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4화 (670/930)

매영인 포로가 되다

옥화무제를 비롯한 수뇌부는 이미 가장 가까운 분타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물론 그 분타도 지금까지 있던 자리를 포기한 채 어딘가로 잠적해 버린 상태였기에, 그들을 찾아내는 데 꽤나 애를 먹어야만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죠?”

옥화무제의 질책에 추밀단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태였으니까.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 질문에 추밀단주가 서류를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급히 대피를 하느라 총단에 보관되어 있던 자료의 거의 대부분을 소각해 버려야 했습니다. 물론 각 분타들이 축적하고 있는 자료가 있기에 대략적인 복구는 가능합니다만, 그 사본을 모두 넘겨받고 다시 정리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겁니다.”

옥화무제는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나마 복구가 가능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기는 하네요.”

“그리고 황색인장이 발령된 만큼, 전서구 통신망을 완벽하게 새로이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총단에서 황색 신호탄 3개가 날아오르면, 그 즉시 전서구 관리소에서는 중원 각지의 분타에 황색인장을 달고 있는 전서구 10마리씩을 날린다. 그런 다음 남은 전서구는 몽땅 다 죽여 버린 뒤 그곳을 불사르고 대피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지의 분타들은 황색인장을 받는 즉시, 현재 분타를 버리고 딴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즉, 지금까지 운용되던 전서구 통신망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전서구 통신망을 재구축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금과 시간이 들어가게 될지, 현재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추밀단주의 보고에 옥화무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렇게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다니. 아마 무영문이 과거처럼 제대로 움직이려면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아니, 몇 년의 시간이 흘러도 예전과 같기는 힘들었다. 통신망은 복구하더라도, 분타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재정립하고 분석하려면 몇 년의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말이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옥화무제가 이번에는 총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인명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나요?”

“그건 아직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마교도들이 버티고 있어, 그들이 물러난 다음에야 확인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식량은 충분하겠죠?”

“각 토굴마다 6개월 치의 비상식량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한 곳에 인원이 많이 몰리면 그전에 소비될 수도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각자의 등급에 맞는 토굴을 숙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발 인원피해라도 좀 적었으면 좋겠네요.”

이때, 분타주가 달려 들어오며 희소식을 전했다.

“비영단과의 연락에 성공했습니다.”

비영단은 무영문의 행동대였다. 그들과 연락에 성공한 이상, 지하에 잠적해 버린 분타들을 찾아내어 무영문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먼저 문주부터 찾아내세요. 그리고 이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세요.”

“옛, 즉시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 잠에 빠져 버린 무영문을 다시 깨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황색인장이 발령된 후에는 1개월 동안 외부와 일체의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총관은 무영문의 분타들을 몽땅 다 깨우는 것은 포기한 채, 총단 인근에 위치해 있는 분타들부터 우선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총단이 파괴당한 후, 2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옥화무제는 마교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코앞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정확한 피해까지도.

“어떻게 그들이 남쪽에서 올라올 수가 있었던 거죠?”

무영문의 총단은 무제산맥(武弟山脈) 속에 감춰져 있었다.

십만대산에서 무제산맥으로 들어오려면 사천성에서 호남성에 이르는 산악을 타고 내려와 남령산맥(南嶺山脈)을 통해 들어오는 길과 대파산맥에서 대별산맥을 거쳐 아래로 남하해 내려오는 길이 있다. 물론, 그 두 갈래 길은 최악의 험로였지만, 마교도들이 짙은 마기를 감추면서 이동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동로 주위에는 어김없이 무영문의 고정첩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수많은 길에도 무영문의 촉각들이 널리 퍼져 있었기에, 어떤 길로 들어온다 해도 마교의 고수들처럼 눈에 띄는 자들이라면 그 즉시, 그들의 동태가 총단으로 보고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래쪽에서 달려 올라왔다. 첩자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그들의 모습이 처음으로 포착된 것은 온주(溫州) 근처라는 것을 알아냈다.

“산맥을 타고 내려온 게 아니라, 해로(海路)를 통해서 들어온 게 분명합니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옥화무제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껏 마교도들이 이동했던 육로만을 잘 감시하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허를 찔린 것이다.

“도대체 그 많은 배가 어디에서 났죠? 수천 명을 실어 나르려면 한두 척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을 텐데……. 마교도를 발견했다는 항구도 없었을 뿐더러, 다수의 배가 누군가에게 동원되었다는 정보조차 입수된 게 없잖아요.”

“일전에 태상문주님께 보고를 올리지 않았습니까. 누군가가 왜국과 대규모로 밀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총관의 말에 옥화무제는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게 그들이라는 말인가요?”

“그렇게 봐야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집니다. 일전에 그분을 돕겠답시고 왜구 10만이 상륙한 전례도 있지 않습니까. 그걸 간과한 게 치명적이었습니다. 그분은 왜와 통하고 있는 만큼, 몇 천씩이나 되는 인원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해로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어야 했습니다.”

상대를 너무 얕잡아봤기에 치러야 했던 값비싼 대가였다.

“조사해 본 결과, 마교 쪽은 꽤나 정확한 정보를 입수한 상태로 움직였습니다. 온주에서부터 시작해서 총단에 이르는 노상에 배치되어 있던 모든 고정 첩자망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총단의 동남쪽에 배치되어 있던 경비대 역시 전멸 당했습니다.”

피해가 너무 컸기에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은 채 옥화무제가 자책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태상문주님께서는 무사하시느냐?”

저음의 중후한 음성. 그 목소리를 들은 옥화무제는 힘이 솟는 걸 느꼈다. 그만큼 그녀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신뢰했던 것이다.

곧이어 장대한 체구를 지닌 사내가 실내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무공으로 다져진 군살 한 점 없는 탄탄한 체구만 봐도 듬직함이 느껴지는 사내, 비영단주였다. 비영단주는 옥화무제를 보자마자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아이구,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달려왔습니다.”

옥화무제는 처연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내 꼴이 정말 우습게 되어 버렸군요.”

“우습게 되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잠시 옥화무제를 위로하던 비영단주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하마터면 길이 엇갈릴 뻔했습니다. 장백산으로 갈까 하던 차에 소식을 들었으니까요.”

“장백산이요? 비영단주가 장백산에 왜……?”

“일전에 태상문주님께서 장백산을 조사해 보라고 지시하셨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하지만 그 정도 일로 비영단주가 직접 나설 필요까지야…….”

“사실,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비영단주는 장백산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옥화무제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장백산에 1개조의 수하들을 투입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서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보고에 의하면 장백산에 신선이 산다고 하더군요.”

비영단주의 말에 옥화무제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요?”

옥화무제의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에도 비영단주는 진중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진담입니다. 토착민들 중에서 신선을 봤다는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직접적으로 신선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고요.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분석해 보니, 아주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게 질 나쁜 농담이 아니라면, 가능성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신선으로 보일 만큼 제법 실력 있는 고수가 은거해 있는 모양이군요.”

“예, 그런데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그 신선을 봤다는 사람들의 시대 폭이 좀 과하게 넓다는 점이었지요.”

“시대 폭이요?”

“요 근래에 봤다는 사람부터 시작해, 아주 어렸을 때 봤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봤다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말대로라면 몇 백 년을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이 좀 의아스럽기는 합니다.”

옥화무제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곳에 문파가 들어앉아 있다면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화경급 고수라고 해도 몇 백 년을 살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문도들의 모습에 목격자들이 헷갈렸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목격자들이 본 신선의 인상착의가 동일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그건 좀 믿기 힘들군요.”

“속하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파견했던 수하들로부터 연락이 갑자기 끊겨 버렸습니다.”

“흐음…, 그건 조금 심각한 문제군요.”

은잠과 침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게 비영단 요원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실종되었다는 것은 그곳에 범상치 않은 집단이 은둔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알아보려 했던 것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옥화무제는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일단 장백산에 대한 조사는 중단하세요.”

“혈교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옥화무제도 비영단주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발해 문자는 마교에서 흘러나온 거죠. 즉, 마교가 그들의 뒤를 쫓고 있다는 말이에요. 이 시점에서 장백산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만 해도 우리로서는 충분해요.”

“혹시 마교에 흘리실 생각이신가요?”

“맞아요.”

“하지만 혈교라면 그들에게도 대비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혈교가 재기하기 직전에 쉽게 무너져 버린 이유도, 제대로 준비가 갖춰지기 전에 찬황흑풍단의 기습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정보를 흘린 것은 무영문이었다. 혈교는 일전에도 위치가 사전에 노출되어 치명타를 입은 만큼, 이번에는 더욱 만전을 기울일 게 분명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위험을 무릎 쓰고, 비영단주가 직접 혈교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괜히 조사한다고 얼쩡거리다, 그쪽에서 눈치 채고 잠적해 버릴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니 그냥 놔두도록 하세요. 무엇보다 지금은 혈교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 * *

묵향의 지시에 의해 천랑대는 십만대산으로 철수했다. 600여 명에 가까운 포로들을 압송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혈랑대와 수라마참대는 철수하는 척하고서는, 기척을 감출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만 물러선 뒤 그곳에서 대기했다.

무영문의 총단을 감시하기 위해 남은 것은 묵향과 철영 단, 두 명뿐이었다. 마기를 완전히 감출 수 있는 사람이 둘뿐이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에는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놈들이 튀어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묵향의 오산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다시 1주일, 2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한 달이 되었을 때, 묵향은 더 이상은 참고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까지 기다렸는데 안 움직이는 걸 보면 벌써 다 도망친 모양이군.”

“그렇게 빨리 도망칠 수 있을까요? 총단의 규모로 봤을 때, 2~3,000명은 족히 거주했을 텐데요.”

“그렇긴 하지만 녀석들이 땅굴을 얼마나 더 뚫어 놨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지. 저기에 있는 건물들에 연결되어 있는 땅굴만 해도 몇 개던가. 우리가 찾아낸 것만 해도 벌써 6개였어. 놈들의 땅굴이 자네가 쳐놓은 포위망 저 뒤쪽까지 뚫려 있다면, 포위망 자체가 의미 없지 않겠나.”

“그, 그럴 수도 있겠군요.”

“더 이상 이곳에 매복해 있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으니, 여우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 준 것 정도로 만족하고 철수하지.”

“그래도 이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냥 물러나기에는 아쉽다는 듯 철영이 주저하자 묵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홍진 장로에게 연락해 이곳에 비마대를 깔아 놓으면 될 게 아닌가?”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곧바로 홍진 장로에게 연락하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마교의 무영문 총단 습격은 일단락되었다.

* * *

무영문의 문주는 남경 분타에 머물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인 옥화무제가 총단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그녀는 필요에 따라 여러 분타들을 떠돌며 현장에서 지휘 업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금나라와의 전쟁이 일단락되었기에 원래는 총단으로 돌아가는 게 옳았지만, 군부에서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녀는 아직까지도 남경에 머물고 있었다.

“총단이 공격당했습니다.”

남경 분타주가 전한 급보에 문주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리가…….”

“방금 전에 도착한 전서입니다.”

남경 분타주가 그녀에게 전한 것은 손바닥 크기만 한 전서였다. 전서에는 몇 줄의 내용이 암호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 아니었다. 제일 마지막에 찍혀 있는 조그마한 인장. 별것 아닌 문양이 새겨져 있는 이 황색의 인장이 바로 문제였던 것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황색인장을 노려보는 문주. 그녀의 손은 무의식중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문주는 자신에게 이게 전달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놀라움은 컸다.

그런 문주를 향해 분타주가 채근했다.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분타를 떠나야 합니다, 문주님.”

문주는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어느 정도 놀라움을 가라앉혔다. 냉정을 회복하자마자 그녀는 분타주에게 명령했다.

“총단 인근에 있는 분타에 전서구를 날려, 지금 당장 총단을 살펴보라고 전하세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황색인장이 전 분타에 배포된 이상, 모든 분타주는 외부와 연락을 단절하고 대피하는 게 규칙이지 않습니까?”

“당장 영인이를 불러들이세요.”

부문주 매영인은 지금 추밀사 섭평과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