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2화 (648/930)

숲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감찰부의 정예무사들이 천막을 경비하며 서 있었다. 그들은 갑작스런 침입자의 출현에 당황한 듯 그의 앞을 급히 가로막았지만, 묵향은 얘기를 나눌 시간조차도 아깝다는 듯 곧바로 손을 썼다.

“크아아악!”

묵향의 손이 휘둘러지는 순간, 빛이 번쩍 하더니 순식간에 경비무사 몇 명의 목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경비무사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도저히 자신들이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닌 것이다.

이때, 진팔이 다급히 외쳤다.

“모두 싸우지 말고 도망치시오! 맹주를 비롯한 맹의 수뇌부도 도망친 지 오래요. 여기서 쓸데없이 목숨을 잃을 필요가…….”

진팔이 갑자기 입을 다문 이유는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들을 무사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에 묵향이 그들을 다 죽여 버린 것이다. 그것도 한 손으로는 진팔을 안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자신을 던지듯 내려놓고 천막을 향해 다가가는 교주를 향해 진팔이 악을 쓰듯 외쳤다.

“모두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지 않습니까!”

묵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진팔의 이 주제넘은 참견 자체를 듣지 못한 듯했다. 그는 지금 천막 안에 과연 소연이 있을 것인지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묵향은 그곳에서 그리운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소연이와 설취, 그리고 서량까지. 모두들 혈도를 제압당한 상태로 드러누워 있었다.

초췌해진 소연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묵향의 눈에는 물기가 차올랐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더군다나 악에 바친 장인걸의 말마따나 소연이가 죽게 된 이유는 자신의 탓이라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묵향이다. 놈과의 대결이 시작된 이상, 소연이의 보호에 만전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걸 등한시한 잘못은 자신에게 있었으니까.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묵향은 격동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길로 소연의 막힌 혈도를 풀어 줬다.

“아버지, 와 주셨군요. 아버지…….”

소연은 눈물을 흘리며 묵향을 꽉 껴안았다.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묵향의 몰골만 봐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험난한 길을 뚫고 온 것인지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묵향은 그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묵향의 지극한 사랑에 소연은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다.

뒤따라 들어와 부녀간의 감동스런 상봉 장면을 지켜보던 진팔은 가슴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그때 진팔의 눈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설취와 서량은 아직까지도 혈도를 제압당한 채 누워 있었다. 그들 역시 묵향과 소연이 서로 껴안고 해후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혈도를 풀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진팔은 서둘러서 그 둘의 혈도를 풀어 줬다.

잠시 후, 묵향은 소연을 데리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산 중턱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여기저기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무림맹 직속의 고수들도 있었지만, 그중 상당수는 제때 이곳을 탈출하지 못해 싸움에 휘말려 버린 자들이었다.

묵향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전투 중지!”

내공이 실린 그의 목소리는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그의 부하들이 상대편과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목격되었다.

묵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는 정파의 무림인들에게 외쳤다.

“오늘은 본교의 우환을 제거한 기쁜 날이다. 귀하들이 왜 본교에 싸움을 걸어온 것인지는 묻지 않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달라. 만약 본좌의 부탁을 무시한다면, 이 이후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겠다.”

묵향은 정파 무림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는 표현을 썼다. 전투를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면, 쓸데없는 피를 흘려야 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건 또 다른 분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교 교주의 부탁 아닌 부탁에 정파의 고수들은 모두들 자신들이 소속된 문파를 찾아 뿔뿔이 길을 나섰다. 지금 여기에 남아서 싸우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동료들이 철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일부러 남는 길을 택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문파의 충성심이 강한 쓸 만한 자들이라는 얘기였다.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자들을 죽여 봐야 뒤끝이 좋지 못할 것은 뻔한 사실이다.

이때, 마화가 산 밑에서 맹렬한 속도로 달려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녀를 뒤따르는 호법원 고수들의 모습도 보였다.

마화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고 있는 것은 좌호법 초진걸(楚眞杰)이었다. 마교 서열 15위의 초강자가 그녀를 직접 호위하고 있는 것만 봐도, 지금 그녀가 마교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마화는 소연을 보자마자 달려가 그녀의 양손을 꼭 잡으며 감격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살아 있었구나. 교주님께서 네 걱정을 얼마나 하셨는지…….”

“덕분에 무사했어요. 감사드려요.”

마화는 묵향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어디 다치지는 않으셨어요?”

“괜찮아. 본좌와 겨룰 수 있는 자가 누가 있다고…….”

하지만 묵향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화가 갑자기 자신을 꼭 껴안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수많은 정파 무림인들이 몰려들었을 때 이제 끝장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진 생각지도 않았던 반전들.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과 묵향이 무사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험험…, 그것 참. 부하들도 보는 앞에서……. 다친 곳이 없으니 괜찮대도 그러네.”

그제서야 마화는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묵향의 품에서 떨어졌다.

“자, 이제 본교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군.”

묵향은 좌호법에게 명령했다.

“부교주와 장로들에게 기별을 보내라. 본교로 돌아간다.”

“존명!”

“그리고 관지 장로에게는 흑풍대원들 중 몇 명을 차출해서 유광세 상장군을 도우라고 해라.”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주님.”

멋쩍은 얼굴로 연이어 지시를 내리는 묵향을 유심히 바라보던 소연은 살며시 마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축하 드려요, 어머니.”

어머니라는 말에 마화의 얼굴이 기쁨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때, 철영 부교주와 2명의 장로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보였다. 격전을 거친 후라 그런지 모두들 몰골이 말이 아니다.

“교주님!”

“무슨 일인가?”

“철수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래, 본좌가 그렇게 명령을 내렸지.”

“그 명령을 거둬 주십시오. 맹을 상대로 승기를 잡았지 않습니까?”

표정들을 보니 철영과 함께 온 장로들의 생각도 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묵향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을 뿐, 철영처럼 대놓고 따지지는 못했다.

묵향은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좌우를 둘러보게. 이 상태로 전투가 지속 가능한지 말이야.”

“물론 지금 당장 싸우자는 것은 아닙니다. 속하의 생각으로는 굳이 십만대산으로 철수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겁니다. 일단 춘릉성으로 돌아가 한 며칠 푹 쉬면서 기력을 회복한 다음, 곧바로 중원정벌을…….”

하지만 철영의 말은 묵향의 손짓에 의해 막혔다. 묵향은 심히 불쾌하다는 듯 대꾸했다.

“자네는 지금 본좌의 결정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흠칫 한 철영은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교주님.”

“더 이상의 싸움은 의미가 없다. 자네는 교도들을 이끌고 십만대산으로 돌아가라. 알겠나?”

“존명!”

묵향의 확고한 명령에 철영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했다. 뭔가를 결심하기 전이라면 교주는 수하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했다. 하지만 일단 자신이 결정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는 수하들이 뭐라고 해도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철영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교주는 철수에 대해 그전부터 고심했었으리라.

“그런데…, 함께 가시지 않으실 겁니까? 교주님.”

“본좌는 양양성에 볼일이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겠다.”

“옛.”

“그리고 군사는 지금 어디에 있나?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말이야.”

“즉시 찾아서 이리로 데리고 오라고 수하들에게 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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