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화무제와 죽음의 경주를 벌이고 있던 마교도들은 황당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바로 코앞에서 달려가고 있던 옥화무제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을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동료들의 모습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욕을 하며 서로를 피하는 그들. 워낙에 반사신경들이 뛰어난 인물들이었기에 집단으로 정면충돌하는 추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모두들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 명확하게 대답해 주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중 한 명이 못 참겠다는 듯 다시 한 번 옥화무제가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어느 지점에서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시금 튀어나와 자신들에게로 달려오는 그의 모습을.
“진법인가? 그냥 일직선으로 달렸을 뿐인데…….”
문제는 이곳에 모여 있는 마교도들 중에서 진법에 해박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비교적 수월한 진법이, 그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성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두들 당혹스런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을 때, 동방뇌무 장로와 함께 철영 부교주가 도착했다.
“무슨 일인가?”
“진법입니다.”
수하들의 대답에 그들은 앞을 세심하게 살펴봤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진법이라고?”
철영은 수하들이 가리킨 곳을 향해 직접 달려가 봤다. 앞으로 쭉 달렸을 뿐인데,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바뀌며 뒤쪽에 있어야 할 수하들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 귀신에 홀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다. 아마 총단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도록 사냥꾼이나 약초꾼 따위가 접근하지 못하게 설치해 놓은 진법인 것 같았다.
“이거 큰일이군요. 전투단 중에 진법에 밝은 놈은 단 한 명도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문관이라도 몇 명 데려올 것을 그랬습니다.”
물론 무영문을 공격함에 있어 주위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워낙 위험한 여로였기에 무공도 익히지 않은 약골인 문관을 데려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시도해 보는 수밖에.”
철영은 다시 한 번 진법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한 번 들어가 봤던 경험이 있는 만큼 진법의 중간쯤 왔다는 생각이 들자 멈춘 뒤, 있는 대로 공력을 끌어올려 발밑은 물론이고 주위를 향해 무자비하게 장력을 퍼부었다.
콰콰콰쾅!
그의 장력이 땅바닥과 충돌하며 요란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코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히이익!”
설마 철영 부교주가 이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진법을 파괴하려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수하들은 불시에 흙먼지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방금 전의 폭발로 인해 진세는 파괴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앞에 보이던 경치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옅은 안개가 끼어 있는 울창한 숲 사이로 사람들이 다녔음직한 길이 드러났다. 이미 그곳에서 철영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 진법을 박살냄과 동시에 안쪽으로 달려 들어간 모양이었다.
“과연 부교주님이시군.”
모두들 철영의 무위를 칭송하고 있을 때, 동방뇌무 장로는 뒤쪽을 힐끗 돌아봤다. 수라마참대원들이 뿜어내는 마기를 느끼며, 그 거리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들이 합류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부교주의 뒤를 따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부교주님의 뒤를 따른다. 모두 돌격!”
동방뇌무 장로의 명령에, 혈랑대는 앞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길을 따라 달려 들어가며 동방뇌무 장로는 의아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꽤나 들어온 것 같은데, 아직까지 총단 건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군.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별로 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때, 저쪽에서 달려오는 무영문의 무사들이 보였다. 모두들 갈색 경장을 입고 있는 것이, 한눈에 봐도 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겁을 상실했는지 감히 병장기를 뽑아들고 흉흉한 살기를 날리고 있었다.
“큿!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동방뇌무 장로는 수하들을 향해 외쳤다.
“무영문도들의 씨를 말려 버려라!”
그의 명령에 수하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들고는 마주 달려갔다.
“우와아아!”
곧이어 양쪽 집단이 서로 뒤엉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영문도들의 무공이 형편없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들은 대단한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무영문도들의 수는 겨우 500여 명밖에 안 되었지만, 마교의 최정예인 혈랑대에 밀리지 않으며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이상하군. 무영문도들의 무공이 이렇게 대단했었나?’
하지만 그런 놀라움도 잠시, 순간 뭘 떠올렸는지 동방뇌무 장로는 다급히 외쳤다.
“본좌는 동방뇌무 장로다. 모두들 싸움을 멈추고 서로 떨어져라!”
웅혼한 그의 외침에 뒤엉켜 싸우던 무사들의 전투는 순식간에 멈췄다. 적들과의 격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말도 안 되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마교도들은 전투를 멈추고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상관의 명령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빈틈을 노려 돌격해 들어올 줄 알았던 무영문도들 역시 일제히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이 예상치 못한 광경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에 한중평 장로 있는가? 본좌는 동방뇌무 장로다. 이리로 오게.”
그 말에 방금 전까지 엄청난 무위를 발휘하던 무영문도 한 명이 흠칫하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적당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멈춰선 뒤 질문을 던졌다.
“정말 차석 장로님이십니까?”
“노부가 동방뇌무가 맞네. 우리는 저 멀리 동여진에서부터 배를 타고 함께 폭풍을 헤쳐 온 사이가 아닌가.”
그러자 그 무사는 안심이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차석 장로님이 맞으시군요.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게 말일세. 세상에 이런 진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먼.”
“그래도 차석 장로님께서 빨리 눈치를 채셔서 다행히 사상자가 없었습니다. 이거야 원……. 이렇게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환영진이 있다니.”
그 말에 동방뇌무 장로는 질린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예전에 연경전투에서도 환영진에 걸려 크게 고생했던 적이 있었기에 다행히 눈치를 챌 수 있었다네. 그때는 생전 처음 보는 괴물들이 득실거렸었는데, 이번에는 아군들이 모두 적으로 보이는구먼. 허참~, 정말 무서운 진법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한중평 장로는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동방뇌무 장로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지금 그의 눈에 동방뇌무 장로는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무영문도로 보였던 것이다. 평상시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무시무시한 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절정의 무위를 지닌 정파 고수처럼 보였다. 한중평 장로는 소름이 끼쳤다. 이토록 교묘하게 아군끼리 상잔(相殘)하도록 유도하는 진법이 있다니…….
한동안 진법을 돌파하기 위해 헤맸지만, 모두들 진법하고는 담을 쌓은 무골들이다 보니 도저히 벗어날 재간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드넓은 숲과 짙은 안개, 그리고 끝도 없이 뻗어 있는 오솔길이 전부였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 되겠네. 진법을 파괴하는 수밖에!”
“예? 진법을 파괴하는 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자칫 기관장치라도 건드리면…….”
“더 이상 나빠질 게 뭐가 있겠나? 이대로 멍하니 있느니, 모험을 하는 게 낫다고 보네. 이러다 적들의 공격이라도 받게 된다면 더 위험해. 연경에서는 그 망할 놈들이 우리를 진속에 가둬 놓고 화살비를 퍼부어댔었지.”
동방뇌무 장로의 말에 한중평 장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동방뇌무 장로는 주위를 둘러보며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모두들 병장기를 뽑아들고 주위에 있는 나무나 돌 등…, 눈에 걸리는 것들은 모두 다 파괴해 버려라!”
“존명!”
수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주위의 경물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해 나가기 시작했다. 꽤나 오랫동안 진 내부를 무작정 파괴하고 있을 때, 누가 뭘 어떻게 건드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진세가 깨져 버렸다. 안개 낀 숲 속 풍경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저 멀리서 화광이 충천하는 전각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것을 보자마자 동방뇌무 장로는 장검을 뽑아들며 달려갔다.
“저기다! 모두 돌격하라!”
운 좋게 진법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마교도들은 곧바로 총단 수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기저기를 들쑤시며 아무리 무영문도들을 찾아봐도 전혀 소득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맹렬하게 불타고 있는 전각 속을 무슨 용뺄 재주가 있어서 수색을 한단 말인가. 적들도 저 불속에 들어 있을 리가 없으니, 이미 오래전에 탈출했을 게 뻔했다.
동방뇌무 장로는 분통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밸도 없는 잡것들! 반항조차 안 하고 튀어 버리다니!”
설마 적이 총단에 쳐들어왔는데도 싸우려 하지 않고 곧바로 내빼 버렸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동방뇌무 장로였다.
이때, 저쪽에서 철영 부교주가 터덜터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싸움을 한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옥화무제를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동방뇌무 장로를 발견한 철영이 그에게 다가왔다.
“뭔가 소득은 있나?”
동방뇌무 장로는 난처한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디로 숨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저 밑 어딘가에 지하통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화염이 충천하고 있는 건물의 잔해들이었다. 저 건물들 지하 어딘가에 통로가 있을 듯도 한데, 화염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도저히 그 밑을 살펴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저 불이 꺼진 다음에나 손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아마 자네 말이 옳을 걸세. 오면서 살펴봤는데, 밖으로 연결되는 험준한 소로(小路) 하나 없더구먼. 짐승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라도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았어.”
이때, 철영 부교주가 되돌아온 것을 보고 한중평 장로가 다가왔다. 그 역시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수라마참대원들을 닦달하여 무영문도들의 흔적을 찾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던 모양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부교주님.”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불이 꺼질 때까지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주변을 수색해 보는 건 어떨까요? 두더지가 아닌 이상, 수백 리씩이나 땅굴을 파지는 못했을 거 아닙니까. 운 좋으면 밖으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철영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내 그 생각도 안 해 본 건 아닐세. 하지만 녀석들이 통로들을 그냥 놔뒀을 리 없잖은가. 아마 철저하게 위장을 해놨겠지.”
“땅굴 입구야 위장을 해 놨겠지만, 길까지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 정도 규모라면 하루에 소모되는 물자만 해도 엄청날 게 아니겠습니까.”
철영은 한중평 장로의 말에 자신의 생각이 모자랐음을 깨달았다.
“자네 말이 옳으이. 본좌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군.”
실마리가 주어지자, 철영은 동방뇌무 장로와 한중평 장로에게 명령했다.
“지금 당장 사방으로 수색대를 파견하여, 산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길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게. 그리고 혹, 산행을 하는 자들이 보이면 남김없이 잡아들이도록. 알겠나?”
“존명!”
“그리고 사람을 보내서 천진악 장로도 불러들이게. 쓸데없는 곳에서 시간낭비 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도우라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