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1화 (677/930)

식사를 마친 후, 묵향은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 부하 하나를 시켜 군사 설민을 집무실로 데려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매영인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청하기 위해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를 인질로 잡아, 함정을 파서 옥화무제의 목을 베는 것이다. 만약 그게 힘들 것 같으면 이왕에 손에 들어온 그녀를 놔줄 것이 아니라, 주리를 틀어서라도 무영문의 비밀을 토설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하지만 문제는 그녀를 그런 식으로 대하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다. 물론 주는 것 없이 얄미운 옥화무제의 목을 베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녀의 손녀 매영인은 그에게 꽤나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단호하게 처리했을 일이었지만, 이계를 다녀오고 난 뒤 묵향의 성격이 약간 변한 것이다.

집무실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설민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 아마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설민은 심약한 심성 때문에 상관의 눈치를 살피는데 있어서는 도가 튼 인물이다. 그런 그가 교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어제 잠깐 동안의 만남만으로도, 그는 교주가 매영인을 이용하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밤새도록 이 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심해야만 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눈은 수면부족으로 인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장로가 제안하고, 교주님께서 허락하신 그 계책에 이용하는 겁니다. 그분이 교주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가장 확실한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묵향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은?”

“한 장로님의 계책을 쓰지 않으실 겁니까?”

“그건 묻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보게.”

“그 계책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고문하여 무영문의 내부 사정을 캐묻는 게 좋겠다고 사료됩니다. 그냥 놔주기에 그분은 아주 쓸모가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무영문과 본문은 전쟁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불쌍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본좌가 차선책도 쓰지 않겠다고 한다면?”

“교주님께서는 그분을 놔주시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묵향은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다네. 차마 그녀를 없앨 수가 없구먼.”

“그렇다면 두 가지 방법 중에 하나를 선택하실 수가 있겠습니다.”

“말해 보게.”

“기본 계획대로 원로들에게는 그분을 이용해 옥화무제를 낚겠다고 하시며 풀어주는 겁니다. 다들 납득하겠지요.”

원로들을 속이자는 말이다. 하지만 그 제안도 묵향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믿고 따르는 수하들을 속이고 싶지는 않군.”

“그분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싫고, 원로들을 속이는 것도 싫으시다면 선택의 폭은 대단히 좁아집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한 가지 조언을 드려도 될런지요.”

“말해보게.”

“어차피 교주님께서 그분을 풀어준다고 하더라도, 옥화무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그분께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옥화무제의 손녀이니까요. 지엽적인 선택을 위해 고심하시느니, 좀 더 커다란 가지를 두고 고심하시는 게 낫지 않으실런지요.”

“커다란 가지?”

“예. 그분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쯤에서 옥화무제를 용서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무영문도 꽤나 커다란 타격을 입었음에 틀림없는데 말입니다. 역사상 무영문의 총단을 잿더미로 만든 것은 교주님께서 최초로 달성하신 위업입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세인들은 교주님께서 무영문에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리셔도 충분히 납득할 것입니다.”

“수하들도 납득할까?”

“원로분들은 힘들겠지요. 뭐니뭐니 해도 매영인이라는 패를 쥐셨는데, 그냥 물러나신다면 모두들 의심하실 겁니다. 특히 주모님께서…….”

“마화가 왜?”

“그분과 혹 수상쩍은 관계이신 건 아닐까 오해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묵향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헛소리! 그딴 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런 사소한 걸로 삐질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결혼도 하지 않았어.”

설민이 이런 식의 말을 꺼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심약한 설민은 그의 범 같은 부인에게 꽉 잡혀 살고 있었다. 그래서 사소한 일로 부인의 심기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그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다.

때문에 혹시라도 이번 계책의 발안자가 자신이라는 걸 주모가 알게 된다면, 그 후환이 두려웠기에 미리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사실 어젯밤 생각해 둔 계책이 한 가지 있긴 합니다만…….”

“그게 뭔가?”

“조건을 제시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조건이라고?”

“예. 무영문에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라고 하는 겁니다. 원로분들 조차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한 조건이라면, 그럴듯한 명분이 되지 않겠습니까?”

괜찮은 계책이라고 꺼내놨지만, 묵향은 썩 내키지가 않았다.

“가치를 입증하라고? 도대체 뭘 가지고? 장인걸도 박살낸 만큼 이제 더 이상 놈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어차피 교주님이 바라시는 건 무영문 따위가 아닌, 그분에게 더 이상의 상처를 안기지 않고 별 탈 없이 마무리 짓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 적당한 명분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 그건 그렇다만.”

“그렇기에 본교에서 수행하기 힘든 사안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겁니다. 이를 테면 만통음제 대협을 찾아오라고 한다든지 말입니다. 만약 그분이 죽으셨다면 시체라도 찾아오라고. 그러면 명분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교 역시 정보를 관할하는 부서가 있긴 했지만, 전 중원에 촘촘히 깔려있는 무영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비록 총단이 박살났어도, 지금까지 보여왔던 그들의 활약을 감안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어찌되었건 만통음제를 찾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묵향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런 걸 수하들이 받아들일까? 형님은 본교의 인물도 아니시지 않느냐.”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조금 명분이 약하기는 합니다만, 교주님과 만통음제 대협과의 우애를 모두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그분은 무명소졸도 아니고 정파의 커다란 별입니다. 그분의 존재가 본교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허긴…….”

고개를 주억거리는 묵향을 향해 설민이 조언했다.

“그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일단 부문주부터 만나보신 뒤에 결정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만약 결정하기 힘드시다면, 오늘은 대충 시간만 끌다가 헤어지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만.”

“그건 자네 말이 옳은 듯 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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