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에 도착한 초우가 초운하를 소개시켜 주기도 전에 묵향은 성큼성큼 걸어 호미로 밭을 일구고 있던 한 중년여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소이까?”
놀랍게도 그녀가 바로 초운하였던 것이다.
초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기척을 이미 읽었을 게 뻔한데도 밭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자신을 찾아 이리로 오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내의 목소리에 초운하는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뒤쪽에는 가주인 초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상시였다면 무시하고 자신의 볼일을 봤겠지만, 그녀는 호미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을 건 젊은이의 내력이 궁금했던 것이다.
저 뒤쪽에 서 있는 11명의 마인들. 엄청난 마기를 뿜어내는 것이, 그 하나하나가 자신이 감당하기에도 벅찰 정도의 인물들이었다. 그런 마인들과 함께 온 젊은이였으니, 그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초운하는 흙 묻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문질러 닦으며 가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분께서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오신 겁니까? 가주.”
“그분은 천마신교의 교주십니다. 장로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혹, 초운하가 말실수라도 할까 두려웠던 초우는 재빨리 겉모습만 젊어 보이는 마두의 신분을 일러줬다.
뒤에서 조용히 시립해 있는 마인들을 보고, 어느 정도는 젊은이의 신분을 짐작하고 있었던 초운하였다. 하지만 설마하니 상대가 교주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조차 못했다.
더군다나 이 시대 최강의 고수가 이렇게 평범한 인상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그의 무위에 어울릴 만한 그 어떤 존재감조차 느낄 수 없었기에 그녀는 더욱 놀라워했다.
‘반박귀진(返縛歸眞)의 경지에 들어가면 겉으로 전혀 정기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런데 교주가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그녀는 그 이유를 전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숙한 초운하는 전혀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기거하는 허름한 모옥(茅屋)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멀리서 오셨는데, 대접할 게 마땅치 않아서…….”
초운하는 하녀를 시켜 차를 내오라고 이른 다음, 교주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좁은 실내에는 작은 탁자 하나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 공간이라면 4명이 앉기에도 비좁을 정도였다.
마화는 묵향의 뒤를 따라 들어왔고, 초우 역시 묵향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끼어들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만약 묵향이 밖으로 나가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쫓겨나야 했겠지만, 운 좋게도 축객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은 형편이 달랐다. 묵향과 마화가 모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좌호법은 모옥 앞을 쓰윽 막아서며 수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와 동시에 호법원의 고수들은 본격적인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경계의 대상에는 세가의 인물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없었다. 그들은 모옥 안을 기웃거리는 세가의 사람들을 가차 없이 밖으로 내몰아 버렸다.
지금껏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던 중년여인이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와 교주의 옆자리에 앉는 것을 보며 초운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자신의 안목이 이렇게까지 형편없어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호법원 고수들의 존재감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냥 묻혀 버린 탓이 컸다.
‘교주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보니, 극마에 이른 고수라는 말인가?’
극마의 경지에 이르면 마기를 숨길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찬찬히 마화를 살펴본 초운하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곧 깨달았다.
마화는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희미하지만 아주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화의 무공내력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초운하의 무공 수위가 높았기 때문이다.
‘정파의 인물이 마교 교주와 함께 다니다니…….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구먼.’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초운하는 더 이상 마화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볼일이 있는 것은 저 여인이 아니라 교주였으니까.
그녀는 앞치마를 벗어 하녀에게 넘겨주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조아렸다.
“일을 하던 중이라 모습이 이러니 너무 탓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괜찮소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묵향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화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초류빈이라는 이름을 아실 겁니다.”
그러자 지금껏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초운하가 흠칫 했다. 가문을 박차고 나간 후, 수십 년 동안 소식 한 번 없었던 아들의 이름이었다. 설마 그 이름을 마교도들에게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던 초운하였다.
그녀는 문득 치솟는 분노를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어딘가에서 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마교의 주구(走狗)가 되어 있을 줄이야. 아들 녀석은 저 반반한 계집처럼 교주에게 포섭되었던 모양이었다.
만약 이런 말을 마교도랍시고 다른 놈이 찾아와서 주절거렸다면 아무리 수양이 깊은 그녀로서도 도저히 참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말을 꺼낸 건 바로 마교 교주가 아닌가.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교주가 직접 찾아온 걸 보면, 집을 뛰쳐나간 자식이 그런대로 마교 내에서 대접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묘하게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빈이가 귀교에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토록 찾아도 생사를 알 수 없었건만…….”
마화가 대화의 물꼬를 터놓자 묵향으로서도 말을 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는 본교에서 대단히 뛰어난 인재였소.”
마교의 주구가 되었다는 말에 속은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식이라고 안부가 궁금했던 초운하는 담담한 어조로 슬쩍 물었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노부로서도 난감하오만…….”
어렵게 입을 여는 교주의 모습에 초운하의 가슴은 덜컥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앞부분만 들었지만 그녀는 그 뒷말이 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었다는 말이리라. 요 근래 마교가 금나라와 대혈전을 벌인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혹시?
“본교의 부교주인 초류빈은 금나라와의 전투 중 사망했소이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초운하는 아들이 죽었다는 말 이상으로 부교주였다는 말에 더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간 걸 보면, 얼마나 마교에 미쳤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초운하는 도저히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걸 보면…….
“이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이때 경악한 초우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도저히 옆에서 듣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마교의 부교주 자리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즉, 그의 사촌형인 초류빈이 절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실례인 줄 알지만 부교주였다는 말은 형님이 혹시 화경에 올랐다는 뜻입니까?”
화경이라는 말에 초운하도 흠칫 놀랐다. 과연 아들이 그 지고한 경지에 올랐다는 말일까? 그녀의 눈길이 황급히 교주에게로 가서 꽂혔다.
묵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화경이 맞소. 녀석이 마공을 익힌 것은 아니니까 말이오.”
아들이 화경에 올랐다는 말에 초운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무공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버리는 게 무인의 생리다. 아들놈은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마교에 투신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 할 것인가.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 버린 것을. 초운하는 문득 먼저 가버린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이런 더러운 꼴을 안 보고 먼저 가버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본교에서는 시체는 곧바로 화장하여 뿌리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소. 대신, 생전에 부교주가 쓰던 것들을 가져왔소.”
묵향이 슬쩍 눈짓을 하자, 마화가 재빨리 품속에서 작은 보따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보따리를 바라보는 초운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라고 알려졌던 마교 교주였다. 요즘 들어 그것이 낭설이었다는 말들이 무림을 떠돌고 있었다. 금나라 군대를 맞이하여 춘릉 대회전에서 보인 무시무시한 신위와 함께. 더군다나 뒤통수를 치려던 무림맹을 용서하는 관용까지 베풀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희대의 거물이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아들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수하를 통해 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찾아와서 말이다. 이것만 봐도 아들이 교주에게 얼마나 사랑받으며 지냈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녀석, 나름대로는 행복하게 살았는지도…….’
애써 감정을 추스른 초운하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어디…, 어디에다가 뿌렸나요?”
“태산(泰山) 밑에 보면 태안(泰安)이라는 마을이 있소. 태안 앞을 흐르는 작은 강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뿌렸다고 들었소.”
태산이라는 말에 초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태산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곳에서도 전투가 있었습니까?”
묵향은 초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사람을 보내보면 알 거다. 장인걸 녀석이 파놓은 함정 때문에 태산파의 절반이 날아갔으니까.”
“태산파의 절반이 날아갔다고요? 태산파는 그곳에서 모두 철수한 걸로 들었는데…….”
“사람을 말한 게 아니라 태산파의 건물 절반이라는 말이야.”
더더욱 알 수 없다는 듯 초우가 맹한 눈을 하고 있자, 묵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설명해 줬다. 물론 그리 자세한 설명은 아니었지만.
“장인걸 녀석이 그곳에 함정을 파놨었다. 그리고는 수십 만근에 달하는 화약을 일시에 터트렸지. 그때 초 부교주는 물론이고, 패력검제와 본교의 정예 수십 명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
초류빈뿐만 아니라 패력검제도 함께 죽었다는 말에 초우는 경악했다.
“패, 패력검제 대협이 죽었다구요?”
묵향은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정파의 존경받는 명숙들 중 한 명인 패력검제까지 그곳에서 죽었다는 말에 초운하는 크게 위안을 받은 모양이었다. 적어도 아들이 의미 없는 전장에서 죽지는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묵향은 더 이상 해 줄 말이 없었기에 조용히 목례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고 있는 초운하에게 위로를 해줄 처지도 아닌 만큼,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그녀를 도와주는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묵향의 뒤를 따라 나온 초우의 안색은 매우 복잡했다. 가문에서 화경급 고수가 탄생했다는 것은 분명 대단히 영광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마교를 통해서 배출된 것이었기에 어디에다가 말도 꺼내기 힘들게 되지 않았는가.
“본교와 협정을 맺을 생각은 없는가?”
갑작스런 제의에 초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협정이라니요?”
“뭐, 상호불가침협정 같은 거지. 본교와 천지문 간에 협정을 맺었다는 얘기 못 들었나? 바로 그런 협정 말이야.”
물론 그런 얘기는 들었다. 그리고 그놈의 협정 때문에 천지문이 완전히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혹, 소문을 두려워하는 거라면 비밀협정을 맺는 것도 상관없다네. 본좌가 자네의 도움을 받을 게 있어서 이런 제의를 하는 건 아닐세. 초 부교주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초씨가문에 뭔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거지. 본좌의 진심을 알겠나?”
협정의 세부내용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마교와 불가침 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더군다나 그걸 비밀로 할 수 있음에야.
하지만 초우는 그 제의를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마교와 갈등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협정 체결로 인한 실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탓도 컸겠지만, 혹시 뭔가 함정이라도 숨겨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초우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교주는 그다지 기분 나쁜 듯한 얼굴은 아니었다. 사실, 그에게 있어서 협정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단지 그가 초씨세가를 대놓고 도와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
“그렇다면 협정은 맺지 않더라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슴지 말고 본좌에게 연락하게. 만사를 제쳐 놓고 도와줄 테니 말이야. 물론, 본교가 초씨세가를 돕는다는 걸 그 누구도 모르게 해 줄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게. 초 부교주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응당 해 줘야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초우는 묵향이 예의상 하는 소리쯤으로 듣고 넘겼다. 명문세가에서 마교에 도움을 청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