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5화 (671/930)

하지만 매영인은 합류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파견된 전령을 통해 상황을 대충 전해 들은 매영인이 곧바로 마교 총단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전령에게서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문주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 이 바보 같은 놈이…….”

어머니의 말만 듣고, 딸에게 제대로 된 상황을 알려 주지 않은 게 지금처럼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 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딸아이는 교주에게 사정하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지금 교주는 아예 무영문의 뿌리를 뽑을 작정을 하고, 손을 쓴 상황이니까.

“왕 타주!”

“예, 하명하십시오. 문주님.”

“지금 당장 영인이에게 사람을 보내서 돌아오라고 전하세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지금 본타에는 부문주님을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경공이 뛰어난 고수도 없을 뿐더러, 황색인장이 발령이 된 이상 다른 분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문주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딸아이가 사지로 들어가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릴 방법이 없다니, 참으로 통탄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묵향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매영인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무작정 십만대산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서였다.

남경에서 십만대산까지 가려면 무려 1만 리에 달하는 거리를 건너뛰어야만 했다. 그 엄청난 거리를 패력검제는 겨우 7일 만에 주파해 버렸지만, 매영인으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속도였다.

매영인은 일단 말을 구입했고, 그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 말이 지치면 팔아치우고, 또 다른 말로 바꿔 이동했기에 예상보다는 꽤나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여정을 그렇게 이동한 것은 아니다. 산맥이나 계곡 따위가 가로막고 있어 빙 돌아가야만 할 때, 그녀는 곧바로 말을 버린 뒤 경공으로 그곳을 가로질렀다. 그런 다음 관도를 다시 만나면, 말을 구입해 타고 가는 방식으로 이동했다. 아무리 무공이 뛰어난 그녀라 해도 경공만으로 그 먼 거리를 달려갈 자신이 없었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꽤나 강행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영인은 38일이라는 시일이 흘러서야 십만대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지리를 알고 있는 그녀는 곧바로 정문을 향했다.

정문 주변의 경비는 무사들이 하고 있었지만,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제법 나이를 먹은 문사였다. 그는 노련한 눈썰미로 매영인을 판단했다. 말을 타고 있는데다가, 복장이 꽤나 고급스럽다. 더군다나 그녀의 허리에는 아주 고색창연한 보검이 걸려 있었다. 그것만 봐도 그녀의 신분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의외인 것은 그런 그녀가 단 한 명의 종자도 거느리지 않고 왔다는 점이었다. 매우 피곤해 보이는 얼굴만 봐도, 그녀가 꽤나 먼 거리를 강행군해서 온 것 같은데 종자조차 없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사는 정중하게 예를 갖춘 다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교주님을 뵙게 해 주세요.”

교주를 만나러 왔다는 말에, 문관은 살짝 긴장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일 거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설마 교주를 만나러 왔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무영문의 부문주, 매영인이라고 전해 주세요.”

“무영문이라구요?”

방명록을 기록하고 있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문관의 눈이 그 순간 묘하게 번쩍였다. 지금 무영문과 전쟁 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무영문의 부문주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앉아서 공을 세우게 된 것이다.

“상부에 연락을 드리긴 하겠습니다만, 지금 당장 교주님께서 부문주님을 만나 주실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묵으실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곳에서 기다리시면 차후에 연락이 갈 겁니다.”

문관은 그렇게 말한 후, 매영인을 직접 황룡각(黃龍閣)으로 안내했다. 마영각이 극빈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라면, 황룡각은 그 아랫단계의 손님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마영각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손님들을 숙박시켜야 하는 만큼, 건물의 규모는 훨씬 더 컸다. 건물 여기저기에 황금으로 도금해 놓은 용의 형상이 아로새겨져 있어, 꽤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문관은 매영인을 황룡각으로 안내한 뒤 곧바로 경비대에 보고했다. 먹잇감이 제 발로 기어 들어왔다고 말이다. 문관의 보고를 받은 정문 경비대장은 이 사실을 외총관에게 급히 전했다.

“혼자 왔다는 게 사실이냐?”

“옛,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외총관은 자신이 앉아서 공을 세우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서 그녀가 묵고 있는 황룡각으로 갔다.

“귀하가 무영문의 부문주이시오?”

“예.”

소무면 장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포권했다.

“처음 뵙겠소이다. 노부는 본교의 외총관직을 맡고 있는 소무면이라고 하오.”

“처음 뵙겠습…….”

매영인도 마주 포권하며 인사했지만, 그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가 포권하며 고개를 숙이는 그 순간, 소무면 장로가 기습공격을 가해 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영약을 섭취한데다가, 할머니인 옥화무제로부터 직접 무공까지 배웠다고 하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온실 속에서 자라온 화초였다. 피 튀기는 지옥 속에서 성장해 온 소무면 같은 거마에 비한다면 실전경험에서 상대가 안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기습까지 당한 상태가 아닌가. 처음 한 방을 허용한 것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소무면 장로는 매영인을 제압해서 지하감옥에 처넣어 버렸다. 그런 뒤 고문기술자를 불러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몽땅 다 실토 받으라고 명령했다.

일처리를 깨끗하게 끝낸 소무면 장로는 공치사도 할 겸, 보고도 할 겸 해서 수석장로를 찾아갔다. 마침 수석장로는 설민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게, 외총관.”

“오, 군사도 있었구먼. 마침 잘되었네. 자네에게 따로 통보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야.”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모양이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소무면 장로는 자리에 앉으며 수석장로에게 자랑했다.

“제가 방금 전에 기가 막힌 계집을 하나 잡았지 뭡니까.”

수석장로는 그가 애첩이라도 하나 장만한 줄 알았다.

“이거 섭섭하구먼. 노부에게는 언질도 주지 않고 기방에 가다니 말이야.”

“기루라니요?”

잠시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소무면 장로는 이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제가 수석장로님을 빼놓고 그런 곳에 혼자 갈 리 없지 않습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무영문의 계집을 하나 붙잡았다는 거지요.”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설민이 끼어들었다.

“무영문도라구요?”

“지금 감옥에 처넣고, 주리를 틀고 있는 중일세. 기대해도 좋네. 부문주씩이나 되는 계집이니, 제법 쓸 만한 걸 토설할 게야.”

“부문주라면……?”

옥화무제의 손녀인 매영인이 분명했다. 그녀라면 예전에도 몇 번 교주를 만나러 온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외총관은 모를 것이다. 그녀가 교주를 찾아온 것은 십만대산이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교주도 매영인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는 점이었는데……. 그런 그녀를 붙잡아 주리를 틀어도 뒤탈이 없을까?

“이건 아무래도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설민은 매영인과 교주의 관계를 그들에게 설명했다. 외총관은 뜻밖의 정보에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수석장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뭐, 교주님께서 그 아이에게 호감을 가지셨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일세. 무영문을 멸문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리셨다는 것은, 곧 그녀 따위는 더 이상 교주님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녀는 이곳에 사신으로서 왔습니다. 그런 그녀를 붙잡아 놓고 고문까지 한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자칫 교주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역정이라도 내시는 날에는, 그 감당을 어찌하시려고요.”

예로부터 가급적이면 사신은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물론, 허례허식 따위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마교에서 사신의 목을 베는 것쯤이야 왕왕 있어 왔던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수석장로야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저렇게 속편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소무면 장로는 달랐다. 그건 자신의 일이었으니까.

“벌써 주리를 틀기 시작했을 텐데, 이 일을 어쩌지?”

“걱정 마십시오, 외총관님.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군사의 제안에 소무면 장로는 반색했다.

“그, 그래 주겠나?”

설민은 급히 지하감옥으로 달려가 매영인을 구출했다. 고문기술자가 살짝 간만 봐놓은 상태였을 뿐, 아직 본격적인 작업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진행되어 너무나도 죄송스럽군요.”

구속에서 풀려난 매영인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심한 매질을 당한 상태였기에 그녀의 옷차림은 엉망진창이었다. 찢어진 옷 틈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속살까지 보일 정도였다.

“처음부터 이럴 의도가 아니었다니, 다행이긴 하네요.”

겉모습과 달리 꽤나 용의주도한 데가 있는 소무면 장로는 그녀를 제압한 후, 곧바로 산공분까지 먹인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공력을 전혀 운용할 수가 없었다.

“먼저 자리를 옮기시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너무 삭막한 곳이군요.”

설민은 매영인을 귀빈들을 위한 마영각으로 안내했다. 마영각의 각주를 비롯한 몇몇 시녀들은 나름대로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힌 고수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감시하고, 돌보는 데 있어서 마영각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설민은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대호법에게 부탁해 호법원 고수 몇 명을 더 붙여 놓기까지 했다.

“교주님께서 오시기도 전에 먼저 손을 쓴 점은 사죄드립니다. 부문주님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는 나중에 교주님께서 돌아오신 다음에 결정하시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는 여기에서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어쩔 수 없지요. 여기까지 온 것은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니까요.”

매영인과 헤어져 밖으로 나온 설민은 마영각주를 만났다. 교내 서열이 무려 5위씩이나 되는 거두가 마영각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영각주는 이미 문밖에서 공손하게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 계신 분은 무영문의 부문주일세.”

설민은 각주에게 매영인을 잘 대접하면서도 그녀의 감시에 만전을 기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새로운 의복을 가져다주고, 의생을 불러와 치료해 줄 것도 잊지 않았다.

마영각에서 나온 설민은 수석장로를 찾아가 경과를 보고했다.

“일단은 마영각에 수감해 두라고 조치했습니다. 매일 산공분이 든 차를 먹이고, 호법원 고수들이 그녀를 감시하게 해 놨으니 교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괜찮을 겁니다.”

“그래, 수고했네. 노부가 생각했을 때도 그게 가장 좋은 해결책인 듯싶구먼.”

급한 일처리가 끝나자, 마음에 여유가 생긴 설민은 차를 마시며 수석장로에게 슬쩍 물었다. 요즘 들어 엄하기만 하던 수석장로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즘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이지요?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좋은 일은 같이 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수석장로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실은 얼마 전에 교주님의 강권으로 수양딸을 하나 들였지. 그런데 이게 물건이더구먼.”

수석장로가 양녀를 들였음은 설민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수석장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면, 자질이 상당히 뛰어난 모양이지요?”

“허허, 그건 자질 이전의 문제라네. 세상 사람들이 딸을 무슨 재미로 키우는지를 이제야 알겠더구먼. 고것이 얼마나 순진하면서도 앙큼한지…….”

부드럽게 미소 짓는 수석장로를 보며, 설민은 부교주가 왜 그녀에게 빠져들었는지 그 이유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수석장로같이 엄한 사람을 저렇게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라니, 참으로 대단한 여자아이가 아닌가.

“축하드립니다, 수석장로님. 어쨌거나 교주님의 선택이 탁월하셨던 것이로군요.”

그런데 갑자기 수석장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근심이 어렸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물어보세.”

“예, 말씀하십시오.”

“그 아이가 내 앞에서는 밝은 척 노력하려고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부교주님을 아직 못 잊어 하는 것 같더구만.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연락이 끊겨 버렸다고 말일세. 그 아이에게 대체 뭐라고 말해 줘야 하나?”

“그런 경우 사실대로 얘기해 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모른 척하십시오. 그러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구먼.”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며 차를 즐겼다.

『<묵향> 28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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