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7화 (683/930)

* * *

“크, 큰일 났습니다. 수석장로님!”

헐레벌떡 달려 들어오는 왕지륜을 바라보며 수석장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장로원 수석참모라는 놈이 저렇게 경망스러워서야…….

“에잉~,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바, 방금 천마동에서 급전이 도, 도착했습니다.”

“천마동?”

천마동이라면 교주 전용의 연공실이다. 혹시, 그곳이 무너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허어, 답답하구나. 어서 속 시원하게 빨리 좀 말해 보거라. 천마동이 어찌 되었다고?”

“어, 어르신께서 천마동에서 나오셨답니다.”

“어르신이?”

왕지륜의 말에 수석장로의 안색이 홱 바꿨다. 어르신이라면 교주의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또 있겠는가.

“행방불명되었다던 어르신께서 왜 천마동에서 나오신다는 말이냐?”

매서운 질책에 왕지륜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건 속하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수석장로는 주먹을 꽉 쥐며 으르렁거렸다.

“천마동 경비를 섰던 놈들을 철저하게 문초하도록 해라. 녀석들이 긴장을 늦췄을 때, 어르신이 들어가신 거겠지.”

“하, 하지만 수석장로님. 그렇게 따진다면 본교에서 문초를 받지 않을 고수가 누가 있겠습니까. 외곽에서 천마동까지 들어가려면 교내의 거의 모든 경계망을 돌파했다고 봐야 하는데……. 그건 수석장로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왕지륜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아르티어스가 언제쯤 들어왔는지 그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어쩔 수 없지. 그분께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썩을 놈들. 어르신께서는 천마동에 계셨거늘, 행방불명되셨다고 보고해서 교주님께 심려를 끼치게 만들다니. 내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허어, 참! 이런 망신이 있나.”

이때, 뭔가 생각났다는 듯 수석장로는 짜증스런 어조로 외쳤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게 어르신께서 행방불명되셨다며 호들갑을 떤 네놈 잘못이 아니더냐!”

왕지륜은 바닥에 납쭉 엎드리며 사죄했다. 불문곡직하고 단숨에 때려죽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그의 얼굴은 공포로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요, 용서를…….”

“네놈의 죄는 급한 일부터 처리한 후에 묻기로 하겠다.”

수석장로는 왕지륜을 그냥 놔둔 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천마동을 향해 달려갔다. 어르신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아르티어스도 수석장로를 찾아서 걸어오고 있던 중이었기에, 얼마 가지 않아 수석장로는 어르신을 만날 수 있었다. 수석장로는 아르티어스를 향해 고개를 깊숙이 조아리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어르신,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어르신께서 천마동에 계신지도 모르고, 실종되신 줄 알고…….”

아르티어스는 상대의 말을 자르며 약간은 짜증스런 어조로 물었다.

“아, 그건 됐고, 내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물음에 멍한 표정을 짓는 수석장로. 하지만 그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 보고했다.

“예? 아, 예. 교주님께서는 지금 출타하셨습니다.”

“출타했다고? 어디로?”

아르티어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린다. 최후통첩. 어쩌면 아들놈은 최후 통첩대로 자신만을 남겨두고 그냥 떠나버렸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보지 않을 생각으로.

하지만 그런 아르티어스의 내심을 알 리 없는 수석장로는 교주가 옥화무제와 만나기로 한 장소를 말해주었다. 사실, 교주가 옥화무제와 만나기 위해 출타했다는 것과, 만나는 장소는 특급기밀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수석장로가 주저없이 입을 연 것은 아르티어스가 심령에 압박을 가해 입을 열게 만든 것이다.

“혹시 여행을 간다거나 한 건 아니겠지?”

아르티어스의 속 타는 마음과 달리 수석장로는 당치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예? 여행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억측이십니다. 제 목을 걸고 장담합니다만, 교주님께서는 공무 때문에 출타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공무 때문이라는 말에 아르티어스는 저으기 안심했다. 핏기없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공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인 만큼 아들을 만나보고 싶군. 아무래도 내가 직접 거기에 가보는 게 좋겠어.”

“교주님께서는 며칠 내로 돌아오실 겁니다. 지금 교를 나서신다면, 괜히 길만 어긋나실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

“거기까지 얼마나 된다고 길이 어긋나? 지명 따위는 필요 없고, 대략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 정확한 거리를 말해 봐.”

“그러시다면 여기서 설명을 들으시는 것보다, 일단 제 집무실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곳에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 지도가 있는데 말입니다.”

“오호, 그거 좋군. 앞장 서라.”

“예.”

수석장로가 아르티어스를 모시고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했을 때, 왕지륜은 아직도 부복한 자세 그대로 엎드려 있는 중이었다.

“이놈은 왜 이러고 있냐?”

“아, 잘못을 저질러서 기합을 좀 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왕지륜, 너는 빨리 나가 봐.”

왕지륜은 아르티어스와 수석장로에게 인사를 건넨 후, 후다닥 밖으로 도망쳤다. 아르티어스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을 감사해 하며…….

수석장로는 탁자 위에 놓인 지도의 한 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교주님께서는 이곳으로 가셨습니다, 어르신.”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수석장로가 지도에서 시선을 돌려 아르티어스쪽으로 향했을 때,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갑자기 어르신의 몸에서 희뿌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빛이 멈춘 순간 어르신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수석장로였지만, 이번만큼은 경악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 이런 변괴가!”

한평생을 무공 수련에 몸바쳐온 수석장로다. 무공을 이용해서 한순간에 몸을 빼는 요령쯤은 이미 숙달하고 있었다. 극마급 이상의 고수로 발전한다 해도, 그 속도가 좀 더 빨라진다는 것이지 요령은 똑같다. 그렇기에 그는 방금 전에 아르티어스의 몸이 사라진 게 결코 무공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수석장로는 자신의 눈을 몇 번이고 비빈 다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내, 내가 귀, 귀신이라도 본 것일까?”

0