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씨세가를 나설 때부터 마화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도 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묵향의 뒤를 따라 걷기만 했다. 그러다 초씨세가가 안 보이게 되었을 때쯤, 돌연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묵향에게 물었다.
“당신, 기억이 돌아왔죠?”
마화의 질문에 묵향은 무슨 소리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기억을 잃었다고……?”
“척 보면 알아요. 이전까지만 해도 몰랐었는데, 오늘 초운하 여협과 대면하는 것을 보니 알겠더군요. 그건 묵향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예전 국광(菊狂)의 모습이었지.”
갑작스런 마화의 말에 뒤를 따르던 여문기를 비롯한 호법원 고수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교주가 가짜라는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교주가 딴사람으로 바뀌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화의 저 말은 또 뭐란 말인가?
부정도, 그렇다고 긍정도 하지 않고 있는 묵향에게 마화가 재차 물었다.
“언제였죠?”
“뭐…, 뭐가……?”
“언제 기억이 돌아왔느냐는 말이에요.”
묵향은 어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꽤… 됐지…….”
그 말에 마화는 새침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나는 당신이…, 당신이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영원히 잊어버렸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순간 마화의 눈에서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묵향은 난처한 표정으로 마화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마화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황급히 닦은 후 묵향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
그제서야 묵향은 미소를 지었다. 마화의 첫인상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딱 꼬집어 말하자면 마치 독 오른 들고양이 같았다고나 할까.
“물론 기억하지. 정말 감당하기 힘든 여자였다는 것까지도.”
순간 마화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때는 왜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었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그런 수줍은 반응도 잠시였다. 그녀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묵향에게 달려가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오오, 국광! 당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묵향 일행을 정문 앞까지 배웅한 초우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물론 환영하고 싶지 않은 손님들이었지만 그의 무림에서의 신분을 생각하면 자신이 직접 배웅을 해야 했던 것이다.
묵향이 떠난 다음에야 초우는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사촌형을 회상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허허,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더니 결국 화경까지 올라갔구나. 초씨 문중에 절대고수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정말 형이 자랑스러워.’
잠시 감상에 빠졌던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촌형도 화경에 올랐는데, 자신이라고 못할 건 뭐가 있겠는가. 아니, 화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화경에 근접하는 경지만 해도 세인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 내가 요 근래 너무 안이했어. 아무리 일이 바빴다고는 하지만, 하루 1시진도 제대로 수련하지 않았으니…….”
그는 오랜만에 수련이나 해 볼까 하는 생각에 연무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연무장으로 갈 수가 없었다. 초운하가 자신을 불렀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저쪽에서 초운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가주, 내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네.”
‘젠장, 수련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거야.’
초우는 입맛이 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제 집무실로 가시지요.”
정문 근처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렇게 권한 것이다.
“그러세나.”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장로님.”
초운하에게 자리를 권한 초우는 하녀를 불러 다과를 내오라고 일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초운하는 품속에서 서책 1권을 꺼내 탁자 위에 올리더니, 초우 쪽으로 슬쩍 밀었다. 오랫동안 쓰기 위해서인지 책의 겉표지는 가죽으로 감싼 상태였다. 얼마나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책장에는 손때가 까맣게 묻어 있었고, 가죽은 반들반들 윤이 흘렀다.
“이게 뭡니까?”
“빈이가 남긴 걸세. 나한테는 보탬이 되지 않겠지만, 가주에게는 커다란 보탬이 될 듯해서 가져왔다네.”
자신에게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초운하. 그녀의 말에 초우의 궁금증은 더욱 불타올랐다. 장로에게는 필요 없고, 나한테는 보탬이 될 만한 게 뭘까? 무슨 중요한 정보라도 써져 있는 건가?
초우는 급히 서책을 집어 들어 펼쳐봤다. 빼곡히 적혀 있는 글자들. 앞부분만 대충 읽었는데도 초우는 이것이 72식 광풍도법(狂風刀法)의 구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자신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에 맥이 탁 풀렸다.
그제서야 초우는 왜 초운하가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종리세가 출신인 그녀는 광풍도법을 익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비급이 필요 없다는 뜻이리라.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걸 기록해서 들고 다녀. 형님도 참, 조심성 없기는…….”
무심결에 초류빈을 탓하는 초우. 적전제자에게만 전수되는 광풍도법은 초씨세가 최고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투덜거린 것은 밑바닥에 깔린 실망감 때문에서였다. 광풍도법이라면 졸면서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익혔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런 만큼 화경에 이를 수 있는 좀 더 강력한 무공이 이곳에 적혀 있기를 바랬는지도 몰랐다.
이미 알고 있는 구결이었던 만큼, 초우는 대충대충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자신이 암기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전혀 다를 게 없는 내용이니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초운하가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안 읽을 도리가 없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충 읽는 시늉을 하던 초우의 안색이 어느 순간, 심각하게 변했다. 구결을 읽어 나가던 중에 놀랍게도 몇 군데의 내용이 바뀌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왜 구결을 이렇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과 함께 그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는 도로(刀路)의 흐름도 곁들여져 있었다.
“이, 이건……?”
“빈이가 광풍도법을 손봐 놓은 거라오. 지고한 경지에 오른 후, 뒤돌아보니 광풍도법의 미흡한 점들이 눈에 보였던 것이겠지.”
초운하의 설명을 들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초우도 그걸 눈치 챘으니까. 전대 가주였던 선친에게 직접 광풍도법을 전수받은 후, 그 깊은 오의(奧義)를 깨닫기 위해 노력한 세월만 해도 어언 30여 년이 넘는다.
비급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금껏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던 부분들이 하나씩 명쾌하게 풀려 나가는 그 쾌감. 너무나도 오랜 세월 수련해 왔던 도법이었기에, 몇 글자 되지 않는 주석만으로도 충분히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무공의 오의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기분을 느낀 것이다.
초우는 자신도 모르게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정좌를 하고 비급을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72식의 구결까지 모두 읽었을 때, 초우의 마음속은 도저히 털어 내지 못하고 남겨둘 수밖에 없었던 묵은 때를 싹 다 벗겨낸 듯한 개운함과 충만감으로 가득 찼다.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얼마만이던가. 저 옛날, 광풍도법을 처음으로 완벽하게 펼치게 되었을 때의 그 느낌이 이러했을까?
하지만 그런 희열과 함께 초우는 짙은 아쉬움 역시 느껴야 했다. 지금껏 광풍도법을 익히며 느껴 왔던 모든 불만사항들은 한꺼번에 해결되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바뀐 것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광풍도법이 더욱 강해지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는 오랜 실전경험에 따른 임기응변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광풍도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50보, 100보인 셈이었다.
초우는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며 비급을 덮으려다 72식 광풍도법의 구결이 끝났음에도 아직 책장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눈길이 갔다.
황급히 그 뒷장을 넘겨보니, 놀랍게도 새로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은 무공에 대한 좀 더 원론(原論)적인 것으로서, 세가의 도법을 익힘에 있어 그 추구해야 할 바와 자세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검(劍)은 찌르기에 알맞게 가볍고 가느다랗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검법의 기본은 적을 찔러서 죽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찌르는 것이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내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목을 조금만 움직여도 공격지점을 완전히 바꿀 수 있기에 상대가 방어하기에 매우 난해하다. 그렇기에 검법은 수많은 변초와 허초들이 발달해 있어 상대를 현혹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하지만 도(刀)는 그와 완전히 반대다. 찌르는 것보다는 베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휘둘러야 하는 만큼, 아무래도 찌르기에 비해 변화를 주기가 힘들어진다. 대신 그 부족한 부분을 무게와 힘으로 메우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도를 이용하는 문파들은 초씨세가처럼 무거운 중도(重刀)를 애용했다.
이런 원론적인 글을 읽으며 초우는 먼 옛날을 추억했다. 세가의 무공 원류에 대해서 듣고, 또 그것에 대해 깊이 빠져들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어렸을 때, 즉 초보였을 때였다. 그 이후로는 보다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했지, 이렇게 원류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오랜만에 보다 보니 신선하기는 했지만, 원류에 대한 설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광풍도법을 익힘에 있어서 추구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들이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는 부분들을 읽으며 초우는 사촌형이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굳이 기록해 놓은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공을 익히는 자라면 응당 자신이 익히는 무공의 원류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고, 또 그 추구하는 바도 알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뒷장에 연결되어 있는 내용을 읽었을 때, 초우는 마치 커다란 몽둥이로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그 뒷장에 연결되는 내용이 바로 광풍도법을 익힌 도객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도의 흐름에 대한 조언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에 미래를 위한 조언만이 쓰여 있었다면 초우가 이토록 큰 충격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니까. 하지만 글의 흐름이 과거, 현재, 미래로 쭉 연결되어 흐르고 있었기에 그것은 그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왔고, 한순간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초우의 몸에서 뭔가 맥동치는 듯한 웅혼한 기운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시선은 책을 향한 채 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가주의 모습.
그것이 바로 모든 무인들이 꿈꾸는 깨달음의 순간임을 초운하는 금방 알아챘다. 그녀 또한 저런 순간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
“가주, 부디 빈이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해 주시구려.”
가주를 바라보는 초운하의 가슴은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살아서 훌륭한 주군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가문을 위해 이렇듯 대단한 유산까지 남겨주다니.
다시금 초운하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순간만큼은 죽은 아들이 너무나도 보고 싶은 초운하였다.
연공공의 고뇌
추밀사 섭평의 제의를 받은 지 며칠이 흘렀지만, 연공공은 아직까지도 그에게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에게 섭평의 제의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는 시간을 끌고 있는 중이었다.
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섭평의 방해로 인해, 토벌군을 구성하는 일은 아직까지도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여기까지는 모든 게 섭평이 바라는 대로 이뤄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황실을 떠받치는 비밀기관인 황성사는 벌써부터 행동을 시작한 상태였다.
선봉군을 지휘하고 있는 유광세 상장군 등 급진파에 속한 장수들에게는 암살자를 보냈고, 여문덕 상장군 등 온건파로 분류되는 장수들에게는 회유하기 위한 밀사를 파견했다. 그들의 회유는 성공해도 그만이고, 실패해도 그만이었다. 밀사의 주목적은 그들 간에 분열과 이간질을 시키는 것이었으니까.
지금 반란군의 세력은 정면으로 부딪치기에는 너무나도 강했다. 그런 만큼 그 기세를 감소시킬 필요가 있었다. 장수 몇 명을 암살하고 회유하여 서로 간에 이간질을 시킨다면 저들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조만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릴 게 뻔했다.
‘어느 정도 안심해도 될 만한 상황이 되면 그 즉시 놈의 목을 쳐 버리는 게 좋겠어.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 위험한 놈이거든.’
연공공은 살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가소로운 놈, 감히 본관을 회유하려 하다니…….”
며칠 지나지 않아 암살자와 밀사를 파견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섭평의 목이 떨어지는 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공공의 그런 유쾌한 기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갑자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환관 한 명이 집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던 것이다.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연공공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 결과가 나오려면 너무 이르다. 그렇다면 뭔가 생각지도 못한 변괴가 생겼다는 소리인데…….
“대체 무슨 일이냐?”
“급보가 도착했사옵니다, 공공.”
“말해 보거라.”
“마교도들이 춘릉성 인근에서 벌어진 대회전에서 대승을 거뒀다고 하옵니다.”
연공공은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야 말았다. 감정을 거의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연공공인 만큼,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그럴… 리가…….”
연공공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마교가 춘릉성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과 그곳으로 금나라의 대군이 진격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연공공은 마교도들이 전멸당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겨우 3만 여에 불과한 마교도들이 어찌 60만에 달하는 금나라의 대군을 당해 낼 수 있겠는가. 그것도 금나라의 대원수가 직접 이끄는 최고의 정예를 말이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아니 황성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게 사실이냐?”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공공. 금나라 패잔병들 중 살아서 돌아간 자가 수천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대승을 거뒀다고 하옵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는지 연공공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이냐…….”
마교가 이렇게나 엄청난 전력을 보유하고 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교주를 압박한답시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던 자신은 자고 있는 호랑이의 코털을 하나씩 뽑고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때, 갑자기 뭔가가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신과 교주가 은원을 맺게 된 원인은 바로 악비 대장군 때문이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교주는 양양성에서 주둔하며 그곳의 장수들과 친하게 지냈었다. 그렇다면 만약 교주가 반란군을 돕고 있다면?
연공공은 맥 빠진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반란군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들과 친분이 있는 교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장군 몇 명 제거하고 황도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만약 마교의 세력이 별 볼일 없는 것이라면 연공공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춘릉성 전투만 보더라도 마교의 전력이 제국의 무력을 상회하는 것임이 밝혀진 이상, 그로서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유 환관!”
연공공의 부름에 곱상하게 생긴 환관이 들어와 고개를 조아렸다.
“하명하시옵소서, 공공.”
“지금 당장 추밀사에게 달려가 내가 만나자는 말을 전하거라.”
“예.”
“그리고 황성사에 기별을 넣어, 마교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자료를 제공해 달라고 하거라. 아무리 허무맹랑한 정보라도 좋다. 설혹 황실의 위엄에 어긋난다고 해서 그 정보를 빼서도 안 된다. 알겠느냐?”
“예, 공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