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6화 (682/930)

똥줄 타는 아르티어스

뚱따당, 뚱땅.

거문고의 은은한 선율이 그의 귀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었지만, 아르티어스의 마음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젠장,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요즘 들어 하루에도 수백 번씩 그의 골치를 아프게 만들고 있는 주제였다.

“잘못될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 그냥 확 실행해 버려?”

하지만 말처럼 쉽게 그러지는 못했다. 아무리 자신이 마법에 능통한 존재라고 해도, 기억을 지우는 정신계 마법까지 전능하지는 않았다. 만에 하나 작은 실수로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은 만통음제가 음악적 재능의 일부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르티어스는 만통음제의 음악적 재능에 푹 빠져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만의 하나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의 아버지였다면 실패하건 말건 과감하게 실행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그에게는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리라이프(Re-life)라는 최후의 보루가 남아있었으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르티어스는 그 마법을 쓸 줄 몰랐다.

최악의 사태까지 발생한다면 과감하게 모험을 감행하겠지만,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아들놈하고 헤어진지는 이제 겨우 몇 달도 채 되지 않았지 않은가. 기나긴 드래곤의 삶에 있어서 몇 달 정도는 순간에 불과했다.

“저걸 못 듣게 된다면, 너무 아쉬울 거야.”

이때, 하인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아르티어스에게 물었다.

“대인, 식사는 어떻게 준비해 드릴깝쇼?”

내친김에 아르티어스는 이곳에 한 살림을 차려놓은 상태였다. 돈이야 없으면 아무데나 가서 훔쳐도 된다. 중원에서 그의 도둑질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그는 이곳에 커다란 저택을 한 채 샀고, 솜씨 좋은 요리사와 하인, 하녀들까지도 고용했다.

평상시에는 집에서 식사를 했지만, 간혹 마을의 객잔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곳의 숙수(熟手; 여기서는 요리사를 그렇게 부른다)가 자신이 고용한 숙수에 비해 솜씨가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서 먹어볼까 하는데.”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요, 대인.”

아르티어스는 하인이 물러나자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가볍게 저으며 중얼거렸다.

“저놈에 대한 건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지. 아직은 시간 여유가 있으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르티어스는 공간이동 마법을 전개하여 한순간에 마을 외곽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으슥한 골목. 그는 이곳의 좌표를 기억해 뒀다가 별식을 먹고 싶을 때면 종종 애용하고 있었다. 골목을 나서는 아르티어스의 입가에는 곧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흐뭇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 흐흐흣, 여기 음식은 정말 마음에 든단 말씀이야.”

아르티어스가 외출하자마자 하인은 곧바로 만통음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대인께서 외출하셨습니다.”

대인이라고 불리는 이 집 주인은 만통음제에게 그 어떤 신체적인 금제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통음제는 그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화경급 고수인 그가 손도 대지 못할 상대가 이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 어찌 상상이라도 해봤겠는가. 물론 상대가 강한 측면도 있긴 했지만, 도대체 놈이 무슨 사술을 부려놨는지 그를 공격하려고만 하면 내공이 흩어져 버리는 괴변이 발생하니, 그로서도 미칠 지경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괴변은 대인이라는 놈에 국한되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대인을 제외한 하인들은 만통음제 앞에서 밥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대인이 외출하자마자 그에게 달려와 이렇듯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인의 보고를 접한 만통음제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 외곽으로 갔다.

“진법일까?”

그가 그렇게 추정하는 것은 족쇄를 차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 근처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더 밖으로 나가면, 순식간에 몸이 저택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이동해 버리는 변괴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호에 만통이라는 글자가 붙을 정도로 해박한 그였지만, 이런 해괴한 진법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풍문으로 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진법일 수밖에 없겠지.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 하지만 왜 나만 이 진법에 영향을 받는 게지? 이해할 수가 없구먼.”

집안의 하인들은 진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밖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진법 자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통음제 자신만 이런 해괴한 일을 당하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수밖에.

혹시 자신의 몸이나 몸속에 뭔가를 설치해 놓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온 몸을 주무르며 혈맥을 촉진해 봤고, 내공을 이용하여 몸속 구석구석에 걸쳐 살펴도 봤다. 또한 하인 하나를 불러들여 혹시 등 뒤에 문신 같은 걸 파놓지 않았는지 물어보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에는 그 어떤 이상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어허, 이거 참. 이런 불가사의한 진법이 이 세상에 존재할 줄이야. 평생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았거늘, 오늘에야 내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났구나.”

만통음제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진법들을 떠올리며,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그게 요즘 들어 매일매일 행하고 있는 그의 일과였다.

이때, 기가 막힌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 지하를 통해 밖으로 나가면 어떨까? 땅 속 저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는 진법이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본 적도 없으니 말이야. 그래, 바로 그거야!”

생각을 정한 그 순간, 만통음제의 몸이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의 주위를 맹렬하게 회전하는 강기의 막. 고난도의 무공을 이용하여, 만통음제는 단숨에 지하 깊숙이 파고 들었다.

충분한 깊이까지 파고 들어왔다고 생각한 그는 옆으로 방향을 돌렸다.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갖춘 만큼, 땅을 파나가는 속도 또한 무시무시했다. 그의 후방으로 전방으로 뚫고 지나가며 생긴 돌가루와 흙가루가 거칠게 휘날렸다.

“엥?”

어느 순간, 만통음제는 흙투성이가 된 채 자신의 방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으아아아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한참동안 방안을 돌며 발광을 하던 그는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자리에 퍼질러 앉아 중얼거렸다.

“그래, 죽자! 이렇게 살아서 뭣하리.”

이곳에 잡혀 와서, 하루에 골백번도 더 떠올려 보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니 의동생 묵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맹파천과 설취 등등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얼굴들이 줄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것 외에 자신에게 가해진 금제는 전혀 없었다. 물론 하루 중 일정 시간동안은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긴 했다. 딱히 할 일도 없었던 만통음제였기에, 대인이라는 놈의 압력이 아니더라도 미친 듯이 악기를 연주했다. 그것 외에 자신의 이 비참한 현실을 잊게 해줄 방도가 없었으니까.

“제 아무리 완벽한 진법을 설치해 놨다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어딘가에 빈틈이 있을 거야. 시간을 들여 천천히 궁리해 보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너는 할 수 있어.”

스스로를 위로하는 만통음제였다. 물론 이것도 다 상대가 인간이라고 생각했기에 가지게 된 부질없는 희망이긴 했지만…….

* * *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객잔을 향해 걸어가던 아르티어스의 발걸음이 흠칫 멈췄다. 평소 감정의 동요를 찾아보기 힘든 그였지만, 지금 그의 두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가 발길을 멈춘 곳은, 평소 관에서 현상수배자들의 방을 붙이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난이라도 쳐놓은 듯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듯한 괴상한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방이 하나 붙어있었는데, 그것이 아르티어스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레어가 위치한 말토리오 산맥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크라레스 제국이 사용하는 문자였다.

『사랑하는 아버지.

도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오세요. 뭐, 저랑 같이 살기 싫으시다면 어쩔 수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봐서 한동안 여행을 떠날까 하는데, 안 오시면 저 혼자 떠날 겁니다.

다크 올림』

다른 사람들은 그 방에 그려져 있는 괴상한 기호들을 보고는 누군가가 장난을 쳐놨다고 생각하겠지만, 방을 읽는 아르티어스의 가슴은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버지. 너무나도 달콤한 말이다. 그리고 둘이서 오붓하게 여행을 떠나자니? 안 그래도 그놈의 의형이라는 놈을 모르고 두들겨 팬 것 때문에 노심초사 하고 있던 차에, 이런 가족적인 정이 듬뿍 배인 글을 보자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흑흑…….”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조금 전까지는 교활한 호비트놈에게 낚여, 이렇게 이계까지 와서 개고생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호비트놈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생각도 하지 않는데, 자신만 미친 듯 짝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얼마나 보지 못했다고, 이런 식으로 사방에 방을 붙여 자신을 찾다니. 게다가 방의 첫 문장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 또한 얼마나 따뜻한 내용인가. 여행을 갈 테니, 빨리 돌아오라고…….

엥? 훌쩍거리며 방의 문장들을 읽고 또 읽던 아르티어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읽을수록 그 뜻이 오묘(?)했던 것이다.

아르티어스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장을 곧이곧대로 해석한다면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일이 생겼는데, 아버지와 함께 가고 싶으니 빨리 돌아오시라는 것이었다. 빨리 오지 않으면 혼자 떠난다는 말과 함께…….

얼핏 생각해도 이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세계에 와서 아들놈이 자기를 내팽개치고 혼자서만 여행을 다닌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리고 겨우 여행 한 번 같이 가자고, 온 천지에 방을 도배해 놨다는 것도 수상쩍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뭔가 내용이 이상해?”

이때, 아르티어스의 뇌리에 번쩍 하고 스치는 게 있었다.

“그래! 이건 최후통첩이야.”

그 순간 아르티어스의 머릿속에서 방의 내용이 새롭게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말을 이별과 같은 뜻으로 해석해 본다면…….

『빨리 십만대산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하고 같이 살기 싫은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빨리 튀어 와서 싹싹 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아빠와 나는 영원히 이별이니 그리 아십쇼.』

아르티어스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이런 떠그랄! 내가 네 녀석 하나 믿고, 이 물설고 낮선 곳까지 따라왔는데, 나를 이렇게까지 괄시하다니. 이 못된 녀석!”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서둘러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저택에 만통음제가 갇혀있다는 것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서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십만대산의 교주 전용 연공실 안에는 예전에 그가 그려둔 수신마법진이 있다. 교주 전용 연공실이 워낙 안전한 곳이었기에 혹시나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려둔 것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게 도움이 될 줄은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수신마법진을 그려두기를 정말 잘했어. 거기까지 달려갈 걸 생각하면, 에휴~~.”

한숨을 내쉬며 아르티어스는 마법진을 구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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