”

“그, 그래도 무공까지 없애실 필요가…….”

이 순간 군웅들은 단전을 파괴한 사람이 흡사 교주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교주는 안타까워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공공대사는 흡사 해탈이라도 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공공대사는 자신에게 그토록 안타까운 표정을 보내고 있는 묵향에게 합장으로 답례한 다음, 조용히 뒤로 돌아서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황망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군웅들은 저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공공대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모든 것을 얻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공공대사에게 그들은 무한한 존경을 보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공공대사의 행동에 맹주는 묵향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릴 시기를 놓쳐 버렸다. 그는 다급히 옆에 서 있던 소림사의 방장에게 말했다.

“이, 이럴 수는 없소. 어찌 무림의 악을 놔두고 저런 행동을…….”

하지만 소림의 방장인 덕량대사의 얼굴에는 묘한 갈등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지금 교주와 싸워야 하느냐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원로들을 설득해 봉문을 깨고 하산했던 이유는 장인걸에 대한 복수와 그를 통한 소림의 명예 회복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장인걸의 몰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교주가 대신해 준 복수였지만 어찌되었든 교주는 소림의 원한을 갚아 준 은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은인을 참살해야만 하는 위치에 서 있게 되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덕량대사를 당혹케 한 건 수십 년간 고련해 온 무공을 불법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없애 버린 공공대사의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현경이라는 가공할 만한 무공이었지 않은가. 덕량대사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뭔가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아미타불…….”

덕량대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불호만 외우며 두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곤륜무황이 묵향을 향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시주, 오늘 정말 좋은 구경했소이다. 빈도의 안계가 탁 트이는 듯하구려.”

곤륜무황의 칭찬에 묵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귀하에게 보탬이 될 일은 없을 거요. 그나저나 귀하도 내게 비무를 요청할 것이오?”

이제 공공대사가 떠났으니 정사 대회전이 시작될 거다. 그런데 얼른 달려들지는 않고, 뭔 헛소리가 이리도 많은지……. 묵향은 서서히 짜증이 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묵향의 응대에 곤륜무황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장난스레 응대했다.

“허허, 빈도 같은 사람이 열 명이 달려들어도 안 될 것 같은데,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겠소. 혹, 곡차라면 몰라도 말이오.”

그렇게 말한 곤륜무황은 무량 대장로에게 명령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숙.”

“무림을 어지럽히던 흑살마왕의 죽음도 봤고, 천하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강한 두 영웅의 대결도 보지 않았더냐? 이만큼 견문을 넓혔으니, 이제 본문으로 돌아감이 옳지 않겠느냐.”

“하, 하지만…….”

곤륜무황이 성큼 앞장서서 걸어가자, 무량 대장로는 끽소리도 못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곤륜파 제자들이 따라갔다.

곤륜무황이 철수를 시작하자마자 덕량대사 역시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곤륜파가 앞장선 상태라, 대열을 이탈하며 눈총을 받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덕량대사는 맹주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저희 소림도 이만 물러가려 합니다, 맹주. 공공 사조께서 본사로 돌아가시니, 그분을 모셔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맹주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맹주가 말리려고 했지만, 소림 방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공공대사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런 방장의 뒤를 따라 수많은 소림의 무승들 역시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 소림을 나설 때, 그들은 소림의 명예를 되찾는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소림을 향해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천하제일고수와 거의 비등한 대결을 펼친 인물이 소림에서 나왔다는 점. 그리고 불법 수행을 하기 위해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 엄청난 무공을 없앤 공공대사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군웅들이 만들어 준 길을 통해 걸어가는 소림의 제자들은 알 수 있었다. 군웅들의 두 눈에 소림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결국 공공대사가 무공을 버림으로 인해 소림의 영광이 되돌아온 것이다.

그러자 뒤쪽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던 황룡무제 역시 소림의 뒤를 따라 슬그머니 황룡문도들을 이끌고 내빼버렸다. 이런 파장(罷場) 분위기로 어찌 마교를 이길 수 있겠는가. 이런 때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내빼는 게 최고였다. 괜히 교주와 원한 관계를 맺어 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 이럴 수가…….”

연이은 군웅들의 이탈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버린 맹주가 몸을 휘청거렸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이다. 산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필승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목격한 현경의 경지는 정말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그래도 만약 공공대사만 있어 주었다면 합공을 해서라도 교주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대사가 무공을 폐한 뒤 떠난 후부터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곤륜이 떠났고, 소림도 떠났다. 그리고 황룡무제 역시 슬그머니 문도들을 이끌고 사라져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애써 끌어 모은 군웅들 역시 하나 둘씩 자리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만약 묵향이 자신을 가만 놔둔다면, 맹주는 지금이라도 당장 발걸음을 돌려 무림맹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럴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신들이 곱게 되돌아갈 수 있게 교주가 놔줄리 없는 것이다.

맹주를 비롯해서 무림맹 장로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고 있을 때였다. 감찰부주가 갑자기 묵향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당신의 혈육이 우리 손에 있소. 그러니 협상을 하지 않겠소?>

『<묵향> 27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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